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 The Lincoln Law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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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를 가지고 영화를 보지 않으면 지루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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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 The Lincoln Law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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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여유로운 시간이 생겨서 영화를 보았다.

비바람이 세차게 불었지만,

창문만 크게 흔들거릴 뿐 아파트라 큰 상관은 없었다.

편안한 자세로 영화를 보니 안락함을 느낀다.

오후였지만 먹구름이 만든 자연조명으로 인하여,

약간 어두운 상태에서 영화를 보았다.  





 

"변호사님은 노숙자였어도 성공했을거예요."

 

고가의 링컨차를 굴리며 변호사로서 탁월한 센스를 가진 믹 할러는,

어떤 사건이든 의뢰인과 합의한 금액만 받으면 최고의 실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최고의 실력을 발휘하더라도 불리한 사건이면,

어김없이 의뢰인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 협상을 한다. 

그럴 때면 결백을 주장하는 의뢰인이 행여나 자신으로 인해 억울한 처벌을 받을까봐 걱정한다. 

그런 그에게 강적이 나타났다.

의뢰인 루이스는 진술을 번복하며 할러를 괴롭히고,

심지어 할러의 주변 인물들을 죽이거나 위협하며 곤란하게 만든다.

루이스의 이같은 행패에 할러는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내가 지금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 악마야, 순수한 악마."

 

<U-571>, <타임 투 킬>의 매튜 맥커너히(Matthew McConaughey)를 오랜만에 보았다.

스마트한 인상괴 올백머리는 여전하고 연기 또한 변함없이 훌륭하다.

멋지게 늙어가는 미중년이다.

 

<아버지의 깃발>의 라이언 필립(Ryan Phillippe)은 상당히 동안이다.

영화에서 특별히 연기가 뛰어나다고 생각되진 않았지만 나쁘지도 않았다.

그녀의 전 연인이었던 리즈 위더스푼(Reese Witherspoon)으로 국내에 많이 알려졌다.

 

신인감독인 브래드 퍼맨(Brad Furman)은 괜찮은 연출과 제작을 했다.

 



 

"할러, 자네는 도대체 누구 편이야? 알 수가 없군."

 

법정 스릴러 영화들은 어느 정도 정해진 패턴이 있는데,

이 영화도 그 패턴을 준수하며 스토리가 전개된다.

그러나 스토리의 큰 굴곡이나 박진감 넘치는 장면이 거의 없어서,

흥미를 가지고 영화를 보지 않으면 지루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법정 스릴러 영화는 <데블스 에드버킷>이라 생각하는데,

그 영화와 이 영화는 비교불가이다.

다만, 이 영화를 재밌게 본 부분은 미국 법조계의 에피소드들이었고,

그 중 판사, 검사, 변호사가 배심원들과 청중들을 앞에 두고,

사전에 모종의 거래로 이루어진 재판을 하는 장면은 흥미로웠다. 

 



 

"이번 건은 내가 공짜로 해주지!"

 

다수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 법조계 직업들을 장래희망으로 한번쯤은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법조인이 되기까지는 뛰어난 실력과 행운 및 센스가 필요하다.

흥미로운 것은 뛰어난 실력은 기본 사항으로 학벌을 뜻하지만, 

행운과 센스는 부가 사항으로 지연, 혈연, 기회주의, 권력남용 등등..

'능력'과 '융통성'이라는 이름으로 사용되는 불법적 요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요소들로 인하여 법조인들은 사회 내에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지나친 과장일 수 있으나 언론과 매체에서 법조계의 비리 보도는 국민들에게 익숙하다.

 

불법을 이용해 사건을 합법으로 만들 수 있고,

합법을 이용해 사건을 불법으로 만들 수 있는 그들의 언행에,

사회적 약자와 인권을 향한 개인적 비영리와 사회를 위한 공익이 있을까?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영화를 통해 국선 변호사가 형편없다는 것은,

언론과 매체를 통해 예감할 수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 영화는 속물 변호사가,

악질 의뢰인을 통해 스스로를 돌이켜 양심적 변호사로 탈바꿈 한다.

