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5
앙드레 브르통 지음, 오생근 옮김 / 민음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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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리용 역에서 끊임없이 급격하게 덜컹거리면서, 내가 알기로는

출발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출발하지 않을 기차와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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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자는 앙드레 브르통이 당시 "사실주의 작가들의 단순한 정보 전달식의 문체와 상투적인 묘사, 결정론적인 심리 분석, 삶의 신비나 인간의 내면에 대한 평면적인 서술"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던 만큼, <나자>가 기존의 사실주의 소설과는 완전히 다른 '질서와 무질서, 유기적인 계획과 우연적 요소가 변증법적으로 결합된' 작품이라고 평하고 있다. 또한 브르통이 '의학적인 관찰'의 문체로 삶의 현장과 사건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대로 텍스트 안에서 작가의 주관적 개입을 가능한 한 줄였는데, 그것은 날 것 그대로의 객관적인 텍스트 자료를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일이 독자의 몫임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역자는 말한다.

 

 글쎄,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다 읽고 나서 불.쾌.해.졌.다.

 구체적으로 정리해 보자면, 초현실주의자들의 '무의식과 찰라의 美에 대한 집착'은 마치 잭슨 폴록식 '액션 페인팅'같은 자세로 '욕망'과 '예술'을 뒤범벅시켜 사정하듯 전위적인 힘을 만들어냈고, 그러므로 <나자>에서 앙드레 브르통은 '나자'를 '팜므 파탈' 로서 작동하게 했다. 그는 '나자' 같은 여자를 기다렸고 만났지만 스스로의 비이성의 세계만으로도 힘겨운 그는 그녀를 감당하지 못했고, 종국에 "나는 누구인가", "나자, 당신인가"라고 읊조릴 수 밖에 없는 결말을 짓게 되었다.

 34년 뒤 추가한 서문에서 그는 "인간의 삶 속에서 주관성과 객관성은 일련의 경쟁 관계에 놓였다가 결국 그 싸움에서 아주 쉽게 곤란한 상태에 빠져버리는 쪽이 주관성"이지만, 좀더 객관적이고 정확한 표현을 보여주려 했다고 밝혔으므로, 나는 신뢰 선상에서 독서에 임했다.

 그러나 그가 말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표현"이라는 서사의 줄기는 내게 "조금 솔직해 보려고" 정도로 밖에는 읽히지 않았다. 막스 에른스트의 <남자들은 그것에 관해 전혀 모를 것이다>식으로 말해 보자면, 앙드레 브르통의 <나자>는 "나는 현재 이것밖에는 알 수 없다" 정도랄까. 오히려 그가 삽화식으로 던져 놓았던 에피소드들이 작품에 풍부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위고와 쥘리에트와의 대화, 미완의 형태로 그림을 끝맺을 수 밖에 없는 화가와 그를 지켜보았던 앙드레의 회상, 들루이씨와 방 번호의 일화 같은 것들 말이다.

 

ㅡ 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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