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교회 ·Ⅰ 


우리를 앞서 가 있는 시간이 우리들 가까이로 
오지 않기를 바랬지만 기다리지 않아도 
다가오고야 마는 시간과 시간을 접어 버리는 노을 아래의 
저녁들, 깨어진 병을 쓸어모으며 우리는 그 병 속에서 
새 한마리 하늘로 다시 갇히고 있음을 보았다. 
서울의 어느 구석, 경상북도와 목포 혹은 황해도가 
술을 마시고 있거나 술에서 깨어나곤 하였다 지붕까지 
올라간 넝쿨을 장미를 피워 놓고 후회하고 
잠의 가장자리로 언제나 고향은 한낮의 술렁쇠를 굴렸고 
고향의 하늘에 밧줄을 걸어 놓고 죽어간 여자들을 
서울은 다시 죽이고 있었다. 강을 건너 화물열차에서 
겨울이 실려 올라오고 신문지 구석에서 오빠를 부르는 소리와 
같은 귀를 가진 우리들이 모여 그 소리를 
메아리처럼 다시 들을 때 멀리 있던 날들이 너무 빨리 
우리들 가까이로 와서 저녁의 불을 밝히고 있음을 
알았다 내가 우리들을 위하여 할 수 있었던 것은 
손목의 시계를 멈추게 하는 일뿐 그런 하찮은 짓 
뿐, 우리들은 그 멀리 있던 날의 서울을 그 멀리 있던 
날의 한낮에 세워 놓고 있었지만 서울에서 내가 
문득 얼굴을 부딪는 멀리 있던 날들은 지금 지하도로 
내려가는 사람들에게 비둘기를 팔고 비둘기의 하늘을 사고 
강변에다 버리기도 한다 내가 함부로 우리라고 말하던 
우리들도 멀리 있던 날이 가까와 옴에 서로 
흩어지고 사람들의 간격 사이로 숨고 
누구의 것도 아닌 환한 고향을 떠들면서 
고향의 입구에는 없던 누이들을 세워 놓는다 멀리 
있던 날들이 너무 가까이로 와서 저녁에는 불을 밝히고 
아침에는 아침을 갖다 놓았다 



우리가 좀더 태양 가까이로 갈 수 있다면 
지평선 아래에서부터 빛을 좀더 일찍 뿜어올려 
지금 우리들의 새벽이 아침이라면 집에 들어가지 못한 
집에 있던 사람들 집에서 나올 수 있을 것인데, 
귤을 까며 어둠의 껍질이 벗겨지기를 바라는 우리들은 
지금 태양에서 내려오는 밧줄을 안다. 
정오에는 건물 속으로 우리를 불러들일 것이고 
횡단보도에서 우리들 앞으로 푸른 불을 켜주기도 하면서 
정각에 우리들이 사랑을 만나러 가도 사랑을 한 십분쯤 
늦게 도착시킬 것이다 귤 껍질에 다시 어둠을 
싸면서 겨울은 겨울이 아니었을 때 울리지 못한 
종을 매일 두드린다 태양을 좀더 가까운 거리에서 
만날 수 있다면 지평선이 좀 더 아래로 내려가 있다면 
그 일은 좀더 늦게 나를 만났거나 만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것인데, 어둠을 한 칸씩 한낮 사이로 밀어넣으며 
우리는 우리들이 걸어가는 속도로 시간을 나누어 놓고 
시간 위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놓쳐 버린다 






詩 이문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