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바이 - 다자이 오사무 단편선집
다자이 오사무 지음, 박연정 외 옮김 / 예문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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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에 이 책을 받아 보았을 때 잠깐 읽다가 재미가 없어서 읽기를 그만두었고, 다시 읽기까지는 2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다시 이 책을 보았을 때는 단숨에 읽었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2년 동안 나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저자의 문체와 의도를 처음 읽었을 때보다 더 잘 이해한 것 같다. 그리고 알게 된 저자인 다자이 오사무의 일대기. 그는 정말 비범하고도 순결한 문학인이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다자이 오사무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나는 그의 대표작인 <인간실격>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고, 그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도 이 책을 통해서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의 단편들과 함께 미완의 유작인 <굿바이>를 중심으로 엮어진 책이라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에는 다소 낯설은 면이 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쓴 이 부스러기 같은 단편들의 의도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는 없으나, 분명한 것은 그가 굉장히 자기 고백적인 글을 쓴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가 눈에 와 닿을 정도로 인상적인 구절들은 없었지만, 내용은 기억에 남는다. 특히 자신의 유년 시절을 회상하며 쓴 <추억>과 짧은 자서전 같은 <내 반생을 말하다>는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았고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 왔는지 어렴풋 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망치소리>와 <아침>은 그의 재미있는 발상과 약간 모호한 함축이 담백하게 다가왔다. 아쿠타가와 상을 받을 뻔한 <역행>은 흥미롭고 재미있었지만 결말이 약간 이해하기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그의 유작 <굿바이>는 뭔가 재미있어 질 것 같은 찰나에 미완이 되어 너무나 아쉽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몇몇 부분은 누군가에게 소리 내어 읽어 줬는데, 듣는 이 역시 이 책의 내용에 흥미를 느끼며 재미있어 했다.

 

  네 번에 걸친 자살시도 끝에 결국 죽게 된 다자이 오사무. 그의 자살시도들 중 두 번은 애인과 함께 한 동반 자살이었고, 그 중 한 번은 자신만 살아남아 죽은 애인을 바라봐야 했다. 게다가 자신의 아내와 자식들을 남겨두고 짧은 생을, 그것도 아내가 아닌 애인과 함께 자살을 한 그의 삶과 그가 쓴 이 책의 글들은 뭔가 연관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토록 바라던 죽음을 통해 그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그는 무엇을 위해 글을 썼을까? 등등.. 나는 그에 대한 의문들을 간직한 채 이 책을 덮으며,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야겠다는 필연적 의무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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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 시대의 지성, 청춘의 멘토 박경철의 독설충고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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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은 가고 겨울이 왔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나는 지난 가을 불안과 안일함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때만큼은 책을 읽는 것이 시간을 허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다시 책을 읽기로 했고 다시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는 그동안 너무 법칙과 가설에 시달리고 필요 이상으로 민감했다. 지금도 역시 그러고 있지만, 이전보다 덜하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우선 저자 박경철에 대해 좋지 않는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의사이지만 주식 투자와 재테크에 관련된 서적을 다수 썼고 그 책은 여전히 주식 투자자들과 재테크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다. 물론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한다는 점에서는 별 다른 불만이 없지만, 그러한 테마는 근 몇 년 동안 국내외 경제 위기와 가계부채가 극에 달했던 시대에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잘못된 소비와 투자를 불러 일으키는 일이 아닌가?" 싶었다. 그가 경제학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사실 일반 경제론이 아닌, 투자나 재테크의 비법을 알려주는 것은, 일부 독자들로 하여금 헛된 상상을 하게 할 수도 있다.