그래서 결백을 주장하는 의뢰인이 처벌 받는 것을 두려워 하는 변호사와,

거짓을 주장하면서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죄를 면책하려는 의뢰인의 대립은,

이전에 보았던 영화들과는 조금 다른 설정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계기를 통해

법조인들이 지금의 부패를 깨닫고 개과천선 할 수 있다면,

좋은 방법은아니지만 악질 의뢰인들의 등장은 큰 자극제가 될 수 있다.

 

법의 사각지대를 교묘히 노리는 사람들은 서민이 아니라 부유층들이다.

같은 권력을 가진 법조인들이 그들을 견제하지 않고 불법적 합의와 협상을 진행한다면,

피해는 서민들에게 돌아오고 사회정의는 실현될 수 없다.

법을 올바르게 준수하고 사회적 약자들과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정직한 법조인이라면,

링컨 차를 굴리든 비싼 집에 살든 큰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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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병기 활 - War of the Arr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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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광구>로 실망했던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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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병기 활 - War of the Arr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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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는 밤늦게 극장을 찾아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이른 오전에 보고 있는데 제법 나 같이 혼자 보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래도 주말이 여유롭지 않기 때문에 평일이 오히려 여유로운데,

밤늦게 영화를 보면 잠도 늦게 자게 되고 다음날 하루가 피곤할 때도 있다.

그러나 오전에 영화를 보면 일찍 자든 늦게 자든 무조건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그럭저럭 남들과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언제 일어나도 전혀 피곤하지 않다.

나도 모르게 의지가 강해지고 있다. 

 

구로CGV 1관에서 오전 10시 30분에 <최종병기 활>을 보았다.

가끔 맥스무비에서 예매를 하면 항상 CGV는 좌석을 선택할 수 없는데,

임의로 배정되는 좌석은 정말 최악이다.

이번에도 오전이라 사람들이 많지 않은데 최악의 자리에 배정해서,

할 수 없이 그 열에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서 영화를 보았다.

마침 내 원래 자리 옆에 한 남자가 와서 앉았는데,

다행이 서로 떨어져서 보게 되어 서로에게 이득이 되었다.

머릿속에서는 그 남자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싶었다.

"혹시 맥스무비에서 예매하셨어요?"

 

맥스무비가 매달 나를 위해 할인과 무료혜택을 주어서 고맙기는 하다.

CGV만 제외하면 왠만한 극장은 좌석 선택을 할 수는 있다.

단지 CGV가 집에서 가까운 것이 맥스무비를 향한 애로사항이다.

자리는 별로 였지만 영화는 아주 편하게 보았다.

 

금년 8월 31일까지만 CGV포인트가 적립되어서 CJ ONE 카드를 만들었다.

 





 

"두려움을 직시하지 않으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느니라."

 

가문이 역적으로 몰려 멸문지화를 당하던 날,

역적의 자식들인 남이와 그의 누이 자인은 간신히 피신하고,

아버지의 친구 집안의 식객으로 13년 동안 살아간다.

그동안 어릴 때부터 남다른 활솜씨를 가졌던 남이는 더욱 연마하여,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신궁의 경지에 이르게 되고,

누이 자인은 아버지의 친구 집안 자제 서군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을 승리로 이끈 청나라 군사들은,

약 50만의 조선인들을 머나먼 만주로 데려가 종살이를 시키려 했고,

자인과 그의 남편 서군도 같이 포로로 끌려간다.

 

하나 뿐인 누이 자인을 구하기 위해 단신으로 청나라 진영으로 향한 남이.

뛰어난 활솜씨로 청나라 군사들과 싸웠지만 역부족이었고,

청나라 명장 쥬신타가 그를 추적한다.

 



 

"태산처럼 받쳐들고 호랑이 꼬리 말듯이 쏴라."

