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진 샤프 지음, 백지은 옮김 / 현실문화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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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욕망과 자유의지, 권력 비리가 맞물려 흥미진진하게 펼쳐졌던 드라마 밀회2014년에 제작되었다. 뒤돌아보면 특별한 비의(非意)가 많았다. 권력층에게 역술과 투자 자문을 하는 백 선생이란 자는 재능 없는 딸을 예술 학교에 입시비리로 집어넣는데, 그 딸 이름이 2016년 한국을 떠들썩하게 한 정유라다. 실기시험을 보기 위해 시험장에 온 정유라가 호명된 후 불리는 126번의 이름은 더 놀랍게도 최태민!이다.

 

 

밀회 각본을 썼던 정성주 작가는 이 모든 게 우연의 일치라고 말했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6/10/27/story_n_12667464.html

정유라 이대 입학이 2015년이라 정황상 작가가 사실을 바탕으로 의도적으로 썼다고 볼 수 없다. 한국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이름까지 이렇게 딱딱 들어맞다니 작가의 예언력만 더 높아짐↑

1995년 방영되어 20년이 넘도록 회자되는 명품 드라마 모래시계가 광주 민주 항쟁을 처음 담았듯이 밀회》가 정의(正義)의 의도를 담았다면 진 샤프가 제시한 비폭력 행동의 198가지 방법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드라마를 좋아했던 박근혜는 저 장면들을 다 봤을까.
2017년 한국은 촛불집회로 대표되는 비폭력 저항으로 새로운 민주 사회의 포문을 열었다. 진 샤프는 독재 정권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비폭력 투쟁의 승리 이후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독재에서 민주주의로》를 읽으며 지난 정치에 대한 답답함과 앞으로의 불안을 점검해 볼 수 있었다
  
샤프 독재에서 민주주의로는 우여곡절이 많은 책이다. 이 책은 원래 버마 민주화 세력의 요청으로 저술했다. 그러나 독재적 정부를 견제할 필요를 느끼는 각국의 운동가들에 의해 28개 번역본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CIA의 제안을 거부한 대가로 여러 제단들에게 기금을 지원받지 못한 채, 지하 방 연구소에서 세계 혁명 운동 사례들을 수집하고 연구하면서 이 책의 이론을 만들었다. 2005년까지도 이 책을 소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이는 징역 7년을 선고받기도 했고, 또 다른 이는 진 샤프가 제시한 방법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기소되기도 했다.

 

폭군은 우리가 저항할 힘이 부족한 만큼만 고통을 가한다.”_크리슈날랄 슈리다라니


정치권력은 협조와 복종과 지원을 통해 역량(권위, 인적자원, 기술과 지식, 무형의 요소들, 물적 자원 제재)을 확대해 나간다. 정부 권력이 통제 정도를 결정하는 세 요소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정부 권력을 견제하고자 하는 대중의 상대적인 욕구, 둘째, 피통치자 조직과 단체들이 정부로부터 권력의 원천을 집단적으로 철회할 수 있는 상대적인 , 마지막으로, 정부에 대한 동의와 지지를 보류할 수 있는 대중의 상대적인 능력.
막강한 권력을 가진 독재 정권과의 갈등 상황에서 쿠데타, 선거, 외부의 구원자, 협상은 일시적이거나 효과적이지 않다. 성공은 가장 적절하고 강력한 저항 방법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것에 따라 결정된다

 

저항하는 민중을 다시 복종하고 지배받는 상태로 돌려놓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하다”_19세기 영국 법학자 존 오스틴


폭력적인 방식이 중앙집권화를 초래하는 것과 반대로 비폭력 저항과 투쟁은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정치적·사회적 민주화 효과도 끌어낸다. 이 복잡한 사회적 행동 기술은 전략적 계획이 필요하다. 진 샤프의 다음 지적에서 대부분 자신의 순진함과 안일함에 뜨끔할 것이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은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해방 운동에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들은 순진하게도 그들의 목표를 열심히 오랫동안 주장하기만 하면 언젠가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확신을 가지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살아남아 원칙과 이념에 따라 살아가며 어려운 상황을 목격하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인도주의적 목표를 고양하고 이상에 충실한 것은 충분히 훌륭한 일이지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자유를 쟁취하는 데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어떤 민주화 운동이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종합적인 전략을 세우지 못하는 대신 당면한 문제에만 집중하는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내부적으로 자신들의 힘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진정으로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략) 독재자는 이 군사력과 경찰력으로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비록 희망을 잃었지만 강직함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어쩌면 역사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독재정권에 저항합니다. 그들 스스로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어쩌면 의식조차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자신의 행동이 무력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장기적인 종합적 전략을 세우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폭력, 자기중심적 접근, 반짝하는 기발한 발상, 형편없이 계획된 행동들의 두서없는 조합은 독재정권과 지배력과 권력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줄 뿐이다. 진 샤프는 민주화 세력이 大전략, 전략, 전술, 방법을 세밀하게 구상하고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략에 신경 쓴다면 독재정권의 대응과 탄압 특히 폭력을 행사하는 시점을 가늠하는 역량을 키우고, 독재자의 군인 및 공무원을 포섭하는 등의 여러 방법, 독재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최소한 중립으로 바뀌도록 유도할 수 있다.
 
