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그는 누구인가? - 카이로스의 시선으로 본 세기의 순간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지음, 정진국 옮김 / 까치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

세상을 고통과 비교로 보기 시작하면 빠져나갈 길이 없어. 그것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순간도 내 속에 있지. 뭐든 내 속에 다 있어. 와하하, 나 부자다! 이 부자 바보야, 그걸 누가 몰라? 근데 왜 안 해. 힘들어. 아냐, 잘 생각해 봐. 어렸을 때 몰두하던 놀이를. 이젠 그게 잘 안 돼. 음.....그렇담 노력이 필요하단 소리군?

균형을 맞추는 노력, 그게 힘들지 않아야 해. 노력을 재미로 바꾸기. 아니, 노력이 재미인 줄 모르면서 빠지고, 재미가 노력인 줄 모르고 사는 상태. 난 그림 그릴 때 그 상태가 가장 완벽했던 것 같아. 지금은 무슨 책이든 분석해서 보고 잡다한 낙서에 뭐가 정말 많아. 일까지 하면 넉다운;; 안다고 해도 잘 안 되는 이 많은 상태(아이스 커피 한 잔 마시고~캬~~)

자꾸 잊는데, 목소리에 힘주지 말 것. 그거 좋아하는 사람 없어. 좋아한다고? 상대의 노력이라는 생각은 안 들어^^? 내가 우선 그걸 싫어하잖아? 그러면서 글쓸 땐 왜 힘줘? (입운동 살짝~~아, 에, 이, 오, 우~~)
실체 없이 가장 가볍고 짧게 도착하는 말이 너를 쓰러뜨리리라.
사랑해.
죽었어.
끝났어.



어제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집 보고 또 힘주려고 한 거 있지? 어휴)))
책 읽다가 닭살 돋고 눈물날 뻔 했어.
그렇게 오랜 시간 그의 사진을 봐 왔고, 북새통에 줄을 따라가며 전시를 봤음에도, 난 그를 전혀 몰랐단 생각이 들더군. 매일 내가 바보인 것을 깨닫는다. 나 안경 두 개 써야 될까봐. 그걸로 될까. 변명은 무엇으로도 가능하다. 깨닫기 전까지는.

장 클레르가 ˝카이로스(kairos)˝를 가져와 브레송을 얘기한 게 맘에 들었어. 제우스의 가장 어린 아들 이름이자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기회˝라고 부르는 오래된 단어.
브레송에게 붙은 ˝결정적 순간˝에 대해, 가장 오래된 기원부터 천천히 이끌어오는 침착성과 현명함, 이런 평론 좋더라.

˝한 장의 사진이란, 눈 깜짝할 사이에, 한편으로는 어떤 사실의 의미작용과, 다른 한편으로는 그 사실을 설명하는, 시각적으로 통찰된 형태의 엄격한 조직이, 동시 발생적으로 인지되는 것이다.˝
ㅡ앙리 카르티에-브레송

힘준 글은 눈에 잘 안 들어 오는데, 브레송은 사진은 가볍고 날카롭게 만들 줄 알았지만 문학수업을 했어도 언어에선 그도 어쩔 수 없었나봐ㅎ; 장 클레르의 말처럼 브레송은 카이로스에서 끊임없이 로고스를 이끌어내려 했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초현실주의가 추구하는 우연성과도 결별한 거고.
브레송이 사진에서 그랬듯 언어에 날개를 찾아주기. 날개를 단 카이로스여.
그렇다고 내가 언어를 가볍게 써야 된다고 말하는 거 아닌 건 알지? (찡긋~)

여하간 그가 어릴 때 그림에 심취했고 초현실주의에 빠졌다가 노년에 데생으로 돌아간 걸 이해하겠다면, 나 너무 오만한 걸까?

하지만 느껴지는 걸.
초점이 흐려지는 걸 따질 새도 없이 잡아챈 긴박한 상황.
브레송이 바라보는 시선과 동등하게 피사체의 시선이 만나는 찰나.
그림을 그릴 때처럼 자신을 사로잡는 구도를 정확히 포착한 장면.
다음 사건이 곧 이어질 거 같은 화면의 시간성.
무엇이 지나간 듯한데도 여전히 거기 무언가 있는 것 같은 기다림.
끝없는 행진과 기다림이 거기 있어.

앙리 마티스가 새를 붙잡고 있는 모습 좀 봐ㅎㅎ;
카메라를, 연필을, 키보드를 저울과 식칼처럼 들고 있지만, 사실 그것이 오기 전까지 우린 내내 백치야. 내가 그것을 잡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오는 거지. 그것을 만날 때 나도 무엇이 되는 거고. 그것이 돈이든 영감이든 선택은 자유.
순간에 대한 기다림은 자발적이며 금욕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보통 쉽게 감정에 휩싸이지. 고통, 무력감. 시체더미처럼 보이는 세계. 세상이 날 버리고 내가 세상을 죽이는 게임. 부정적이 되든 긍정적이 되든 세계가 나고 나도 세계인 거지.

난 브레송 사진을 데생이라고 말하지 않겠어. 그건 크로키였어. 가장 단 시간 안에 포착하는 스케치.
그림의 기초로 크로키를 말하지. 가볍게 생각하지만 이게 가장 힘들어. 덧칠할 시간도 없어. 한 번이면 끝나! 성공 아니면 실패!
거리로 나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그려 봐. 얼마나 빨리 사라지는지. 얼마나 무섭게 변하는지. 날 기다려주는 것은 하나도 없어! 나는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TV 화면에서, 날아가는 새들에게서 그것을 잡아보려 애썼지만 숱하게 실패했지. 그런데 브레송은 사진으로 성공한 거야! 순간적 집중이 곧 완성인 크로키를.

가만히 있는 것들을 그리는 데생은 느린 시간, 내가 가두는 시간이야. 그래서 사냥의 시기를 거친 후 그가 노년에 데생으로 돌아간 걸 거야.
크로키는 사냥의 시간이지. 그 사라짐 때문에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고 빠르고 강한가. 역설적이지 않아? 그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데도 느껴지는 견고함, 영원불멸의 느낌!


엉망진창, 말을 크로키처럼 하려니 힘들다. 작법 선생님들은 엄청 구박하겠지ㅎ 언어를 묵혀라!

이건 나중에 또 고칠께.
갑자기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어.
이따 또 봐/

 

 

 

ㅡ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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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6 13: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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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6 13: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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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6 14: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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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6 18: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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