 

<이끼>, <심장이 뛴다> 등 현대극에서 자주 보았던 박해일을 사극에서 보니 흥미로웠다.

요새는 현대극과 사극이 가진 특성의 차이가 거의 없어졌는데,

박해일은 현대극이든 사극이든 자신이 맡은 배역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박해일은 저력 있는 배우라 할 수 있다. 

 

<아이들>, <평양성>의 류승룡은 오래 전부터 내가 대박을 예언한 배우이다.

<바람의 화원>에서 두각이 드러난 사극 연기의 포스가 영화에서도 드러났다.  

온화함과 냉정함을 동시에 지니고 이미지는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게 만들고,

언젠가 그의 연기가 정점을 찍을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한다.

 

<바람의 화원>에서 처음 본 문채원은 꽤나 당찬 여성의 이미지를 가진 배우였고,

지금도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런 배역과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다소 연기가 어색하거나 대사가 부자연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녀는 성장 중이다.

 

이한위, 이경영, 박노식, 김구택이 조연으로 출연하였는데 큰 집중을 받진 못했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 몫을 다한 연기를 보여줬다.

 

<무산일기>의 강은진이 단역으로 출연했고 윤동환과 박명신이 특별출연을 했다.

 

<핸드폰>의 김한민 감독이 2년만에 만든 신작인데 꽤 괜찮았다.

사물을 보는 시각이 다양하고,

특히 한 사물에 집중하여 여러 의미를 찾아 내는 것에 뛰어난 것 같다.

핸드폰과 활 다음은 무엇일까?

 



 

"내 활은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다."

 

영화의 몰입도는 근래에 본 영화 중에 최고였다.

안좋은 버릇이지만 나는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손목시계를 볼 때가 있다.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영화가 지루하거나 늘어질 때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으로 보고,

다른 하나는 "이쯤되면 끝날 때가 된 것 같군!" 이라 느낌이 들 때 본다.

2시간이 넘는 긴 런닝타임이었지만 내가 손목시계를 본 때는 거의 영화가 끝날 때였다. 

그만큼 영화가 가지고 있는 주의집중과 몰입요소들은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고 스토리 전개도 나쁘지 않았다.

박해일과 류승룡 간의 연기대결은 영화 전체적인 분위기를 주도하며 긴장을 축적했고,

활이 가진 전통적인 의미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의미들을 조화롭게 구성하여,

결론적으로는 한국적인 이미지로 승화시켰다.

 

대단한 영화라 하기에는 좀 부족하지만,

충분히 극장에서 볼 만한 영화이고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7광구>로 실망했던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두려움은 직시하면 그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활은 사냥과 전쟁에 쓰이는 무기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귀족들의 놀이문화로도 사용되었다.

생계 수단과 품위 유지의 역할을 둘 다 포함하는 활은,

서양보다 동양에서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서양은 활에서 총으로 바뀌면서 문화도 따라 변천했지만,

동양에서는 총이 수입되었어도 활의 역할이 변하지 않았다.

 

특히 주변의 다른 민족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검술에 능하지 못했던 우리 민족에게,

표적과 자신의 위치를 빨리 판단해서 집중력과 순발력으로 쏘았던 활은 최고의 무기였고,

우리 역사 속에서 위대한 무장들은 활쏘기에 능하여 그것으로 무예 실력을 겨루었다.

또한 귀족들과 선비들은 활쏘기로 품위 유지와 심신수양을 했고,

성별과 신분적 제약이 있었던 여자들도 활쏘기를 즐겨했다. 

그러므로 활에는 우리 민족만의 독특한 정신과 문화가 담겨져 있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은 위에서 말한 것 외에도

활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 의미 많다는 점이다.

병자호란 때 만주로 끌려간 우리 선조들은 나라와 백성을 버린 힘없는 임금의 외면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구사일생으로 압록강을 넘어 조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오랑캐들의 숱한 모욕과 횡포를 견디고 조국으로 돌아온 그들에게,

조정의 대신들과 몇몇 사람들은 "역적"이라고 말하면서 손가락질 했으니 얼마나 참담한가?