 

  또한 요즘은 그는 청년들의 멘토로서 활약하고 있다. '자수성가'한 의사이자 경제 전문가, 게다가 뛰어난 언변으로 많은 청년들이 그의 강연에 참석하여 도전을 받고 비전을 발견한다. 이미 안철수 대선 후보와 전국적으로 여러번 청춘특강을 함께 했으니, 그가 청년들의 멘토로서 활약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 "청년들의 멘토"라고 불리는 명사들이 말하는 담론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에서 비롯된 소위 "부르주아"적 담론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열심히 외치지만 사회 분위기와 구조는 달라지지 않았고, 청년들의 멘토라지만 대다수의 청년들은 지금 시대에서 자신들의 노력에 대비해 얻어지는 성과들은 멘토들이 이루어 낸 성과에 비해 큰 차이가 있다. 결국 "청년들의 멘토"라는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시대의 청년들이 만들어 낸 선망의 대상들이자 허상일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단순히 저자의 경험적, 지적 수준을 자랑하거나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 이 책을 읽기가 망설여졌었고, 큰 흥미는 없었던 터라 그냥 두려 했으나, 저자에 대한 나의 이런 시선들을 검증받고자 읽게 되었다.  

 

 

사회(타인)에 대한 나의 의존을 극복하고 홀로 서려는 자아는 초월이지만, 무조건적으로 사회를 부정하고 도전하는 것은 독선이다.  <166p>

 

  사실 '이상 사회'에 대한 열망은 청년들만 갖는 것이 아니다. 현실의 괴리와 불만,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바라고 열망한다. 그리고 그러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 힘은 청년들이 아니라, 기성세대 즉 사회의 지도층들이다. 청년들이 아무리 변화를 바라고 원해도, 사회는 현재 기득권을 가진 각 분야의 지도층들이 사회 분위기와 구조를 형성한다. 만약 그 분위기와 구조가 청년들을 비롯한 다수 시민들에게 참을 수 없는 불편과 불만을 일으킨다면, 장기간 촛불을 들거나 파업 투쟁을 해서라도 자신들의 불편과 불만을 해소하거나 보상받고 싶은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그러한 동기로 인해 태동하고 발전했다      

 

  무조건적으로 사회를 부정하고 도전할 수는 없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우리들은 'in the world'에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나는 'the world'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가 초월적 자아를 가지고 있다면, 'the world'에 우리를 가둘 수 없다. 초월적 자아라면 사실상 이 세계는 'one of the world'이고 'the world'를 위해, 그리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 청년들을을 포함한 그러한 세계를 바라는 누구든지, 이 사회가 자신들에게 주는 불만과 불편에 대해 고민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침노할 수 밖에 없다.

 

돌아보니 그랬다. 청춘은 특권이다. 실패는 경험이 되고 기회는 늘 손에 닿는 거리에 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청년의 도전은 미숙하기 쉽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은 어떤 좌충우돌도 용인된다는 말이 아니다. 치열하게 뜻을 세우고 뜨거운 열정으로 내달리다가 자신의 노력이 자신을 감동시키는 순간, 일거에 함성을 지르며 벼락처럼 쪼개는 것이 청년의 도전이다. 행운의 여신은 바로 그런 도전에만 깃드는 까다로운 수호신이다.  <173p>

 

  이 책의 장점은 저자가 말하는 '청춘론' 이다. 나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젊다는 것은 특권이고 실패는 쓰리지만 극복할 수 있다면 인생의 보약이다. 처음부터 자신의 인생이 성공의 항로에 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우리가 그러한 사람들을 소위 상위 10%라고 묶어 둔다면, 90%는 거의 비슷하게 인생을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겉모습과 생활 환경만이 다를 뿐이다.

 

  1000원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지금 내 손에 1000원이 있다는 것은 엄청난 가능성이 숨겨져 있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하잖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시대에 1000원으로는 일반 버스도 못 탄다. 하지만 1000원을 10000원으로 불리는 사람들도 있고, 1000원 2000원으로, 1000원 1010원으로 불리는 사람도 있다. 좀 더 극단적으로 1000원을 수십억으로 불리는 사람도 있다. 물론 이러한 예들에는 그 반대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단순한 진리를 알 수 있다. 우리 손에 돈이 얼마가 있든지 간에 그것을 불릴려고 생각한다면, 불릴 수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소비하려 한다면 소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모든 책임은 그 돈을 가지고 있는 나 자신이 가지고 있을 뿐이다. 지금 당신이 청춘이라면 좀 더 불리기 용이할 수 있다. 그게 특권이다. 그것이 돈이든, 재능이든, 무엇이든.      

