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내러티브와 주인공은 전초(avant-poste, 무리의 선두에 위치하는 것)도, 전위(avant-garde, 무리의 선두에서 이끌어가는 것)도, 그렇다고 매우 동시대적이라고도 느껴지지 않는다. 대사는 2015년 형이지만, 해외여행 자유화 시대부터 꾸준히 들어오던 여성잡지 사연 같다. 20년 전 영화 <비트>나 <젊은 남자> 주인공들의 욕망과 좌절과 크게 다를까? 칙릿소설이 등장했을 때도 이 비슷한 기분이었다. 그 또한 사회 현상이고 반영이지만 왠지 핵심은 비껴가고 있다는 기분... 읽지 않은 책에 대한 무례이기도 할 텐데 이 책에 대한 사람들의 리뷰와 관심을 보며 나는 내내 그렇게 찜찜했다.
오늘 ˝한국이 싫을 수밖에 없는˝ 매우 위태하고 실시간적인 이야기가 도착했다. 대다수겠지만 어떤 청년은 유학을 준비하고 시민권을 꿈꿀 여유조차 없다. 단 몇 분의 통화 후 장밋빛 미래는 사라질 수도 있다. 일자리는 물론 어떤 보호도 기대하기 어렵다. 싫다 로 끝날 일이 아니다.
<그것이 알고싶다>`위험한 속삭임 수화기 너머, 검은 혀` (2015. 8. 22) 편에서는 `보이스피싱 사기`에 대한 최신 진화를 보여줬다.
지금의 사기단은 웃음거리였던 덜떨어진 조선족이 아니다. 이제는 거의 과학적이고 전문적이며 조직적이다.
한국 사이버수사대에서 특진까지 여러 차례 하며 경찰로 지낸 자가 총책인 조직도 있고,
각계 전문가가 참여한 전화통화 대본, 스마트폰 악성 앱, 발신과 수신번호 조작 등의 기술력, 입수된 인물들의 정보 취합과 그들의 경제 동향을 파악하는 실시간 DB 등 빅 데이터를 이용하며,
티슈 한 장처럼 간단하게 쓰고 버릴 수 있는 통장을 사기 쳐서 모으고,
높은 배당금을 줘 가장 검거위험이 높은 자금 인출책을 만들고, 그 역감시자가 또 있다. 환치기로 중국에 송금하지만, 그들은 서로의 본명도 정보도 모르기에 잡혀도 수사 난항이 거듭된다.
해외자본 유입을 반기는 중국은 방임 자세고, 공안은 뇌물을 받고 비리에 협조한다.
칭다우 시 건물 3개 중 2개꼴로 보이스피싱 사기단이 상주하고 있을 거란 추측은 대책 없이 참담한 소식이었다.
중국, 일본의 보이스피싱 사례는 우리랑 어떻게 다를까...문득 궁금하기도.
지금 시급하게 안타까운 건,
보이스피싱의 능숙한 통화자는 유학파도 섞인 20대 한국 청년이며, 피해자의 절반도 재정의 어려움을 겪는 20~30대 청년이라는 점이다.
해외라서 느슨해진 양심에, 한 주에 몇 천만 원을 벌 수 있는 손쉬운 돈벌이에 혹 해 보이스피싱 사기에 가담하는 청년과, 학비의 어려움을 덜고자 낮은 이율의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거래실적을 위해 통장을 빌려줬다가(대포통장) 금융사기 전과자가 된 청년.
보이스피싱으로 해외에서 온갖 사치를 누리는 자(무려 개인 헬기!)와 빚을 갚기 위해 하루 종일 일하면서도 3일을 굶어야 하는 자.
그들 각자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다. 범죄를 저지른 자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피해자는 이 수치를 다른 이에게 놀림을 당할까 싶어서 숨긴다.
범죄 항목 중 ˝사기˝로 한국이 세계 1위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참 여러 가지 세계적으로 부끄럽다....한국 정말 이럴래!