그래서 영화 주인공인 남이가 "그래도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에 숙연해졌다.

그가 쏘는 활은 사람을 죽이려고 쏘는 활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과 고향에 돌아가 평화롭게 살고 싶은 염원이 담긴 활이었고,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민중의 활이었다.

 

검은 감정적이지만 활은 이성적이다.

검은 한번 휘두르면 거침없지만,

활은 쏘는 순간까지 표적을 바라보며 생각해야 한다.

왜 검보다 활에게는 평화로운 기운이 감도는 것일까?

바람을 극복해야 표적에 정확히 맞출 수 있는 활처럼,

지금 우리나라가 겪는 고난을 극복해야 영광의 순간에 도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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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구약성서의 신앙 한국구약학총서 KOTL 18
차준희 지음 / 프리칭아카데미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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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인들이 성서를 하나님의 무오한 계시로 이해하며 보기에는 의문점들이 많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성서를 읽을 때면 갈급함을 느끼고, 갈급함이 해소되지 않으면 신앙은 정체되고 후퇴한다. 그러나 어떤 계기를 통하여 갈급함이 해소되면 신앙은 계속 성장할 수 있고, 성서의 영향력은 더욱 커진다. 결국, 계기에 대한 해석의 유무가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정체내지 후퇴와 성장을 판가름한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누가 어떻게 계기를 해석하고 올바른 신앙의 성장으로 이끌어 줄 것인가이다.

  이번에 읽은 <최근 구약성서의 신앙>은 아마 이런 질문에 어느 정도의 답을 내놓고 있다. 저자는 구약성서의 전반에 걸쳐 이스라엘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구속사역들 중 중요한 쟁점들과 그에 따른 해석들을 정리하였고, 단지 해석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기독교와 그리스도인들이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그 대안도 어렴풋 제안한다.


  사실 하나님은 항상 앞서 행하시는 분”(Vorangehender)이시다. <124p> 

  신명기의 배경은 불순종의 세대가 어떻게 되는지를 철저히 경험한 새로운 이스라엘 세대와 가나안 정복을 눈앞에 두고, 1세대의 마지막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 모세가 새로운 이스라엘을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 가나안 정복을 내보내면서 마지막으로 행하는 고별사라 볼 수 있다. 여호수아 24장 역시 여호수아의 고별사가 있고, 사무엘 역시, 예수 그리스도도 요한복음 마지막 부근에서 고별사를 한 것을 볼 수 있다.

  신명기에서 모세는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사건 내용을 유언하고 있다. 여기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 너희 생존, 생명이 어디에 달려 있느냐 하나님 말씀에 달려있다이다. 그런데 신명기 3119절에서 흥미로운 점은 모세가 증거의 노래를 지어 부르라 했는데 그 내용은 오히려 이제까지 너희 생명이 하나님의 말씀지킴에 있다고 그렇게 당부를 하면서도 29절에서는 너희가 아무리 노력해도 너희는 끝내 하나님을 배역하다가 심판당하리라는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을 하고 있다. 이것의 의미는 구약제도 자체가 갖고 있는 불완전성을 암시하는 것이며 또한 아직까지도 구약은 더 완전한 모습을 기다려야함을 암시한다. 그리고 의미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 예언서들이다. 결국 하나님의 계획과 생각은 이스라엘 민족과 오늘의 사람들보다 앞서고 먼저 일하시고 행하신다는 것을 구약 성서 전체가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힘에 의존하지 않는 인간의 영점상황’(零點狀況: Nullpunksituation)서 시작된다. 다른 말로 하면 구원은 절대적인 무()로부터’(ex nihilo)의 하나님의 창조라고 할 수 있다(45:8). <231p>