 

청년의 공부는 늘 그렇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기초적인 학문과 사회의 기본질서는 낮은 단계의 기초지식을 형성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는 외적 환경에 대응한다. 사람은 누구나 이질적인 상황을 만나면 불편한데 이는 습관처럼 해오던 태도로는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는 새로운 대응을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그와 유사한 다른 상황에서 이때의 고민을 다시 응용함으로써 보다 쉽게 문제를 해결하게 되는데, 이것이 지혜이다.  <226p-267p>

 

  근래에 나는 "공부는 평생해야 한다"는 격언이 진리처럼 느껴진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삶의 지혜 역시 쌓아지는 것이고,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조금 더 가치있는 것으로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무엇이든 알아야 생각할 수 있고 고민할 수 있으며, 기뻐할 수 있고 괴로워 할 수 있다. "모르는 것이 약"이 되는 시대는 지나갔다. 사람들은 알고 싶어하고 알고 있는만큼 생각하고 반응하며 살아간다. 특히 청년의 공부는 치열해야 하고 치열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꿈과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겠지만, '청춘'이라는 특권을 가지고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누구라도 자신이 공부한 것을 삶에 적용할 수 없다면, 그것보다 비참한 일은 없을 것이다. "무엇을 알고 있다"는 것은 "그것을 실행하고 있다"와 항상 연관되어야 한다. 만약 스스로 알고 있는 지식 이상의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다면, 이미 그 사람은 "시대의 선각자"라 불릴만 하다. 지혜는 결국 인간의 삶 속에서 나타나기 마련이다. 지금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이고,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만으로도 지혜라 할 수 있다.   

 

관념이 나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평소에 해오던 습관이 관성이 되고, 관성이 태도를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태도의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게 사실은 더 실효성이 있는 실천의지인 것이다.  <248p>

 

  생각만으로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생각은 변화를 위한 재료는 될 수 있지만, 실천으로 옮기지 않으면 재료에만 머물러 목표에 이를 수 없다. 음식 하나를 만드는 것에도 사실 여러 가지 재료가 필요할 때가 있고, 그 재료들을 적절히 섞어야 맛과 향을 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관념들을 현실에서 적절히 적용하거나 공유 내지 실현시키지 못한다면, 결국 본성적이고 습관적인 말과 행동을 하게 된다. 무엇을 알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라 생각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화두는 welfare(복지)가 되고 있지만,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적으로 논쟁하는 복지보다는 wellbeing(참살이)에 대한 근본적 인식이다. 이때 wellbeing은 단순히 유기농 음식을 먹고 피톤치드를 마시며 숲길을 걷는 개인화된 것이 아니라, 정신적 위안과 연대의 회복과 같은 사회적 wellbeing에 대한 자각을 말한다.  <321-322p>

 

  아주 훌륭한 견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들과 대선 후보자들이 외치는 "복지"라는 것이 결국 개인의 삶으로 옮겨지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계층 간 소통이 단절되고 양극화를 넘어서 자멸의 시대에 살고 있는 소시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상처나고 찢겨진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특별한 '힐링'이다. 건강한 사람보다 아픈 사람들이 더 많다면, 의사는 이해득실을 떠나 아픈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본연의 의무일 것이다. 사회 내에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거나 절망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정부나 정치인들은 그들을 살려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자생할 수 있도록 돕고 사회 구조 역시 그렇게 개편되어야 한다.

