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티 블루 - 카엘 탈라스의 진실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6
제니페르 D. 리샤르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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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때문에 슬퍼졌는지 안다 해도 우리는 그 슬픔을 근원부터 해결할 수 없다. 쏟아진 우유를 다시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다른 것을 슬픔의 자리로 가져와 바꾸는 노력을 할 뿐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추구하는 행복은 그런 대체 행위들인지도 모른다.  행복은 일시적일 뿐 항구적일 수 없다는 말로 바꿀 수도 있다. 이럴 때 사람은 종교로, 돈으로, 권력으로, 사랑으로, 꿈으로 각기 달려 간다.

 

소설 초반부터 울적함이 밀려왔다. 소설의 내용도 구성도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아서였다. 내겐 좀 식상했는데 이럴 땐 소설을 다 읽고 다가오기 마련인 작가와의 대면이 빨리 시작된다. 그리고 작가와 하는 무언의 대화인 책 읽기 밖엔 달리 방법이 없다

 

당신이 말하고 싶은 것은 결국 무엇입니까. 내가 짐작하는 그것입니까.

 

 

 

무슨 생각 하는 거야?”

이 바보 같은 질문은 국제 공용어인 듯했다. 내가 뭘 생각하든 그게 자기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ㅡ 『더스티 블루 

 

 

소설뿐만 아니라 우리가 만든 창작물에는 DNA처럼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게 있다.

다시 시작하고 싶다 열망이다.   그 이전에 있었을  ‘잘 하고(살고) 싶다’가 대개 실패하기 마련이어서 말이다.  

작가든 등장인물이든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마음이다.

그런데 '다시 시작하고 싶다'라는 열망엔 새로 시작하면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자신감이 녹아 있다. 과연 그럴까.

 

 

스무 살 생일 파티가 끝나고 숙취에서 깨어난 라디슬라스 바랑은 카일 탈라스라는 전도 유망한 인물로 깨어난다. 자신이 알던 세계의 정보들이 재배치된 세계에서 그는 전혀 다른 삶의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기억, 그의 상상과 호기심은 이 세계와 불화한다. 그럴 수밖에. 라디슬라스 바랑과 카일 탈라스라는 두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건 어느 세계에서건 미치광이 아니면 범죄자의 삶이 되기 십상이다. 스스로가 꾸미는 여러 페르소나와 헷갈리지 마시길.

가가 배치한 카일 탈라스의 세계는 우리가 한 번쯤 상상해 본 세계이다친절함이 넘치는 안전하고 깨끗한 세계, 결혼제도는 그저 계약일 뿐 자유로운 연애가 가능한 세계, 기억이 지워지고 주입되는 세계, 나이에 관계없이 성년 시험을 치르고서야 성년이 되는 세계,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고 그에 부합해 사는 세계, 자살이 절차로 마련되어 있는 세계. 그러나 이러한 이상(理想)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르는 억제와 폭력도 수반된다.  이상적으로 보이는 이 세계에서도 용납되지 않는 것은 비정상으로 치부되어 개인들을 가차 없이 처단한다. 다름에 대한 포용은 어느 세계에나 참 어려운 딜레마다.

선택의 여지없이(무의식중에 그가 원한 것이 투영되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카일 탈라스의 삶을 살면서도 라디슬라스 바랑이라는 정체성을 지키려 애쓰던 그는, 또다시 죽은 쌍둥이 동생의 이름인 라즐로 바랑으로 깨어난다. 그가 알던 이들은 모두 새로운 이름으로 재배치되어 있다.

라디슬라스 바랑이 카일 탈라스라는 인물로 깨어났을 때부터 짐작되다시피 작가는 윤회와 다중우주와 꿈을 섞은 러시안룰렛 식 소설을 만들었다. 왜? 

하나의 총알로 단 한 번의 방아쇠로 죽는 것은 이 순간의 나일뿐이지만, 어딘가에서 나는 또 다른 정체성의 옷을 입고 악전고투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죽음의 안식은 우리의 희망이자 착각인지도 모른다고.

 

 

잠에서 깨어나면서, 카일 탈라스의 침대에서 처음 눈을 뜨던 날 스스로에게 했던 질문을 다시 해보았다. 나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여행을 떠나면 첫날밤에 으레 이런 질문을 던져보지만, 대개는 몇 초 후면 답을 찾게 된다. 하지만 일주일 내내 똑같은 질문을 한다는 것은 뭔가 대단히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얘기였다.


ㅡ 『더스티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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