독재 정권에 대항한 비폭력 저항의 역사는 깊다. 진 샤프에 따르면 귀족에게 협조하지 않기로 결정한 기원전 494까지 거슬러올라간다.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도 않았다.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아프리카, 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 태평양 군도 전역까지 여러 시대에 걸쳐 사용해왔다. 그는 과거에 일어났던 즉흥적으로 조직된 정치적 저항운동이 파업이나 대규모 시위 같은 한두 가지 방법에만 의존한 공통적인 실수를 강하게 지적했다. 군사력을 장악하는 독재 정권에 폭력 투쟁으로 맞서는 것은 현명한 전략 전술이 아니다. 그는 비폭력 투쟁이 군사적 수단과 달리 쟁점이 되는 사안에 직접 초점을 맞출 수 있고 정치적 저항은 권력의 원천을 단절시키는 데 특히 적합하다고 말하며 독재 정권의 약점과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방법은 크게 세 가지, 즉 항의와 설득, 비협조, 개입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항의와 설득은 대개 상징적인 시위인데, 행진, 가두시위, 철야농성을 포함하여 54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비협조는 다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범주로 나뉩니다. 사회적 비협조 16가지, 보이콧 26가지와 파업 23가지를 포함하는 경제적 비협조, 그리고 정치적 비협조 38가지가 그것입니다. 마지막 범주인 개입은 심리적·물리적·사회적·경제적·정치적 방법을 사용하며, 이러한 방법에는 단식, 비폭력 점거, 대안 정부 수립을 포함해서 모두 41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이들 198가지 방법의 목록은 이 책에 부록으로 실려 있습니다.”


진 샤프가 주목한 변화를 가져오는 작동 방식은 네 가지. 내부의 전향(거의 일어나지 않거나 무의미할 때가 많다), 조정(ex 파업), “대중적인 비협조와 저항이 사회적·정치적 상황과 특히 권력관계를 변화시킴으로써 정부와 사회의 경제적·사회적·정치적 과정에 대한 독재자의 지배력을 빼앗”는 비폭력 강제, 저항세력의 주체성과 비협조, 저항이 너무 강력해 촉발되는 정권의 붕괴 등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2016-2017년 한국의 비폭력 저항의 열쇠였던 최순실 게이트에서 내부 고발-전향이 중요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조정, 비폭력 강제, 붕괴 등이 연달아 조성되었다.
 
진 샤프는 ‘1970년대와 1980년대의 폴란드 저항운동이 사회의 기능과 조직을 재탈환한 좋은 예라고 말하며, 독재정권의 와해 후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의 토대를 위한 예방책으로 쿠데타 세력의 봉쇄, 헌법 제정, 민주적 안보 정책을 제시했다.
 
비폭력 투쟁의 경험은 민주주의와 시민의 자유, 소수자의 권리, 지역, , 지방정부와 비정부 조직의 특권을 지키기 위한 방법을 제시할 거라는 진 샤프의 진단이 한국의 미래를 조금 긍정적으로 보게 한다. 그러나 내 탄생과 삶이 공짜가 아니었듯이 이 자유도 공짜가 아니란 걸 안다. 역사를 예측 불가능한 것이라고 보든 예측 가능한 것이라고 보든 이 저항은 언제나 확장되어야 할 일이다. 그렇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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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6 10: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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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6-27 13:59   좋아요 1 | URL
진 샤프 이 책을 핵심적으로 말하는 문장을 노 대통령이 말씀하셨죠.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자본적 독재에 대항해서도 결국 이 힘이 가장 중요한 무기입니다. 결국은 안될 거 같다거나 혼자만의 확신과 이념, 의심 그런 게 이 저항에 가장 걸림돌이죠.

2017-06-27 2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28 0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28 21: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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