 

  "따뜻한 집에서 살고 싶고, 매일 세끼의 식사를 먹고 싶고, 주어진 일터에서 일하고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살고 싶다" 누구에게나 평범한 일상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진짜로 눈 앞에서 평범한 일상이 되어져야 한다. 그것이 복지이고 'wellbeing'이다. 정치인들이 복지를 논한다면 지금 소시민들이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좀 더 깊이 있게 살펴야 하고 적극적으로 그들의 삶에 감정 이입을 해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 나오게 될 복지 정책들이 소시민들에게 있어서 사는 것이 진정 사는 것이 되어야 한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드는 생각은 읽기 전의 나의 생각과는 어느 정도 달라졌다. 저자는 이 책에 자신이 알고 있는 대부분의 지식과 경험들을 쓴 것처럼 보이고, 그 지식과 경험들을 어떻게 활용하고 삶에 적용했는지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이 책의 주된 독자인 청년들과 소통하려 한다. 이 책에는 당연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저자 스스로 체득한 지식과 경험들에 대해서 자신만의 주관적인 판단과 결론들이 있을 수 밖에 없지만, 그렇게 크게 논란이 될 만한 것들은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저자는 지금까지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었고, 앞으로도 할 것이라는 흔적과 의지들이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는 청년들에게 좋은 교양서적이다.

 

  누군가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책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희망적인 일이다. 그 누군가는 내가 가보지 못한 길을 먼저 갔을 수도 있고, 내가 겪지 못한 경험들을 겪었을 수도 있으며, 내가 모르는 지식들을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런 면에서 책은 단순히 간접적인 도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감정 이입과 함께 개개인의 삶에서 실제로 다가올 여러 상황들에 대해 "직접"에 가까운 적극적인 간섭을 한다. 나는 저자가 이 책을 쓴 궁극적인 의도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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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스토리콜렉터 2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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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단행본 치고는 꽤 페이지 수가 많은 장편 소설을 읽었다. 또한 오랜만에 읽는 독일 문학이라 내심 파트리크 쥐스킨트(Patrick Suskind) 같은 내용과 창의성을 기대했는데, 스토리 중심의 소설이라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또한 이 책이 가진 매력인데, 전체적으로 스토리가 긴장감 있게 전개되다 보니 몰입도는 높았다. 

 

 

  "뿌린 대로 거둔 거예요. 내 차지가 될 수 없다면 다른 사람 차지도 될 수 없어요."  <450p>

 

  서스펜스 소설 형식에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전개된다. 살인죄로 11년 만에 교도소에서 출소한 토비아스는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이웃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미 가업은 기울었고, 일상 생활 역시 이웃들의 눈을 의식하며 해야 하는 그에게, 괴한에 의하여 어머니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관할 지역 경찰서 수사반장인 보덴슈타인과 그의 부하 형사 피아는 수사에 착수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11년 전에 있었던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꼬리를 무는 사건들과 의심이 가는 주변 인물들이 등장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스스로 내리기 힘든 결정을 대신 해주고 그들의 보잘 것 없는 인생을 대신 책임져주는 사람이 나타나면 아주 좋아합니다. 전체 그림을 볼 줄 알고 필요할 때 조치를 취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납니다."  <513p>

 

  동시 다발적으로 전개되던 각각의 이야기들이 결말에 와서 한 곳으로 모여지고 결국 예상했던 엔딩으로 끝났다. 한 편의 헐리우드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영화로 제작되더라도 평이한 내용으로 인하여 별 다른 매력을 느끼기 힘들 것 같다. 그리고 저자가 여성이라서 그런지 여성 인권이 높은 소설이라 느껴진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남자들은 능력있고 멋진 남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여자들에게 이용 당하거나 의존하는 약한 남자들이다. 특히 피아, 나디야, 아멜리, 다니엘라 등 이 네 명의 여자들은 소설에서도 중요한 인물들이지만, 여성 독자들이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캐릭터들이다. 개인적으로는 피아에게 매력을 느낀다.

