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의 제왕
이장욱 지음 / 창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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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장욱 『고백의제왕』에서 해설자 권희철씨가 블랑쇼를 초대했고,

작가의 말에서도 나는 블랑쇼가 유령처럼 끼어드는 걸 느꼈다.

 

 


 

 

"이렇게 쓰고 싶다는 감정과 이렇게 쓰고 싶지 않다는 감정 사이를 헤매면서 이 이야기들을 썼다." (이장욱 『고백의제왕』) 

"그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거기에 더 이상 있지 않을 순간에 대해 얘기했지만, 거기에 언제나 있어서 그러한 순간에 대해 이야기할 것임을 알고 있었고, 자신들의 영원성을 그 끝으로 가져가는 것보다 더 훌륭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블랑쇼 『기다림 망각』)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자신에게 가장 가까워지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장욱 『고백의제왕』) 

"나를 듣기 위해 나를 들어서는 안 되고, 나를 들리도록 내주어야 합니다."  (블랑쇼 『기다림 망각』) 

 

"있는 것은 타자라는 관념이 아니라 당신이며, 추상적인 언어가 아니라 구체적인 말이다.

언젠가는 당신도 말도 사라지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삶은 삶일 수 있을 터이다." (이장욱 『고백의제왕』)

"말하고 있는 각각의 말 속에서 망각이 이미 말한다는 사실은, 각 단어가 망각되도록 예정되어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망각이 말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말을 스스로를 감추는 것과 조화를 이루도록 붙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진정한 말은 망각에게 휴식을 허락하며, 그 휴식 가운데 망각은 모든 진정한 말이 망각에 이르기까지 말하도록 내버려둔다. 망각이 모든 말 가운데 놓여 있기를."  (블랑쇼 『기다림 망각』)

 

 


 

§§

소설집은 내 맘에 들지 않았다. 유령들과 자유자재로 몰려다니던 시와 달리 모든 단편에서의 그는 유령들에 함몰지경이었다.

그의 시가  공중정원이었다면 그의 소설은 관광지로서의 카타콤이다.

소설을 쓰고 나서 '이렇게 쓸 수 밖에 없었다'라고 좀비처럼 나타나지 말고,

코끼리 군을 시켜 엽서로 시를 보내줄 때처럼 없는 자신을 대신해 자신을 보여주던 그때처럼 그랬으면 좋겠다.

소설을 쓰는 것 자체가 그에게 이미 그럴 수밖에 없는 길이라면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서도.

 

 

 

ㅡ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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