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를 가지 못했던 때엔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영감의 충동을 넘어 예술이 왜 속죄, 치유, 희망이 되는지 그리는 순간 깨닫게 된다. 정치도 참여하게 되면 그렇다. 잘 그리든 못 그리든, 잘 하든 못하든. 


 

 우리는 그가 9월 11일이라고 제목 붙인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림 자체의 구성과 그림이 창작된 상황, 색상 선택, 얼굴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이 의미하는 바에 첫눈에 매료되었다. 타지키스탄 이슬람교도인 이 화가(애크멀 미츠섀커롤)는 아프가니스탄 북쪽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미국 반대편에서 그 사건을 접한 셈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사건에 반응했던 것이다. 캔버스에 그림을 그릴 때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물었을 때 예술가다운 열정에 차서 그는 이렇게 답했다.


무어라 설명을 너무 많이는 덧붙이기 힘들군요. 그림이 곧 설명입니다. 저는 그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믿기 힘들었지만 비행기가 충돌하는 화면을 우리는 지켜보았습니다. 마치 모두 일어나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무엇이 우리 삶에 떨어질지 걱정스러웠습니다. 당신도 알고 있듯이, 저는 비행기가 되는 꿈을 자주 꾸는데 비행기가 추락하다가 충돌하기 직전에 잠에서 깨곤 합니다. 그 사건은 그 꿈과 너무나 흡사했습니다.


덧붙이길, ˝우리가 내란을 겪었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매일, 우리는 하늘을 쳐다보고 다음에 무엇이 올지 걱정했죠. 그리고 더 나은 것, 싸움을 멈출 수 있는 것, 나쁜 꿈을 끝낼 수 있는 무언가를 찾길 바라던 때였습니다.˝
나는 애크멀의 작업실에서 우두커니 서서 그림을 보고 있었다. 다섯 사람이 뜰에서 원을 그리고 서 있었는데 무엇이 나타날 것인지 지켜보는 듯 세 여자와 두 남자는 위를 올려다본다. 한 사람은 분명히 당황한 얼굴이었다. 어떤 이는 걱정에 싸여 있었고 그들에게 일어난 일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찾는 듯한 느낌이었다. 근심 어린 눈과 불안에 가득 찬 표정이 보였다. 그러나 색감 때문인지 몰라도 전체적으로는 희망찼다. 이런 종류의 희망과 근심이 바로 지구 반대편 사람들을 연결시켜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 근심은 어떤 이에게 닥친 비극과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지 모르는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일 뿐 아니라 인류를 위해 우리가 창조해낼 무언가에 대한 관심이기도 하다. 작품 속에서 나는 폭력을 넘어선 인류 공동의 움직임을 촉발하고자 하는 초월성을 엿본다. 캔버스와 작가의 주변 상황을 통해 상호 존중과 치료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이 그림이 집필 중인 책의 제목과 논제의 아주 많은 요소를 포착하고 있었기에, 애크멀에게 「9월 11일」을 표지 그림으로 사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폴 레더락 《도덕적 상상력》

 

지금 생각해 보면 미국에서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나왔던 것은 9.11이란 상징적 사건도 밑바닥에 깔린 큰 동기였을 것이다. 911은 미국 응급구조 신고 번호다. 테러단은 그것도 염두에 두고 그날 일을 벌였다고 생각하니 인간이란 어쩌면 이토록 잔인한가 싶다.
오늘 대선 투표에 우리에겐 20140416 세월호가 있다.


어버이날 다음날이 투표일인 게 누구에게 더 이익이 된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용돈을 드리며……
오늘은 슈퍼문이 뜨는 날이라고 했다. 흐리고 비가 오는 건 비를 뚫고 가야 하는 일과 닮아서라고 생각하며 도장 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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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9 11: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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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9 12: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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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9 12: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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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9 12: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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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9 12: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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