 

 

  진실은 묻혀질 수 있지만 "영원히"라고 말할 수는 없다. 거짓과 위선에 둘러 싸인 모든 진실들은 언젠가 사필귀정(事必歸正)으로 귀결된다. 두려움은 인간을 연약하게 만들고, 욕심은 모든 말과 행동을 합리화 시킨다. 저자는 이것에 초점을 두고 집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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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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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점가에서 2011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를 읽었다. 김어준을 처음 안 것은 인터넷 신문인 <딴지일보>가 처음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였는데, 그때는 그의 이름보다 <딴지일보>의 기사들에 더 흥미로웠다. 그러나 내게 <딴지일보>는 정치와 사회 풍자하는 비주류 신문에 불과했고, 성인용품과 정보들도 함께 공유되는 괴상한 사이트로만 기억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다시 듣게 된 것은, 매일 오후 2시에 윤도현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출연하여 <나는 가수다>에 대한 품평을 할 때부터였다. 그리고 우연히 듣게 된 Podcast 방송 <나는 꼼수다>를 통해 그에 대한 흥미로운 관심이 짙어지게 되었다. 그가 책을 쓴다는 것과 출간을 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논문 작업 때문에 도저히 읽을 시간이 없었다. 한 해를 넘기고 4월이 되어서야 겨우 그의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대통령을 선택할 때 논리를 동원하는 건, 그 사람에게 꽂힌 마음을 정당화할 도구로 쓰는 거지, 논리의 귀결로 누군가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고. 그런데 진보 진영에선 언제나 논리를 먼저 내세우지. 뇌 구조가 그럴 수밖에 없긴 한데.(웃음) 지금 사람들이 찾고 있는 건 그게 아니여. 자기 마음을 줄 사람, 그리고 그 마음이 배신당하지 않을 사람을 찾는 거지.  <73p>

 

  책 초반부터 대선 이야기가 나온다. 현재 야권 대선주자인 민주통합당 문재인 의원을 지지하는 김어준. 나 역시 예전에 문재인의 <운명>을 읽고 나서 그에 대한 관심과 호감이 생겼지만, 이번 19대 총선 전 과정을 지켜보면서 문재인의 12월 대선 출마에 대해 부정적이다. 지금은 영남과 중앙 정치 활동을 통해 인지도와 경험을 더 쌓은 후, 5년 뒤를 기약하는 것이 더 좋다고 본다. 어쩌면 성급한 대선 출마가 실패로 이어지면, 그의 정치적 입지가 위축을 넘어 평생 "친노"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지금까지 두 번의 대선을 경험하면서 느꼈던 것은,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대선 후보자만의 드라마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대통령이 될 수 있다. 국민의 마음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 사로잡아야 한다. 그것도 진심이 느껴지는 감동으로. 그러나 지금 출마 선언을 한 여야 후보들은 너무 익숙한 인물들이라 무슨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큰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들의 지금까지 걸어온 정치 행보들은 그저 권력의지가 강한 "정치인"일뿐, 국민의 "대통령"이 되기에는 지지하기가 망설여진다. 일반적으로 정치에 능한 인물은 국민보다는 자신의 이익과 입지를 먼저 생각한다.

 

  삼성에 대한 모든 비판은 삼성과 이건희를 분리한 뒤, 오로지 이건희 일가에만 집중하면 돼. 이걸 못하면 삼성 문제는 해결이 안 돼. 삼성과 다른 재벌들과의 차이는, 다른 재벌들은 법을 피해 가려고 한다면 삼성은 자신들을 위해 법을 만든다는 거야. 삼성은 이미 국가보다 강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고.  <166p>

 

  IT산업에서 삼성의 기술력은 분명 세계적이고 찬사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과 그의 가족들의 행적은 분명 냉정한 판단과 검증이 필요하다. 이미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을 통해 삼성과 이건희 회장 일가의 비리는 어느 정도 사회에 공개되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와 사법부는 삼성과 이건희 회장 일가에게 냉혹한 처벌을 내리기에는, 그들의 영향력이 너무 컸다. "삼성=이건희"라는 공식이 깨지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훔친 초범에게는 징역형을 선고하여 온전히 형을 집행하고, 허위 사실 유포만으로도 감옥을 가는 세상인데, 재벌가의 비리와 불법에 대한 처벌은 너무나 관대하다. 휠체어 출두, 서면 조사, 대리인 출석 등등.. 앞으로 진행될 재벌 개혁은 도덕과 윤리에 근거하여 다각도로 접근해야 한다.