사기? 가능하게 만들어 줄께~ 계속 전화 걸어와/ (뭐야, 드루와 친구냐!)
10년 간 정부가 해 온 꼴을 보면.....국가도 사기를 당하는 판에.
국내 보이스피싱은 2006년 6월부터 발생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피해신고 금액만으로도 6천억이 넘는다.
매해 수법과 피해액은 강력해지고 있는데, 금융 피해자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는 은행의 안이함과 그걸 돕고 있는 정부 시책은 ˝한국이 싫어요˝ 레벨 업! 시키고 있다.
최근 금감원이 제시한 보이스피싱 대책
1. 통장 발급 심사 강화와 휴면계좌 정지 강화
2. 자동입출금기(ATM) 인출금액 제한 및 지연인출제 도입
3. 보이스피싱 사기범 목소리 공개
4. 통장을 빌려줬을 때 처벌 수위도 강화 - 연 2회 이상 대포통장 명의자가 되거나 대포통장임을 알고도 중개·알선한 사람은 ‘금융 질서 문란자’로 등록돼 12년간 대출 등 금융거래가 제한된다. 수사당국이 고발 조치할 경우에는 최고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고 피해가 발생하면 피해액의 최대 50%를 물어내야 한다.
대부분이 경제사정이 취약하거나 사태 파악의 미숙함 혹은 심적 혼란으로 사건에 연루됐을 청년과 시민들인데, 예방책은 허술하고 사후책은 대단히 겁을 주며 배상 책임까지 덮어씌우고 있다. 해외처럼 은행권 100% 책임으로 하면 피해를 상당수 줄일 수 있다고 전문가는 본다. 해킹으로 매번 털리는 한국의 은행들, 작년 한 해만 보이스피싱 피해액만 2천억이 넘어 그들도 자신 없으니 개인들에게 전가하고 있는 게 뻔하다. 송금 수수료 등 이익을 챙기기 위한 것도 있으리란 생각은 차마....
정부는 확실한 법망을 구축해야 한다. 은행이 수사권과 실시간으로 공조해 계좌 추적과 송금 금지하도록 말이다.
˝공문을 보내셔야... 저희 은행 업부 방침상...˝ 이 따위 소리나 해대니 한국이 싫어지지. 그러니 이런 식의 범죄들이 만연하고 거기 현혹되는 사람과 피해입고 인생 망가지는 사람이 생기잖은가!
희망과 행복에 대한 개인들의 피나는 노력과 경쟁을 요구하면서 이 사례만 봐도 정부는 기본적인 보호조치를 할 의향이 없어 보인다. 공공 제도의 개선으로 분명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 실제 삶이! 삶의 질이!
˝한국이 싫어서˝ 휙 말하고 가는 나라에는 문제가 없는가.
모두가 조금씩 한국이 싫어지게 만들고서 마치 자기는 아무 상관도 없는 듯 벌레 바라보듯 ˝한국이 싫어서˝라고 말하는 건 가장 손쉬운 말이고 방법 같아 한 마디 해봤다.
지금 우리는 분노의 연대나 개인주의화가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연대와 촉구가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싫어서˝는 ˝잘해 봐, 난 빠질게˝와 다른 말 같지 않다.
ps)심리 전문가들이 보이스피싱 수법 연구 중 재미난 발언
1. 인간은 숫자를 보면 사실에 더 가깝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2. 명사에 속기 쉽다 - 자기 전문 분야 용어가 나오면 다 이해했다고 쉽게 착각한다.
지금까지 내 글의 내용도 상당수 의심하시길. 틀렸을 수 있다. 특히 숫자 부분; 결론의 취지만 좀 전달됐음 싶다.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표백> 읽으신 분들은 <그것이 알고싶다>`위험한 속삭임 수화기 너머, 검은 혀` (2015. 8. 22) 편을 같이 보고 지금 시점을 비교해보면 좋을 듯해서 주절주절 해 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