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들뢰즈는 《의미의 논리》에서 간단히 언급했지만, 곰브로비치 《코스모스》는 너무도 질 들뢰즈적인 텍스트.

내가 만족할 만한 분석을 하려면 정신분석에 통달해야겠다 싶어 리뷰를 미루고 있는데 현재로선 언제 쓸지 모르겠다.

만약 그것이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라면 나는 왜 다시 재떨이를 바라보게 되었을까? 그렇다! 재떨이를 향해 또다시 시선을 던진 바로 그 순간부터 나와 재떨이 사이에 어떤 의미가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신이 아무런 이유 없이 어떤 현상이나 사물에 1초보다 조금 더 길게 관심을 기울였다는 단순한 사실로 인해서 그 대상은 이제 당신에게서 나머지 다른 대상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가치를 획득하게 된 것이며, 당신의 의식 속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

ㅡ Witold Gombrowicz, ibid, 1986, p. 203

고양이와 참새, 그것들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서로 비슷한 면이 있기 때문에 둘 사이에 뚜렷한 연관성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아무도 부정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하긴 고양이는 참새를 잡아먹으니까, 하, 하, 관계의 그물망이란 얼마나 질척거리는지! 이처럼 연상 작용에 있어서 호의적인 경우와 비호의적인 경우가 처음부터 지정되어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긴 (나는 생각했다.) 거의 언제나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혹은 존재의 요건을 미처 다 충족시키지 못하곤 했다, 그건 우리가 주변의 모든 사물들과 무관심하고, 혼란스럽고, 단정치 못하고, 초라하고, 비열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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