 

  진보 진영의 집권 전략을 듣고 있으면 항상 맥이 빠지는게, 그들은 내가 집권한다고 하지 않고 진보 세력이 집권해야 한다고 말한다고. 마치 언제까지고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는 아이처럼, 조직의 부름과 사명을 먼저 이야기한다고. 스스로 권력의지를 가진 정치적 욕망의 주체가 아니라 정치적 소명을 조직과 조직의 합의로부터 할당받아서는 자발적 권력의지가 거세된 조직원으로서 활동한다고.  <190p>

 

  김어준의 이 말은 진보 진영의 19대 총선 과정과, 현재 진보당 내부에서 벌어지는 당권파와 비 당권파 간의 대립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진보 진영이 서민들의 편에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들의 말과 공략은 민생에 직결되어 있으며, 민생에서 시작된다. 문제는 서민들이 진보 진영을 완전히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보 진영은 단 한번도 제대로 집권을 하거나 자신들의 주요 정책들을 실현해 본 적이 없다. 이러한 원인은 김어준이 말한대로 진보 진영의 정치인들이 "자발적 권력의자가 거세된"상태에서 정치 활동을 하는 것에 있을 수도 있다.

 

  진보 진영은 공동체 주의를 추구하가 때문에, 보수 진영과의 각개전투에서 승리할 파괴력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보수 진영과 언론에서 공격하는 "빨갱이 신드롬"에 거의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그래서 진영 논리가 아무리 탁월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에서 국민들이 진보 진영에게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기는 어렵다. 그나마 근래에 들어서 진보 진영 내부 변화에 따른 대중적 소통이 젊은층을 중심으로 확산되었지만, 이번에 터진 진보당의 경선 비리에 대한 후폭풍이 진보 진영의 운명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기울게 하고 있다. 역시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은 운명론적인 명제일까? 진보 진영이 이러한 자신들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면, 앞으로도 딱 여기까지가 한계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진보 진영에서 정치인들 중에 유시민, 노회찬, 심상정이 진보다운 생각과 대중적인 소통을 하고 있다고 본다. 나머지는 이념과 집단 논리에 빠진 "진보"를 표방한 "수구"들이다.

 

  ..만약 안철수 정도 되는 인물이 정치 전면에 나서겠다고 선언하기만 하면 기존 정치권으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거대한 회오리가 일어날 거야. 지금 정치인들은 이명박으로 인해 대중들이 느끼는 이 거대한 결핍의 정체를 전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든, 그건 정말 특수하고 예외적인 상황이 되겠지.  <241p> 

 

  김어준의 말은 적중했다. 안철수의 대선출마 가능성에 정치권은 긴장했고, 새로운 이미지와 시미 세력의 결집에 당황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업인이자 대학 교수인 안철수가 자신의 생업을 그만두고 대선에 도전하려는 것이 안타깝다. 정치인들이 정치를 잘했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정치인들 중에서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는 기본 전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강하게 영향력을 발휘하지만, 국민들이 정치인들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굳이 정치인들 중에서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는 이유는 없다.

 

  나는 안철수 교수가 대선에 출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차라리 장관급으로 국정에 도움이 되면 모를까, 정치권을 잘 모르는 그가 대선에 출마하는 것은 무척이나 고달픈 일이다. 현재 조용히 대선 출마를 가늠하는 것 같은데, 부디 현명한 결정을 했으면 한다. 물론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그의 출마를 만류하는 의견들에 굴하지 않고 대선에 출마하는 것도 대통령이라면 가져야 할 권력욕이다. 과연 안철수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정치를 이해하려면 결국 인간을 이해해야 하고 인간을 이해하려면 단일 학문으로는 안 된다. 인간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팩트와 가치와 논리와 감성과 무의식과 맥락과 그가 속한 상황과 그 상황을 지배하는 프레임과 그로 인한 이해득실과 그 이해득실에 따른 공포와 욕망, 그 모두를 동시에 같은 크기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통섭해야 한다.  <292p>

 

  진보 성향의 김어준은 당연히 여권의 최대 대권 주자인 박근혜를 좋아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는 박근혜가 민생에 대한 구체적인 감정이입이 없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그녀의 공약들과 정책들은 공허하고 부실하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는 그는 박근혜와 이명박을 비슷한 인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단지 모양새만 다를 뿐이다.

