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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스토옙스키의 증기기차 같은 문장을 재밌게 읽다가 갑자기 뭔가 두고온 물건이 생각난 듯이 시큰둥해졌다. 책을 덮고 다른 이동수단을 생각했다. 영화라는 수상스키도 생각해봤지만 아무래도 따뜻한 난로 앞에서 웅크려 있어도 되는 책이 더 낫지, 했다. 10초도 안 걸려 정반대의 문(文)을 열고 프루스트를 탔다. 그런데 책장 너머 발터 벤야민이 자꾸만 지나갔다. 내가 프루스트를 읽고 있는지 발터 벤야민을 읽고 있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아니, 내가 발터 벤야민을 원했던 건가, 의심했지만 단순한 내 착각만은 아니었다.

  페터 손디는 프루스트는 시간으로부터의 도피며 벤야민은 시간으로부터의 과거 탈환이라고 너무 매정하게 말했지만, 내가 흥미로운 건 그들이 어린이 시점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묘사하는 방식의 유사성이다. 그리고 그 문체들은 언제나 나를 미소짓게 만든다.

 

 

 

 

 

  § 지극히 주관적인 Aglama 비교 - 침대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스완네 집 쪽으로 1

 

  나는 베개의 예쁜 볼, 토실토실하고 싱싱한 우리들 어린 시절의 볼과 같은 그 볼에 나의 볼을 살짝 댄다. … (중략) … 이러한 방에서, 내가 눈을 치뜨고, 근심스레 귀를 기울이고, 콧구멍을 벌름거리고, 심장을 두근거리면서 침상에 누워 있는 동안, 나의 사념은 정확하게 방 그대로의 꼴이 되어, 그 거대한 깔대기 모양의 천장 꼭대기까지 가득 채우려고 여러 시간 동안 흩어지기도 하고, 위로 늘어나기도 하면서 몇몇 밤을 잠 못 이루어 괴로워하던 끝에, 드디어 습관이 커튼의 빛깔을 변경시키고, 괘종을 침묵시키고, 본체만체하는 인정머리 없는 거울에 연민의 정을 가르치고, 쇠풀 냄새를 깨끗이 쫓아 내진 못했을망정 그다지 코를 찌르지 않게 하고, 눈에 거슬리는 천장의 높이를 현저하게 감소시키는 것이었다. 습관! 능란한 솜씨지만 매우 느릿느릿한 이 지배인은, 우선 우리의 정신을 몇 주일 동안 임시 배치 속에 가두어 두는 것으로 시작한다.… (중략) … 몸을 마지막으로 뒤치고, 확실성을 주관하는 천사가 모든 것을 나의 주위에 정착시켜, 나를 나의 방안, 이불 밑에 누이고, 서랍 달린 옷장, 책상, 벽난로, 거리로 난 창문, 두 개의 방문 따위를 어둠 속에서 대략 제자리에 놓았던 것이다.

 

 

  발터 벤야민『베를린의 어린시절』 

 

「열」

 

  체온을 재는 것은 귀찮은 일이었다. 그런 다음에는 완전히 나 혼자 있는 것을 너무 좋아했는데, 베개를 갖고 놀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언덕과 산이 내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시기에 나는 베개로 만든 산등성이들에 익숙해져 있었다. 나는 그 산등성이들로부터 생겨 나오는 힘과 결탁했다. 그리하여 종종 그러한 산면 한가운데 동굴이 입을 떡 벌리고 있는 것처럼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러고 나서 머리 위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뻥 뚫린 저 어두운 심연에 귀를 가져다 댄 다음 안의 침묵에 대고 종종 뭔가 말을 하면 그것이 이야기가 되어 되돌아 나왔다. 가끔은 손가락을 온갖 모양으로 뒤섞어 연극의 한 장면을 연기해 보기도 했다. 또 손가락을 전부 합쳐 '백화점'을 세우기도 했다. 중지 두 개로 만든 '카운터' 뒤쪽에서는 두 개의 새끼 손가락이 손님에게-즉 나에게-열심히 대꾸하고 있었다. 하지만 점점 더 그러한 즐거움도 줄어들고, 그와 함께 손가락들의 연기를 감독할 힘도 약해져갔다. 결국 나는 호기심도 없이 손가락들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을 뿐이었는데, 그것들은 불이 집어삼키고 있는 도시의 주변 지역을 어슬렁거리는 게으르고 수상쩍은 불량배들을 흉내내고 있었다.

 

 

 

 

 

  § 지극히 주관적인 Aglama 비교 - 어머니가 있는 마법의 나라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스완네 집 쪽으로 1

 

