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 살아남기 - 우리가 몰랐던 신기한 전쟁의 과학
메리 로취 지음, 이한음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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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 병역을 겪었고 겪을 남성들과 그 가족에게는 더 남일 같지 않을 텐데 군대 문제와 무기 관련한 사건사고는 시시때때로 뉴스로 전해진다. 관련해 최근 이런 보도들이 내 주목을 끌었다. 하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납탄을 썼다는 사실. ‘납탄은 납 파편이 피부 조직 사이사이에 박혀 수술로도 제거하기 어렵고, 1977년 제네바 협약에 따라 전 세계에서 사용이 금지된 총알이다. 그러나 1980년 계엄군은 시민을 향해 그것을 쐈다. 납탄 후유증으로 하루 수십 알의 진통제를 먹으며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은 진상 규명을 바라고 있다. 두 번째 뉴스는 철원 사격 훈련장 근처에서 사망한 이 일병 사망 사고. 직접사인가 유탄인가 도비탄인가 논란이 많다. 사격장 주변에 엄격한 통제가 이뤄지지 않았던 게 가장 실책이었던 거 같고, 이번에도 군 당국이 책임을 회피하는 듯 진상 조사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게 여전한 문제점으로 보인다. 전장이 아닌데도 안타까운 죽음과 그들을 잃은 가족의 고통이 이렇듯 비일비재한데 전쟁이 일어나면…….

 

메리 로치전쟁에서 살아남기는 전쟁에서 군인들이 겪는 고충, 부상, 고통들과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애쓰는 과학자들의 연구들을 밀착 취재해 이야기를 풀고 있다. 관련된 모두가 수난을 겪고 있는 게 생생히 느껴진다.

그들의 수난사

소음에 시달리는 군인

대다수의 귀마개는 소음을 30데시벨쯤 줄여 준다. 꾸준히 들려오는 지겨운 배경 소음을 줄이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 브래들리 전투 장갑차가 아스팔트 위를 덜거덕거리며 지나가는 소음(130데시벨)이나 블랙호크 헬기의 푸드득 소리(106데시벨) 같은 것들이다. 30데시벨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실제로는 중요하다. 시끄러운 소음의 세기가 3데시벨 커질 EO마다, 청력 손실 위험이 없는 노출 가능 시간은 절반씩 줄어든다. 사람의 맨귀는 85데시벨(고속도로 소음, 혼잡한 식당)까지의 소리에는 하루에 8시간씩 노출되어도 청력 손실이 없다. 115데시벨(사슬톱, 록 콘서트 무대 바로 앞)의 소음은 안전한 노출 시간이 30초에 불과하다. AT4 대전차 화기가 뿜는 187데시벨의 소음에는 1초밖에 견디지 못하는데, 그 짧은 노출에도 보호되지 않는 맨귀는 청력이 영구적으로 저하된다.(p68)

자신이 청각 장애를 겪는다는 걸 숨기거나 보청기를 끼고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은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일인가 싶다.

 

성 기능과 불임의 불안 속 군인

위생병이 확인해 주었음에도(모두 괜찮습니다. 대위님만 다쳤어요), 한쪽 다리는 불구가 되었고 다른 한쪽은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음에도, 화이트는 병사들을 점검하기 위해 계속 일어나려 애썼다. 상황을 파악해야 해. 지휘관이니까. 위생병은 그를 뉘어서 묶어 놓아야 했다. 좋든 나쁘든 간에, 그쪽에 관심이 집중되는 바람에 그는 자신의 부상을 자세히 살펴볼 생각조차 못했다. 폭발의 즉각적인 여파로, 그는 자신의 음경 끝이 <활짝 꽃핀flowewed out> 상태인 것을 보았지만, 얼마나 깊이 손상되었는지는 불분명했다(어울리지 않게도 꽃피다라는 동사는 IED(급조폭발물) 부상을 묘사하는 데 쓰여 왔다. 전형적인 하부 폭발 때, 다리 근육은 뼈와 분리되면서 날려가고, 그 벌어진 꽃 안으로 세균이 섞인 짙은 먼지 구름이 빠르게 몰려든다. 흙먼지로 뒤덮인 꽃은 씻어내기 힘들고, 치료하기 어려운 감염이 쉽게 일어난다.(p90~91)

