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재 연출 <불역쾌재(不亦快哉)>를 보고 왔다. 제목의 뜻은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이다. 어두운 세상을 뒤집어 밝게 보는 마음을 갖추자는 뜻이 담겨 있다.


장우재 연출가는 임형택 교수가 쓴 <한문서사의 영토>를 보다가 조선시대 문인 성현(成俔)이 쓴 기행문 `관동만유(關東漫遊)`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 작품을 연출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불역쾌재`는 ˝다산 정약용의 `불역쾌재행(不亦快哉行)`, 중국 문인 김성탄의 `불역쾌재삼십삼척(不亦快哉三十三則)` 등 옛 선비들이 세상을 달랬던 시˝와 연결되기도 한다.

왕의 스승이기도 한 기지와 경숙은 각각 예술과 실용학문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들의 절친이 분서를 쓴 것에 연루되어 파직된 그들은 `금강산 외팔담 아래에 동굴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언쟁 끝에 금강산 여정을 떠나게 된다. 짐작하다시피 동굴이 있는지 없는지는 히치콕 영화의 맥거핀처럼 중요하지 않다. 이 여정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우는지가 중요하다.
(생각난 김에... 맥거핀님, 나타나셔서 리뷰 좀 올려 주세요ㅜㅜ)


왕은 세자였을 때 강상칠우(江上七友)라는 사건을 겪었다. 한강에서 뱃놀이를 하다 물에 빠진 세자의 친구들을 선왕이 구해주지 않은 사건이다. 선왕은 그들이 앞으로 세자의 숙적이 될 것이라 여겨 구해주지 않았다. 강상칠우가 상징하듯 왕은 왕으로서 요구받는 자세와 개인으로서의 위치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이다. 이는 자신과 타인 속에서 갈등하는 보편적 인간상이기도 하다.
강상칠우(江上七友) 사건은 `세월호`를 상징하기도 한다. 사건은 일어났고 이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연출가의 모색이 담겨 있다.
왕은 경숙과 기지를 파직하면서 이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해답을 가져와보라는 질문을 준다.

막간에 뒷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대화가 들렸다. 무대 위에 등장하는 나무는 무엇을 뜻할까. 나는 마음속으로 물었다. 질문을 가지는 건 좋은데 왜 나무에만 집중합니까. 그리고 이야기 진행 속에 공연장 가득 채워진 소고기 냄새처럼 소고기 얘기만 한창이었다. 우리의 감각과 생각은 이렇듯 지엽적인 데 치우치기 쉽다.
왕이 분서에서 자신을 향한 비판만 읽고 충언은 귀담아듣지 않았던 것처럼, 경숙과 기지에게 만족할만한 답을 각각 내놓길 요구한 것처럼, 우리는 나무만 보고 숲을 잘 보지 못한다. 그렇다고 숲이 정답인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은 변화의 과정 속에 있다.

결말에서 왕은 경숙과 기지 그리고 그들을 따르던 순수 무사 회옹을 동.시.에 처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분서를 쓴 태보가 경숙과 기지에게서 칼춤을 배웠다고 말하며 양손에 칼을 쥐듯이, 진시황이 찾던 것이라고 그가 주는 술이 돌이 담긴 물이었듯이, 수동적으로 기록하는 늙은 사관과 능동적으로 비판하는 태보 역을 윤상화 배우가 1인 2역으로 맡았듯이, 이 연극 곳곳에는 전환적 사고와 합일하는 사고에 대한 강조가 가득했다.

당신이 있기에, 나는 마음을 나눌 수도 있고 비판적 사고도 할 수 있다. 고마움을 전한다. 이에 따르는 에토스, 파토스, 토포스 모두 내가 짊어지고 살아내야 할 나무와 숲이다. 가능한 한 기꺼이.
요즘 사회상을 보면 특히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사죄하는 인간이기보다 고마워하는 인간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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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8 11: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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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9 06: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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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9 08: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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