  프랑수아즈로 말하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이해할 수 없고도 쓸데없는 구별을 바탕삼은, 오만하고도 풍성한, 세밀하고도 강경한 법전을 소유하고 있었다(그 때문에, 이 법전은 영아 학살이라는 잔인한 법규와 나란히, 염소 새끼를 그 어미 젖 속에 넣고 끓이거나, 동물의 넓적다리 힘줄을 먹는 일을 지나친 동정심으로 금하는 고대 법전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우리가 내린 어떤 분부를 막무가내로 하지 않겠다고 프랑수아즈가 갑자기 고집부리는 것으로 미루어 판단해 보건대, 이 법전은 프랑수아즈의 주위 사람들이나 마을의 하녀살이 중의 어떠한 것도 그녀에게 암시해 줄 수 없었던 사회적인 복잡성과 사교계의 세련성을 미리 알고서 꾸며진 듯싶었다. 따라서 누구나 그녀의 마음속에는 곡해하기 쉽고도 우아한 아주 오래된 프랑스의 과거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옛날 궁정 생활이 영위되던 흔적이 남아 있는 오래 된 저택을 이웃해서 화약 제조소가 있고, 테오필 성자의 기적 또는 네 아들 에몽을 나타낸 정묘한 조각의 주위에서 노동자가 일하는 공장지대 안에, 그러한 옛 프랑스의 과거가 있듯이. 이 법전의 조문에 의하면, 프랑수아즈가 나 같은 하찮은 인물을 위하여 스완 씨 면전에서 엄마를 방해하러 간다는 건 화재가 난 경우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고서는 거의 있을 수가 없는 일…(중략)…프랑수아즈는 5분 남짓 봉투를 물끄러미 보았다. 마치 용지의 조사와 서체가, 곧 내용의 성질을 알려 주고, 법전의 몇 조에 비추어 봐야 하는가를 그녀에게 가르쳐 주기라도 하듯이. 그러고 나서 프랑수아즈는, '이러한 자식을 둔 부모는 얼마나 불행할까!'라고 말하는 듯한 단념하는 모양으로 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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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자기 전에 어머니의 입맞춤을 어떻게든 받기 위해 쪽지를 전하려는데, 하녀 프랑수아즈 마음 속에 있는 오래된 프랑스 마을과 법전을 통과해야 하는 시련이라니ㅎㅎ.

 

 

  발터 벤야민『베를린의 어린시절』 

 

「반짇고리」

 

  우리는 '잠자는 미녀'를 찔러 백 년 동안 잠에 빠지게 했다는 물레 가락이 어떠한 것인지는 더이상 알지 못했다. 하지만 백설 공주의 어머니인 왕비가 눈이 내리는 날이면 창가에 앉아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어머니도 바느질감을 갖고 창가에 앉아 계시곤 했다.

 

 

 

 

   

   § 지극히 주관적인 Aglama 비교 - 아침 풍경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스완네 집 쪽으로 1

 

  그것은 시골 방이었다 … (중략) … 그 냄새는 과수원에서 찬장으로 옮겨진 그해의 모든 맛있는 젤리, 잘 익은 맛있는 젤리다. 철따라 변하지만, 세간과 하녀처럼 그 집의 특유한 냄새, 따끈한 빵의 보드라움으로 서리의 짜릿함을 조절하는 냄새, 마을의 큰 시계처럼 한가로우나 시각을 어기지 않는 꼼꼼한 냄새, 빈둥거리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질서 있는 냄새, 돈담무심하면서도 선견지명이 있는 냄새, 세탁물의 냄새, 아침 일찍 일어나는 냄새, 신앙심의 냄새, 평안을 즐기고 있는 것같이 보이지만 실은 불안의 증가밖에 가져다 주지 못하는 평안을 즐기는 냄새, 그리고 거기서 살지 않고 그대로 지나치는 이의 눈에는 詩의 큰 저수지 같아 보이나 실은 산문적인 것밖에 즐기지 못하는 냄새. 그러한 고모의 방 공기는 매우 영양이 되는, 자양분이 많은 침묵의 미묘한 구수한 냄새로 포화되어 있어서, 나는 항상 일종의 왕성한 식욕과 더불어 그곳으로 가곤 하였는데, 부활제 전 주일의 아직 쌀쌀한 이른 아침에는 더욱 그러했다.

 

 

 

  발터 벤야민『베를린의 어린시절』 

 

 「겨울날 아침」

  난로에 불이 지펴졌다. 이내 불꽃은 마치 석탄으로 가득해 옴짝달싹할 수 없는 너무나도 작은 서랍에 갇혀 있는 듯한 모습으로 내 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면 검게 그을린 따뜻한 과일, 막 여행에서 돌아온 가까운 지인처럼 여전히 친숙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변해버린 과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난로의 열이라는 어두운 나라를 순회하는 여행으로, 그로부터 사과는 이날 하루가 나를 위해 준비해준 모든 것의 향기를 뽑아냈다.

 

 

 

 

 

 

 

 

 

 

 

 

 

 

 

 

 

 

 

 

 

[발터 벤야민에 대해 ㅡ 지나간 것으로부터 희망의 불꽃] - 페터 손디

 

프루스트는 시간으로부터 완전히 도망치기 위해 과거를 찾아 나선다. 그러한 노력은 오직 과거가 현재와 일치해야만 실현될 수 있는데, 유사한 경험들만이 그것을 가져올 수 있다. 그것의 진정한 목표는 온갖 위험과 위협으로 가득 찬 미래-그것의 궁극적 위험은 죽음이다-로부터의 도피이다. 이와 반대로 벤야민이 과거에서 되찾으려고 하는 것은 다름아니라 미래이다. 그의 기억이 되찾으려고 하는 거의 모든 장소는 「베를린의 어린 시절」의 한 곳(「수달」)에서 표현하고 있는 대로 "앞으로 다가올 것의 흔적들"을 담고 있다. 따라서 그의 기억이 어린 시절의 사람들을 "미래를 예언하는 소명을 다하고 있는 모습"(「두 개의 수수께끼」)으로 바라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프루스트는 과거의 메아리를 주의 깊게 듣는다. 벤야민은 어느새 과거가 되어버린 미래의 첫 음을 듣는다. 프루스트와 달리 벤야민은 시간성에서 벗어나고픈 생각이 없다. 그는 사물들을 탈역사적인 정수精髓 속에서 보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 대신 그는 역사적 경험과 불현듯 찾아오는 깨달음을 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과거, 하지만 완성된 것이 아니라 열려 있는 과거로, 그리고 미래를 약속하는 과거로 되돌려 보내진다. 벤야민의 시제는 완료형이 아니라 온갖 역설로 가득 차 있는 미래완료형인 것이다. 미래인 동시에 과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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