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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 - Unbowed
영화
평점 :
현재상영
새해부터 바쁜 삶을 살고 있지만,
바쁘다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몸은 약간 피곤했지만 예정대로 수정 누나와 영화를 보러 강남CGV로 갔다.
수정 누나는 근래에 Th.M 입시에 관련된 의혹으로 스트레스를 받았고,
나는 이미 축적된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덜고 싶었다.
신도림역부터 강남역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계속 대화했다.
생각해보니 정말 오랜만에 강남역에 온 것 같다.
사람들은 역시 많았고 수많은 인공 빛들이 세상을 밝혔다.
잠시 지나간 일들을 생각했다.
그때도 겨울이었고 몹시 추웠다.
그리고 이제 그럴 일은 없다.
개인적으로 강남CGV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CGV에 걸맞지 않는 극장 분위기를 가졌고,
강남에 있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만약 극장에 있는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둘 중에 하나가 멈추면,
강남CGV는 '영업 중단'이라 비슷한 일을 겪을 것 같다.
10관에서 저녁 8시 5분에 정지영 감독의 신작 <부러진 화살>을 보았다.
시사회였지만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고,
좌석이 임의로 배정되어서 정말 오래간만에 D열에 앉았다.
스크린에서 가까워지니 약간 눈이 피곤했다.
"법은 아름다운 겁니다."
대학에서 부당하게 해임된 김경호 교수는 자신의 해임이 부당하고 생각하여,
대학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하지만 대학 측의 물량적 대응으로 패소하고,
항소심에서도 최종 패소하자 담당 판사의 집으로 찾아가 석궁으로 위협한다.
김 교수는 석궁을 장전한 채로 담당 판사와 몸싸움을 벌이고,
그 모습을 본 경비원과 보좌관은 김 교수를 제압한다.
이후 담당 판사는 김 교수를 고발하고,
김 교수가 실형을 받을 수 있게 상황을 자신 쪽으로 유리하게 만든다.
법의 공정함이 아닌 불법들의 난무함을 본 김 교수는,
자신의 무죄함을 밝히고자 변호사를 직접 선임하여 투쟁한다.
"대한민국에 전문가가 어디 있습니까? 사기꾼 빼고!"
<7광구>에서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줬던 안성기였지만,
이 영화에서는 깊이 있는 연기를 보여줬다.
배역과 무척 잘 어울렸고 차분한 연기가 보기 좋았다.
<범죄의 재구성>, <알포인트>의 박원상은 무척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자신의 개성을 잘 살린 연기였다.
명품 조연들 중 한 사람이지만,
이제 명품 주연이다.
<그들이 사는 세상>의 나영희는 역시 도도한 중년 여자가 잘 어울린다.
얼굴 표정만 보아도 소통할 수 있는 배우라 생각한다.
<꼬리치는 남자>의 김지호를 오래간만에 영화에서 보았다.
여전히 수려한 외모를 지닌 여배우지만,
특유의 당찬 모습은 그녀만의 매력이다.
문성근, 김응수, 김준배, 이경영, 정원중 등등..
정지영 감독의 인맥을 엿볼 수 있는 조연들이 출연했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의 정지영 감독.
오래 전에 케이블에서 보았던 그의 영화는 매우 흥미로웠다.
고령의 나이지만 신작을 제작한 그의 열정은 대단하고,
열정과 실력이 어우러진 멋진 영화였다.
또한 현 정권에 대한 감독의 소신있는 연출이 유쾌했다.
"재판하기 싫죠?"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를 보는 것 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주제를 풀어 나가는 방식에서 <부러진 화살>이 좀 더 재미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법정 영화들은 심각하고 진지한 분위기를 극중 내내 유지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유쾌함과 담백함을 적절하게 섞어 지루하거나 어렵지 않았다.
영화가 관객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확실하게 전달되었고,
관객들은 전달된 메시지들을 각자의 판단으로 해석했다.
개봉하게 되면 충분히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수 있는 영화라 생각한다.
예전에 매스컴을 통하여 영화의 소재가 되었던 사건을 접했지만,
당시에는 제대로 이해하지 않았고 대수롭지 않게 보았다.
그러나 영화를 본 관객들 중에 나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던 사람들은 달라질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는 계몽적인 요소가 있다.
"아빠, 힘내세요."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워 구속시키고 자살하게 만들기도 하며,
정치적 보복 행위에 온상이자 국민들의 인권을 짓밟기도 하는,
대한민국의 절대 권력 기관인 사법부.
아무리 법의 사각 지대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각 지대는 생각보다 크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법이 뚜렷하게 역할을 해야 하는 공간에서,
법은 권력과 결탁하거나 침묵한다.
사회 구성원들이 합의한 법은 마땅히 지켜져야 하고,
위법 행위에 대해서는 법적인 처벌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 법은 그저 도구이자 수단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우리 사회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권력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유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 법을 개정하거나,
권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경쟁 권력자들을 고발한다.
그러므로 법원에서 일어나는 모든 재판은 법의 공정성에서 비롯되는 재판이 아니다.
재판은 단지 제출된 증거와 눈에 보이는 상황에 따라 판단되어질 뿐,
진실을 규명하고 억울한 누명을 구제하는 것에 목적이 있지 않다.
사법부가 절대 권력을 가질수록 국가는 패도 정치를 할 수밖에 없다.
어떠한 사람이든지 법 앞에서 평등할 수 없다면,
법은 더이상 지켜져야 할 명분이 없다.
그리고 누군가의 의도나 쉽게 조작될 수 있는 법이라면,
법은 부당한 거래들과 거짓된 판결들을 낳아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 것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우리 사회에서 억울하고 불의한 일을 당하여 법을 의지했던 사람들 중에,
어느 정도가 재판을 통하여 명예 회복을 했을까?
공공의 권력인 사법 기관들이 스스로 권력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더이상 피고와 원고에게 법에 근거한 처벌과 보상을 집행할 명분이 없다.
개인적으로 진정한 사회 개혁은.
사법 기관들이 본래 제 역할을 충실히 할 때 가능하다고 본다.
사회 구성원들이 합의한 법은 누구나 적용되어야 하고,
누구나 법적인 처벌과 보상을 차별없이 받아야 한다.
정말 기본적이고 원론적인 말이지만,
이것이 2012년 대한민국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