  시간성이라는 것은 피조세계의 실존의 양식이다. 1:21주님이 주셨으니 주님이 취하신다. 그의 이름이 찬양 받으실 것이다라고 한다. 그 외에도 시 90편의 인간과 시간에 대해서 말한다. 즉 산들이 생기기 전부터 주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이시고, 인간으로 흙으로 돌아가라 하셨다. 그렇다면 인간은 불멸의 존재가 아니며 피조물이라고 창6:3에 말하고 있다. 인간은 그의 생명을 창조주로부터 받았고 다시 반환해야 한다. 오래 살다가 수명이 다해서 죽게 되면 좋지만 누구나 주께 되돌려 드려야 한다. 생명을 드린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구약은 말하지 않고 있다. 영원한 인간의 삶은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피조물로서의 인간, 타락한 인간이지만 이 인간의 창조된 시간성 안으로 하나님의 계시가 뚫고 들어왔다. 그것도 하나님의 원하시는 시간에 들어왔다. 하나님의 은혜를 주면서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한다. 하나님은 자기의 계시를 시간 속에 나타내시므로 피조물의 시간성을 매우 진지하게 고려하고 계신다. 구약에 있어서 시간이나 역사는 매우 본질적인 것의 하나이며 의미가 크다. 시간과 계시의역사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각에서만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의 의미 있을 수 있고 그 수수께끼 같은 가면을 벗을 수 있다.

  시간이 인간에 주어졌다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주신 구원을 우리가 붙들도록 하는 것이다. 시간은 인간이 결코 인간이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구원의 계시를 자기의 소유물로 만들 수 없다.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하는 부르심에 대해서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인간은 하나님의 자의적인 행동이나, 변덕스런 하나님께 맡겨진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구원행동이 역사 속에서 계속 되었다는 것은 그의 성실과 구원 의지를 분명히 알게 해주고 인간에게 마지막이 온다는 것과 구원이 성취된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언제나 출애굽 사건을 자기들의 시대로 현재화했던 것과 예언자들이 이미 예언이 일어났다고 성취된 것으로 표현한 이유는 하나님의 구원이 언제나 같은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은 무시간적이나 신비주의적인 것이 아니고 신적인 것에 대항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시간에서의 구원이 아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속의 구원은 시간을 넘어서는 것이고 더 이상은 아니라는 제한을 넘어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의 경지로 가는 것이다.

  욥이 깨닫기 이전에 경함한 우주는 혼돈이 가득한 모순덩어리의 세상이었다. 그러나 혼돈의 세력이 있다고 이 세상 자체가 혼돈은 아니다. 비천한 인간의 눈에는 이 세상이 하나님 부재한 무질서한 세상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의 눈에 이 세상은 당신이 계획하신 대로 운행되고 있다. <335p>

  욥기에서 욥은 인생의 어떠함에 대해서 말한다. 그것이 어떤 신학적 의의를 따르느냐 에 관해 생각하기보다, 구체적으로 욥이 41장에 자신이 할 말이 없어진 이유에 대해서 알면 욥기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어떠함을 알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욥은 어떤 사람인가? 당대의 의인이다. 스스로도 자신은 흠이 없다. 자신이 고난을 당해야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오히려 자신이 태어난 것 까지 원망을 하게 된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이다. 그러나 의인인 욥도 고난을 당하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 원망을 늘어놓게 된다. 아무리 자신이 의인이고,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이 많다고 해도, 주신자의 어떠함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것이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던 사람이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던 것이다. 그의 인생은 그도 의식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 간택되어 준비되어진 복을 누려진 인생이고, 하나님도 인정한 의인이다. 그러나 시험대에 올려 진 욥의 인생을 통해 드러난 것은, 의인이라도 인생이 있게 하신 분에 대해서는 몰랐던 것이다. 왜냐면 욥 자신은 의인이었지만, 그것을 주신이도 하나님이고, 거두어 가시는 분이 주님 자신인 것을 몰랐던 것이다.

