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비극론 경성대문화총서 15
테리 이글턴 지음, 이현석 옮김 / 경성대학교출판부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혁명은 폭주하는 기관차가 아니라 비상용 브레이크를 사용하는 것이라는 발터 벤야민의 현명한 격언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는 서론의 문장에서, 나는 이 책이 우리가 쉽게 비극 속에 동화되지 않도록 제동을 걸어주리라는 신뢰를 가지게 되었다.
통섭의 겸비 뿐만이 아닌 문체 때문에 더욱 흥미를 가지게 되는 비평가는 흔치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이유로 흔히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는 빌 브라이슨 기타등등에게서 그 성마르게 꼬집어대기 좋아하는 문체 때문에 나는 얼마나 펼쳤다 덮길 반복했는지(단순히 좋다, 싫다의 문제는 아니다. 왜냐하면 비슷한 성질의 김수영을 비롯한 많은 부류도 즐겨 읽으며, 블랙유머들도 재밌어 하는데, 어째서 그들에게 다가가기를 중단할까, 문득 생각해보게 된다. 이렇게 또 모호해지는 취향. 취향이 편향이 되고 다시 편향이 취향이 되는, 분류들, 분류들)
하여간 이 책에서 테리 이글턴은, 희극 측에서 보낸 자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극의 창시자, 대가들, 작가, 모든 비극 논평자들을 색출하여 담백하고 예리한 논박을 가한다.

-헤겔의 비극이론은 안티고네에 너무 의존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오이디푸스에 지나치게 의존했듯이.
-월터 카우프만은 고전 시대의 이론은 ˝철학적으로˝ 흥미로운 고통만을 비극적인 것으로 보았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발을 자르거나 눈알을 도려내는 것과 같은 철학적으로 사소한 문제들은 비극에서 제외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미래를 향하여 살 때는 비극적이지만, 과거를 회고할 때는 희극적이다.
-테오도르 아도르노가 표현하듯 ˝키에르케고르에게 비극성은 무한과 싸우는, 그래서 무한에 따라 측정되고 무한의 척도에 의해 판단되는, 유한이다.˝ 그리고 모든 훌륭한 개신교도라면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인간은 무한 앞에 서면 언제나 잘못된 존재다.
-고통의 공동체에서는 상처, 분열, 적대감이 공통 화폐로 유통된다.
-비극은 사회 질서나 법질서의 의미 지평을 보여주는, 다시 말해 사회 질서나 법질서가 침묵과 무의미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을 묘사할 수 있는, 일종의 초월적 거점 구실을 한다.
-나는 비극이 우리의 관습적 지혜에 도전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묻고 싶다. 그 도전에는 유동성과 다양성을 숭상하는 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도전이 포함되어 있는가? 아니면 자유주의적 믿음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인가?

테리 이글턴의 기지 넘치는 지견들은 시종 통쾌한 반성을 끌어낸다. 나는 왜 이 책을 이렇게 늦게 펼치게 된 거지. 올해의 비극을 잊지 않으려고.

이 땅의 이 시대를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예전엔 더러 있었던 것 같은데.
시대가 파편화된 만큼이나 시각도, 논제도, 가리키는 방향도 너무 국지적이기만 하다.
삶이라는 댓가가 너무도 무한하다. 동시에 쓰러지는 꺾어짐들...우린 그것을 보고 비극이라 말하고 덮을 게 아니라 달려가 살아남은 것이 없는지 하나하나 끝까지 살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비극`이란 단어를 섣불리 쓰지 않는 법, 제대로 쓰는 법은 단단히 배워둔 셈이다.
그럼에도, 비극은 밤바다를 비추는 등대 같다고, 그때 우리의 처지는 죽음을 무릅쓰고 헤엄쳐 나가야 하는 것인지, 기적의 구원을 기다려야 하는지, 사실은 이 모든 게 내 상상계 속 막을 수 없는 사태인지, 알 수 없는 상태라고... 지금의 나는 말한다. 이 책에 끼워두는 2014년의 내 서표인 셈이다. 이 책을 덮고, 또다시 펼쳐 읽을 땐 또 어떤 서표를 끼워둘 지 궁금하다.


ㅡAgalma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