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토 - Carlito's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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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스터 영화들은 전부 대부(Mario Puzo's The Godfather)시리즈와 칼리토(Carlito's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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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토 - Carlito's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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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다 본 후 나는 박수를 쳤다.

아마 나와 같이 박수를 쳤을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그 사람을 만나고 싶은 충동까지 들었다.

물론 이 영화가 지금 만들어졌다면 나는 그저 볼만한 영화다고 평가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1993년에 만들어졌다. (나는 그때 국민학생이었다.)

그후 나오는 갱스터 영화들은 전부 대부(Mario Puzo's The Godfather)시리즈와

칼리토(Carlito's Way)의 아류에 불과하다.

이 영화와 비슷한 한국영화는 장현수 감독의 <게임의 법칙>이 있다.

(이 영화는 한국영화의 수작이다. 그러나 아류이다.)

 

"호의는 총보다 사람을 더 쉽게 죽이는 무기야."

 

영화에서 변호사인 데이브(숀 펜)은 칼리토(알 파치노)를 감옥에서 석방시켜서 칼리토에게 호의를 베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안전을 위한 거래였다.

그러나 범죄자의 삶을 청산하고 싶은 칼리토에게는 족쇄와 같았다.

칼리토는 이미 알고 있었다.

 

"범죄는 내가 자초하지 않아도 늘 내 뒤를 따라다닌다."

 

그래서 그의 소박한 꿈인 '자동차 임대업' 도 그걸 듣는 그의 친구들에겐 그저 웃음거리일 뿐이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칼리토의 독백처럼 그는 정말 갱스터의 삶을 벗어나려고 최선을 다했다.

사랑하는 여자기 있었고 돈도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는 그의 꿈으로 가는 열차를 타지 못했다.

그리고 말한다.

 

"미안하네. 아무리 날 꼬매도 날 살릴 수는 없어. 이렇게 잠들겠네.

 내 몸은 109번가 장의장으로 가겠지. 언젠가 그리 갈줄 알았어.

 다만 다른 사람들의 예상보다 늦은거지.."

 

영화에서 칼리토가 하는 대사는 낭만적이면서도 솔직하다.

이 대사들은 1994년을 기점으로 영화나 만화책, 드라마에서 자주 사용됐다.

나는 오늘에서야 알 수 있었다.

 

 

<미션 임파서블 Mission: Impossible>의 브라이언 드 팔마(Brian De Palma)감독은 

범죄, 스릴러 영화의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다. 

뭐랄까.. 그는 어떤 영화를 만들어도 갱스터틱하다.

그러나 갱스터틱에서 멈추지 않고 삶의 실존적인 의미가 있다.

음악을 맡은 패트릭 도일(Patrick Doyle)과 젤리빈 베니테즈(Jellybean Benitez)는 

우리나라의 많은 예능프로그램에 도움을 주었다. 

알 파치노(Alfredo James Pacino)는  이 영화로도 충분히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을 수 있었지만

<여인의 향기 Scent Of A Woman>로 받았다.

숀 펜(Sean Penn)은 아줌마 파마의 어색함을 이기고 부패한 변호사역을 잘 연기했다.

하지만 너무 잘 연기해서 지금의 숀 펜과 비교하면 우습다.

페네로프 앤 밀러(Penelope Ann Miller)는 왜 여우주연상을 못받았을까?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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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 A Reason to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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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들에 비해 크게 인상적이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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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 A Reason to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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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가을은 무척 바쁘다.

해야할 것들도 많고 하고 있는 것들도 많다.

누가 많은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정말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언젠가 내게 큰 도움과 자산이 될 것이라 믿는다.

 

10월 초부터 마지막 주에 개봉하는 영화 한 편을 미리 염두해 두었는데,

그 영화는 이정향 감독의 신작 <오늘>이었다.

2002년 <집으로..> 이후 9년 만에 나오는 신작이었고,

드라마가 아닌 영화에서 송혜교를 본다는 기대감이 컸다.

 

도서관 마감 시간에 맞추어 영화를 예매했고,

구로CGV 7관에서 밤 9시 50분에 <오늘>을 보았다.

개봉 첫날이고 늦은 시간이었지만 관객들이 너무 없었다.

정확하게 커플 2팀과 나와 같이 혼자 보러온 관객 2명 등 총 7명이었다.

덕분에 좋은 자리에서 아주 편한 자세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용서하니까, 올케는 편해?"

 

결혼을 앞두고 생일을 맞이한 다혜.

그러나 약혼남 상우는 그녀의 생일날 뺑소니 사고로 죽게 된다.

상우의 사망소식에 괴로워하던 다혜는,

신앙생활로 위로를 받고 상우를 죽게 한 가해자를 용서한다.

이후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위해 다큐멘터리 영화를 기획한다.

 

그러나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다혜는 자신 안에 있는 내면의 슬픔이

아직 온전히 치유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슬픔이 더욱 커지자,

다혜는 혼란에 빠진다. 

 



 

"용서는 고통 속의 자유입니다."

 

<가을동화>, <올인>, <그들이 사는 세상> 등 TV 드라마에서 큰 인기를 받았지만,

영화에서는 이렇다 할 흥행작이 없었던 송혜교.

그녀의 연기는 수준급이고 다양한 매력을 가진 배우이지만,

그녀의 연기와 매력을 발산시켜 줄 감독을 아직 못 만난 것 같다.

아무리 뛰어난 배우라도 감독과 제작진, 출연 배우들이 뒷받침하지 못하면,

영화를 흥행시킬 수 없다. 

 

송창의, 기태영은 이 영화를 통해 처음 보았다.

 

송혜교와 연기 대결을 펼친 남지현은 명랑한 연기가 돋보였다.

