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 희망과 회복력을 되찾기 위한 어느 불안증 환자의 지적 여정
스콧 스토셀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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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이트의 시작과 끝을 돌이킬 수 없어 유감

 

다윈 종의 기원은 1859년에 첫 출판되었다. 1856년생 프로이트가 뛰어다녔을 아이 때다그런데 상황으로 봐선 프로이트의 우울과 상실의 시작이기도 했다그가 태어난 해에 어머니가 다시 임신을 했고 남동생 율리우스가 태어났으나 곧 장염으로 죽었다동생의 죽음, 그로 인한 어머니의 우울증, 의지했던 유모와의 이별(p312)…….

시련 속에서 인간은 성장할 수밖에 없고다윈은 인간의 기원을프로이트는 인간의 의식을 개척한 선구자로 19세기부터 지금까지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여행 공포증을 비롯해 각종 불안과 강박에 시달렸던 두 사람기차공포증과 건강염려증이 심했던 프로이트비글호 여행 뒤 스트레스로 인해 두문불출했던 다윈(p42)은 자신을 치유하고자 했으며 그 때문에 더 연구에 열성이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신경증의 긍정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데 그 예민함은 중요한 발전의 기회를 놓칠 때가 있다프로이트는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고협력자였던 오토 랑크알프레드 아들러카를 융을 결국 추방(p313)했다프로이트가 다윈의 진화생물학을 연구에 접목하지 못한 건 특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존 볼비는 프로이트가 다윈의 작업을 좀 더 잘 알았더라면 생물학적 원칙을 정신분석학에 더 설득력 있게 통합할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했다. (p328)

 

 

프로이트가 불안을 아동기의 성적 욕망으로 채워버린 첫 단추는 아래와 같이 전개되었다.


 

 

프로이트는 70대에 접어들어 마지막 작업 중 하나에서 드디어 불안에 대한 현대 과학적 이해에 근접하기 시작한 것이다그렇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프로이트의 추종자들은 오이디푸스적 갈등”, “남근 선망과 거세 불안을 가지고 경주를 시작했고 열등감 콤플렉스”(아들러), “집단 무의식”(), “죽음 본능”(멜라니 클라인), “구강기와 항문기 고착”(카를 아브라함), 또 좋은 가슴과 나쁜 가슴에 대한 환상”(이것도 클라인등으로 뻗어나갔다정신분석 이론이 2차 세계대전 이전 그리고 이후까지도 계속 발전하면서 불안은 억눌린 성적 욕망이라는 정신분석학적 시각이 한 세대 동안 정신의학을 지배했다.(p316)

 

 

 

§§ 병적 불안의 복합 동기

 

사실, 불안은 수천 년 묵은 논쟁 선상에 있었다. 스콧 스토셀의 다음 말은 장황하지만 불안에 대해 가장 포괄적이면서 타당한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병적 불안은 히포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현대 약학자들의 생각처럼 의학적 질환인가아니면 플라톤과 스피노자인지 행동 치료사들 생각처럼 철학적 문제인가프로이트와 그 추종자들이 생각하듯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성적 억압에서 비롯된 정신적인 병인가아니면, W.H.오든데이비스 리스먼에리히 프롬알베르 까뮈또 무수히 많은 현대 사상가들이 선언했듯 문화적인 병인 동시에 우리가 사는 시대와 사회 구조의 한 기능인 것일까?

사실을 말하자면 불안은 생물학적 기능인 동시에 철학적인 기능이기도 하고육체와 정신본능과 이성개성과 문화 모두와 관련 있다우리는 불안을 정신적심리적으로 경험하지만분자나 생리학적 층위에서도 불안을 측정할 수 있다불안은 유전에 의해 만들어지는 동시에 양육에 의해서도 만들어진다심리적 현상이면서 사회적 현상이다컴퓨터 용어로 말하면 하드웨어의 문제(배선이 엉망이다.)이면서 소프트웨어의 문제(논리적 오류가 있는 프로그램을 돌려서 불안한 생각을 일으킨다.)이기도 하다기질은 어느 하나에서 비롯되지 않는다위험 유전자라든가 어린 시절의 상처 같은 한 가지 원인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사실 스피노자의 두드러지게 침착한 성품이 본인의 철학 덕분인지 생물학적으로 그렇게 타고났기 때문인지 어떻게 알겠는가스피노자가 유전적으로 자율신경 각성 정도가 낮기 때문에 고요한 철학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닐 수도 있지 않나?(p31~32)

 

 

상황을 좀 더 단순히 나누면, '정신약리학과 인지행동 치료의 충돌'로 볼 수 있다신경증을 뇌의 세로토닌 재흡수 문제나 유전과 유전자의 문제로 보는 과학에 바탕을 둔 환원주의적 시각은, 인간 각자가 처한 환경과 선택의 역학에 따른 영향(레나타 살레츨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http://blog.aladin.co.kr/durepos/7383173 )에서 심층적으로 살펴 볼 수 있다-Agalma)을 간과할 소지가 크다이는 프로이트가 인간의 다양한 생물학적 특성을 놓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유전학자들은 유전자 지도를 만들어 문제를 찾아낼 겁니다.’라고 말하지말도 안 되는 소리야유방암의 경우에도 유전적 소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영양 같은 환경적 요인이 있어야만 실제 암으로 발병하기도 하고 그래.” (p411에서 L박사)