"항구적 자유 작전(2001~2004년 탈레반 축출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인 미국의 군사 작전)에 참가한 퇴역 군인 중 약 300명은 부상으로 불임이 되었다. 300명을 위해 15만 명의 정자를 은행에 보관하겠어요?예산을 감축하려는 국방부의 현재 분위기에서 그렇게 하기란 쉽지 않다. 메이도프는 군 예산 편성자들이 우려하는 점이 하나 더 있을지 모른다고 추정했다. 죽은 군인의 보관된 정자를 쓰는 미망인은 아기뿐 아니라 정부 연금 수혜자까지 낳는 것일 수 있다.(p121)

군 처우가 좋다는 미국에서도 이 정도니 한국 군인의 상황 생각하면 한숨만...

 

인간을 위해 희생되는 동물들

“1960년대만 해도 전투 외상 의학을 공부하던 이들은 마취시킨 돼지와 염소를 대상으로 인명 구조법을 실습하곤 했다. (중략) 레이벌은 미 국방부가 살아 있는 조직을 대상으로 한 훈련에 쓰일 동물의 수를 2015년 수준연간 약 8,500마리에서 3~4천 마리 수준으로 줄이라고 요구하는 법령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한다. 책임 있는 의학을 위한 의사 위원회라는 동물권 옹호 단체가 배후에 있다고 한다. 환자 모형의 장치의 발달그리고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이루어진 고도로 극적인 컷슈트 시연에 힘입어서 생체 조직 실습을 옹호하는 이들의 주장은 점점 힘을 잃어 가고 있다.(p145)

(부연설명: 돼지는 인간과 내장의 크기와 배치, 혈압, 출혈 때 피가 흘러나오는 속도도 비슷하기 때문에 수난을 맞았고, 염소는 목 지방 두께가 돼지보다 절개하기 쉬워 응급 기도 확보 수술에 투입되었다.)

 

 

의외의 기여

위생병들이 겪는 다소 비인도적인 훈련의 목적은 실제 겪을지 모를 상황에 대한 예비접종이자 극도의 생존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자동적으로 응급치료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조난당하는 영화 127시간이 생각난다. 내가 그 상황이라면 바위틈에 낀 내 팔을 자를 수 있을까. 훈련도 없이 내 의지는 용기를 얼마나 낼 수 있을까.

 

군의 연구는 일반인의 삶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를테면 장관 응집성 대장균ETEC 백신을 개발하려는 군 과학자들의 노력은 연간 ETEC 사망자 380,000~500,000명의 수를 떨어뜨리는데 기여할 것이다.

“미국 질병 통제 예방 센터는 설사로 사망하는 5세 미만의 아이가 하루에 2,195명이라고 추정한다. 말라리아, 에이즈, 홍역으로 사망한 아이 수를 더한 것보다 많다.”(p186) 

 바지에 설사를 하면서도 행군을 계속했다는 한 특수대원의 인터뷰는 결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파리는 전쟁터 식중독의 주요 원인이기도 하지만 조지 펙 같은 연구자는 구더기가 난치성 감염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걸 알아냈다. 구더기 관리 문제로 상용화되긴 어려워 보였다. 전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골칫거리인 파리가 전쟁 종식의 주역이 될 수도 있었다. 나치가 점령한 스페인령 모로코에 파리 유인제와 치명적인 병원균이 섞인 모조 똥들을 투하해 파리가 나치 음식에 살포할 것을 기대한 작전이 있었다. 이런 작전들을 보면 너무 어이가 없다. 민간인들에게까지 미칠 영향은? 척 봐도 의심스러운 작전 성공률. 그런데 일명 <누구, ? Who, Me?>라는 OSS(2차 세계 대전 때의 정보기관) 서류철 속에는 웃어야 할지 놀려야 할지 막상막하인 냄새 작전들이 가득했다. 그러나 일본인들에게 투하하기로 한 스컹크 냄새로 만든 누구, ?》 Ⅱ 최종 보고서가 나오기 전에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을 떨어뜨린 건 아쉬운 일이었다.