  욥은 한 점 흠이 없다. 왜냐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인이기 때문이다.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 후반부에 원망을 늘어 논다. 자신의 탄생에 대해 원망을 했기도 하고, 내가 이렇게 의인인데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에 대해 하소연 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일어나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환경의 불행들은 무엇인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소유들이 사라졌다. 의인도 별수 없구나, 결국 자신은 한 점 티없이 의로움 때문에, 내가 어떻다고 말하는 것이구나. 의인은 자신의 항변이 있다. 제가 의롭지 않습니까? 제가 주님을 경외하고 한 점 의롭지 않습니까? 제 행위가 무엇이 잘 못 되었습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해석의 교차가 일어났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욥의 문제가 무엇인가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욥은 인생으로서 하나님 앞에 대면했을 때, 자신은 아무 할 말도 없는 자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었다.

  의인인 그에게 그의 모든 소유를 거둬감으로서 욥으로 하여금 인생에 대해서 깨닫게 하신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베풀어진 것들에 대해서 깨닫지 못하고 많은 날들을 지나간다. 그리고 베풀어진 것들이 없어지고 나면, 원망밖에 할 수 없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러나 베풀어 진 것도 복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다.

  의인은 왜 고난을 당해야 하는가, 왜냐면, 의인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자신의 어떠함을 항변할 수 없는 자리가 바로 인생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근원에 대해서 모른다. 비록 의인에게 많은 복이 주어졌어도, 의인은 정녕, 주신 자에 대해서는 몰랐던 것이다. 그것이 크든 작든 완전한 것임을 모른다. 욥은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을 보면, 욥은 인생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인식하게 된 것이다. 욥의 살아생전 모든 복은 주신 자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주신 자가 주셨던 것을 모두 거두어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니, 인생으로 알게 된 것이다. 비록 욥은 의인이고, 살아생전 많은 복을 누렸고, 그 모든 복들을 모두 가져가신다고 하더라도, 아무 할 말이 없는 자리가 바로 인생이다. 욥기를 통해서, 인생의 어떠함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다.


  책을 읽으면서 전체적으로는 신학과 신앙이 적절하게 조화되었다고 느꼈다. 부분별로는 신학과 신앙의 비율이 따로 따로 강조되는 부분도 있었다. 책 제목은 최근이라고 되어있는데, 최근이기보다는 기존에 저자가 쓴 <창세기 다시보기>, <출애굽기 다시보기>, <시편신앙과의 만남>, <예레미야 디시보기> 등에 있었던 내용들이 더러 인용되어있었다. 그래서 저자의 기존 책들을 읽었던 독자들이라면, 이 책의 새로운 내용만을 따로 정리하여 간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또한 책 자체가 교정이 덜된 느낌이 든다. 대표적으로, ‘, , , 의 사용이 적절하지 못하고, ‘~같은 조사 역시 적절하지 못하여 의미가 뚜렷하지 못하다. 앞으로 읽을 독자들을 생각한다면, 이런 부분에서 교정이 필요할 것 같다.

  이 책의 가장 장점은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에게 목회현장에서는 설교의 풍성함과 신학적 소양을 키워주는데 도움이 된다. 목회자들이 보기에 이 책은 강해설교와 같고, 신학생들이 보기에는 성서를 해석하고 현실에 연결하는 기초적인 방법을 습득할 수 있다.

  다른 장점으로는 성서를 보는 폭이 넓어질 수 있다. 성서는 문서로 이루어져 있고 문자가 적혀있다. 그것은 문맥을 먼저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구비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서 원문은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되어 있는데 원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대한 이해를 통해 성서를 바라보고 해석되어 정확한 뜻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삶에 적용되고 이해될 수 있겠지만 성서 자체의 의미가 불분명한 상태에서의 적용과 이해는 독선이나 독단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기독교에서 개개인의 신앙의 형성으로써 성서는, 문자에 대한 확실한 이해와 신앙공동체의 변론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개인만의 성서 이해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원문에 가깝게 성서가 가진 문자적 의미에 대한 정확한 해석과 그것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처한 다양한 현실 상황에 적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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