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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기선이 산으로 끌어올려지고 있고 한 남자가 마주 바라보고 있는 <피츠카랄도> 포스터는 한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컷이다. 피카소 <게르니카>나 고흐 <별이 빛나는 밤>처럼 뇌리에 박히는 이미지, 이런 이미지는 예술가가 아니면 만들 수가 없다. 제임스 카메론이 그 유명한 선박사고를 가져와 <타이타닉>(1997) 같은 영화를 만들고 이후 3D 버전으로까지 재현에 용을 썼어도 결국 남은 건 무엇인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의 그 유명한 포즈? 노래방 뮤직비디오 영상이 자동으로 떠오르는 셀린 디옹의 팝송?
<피츠카랄도> 포스터 자체가 대변하듯이 베르너 헤이조크의 영화를 접할 때면 나는 '경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예술이 이 현실 너머의 그 무엇을 포착하고 보여주려는 의도이자 예술가 자신과 인간의 내재된 원초성을 끌어내고야 만다는 점에서, 베르너 헤이조크 감독은 예술가로서 혹은 모험가로서 ㅡ위치적 입지가 아닌 목적지향에서ㅡ성공했다. 그것도 영화로. 무수한 변수들을 감안해야하는 영화가 예술의 완성을 본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피츠카랄도> 스토리는 대강 이렇다. 피츠카랄도는 대단한 오페라광인데 파산 상태임에도 아마존 강의 외딴 도시에 오페라하우스를 짓고 카루소를 공연하길 꿈꾼다. 포주이자 애인인 메리의 지원으로 배를 산 피츠카랄도는 고무농장 활로를 개척하려 한다. 사업의 진척을 6개월 안에 정부에 증명해 보여야 하기 때문에 기존의 항로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그래서 피츠카랄도는 밀림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최단노선을 계획했지만 그걸 실행할 인력도, 돈도, 능력도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건 고작 축음기로 카루소를 밀림 속으로 들려주는 것이다. 그때 외부인을 배척하기로 유명한 정글 인디언 부족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인명 피해에도 불구하고 그 배가 밀림을 통과하도록 도와준다. 그런데 그 도움은 진정한 도움이 아니었다. 그들은 부족의 구원자가 하얀 신의 모습으로 온다는 신탁을 믿고 있었고, 피츠카랄도의 배는 그들의 세계를 바꿔줄 신으로 보였던 것이다. 산을 넘으면 만사형통일 줄 알았던 피츠카랄도는 인디언 부족이 죽음의 협곡으로 신을 시험하는 통과의례를 거쳐야했다. 사업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피츠카랄도는 배를 다시 팔아 남은 돈으로 카루소 공연을 선상에서 펼치기로 한다. 피츠카랄도는 변함없는 빈털털이로 자연과 오페라의 하모니를 만끽하며 끝을 맺는다.
이 영화는 베르너 헤이조크 스스로의 광기, 피츠카랄도의 탐미에 대한 광기, 인간의 식민지 개척이라는 탐욕의 광기,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미신적 광기, 즉 내·외적으로 총체적인 인간의 광기를 보여주는 오페라다. 하루살이는 처음 보는 불빛에 어떻게 뛰어들 수 있는 걸까. 생의 충동에너지, 본능.
베르너 헤이조크가 자신의 이상인 이 영화 제작을 위해 4년간 수많은 이들을 착취했듯이(인명 피해도 났다), 피츠카랄도도 자신의 예술애호를 위해 메리(여자)와 아메리카 원주민을 착취하던 것은 얼마나 필연적인가. 베르너 헤이조크가 우리에게 관람석을 마련했듯이 피츠카랄도가 돼지를 위해 붉은 의자를 비워둔 오버랩은 또 어떤가. 그 속을 파헤쳐 볼수록 거부감이 들 수 밖에 없음에도 우리에게 끝까지 전해지는 이것은 무엇인가.
비장함과 유머를 다 갖춘 영화, 그것은 오페라의 성질이기도 하다. 오페라가 없었다면 현실에서 배가 산을 넘지도, 이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재현할 수 없는 이 빈틈없음. 예술의 자리.
헌데 이 나라에선 배가 트라우마와 부정성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그 사건이 스쳐 지나갔다. 돌이킬 수 없는. 건물이나 다리, 환풍구와 달리 배라는 사물이 인간 무의식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죽음과 배가 괜히 엮여져 있는 게 아니다. 카론의 배.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현실만으로는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다는 걸 우리는 실시간으로 체감하고 있다. 최근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는 그 개개의 참혹들이 제대로 치유되지 못하고 무한히 떠돌고 있음을 방증해 보여주고 있다.
이 나라의 광기를 치유해 줄 예술이 오기를 나는, 무척 기다린다. 수 천년이 지나도 그것은 늘 현재로 당도할 것이다.
ㅡAgal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