 

  나는 박근혜가 우리나라만의 보수와 수구 진영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치고 빠지기가 확실하고, 권력과 탐욕에 대한 냉정한 본능,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 남으려는 생존력은 그녀가 걸어온 인생에서 드러난다. 그녀를 "독재자의 딸"이자 "비련의 여인"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언론이 만들어 낸 보호막이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정치적으로 이용했고, 향수를 불러 일으켜 보수와 수구 세력을 규합했다. 그래서 그녀의 정확한 정치적 실체는 없다. 현재까지는 그저 숙주에 붙어 있는 "기생 생물"일 뿐이다.

 

  이번 대권에서 보수와 수구 진영은 모든 힘을 박근혜에게 집중시키고 국민들에게 박정희식 카리스마와 놀랍게 경제 성장을 했던 70년대를 상기시킬 것이다. 우습다. 그때 우리나라는 개발 도상국이었고, 이미 어느 정도 성장한 우리나라에서 해마다 5%가 넘는 경제 성장은 드물 것이다. 또한 소통의 단절이 만연한 지금 시대에 박정희식 카리스마는 기름을 붓는 행위이다.

 

  누구든지 정치를 하려면 인간과 세계를 연결하여 이해 해야 한다. 정치가 어려운 것은, 사람의 마음을 얻기가 쉽지 않고, 세계를 이해하여 현실 문제를 판단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정치적 실체가 없는 박근혜에게 마음을 줄 수 없다. 그리고 그녀의 의정 활동과 단조로운 삶에 큰 변화가 없는 이상, 끊임없이 그녀의 대권 의지에 의문을 던질 것이다.

 

  난 이 방송을, 조중동과 방송 3사와 검찰과 국정원과 청와대와 다이다이로 싸운다는 생각으로 만들거다.(웃음) 그게 가능하다. 두고 봐.(웃음) 그러니까 내가 진보 진영에 하고 싶은 말은, 자신이 갇혀 있는 프레임이 뭔지 먼저 자각하고 그 프레임을 자기 손으로, 직접, 홀랑, 다 걷어내고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걸어 나와야 한다는 거야. 그래서 완전히 새로운 구조를 스스로 만들어내야 해.  <308p>

 

  <나는 꼼수다>를 처음 들었을 때 좀 놀랐다. 예전부터 Podcast 방송들을 듣고 있었지만 주로 해외 방송들이었고, 대부분 뉴스나 음악, 종교에 관한 방송들이었다. 그런데 스마트 폰의 확산으로 Podcast 방송들이 생겨났고, <나는 꼼수다>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굉장히 참신했고 도발적이었다. 아마 김어준 인생에 <나는 꼼수다>는 최대의 히트 상품일 것이다. 실제로 이 방송의 영향력은 보수 성향의 언론들이 매체를 장악한 지금의 현실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리고 김어준을 비롯한 <나는 꼼수다>의 패널들은 살아있는 미디어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스마트한 세상에서 "라디오의 시대"는 끝났다고 흔히들 표현하고 있는데, 선택적 라디오 방송인 <나는 꼼수다>가 우리나라 정치와 사회에 영향력을 주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물론 <나는 꼼수다>가 언론 매체라고 보기에는 어렵고, 패널들이 주장하는 내용들이 사실인지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지만, 그동안 주류 언론 매체들이 다루지 못했던 사건들을 풀어 나가는 모습들은 분명 대안 언론의 자질을 갖췄다고 본다.