 

<미술관 옆 동물원>, <집으로..>의 이정향 감독은,

9년 만에 들고 나온 신작으로 흥행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닌 예술 영화를 만든 것 같다.

정적인 영상을 바탕으로 감정과 심리 묘사에 뛰어난 감독이지만,

전작들에 비해 크게 인상적이진 않다.

 



 

"대책없는 용서는 죄악입니다."

 

일반 관객들이 보기에 영화는 꽤 지루한 편이다.

실제로 같이 보던 관객들 중 한 커플은 지루함을 참다 못해 밖으로 나갔고,

나 역시 하품과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영화를 보았다.

분명 스토리가 있는 드라마였지만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였다.

송혜교와 남지현을 제외하면 출연 배우들의 연기도 뭔가 어색했다.

 

내용적으로 볼 때는 '용서'라는 주제를 여러 관점에서 해석했다.

연인, 가족, 이웃, 사회 등으로 확대하여 '용서'의 의미를 조명하고,

나중에는 인간적인 한계와 사회적인 한계가 충돌한다. 

흐지부지하게 끝나는 듯한 엔딩은,

고요한 하루 속에 내면적 혼란을 겪는 다혜의 마음을 공감하게 한다. 

어쨌든 살아있는 자들에게는 '오늘'이 찾아온다. 

 



 

"저에게도 용서 하지 않을 자유가 있었는데,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

 

영화를 보면서 이창동 감독의 <밀양>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차이점이 확실했다.

<밀양>은 주로 종교적인 면에서 '용서'를 해석했다면,

<오늘>은 더 나아가서 인간의 본성과 사회적 특징을 결부시켜 '용서'를 해석했다. 

개인적으로는 <밀양>이 좀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영화가 <밀양>보다 나은 점이 있는데, 

대다수 사람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접할 수 있는,

실존에 대한 고민을 심도있게 풀어냈다는 점이다.

 

우리 자신은 일상생활 속에서 만나는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누군가의 몸과 마음에 어떤 방식으로 상처를 주는지 알 수 없다.

나의 친근한 웃음이나 인사가 상대방에게는 의외의 상처가 될 수 있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서로가 웃고 있지만 웃는 것이 아니고,

울고 있지만 우는 것이 아닌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어디까지나 서로의 내면을 들여다 보지 않는다면 진심은 알 수 없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 피해 강도에 따라,

즉각 용서하거나, 용서를 하더라도 오랫동안 마음에 간직해 둘 수 있다.

또한 도저히 용서가 안 될 때에는 사법적인 처벌을 요청하거나,

개인적인 판단에 근거하여 복수를 꿈꾼다.

주변에서 아무리 종교적 교리들과 윤리적 이론들로 용서를 정당화 하더라도,

개인이 만족하지 못하면 용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사회가 정한 법과 윤리를 따라야 인간으로서 대우를 받는다.

즉, 사법적 처벌은 처벌이 끝나면 자동적으로 용서가 가능하고,

개인적인 복수는 또 다른 피해 내지 사법적 처벌을 이끈다.

그렇다면 인간은 사회가 정한 법과 윤리에,

자신이 받은 육체적, 정신적 피해와 슬픔을 감수해야 한다.

이는 당연하면서도 불공평한 느낌이 들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증거이다.

 

인간에게는 '기억'이라는 창고가 있기에,

누군가에게 피해 받은 것들을 기억하고 있고 용서를 해도 기억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용서는 인간에게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용서가 외관상 이루어진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강한 의지로 복수를 억누르는 것이고,

시간이 흘러 강한 의지는 자기 극복으로 내면화된다. 

 

피해 받은 사람은 피해 받은 것만을 기억하고,

피해 준 사람은 피해 받은 사람이 별다른 반응이 없으면,

피해를 준 사실조차 잊거나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린다.

누가 피해를 주었고 그게 왜 피해가 되었는지,

누가 피해를 받았고 어떤 피해를 받았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용서를 할 수도, 사과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 만들어 진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범한 죄에 따라 법적으로 형량을 주어지고,

징역형이나 사형에 처하기도 한다. 

또한 보험에 들었다면 보상금이 나올 것이고,

양자 간의 합의를 통해 합의금을 받을 수 있다.

이런 방식들로 피해 받은 사람들의 마음은 편해질까?

또한 종교적 교리와 사회적 윤리들로,

스스로에게 용서를 강요하거나 누군가가 강요하여,

결국 입에서 "당신을 용서합니다"라고 말하면,

피해 받은 마음이 어느 정도 사라질까?

 

인간은 용서를 거부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자유가 있으며,

피해 받거나 급기야 죽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리워 할 수 있는 자유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 속에서 단독자이고,

신 앞에서도 단독자이다.

복수심과 슬픔, 괴로움은 오직 개인의 것이고,

개인을 제외한 이웃과 사회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그것을 알 수도 없다.

 

결국 '용서'는 사회의 무관심과 개인의 체념에서 만들어진다.

사람들을 그것을 '사랑'으로 포장하고 '존경'으로 추앙한다.

그래서 개인의 실존은 무시당한다. 

 

용서할 수 없다면 이해해야 한다.

이해할 수 없다면 영원히 용서할 수 없다.

영원히 용서할 수 없다면 죽을 때까지 고통스러운 '오늘'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을 제외한 사람들은 즐겁게 '오늘'을 맞이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고,

심지어 자신에게 피해를 주어 고통스럽게 만든 '그' 사람도

처벌이 끝나면 어쨌든 나와 일반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용서할 수 있는 자유와 마음 놓고 울 자유는 박탈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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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 쇼 - The Truman 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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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트루먼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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