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따져 묻는 말투지만 이것은 고진에게 따지는 말투임;)
§ [흔적님 서재] 가라타니 고진 『근대 문학의 종언』에 대한 글 관련 단상
고진의 입장은 사르트르의 참여문학과도 비슷한 듯 보입니다. 두 사람 다 사회성을 너무 강조했달까요.
소세키의 '문학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대한 발언은 김현 평론가의 '문학의 무용성으로서의 힘과 역할' 입장과 반대 입장이네요.
"근대"라는 접두어가 붙은 문학의 종언은 틀린 말은 아니지요. 근대 문학의 시대는 사라졌죠. 그런 성질(계몽성, 사실주의 기타 등등)은 남아 있을지라도. 그러한 근대 문학의 고발성을 성격으로서 가진 채, 현대문학은 '개인(주체)'에 대한 탐구로 나아가게 되었고, 다른 꽃을 피워 나갔죠.
지금 인쇄매체 신문도 사라져 가고 있지만, 그 외 소통 창구의 다양화가 왜 문학의 종말론으로 선고받아야 하나요. 인쇄로 인해 책과 문학의 활성화가 있었으나 그런 시스템이 없었던 그 이전에는 위대한 문학이 없었느냐 아니잖습니까. 도덕성을 강조하지 않은 문학들이 무용했느냐 아니잖습니까. 즉, 문학에게 사회성의 '요구'는 할 수 있지만 '강요'하고 '단죄' 할 수는 없는 겁니다. 사회성을 요구할 때 우리는 그 사회성에 갇히는 겁니다. 요구하면 요구할수록 문학의 본질들을 밀어내는 척력이 될 겁니다.
여기서 짚어봐야 할 점은, 일본과 그리 입장이 다르지 않은 한국은? 일본의 장르소설이 요즘 왜 이렇게 인기인가,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습니까. 하여간 들여다 볼수록 문제는 복잡해지기 시작하죠.
여하간 저는 고진의 발언이, 굉장히 (일본 가부장적 권위의식이 짙게 배인) 엘리트주의적인 선언이며, 시스템과 형태가 본질을 좌우한다는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입장은, 문학이 법을 만드는 데 기여는 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법이 되어서도, 무사나 시녀가 되어서도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일본의 개인화 문화처럼, 일본의 사소설, 장르소설의 활성화는 그러한 과도한 요구의 반대급부로 파생된 건 아닌가 문득 그런 생각도 드네요.
고진이 어떤 철학적 기반으로 문학을 상정했는지 추적하진 못한 채 이러한 발언을 하는 것은 우려스럽지만, 이 포스트에서 거론된 것을 놓고 말씀드리면 고진은 '문학'과 '문학성(질)'에 대한 걸 너무 하나로 뭉텅 그려 일반화 한 거 아닌가 싶습니다. 밥이 없으니 밥그릇이 아니라는 논리.
맨 앞에 고진에 반기를 든 문학평론가의 발언을 너무 짧게 가져오셔서 논의하기 좀 그런데요. 그 문장의 맥락상으로는 문학에 대한 막연한 "믿음"이 좀 걸립니다. 그분이 '무엇이', '어떻게'에 대한 확실한 근거나 단초를 제시하셨나요?
제 요지는,
겉으로 드러난 "문학부", "사회성"의 쇠퇴 같은 외부적 탐지가 '문학성(질)'까지 착복해 문학 전체를 평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발표 당시에는 몇몇에게만 알려진 '카프카'가 왜 지금 이렇게 신화가 되었는가.
거기서 우린 문학의 힘을 볼 수 있었고, 그렇기에 문학은 예측하기 힘든 최종적 발화점일 겁니다. 불길이 나타나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죠. 불이 지금 안 난다고 해서 불 자체가 없는 게 아니듯.
그렇기에 마지막까지 단 하나라도 문학이 남는다면, 그 힘은 결코 사라질 수 없는 것일 겁니다. 인류가 모두 사라지지 않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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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주제인데, 이러다 논문 쓰겠어서 갈무리...
이 생각은 지금의 제 단상으로 여기 둡니다.
가라타니 고진 『근대 문학의 종언』을 진지하게 읽은 뒤 반드시 재고하겠습니다.
아아, 갈 길이 태산....
ㅡAgalma
※ 댓글이 너무 길어져서 내 서재에서 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