 

  그의 처음 의도처럼 진보를 대중화시키려는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 하지만 <나는 꼼수다>의 소통과 해석들이 언제나 유효할 수는 없다. 만약 연말 대권에서 정권 교제가 일어나지 않으면, <나는 꼼수다>의 운명은 위태로울 것이고, 패널들 역시 지금보다 더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 물론 그 반대가 되어도 얼마만큼의 영향력과 생존력을 가지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지금은 여기까지이다. <나는 꼼수다>에 대해서는 이후에 관련 책들을 읽고 다시 한번 의견을 제시하려 한다.

 

  범인들은 믿지 못하겠지만, 그런 사람이 실제로 존재한다. 아무리 지지율이 높게 나와도 그냥 던져버릴 수 있고, 지지율 1위도 역사를 위해서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실제로 존재한다. 문재인은 그런 사람이다. 이런 게 바로 어떤 이념이나 이익으로도 도달할 수 없는 고결한 인간의 정신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게 사람들이 원하는 정치의 본질이다. 모두의 행복을 위해 혼신을 다하되, 그 안에 정작 자기는 없는 거.  <325p>

 

  문재인에 대한 김어준의 열광적인 지지는 문재인의 삶과 정치 철학에서 비롯된다. 그의 말대로 문재인은 괜찮은 정치인이자 자연인이다. 나도 문재인의 책 <운명>을 읽어 보았고, 재야의 법조인답게 원칙과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이 출마하는 것에는 반대이다. 만약 그가 대선을 생각했다면, 굳이 총선에서 그것도 부산 사상구에 출마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본다. 언론 매체에서는 영남 지역에서 그의 영향력이 크지 않았다고 보지만, 영남 지역에 이전과는 다른 높은 득표율로 야권 후보들이 패했다. 이는 어느 정도 변화의 기운이 있었다는 증거라 생각한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에 대해 깊은 통찰없이 그저 정권 교체를 위한 도구로만 생각한다면, 변화의 기운은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나는 문재인이 국회의원 임기를 다 마치고 대선에 출마했으면 한다. 이것은 김두관 경남지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지역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신뢰와 성실함이 필요하다. 정해진 임기도 채우지 못하고 정치적 대의를 위해 신뢰를 저버리는 것은, 영남 지역민들을 향한 배신이다. 만약 문재인, 김두관 이 두 사람이 대선에 출마한다면, 둘 중에 하나는 무조건 대선에서 당선되어야 하고, 낙선 시에는 이후 더 이상 대권 주자로서는 큰 영향력이 없을 것이라 본다. 김어준의 말대로 선거는 정치인들이 그동안 쌓아왔던 이미지를 국민들의 표로 되돌려 받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인격을 가진 인물이고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물이라도,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으면 정치 인생은 그대로 끝이다. 선택은 본인들의 몫이겠지만, 지금 상황은 야권 대권 후보 정치인들에게 불리하다. 

 

 

  무학의 통찰로 자신만의 정치 논리를 펼친 김어준. 인터뷰 형식의 책이라 딱딱하게 읽을 책은 아니지만,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책도 아니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말하는 소재들과 주제들이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진보 중심의 논리일지라도, 김어준의 통찰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그리고 그의 통찰은 앞으로도 <김어준의 뉴욕 타임즈>와 <나는 꼼수다>에서 더욱 구체화 되어, 보수 언론들이 장악한 언론 매체에서 빛을 발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통찰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과 국민들의 몫이다. 

 

  역시 매체의 영향력은 크다. <나는 꼼수다>가 아니었다면 이 책이 이렇게 많이 팔리는 않았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정치를 대중화시킨 그의 영향력이 대단하다. 단기간에 젊은층을 중심으로 국민들에게 정치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갖게 했다. 근래에 들어서 정치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선거가 축제가 되고 정치인들이 자신들이 내세운 공약과 소신을 실천하고 지키는 모습을 보는 그날까지, 정치권은 항상 다양한 견제 세력들에게 감시 당해야 하고, 가장 강한 견제 세력인 국민들은 계속해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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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이룬 뜻 땅에서도 - 기독교 윤리 입문하기
남태욱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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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 바탕된 사회 의식과 개인 윤리 의식의 회복에 관하여 쉬운 글로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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