 

1880년대 후반프로이트가 신경 의사라는 간판을 내걸었을 때에 프로이트나 다른 의사들이 가장 흔히 내리던 진단은 신경쇠약이었다. ‘신경쇠약이라는 단어는 미국 의사 조지 밀러 비어드가 두려움걱정피로가 섞인 증세에 병명을 붙이면서 널리 쓰이게 되었는데비어드는 이 병이 산업혁명의 스트레스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다신경쇠약의 뿌리는 현대 생활의 압박 때문에 지나치게 긴장된 신경이라고 여겨졌다.(p245)

 

기원전 5세기 무렵부터 다양한 가치를 가진 낯선 사람들과 점점 더 많이 섞여 살게 되었고르네상스와 산업 혁명을 거치며 이런 경향은 극도로 가속화되었다그래서 특히 중세 이후로 자신의 능력이나 지위가 적당한지도덕적 전제가 타당한지를 되돌아볼 때 무언가 다른 불편한 감정이 일어났다.”고 케이건은 주장한다. “불안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런 감정이 인간 정서의 위계 질서에서 최우선하는 감정의 자리에 등극한다.” 어쩌면 인간이라는 개체는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삶을 살기에 적당하게 만들어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내가 이득을 얻으려면 다른 사람이 손해를 보아야만 하는 냉혹한 제로섬 경쟁의 사회, ‘신경증적 경쟁이 연대와 협력을 밀어낸 사회 말이다. “경쟁적 개인주의가 공동체적 경험을 막고공동체의 상실은 현대 사회의 불안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롤로 메이가 1950년에 주장한 바다.(p395)

 

나의 불안을 편도 속의 이온으로 환원해 말한다는 건 내 성격이나 영혼을 뇌세포를 구성하는 분자나 그게 만들어지는 바탕이 된 유전자로 환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편협하다.(p263)

 


 

§§§ 만들어지는 불안들


의사들이 술자리에서 즉흥적으로 만든 범불안장애가 증상으로 만들어지고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사례, 1980년대에 처방약이 만들어져 병명으로 탄생한 공황 장애”, 만병통치약처럼 퍼지는 항우울제의 범람과 죽음들마릴린 먼로가 그때 선풍적이었던 밀타운을 먹지 않았다면 그 죽음은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소설가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가 티라민이나 나르딜이 아닌 제대로 된 약을 먹었다면 2008년 그렇게 자살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을 짚어보며불안은 강약의 차이만 있을 뿐 살아있는 우리 자체란 생각이 든다스콧 스토셀이 롤로 메이가 불안의 의미』 개정판 서문에 쓴 글을 인용하며 말한 것에 나도 동감이다.

 

 

그러니까 불안은 영원한 인간의 조건이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주요 위험이 물리적인 적의 이빨이나 발톱에서 온다고 생각한다사실은 대체로 심리적이고 넓게 보면 정신적인 것인데 말이다그러니까 무의미와 대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p401) 

 

 



§§§§ 이 책으로 관심이 촉발된 세 가지 


1. 본문에 자주 언급되던 롤로 메이불안의 의미』를 한 번 읽어 보고 싶은데 번역본이 없으니; 최근 나온『신화를 찾는 인간』(2015.6),『자아를 잃어버린 현대인』(2015.2)을 기회 되면 봐야 할 듯. 


2. 우울 서적의 신화로 일컬어지는 로버트 버튼 『우울의 해부』(1621)가 1000쪽이 넘는 방대한 양이라지만, 불안과 우울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낮아질 기미 zero!) 시대에 제대로 된 국내번역본이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합니다만? 아무리 기다려도 안 나옴ㅜ;


3. 결핵에 걸려 의학 공부를 중단하고 요양원에 들어간 소설가 워커 퍼시 인생 스토리는 마치 토마스 만 『마의 산』같았음;; 요양원에서 도스토옙스키와 토마스 만, 키르케고르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읽고, 과학이 인간의 불행을 해결해주지 못하리란 결론을 내린 뒤 가톨릭 신자로 개종! 퍼시가 요양원에서 유럽 소설과 실존철학 대신 이프로니아지드 치료를 받았다면, 퍼시의 삶과 철학은 얼마나 달라졌을까?(p294), 스콧 스토셀은 묻는다. 

의학자와 소설가 사이에서 우연처럼 운명처럼 퍼시가 하나의 길을 선택하게 만든, 불안. 

이 책에 소개된 바에 의하면 워커 퍼시 소설은 생물학과 과학 식견을 바탕으로 한 실존 소설로 보이는데, 돈 드릴로나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의 작품이 떠오르기도 해서 흥미로웠다. 출판 바랍니다~

 

 

 

ㅡAgalma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서평단 참여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저자 스콧 스토셀처럼 중요한 일을 미루거나 회피하고 싶어하는 심리 때문에; 리뷰 기한을 하루 넘긴 거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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