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증오하며 입을 닫았다. 손님이 도착했다. 어머니였다. 하루 전에 반찬을 한가득 보내고서도 3리터나 되는 매실진액을 들고 있었다. 졸음에 겨운 표정으로 버스에서 내리는 그 사람은 내 어머니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보자기에 번진 얼룩이 옷에 닿지 않길 당부하며 내게 매실진액을 건넸다. 총총 걷다가 어머니는 집까지 택시비가 얼마냐고 물었다. 나는 이 정도는 짐도 아니라며 호언했고 우리는 택시를 타지 않았다. 밤이면 가난은 덜 누추해질까.

 

어머니에게 자기 전의 식사는 좋지 않다고 만류하고서 나는 밥을 먹었다. 끝내지 못한 일을 해야 한다는 핑계였지만 어쩐지 나는 말 대신 밥을 먹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당신에게 먹어보란 소리도 안하고 혼자 먹는 나를 나무라며 잠들었다. 해야 할 말도, 들을 말도 잠드는 밤. 밥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아쉬웠다. 내 말만 삼키면 되는 것인데, 내 말만 씹고 잠들지 못하는 밤. 좁은 방, 얕은 숨소리, 내 눈 앞에 당신은 분명 있는데, 당신은 어디로 가시나이까.

 

한국에서 제일 큰 시장. 말없이 존재할 수 없는 곳. 나는 빈속에 그곳에 도착했다. 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는 어머니. 어머니 앞에선 흥정이 어렵다. 내 애정을 깎기 싫어서다. 새상품이어도 상점에 걸려있는 어머니들 옷은 비슷하다. 화려하고 품이 크고 편하게 만들어진 옷. 검정 비닐봉투가 하나둘 늘어났다. 약국에서 어머니를 위해 파스를, 나를 위해 타이레놀을 사며 정수기에서 찬물을 받아 마실 때, 아차, 어머니에게 시원한 생과일주스를 사드리지 못한 내 궁색함을 상기했다. 약국을 나오자마자 이리저리 권해도, 내가 이 달 부로 실직자가 된다는 것을 안 어머니는 화장실 가는 일이 귀찮아서라고 도리질했다.

 

중국집. 맛집에 문외한인 사람이 고르는 메뉴는 대개 실패다. 몇년 만인 우리의 외식. 어머니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앞으로 언제 또 먹을지 알 수 없는 동파육을 시켰다. 입맛도 닮아버린 우리는 그저 시장기로 그 음식을 먹었다. 옆 테이블에 앉은 중국 관광객도 우리와 같은 메뉴를 시켰다.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어머니가 계산을 끝냈다. 싼 자장면이나 시킬 걸. 한국은행 앞에서 필리핀 관광객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는 그게 무슨 소용일까, 소심하게 웃었고 그늘을 찾아 걸었다. 사지 못한 것, 살 수 없는 것을 두고서 우리는 항상 돌아간다.

 

수박. 어머니가 올해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는 과일이었다. 더 큰 수박으로 바꾸자 상인이 다시 고르면 100원 추가요농담을 했다. 서로 웃을 수 있는 말, 좋은 말이었다. 집앞에 거의 도착했을 때 체리도 못 먹어봤다는 어머니 말에, 진작 얘길 했으면 같이 샀을텐데 나는 낙담했다. 가난한 땡볕에 지쳤던 우리는, 이래서야 해외여행 하겠냐며 한담했다. 어려서도 커서도 수박은 시원해야 맛이라 얼른 썰어 냉장고에 넣었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또 어머니 저녁을 거르게 만든 못난 자식. 언제나 그게 부담이었고 나는 늘 그랬다. 그렇게 우리는 한밤중에 일어나 찬 수박을 먹었다. 달고 시린 수박 같은 말들이, 증오가 없었으면 하는 말들이 잠깐,

 

다음날, 냉장고에 어머니가 두고간 천혜향 두 개를 보고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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