 

2차 세계 대전은 미군 역사상 열대 해역과 그 상공에서 전투를 벌인 최초의 사례였다. 추락해 상어에게 공격을 받고 잡아먹히는 이야기가 해군과 공군에 떠돌자 상어 퇴치 연구가 시작되었다.

2차 세계 대전 때 바다에 추락했다가 살아난 비행사 2,500명의 증언을 검토하니, 상어를 보았다는 사람은 38명에 불과했고, 그 중에 상어에 물려서 다치거나 사망한 사람은 12명뿐이었다.”(p261)

볼드리지의 상어 공격 파일 자료 분석 결과는 정반대다. 공격을 받을 당시에 희생자가 피를 흘리고 있었던 시례는, 1,115건 중 19건에 불과했다. 그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그 많은 상어 공격 때 희생자들이 단 한 차례만 물어 뜯겼고, 커다란 상처에서 피가 마구 쏟아지는 데도 상어가 더 이상 공격하지 않고 떠났다는 점을 생각할 때, 사람의 피가 상어를 끌어들이고 흥분시킨다는 개념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p268~269)

상어 연구 진행을 보면 우리가 상어에게 느끼는 공포와 정보들이 매우 피상적이거나 잘못되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자세한 건 책에서/

 

 

마무리

수면 장애에 시달리며 카페인을 넣은 간식거리(심지어 고기에도)를 먹는 등 잠수함 생활을 하는 해군의 이모저모도 자세히 알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그들이 맞는 사고 상황에서 천안함과 세월호 사건이 오버랩 되는 부분도 많아 더 유심히 읽기도 했다.

이라크에서 미군 법의관이자 홍보 담당관이었던 폴 스톤의 말은 인상적이었다.

이라크 전쟁이 한창일 때는 매주 20~30구의 시신이 이곳을 거쳐 갔다. 2004년 이래로 이곳에서 약 6천 건의 부검이 이루어졌다. 미국에서 복무하다가 사망한 사람(그리고 개)은 모두 부검을 받는다.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2001년 이전에는 사망 당시의 목격자가 없거나, 사인이 불분명한 시신만 부검을 했다. 스톤은 살인으로 의심되는 사례를 하나 들다가 말을 멈춘다. 학술적으로 따지면, 다 살인이지요”(p336)

그렇다. 우리가 살기 위한 전쟁이라고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는 기필코 상대를 죽인다. 부검 사진사가 시신의 전신을 담기 위해 높은 곳에 올라가는 사다리를 보고 메리 로치가 한 이 말도 참 공감됐다.

나는 전쟁도 그렇지 않을까 추측한다. 천 개의 불빛A thousand point of light이라는 말을 흔히 한다. 뒤로 물러나서 전체를 볼 때에만, 그런 뒤에야 비로소 그중 어느 한 불빛의 가치를, 그것을 꺼뜨리는 행위의 정당성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바로 그 순간에, 그 전체를 조망하기란 힘겹다. 사다리를 얼마나 높이 올라가야 할지 상상하기가 버겁다.”(p339)

우리는 많은 전쟁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겪고 보고 들어왔다. 손가락 하나 베여도 화들짝하는 게 사람 아닌가. 나는 전쟁과 평화가 반대의 의미가 아니라는 걸 안다. 우리가 평화의 의지를 하나하나 잃어갈 때마다 그것이 전쟁의 색깔로 물들어간다고 느낀다. 자신과 가족과 친구가 소중하다는 걸 알면서 타인에게는 가차 없이 무기나 무력을 휘두르는 건 분명히 모순이다. 문제는 우리가 사회가 국가가 이런 상황을 만든다. 이 책에 소개된 냄새 폭탄 작전은 우습기도 했지만 비살상의 해법을 찾는 모든 노력은 박수받아야 한다. 그것을 잘 알았기에 메리 로치는 이 책을 썼고, 전쟁 뒤에 가려져 있는 이런 내용을 위트 넘치게 전달한 것도 그 일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런 노력 속에 오늘도 누군가 살아남아 삶의 기쁨을 누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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