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리벤지 포르노 : 젠더, 섹슈얼리티 그리고 동기
매튜 홀.제프 헌 지음, 조은경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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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재고의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추악함과 폭력에 대해 괴물이나 악(惡)이라고 규정짓고 더 이상 판단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에너지를 줄이려는 경제적 사고이자 고통을 차단하고픈 심정의 반영이다. 직접적인 피해자였으면서 나치의 만행을 깊이 들여다보았던 많은 유대인 지식인들은 대단히 용감한 사람들이었다. 고통스럽게 N번방을 추적한 추적단 불꽃도 용감했다. 그들이 쓴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 N번방 추적기와 우리의 이야기』도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그 책을 덮으며 나는 다소 아쉬웠다. N번방과 그것을 향유했던 인간 심리와 메커니즘을 더 파헤쳐 봐야 계속해서 벌어지는 이 추악한 일들에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매튜 홀, 제프 헌 『리벤지 포르노』를 읽고 내 답답한 심정을 조금 대변해 준 거 같아 반가웠다. 얼마 전 나는 성매매 여성을 여성 노동자로 봐야 하는지 깊이 고민했다. 성매매 여성의 인권 개선을 위해 성매매를 합법화할 게 아니라 남성성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성매매 적폐를 직시하고 함께 부수어야 할 것이라고 나는 강변했다. 남성성의 권력에 의한 성 착취와 여러 문제는 지속적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커질 문제다. 매튜 홀, 제프 헌 『리벤지 포르노』도 그것에 주목하고 있다.

 

“리벤지 포르노”는 ‘당사자의 동의 또는 인지 없이 배포되는 음란물 화상 또는 영상’이란 뜻인데, 교제 대상이 아닌 생면부지의 해커나 돈을 노리는 협박자, 오락거리로 삼는 온라인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무차별로 공유되기 때문에 ‘디지털 성폭력’ 또는 ‘불법 촬영물’로 칭해야 한다. 매튜 홀, 제프 헌은 리벤지 포르노의 최대 공유 사이트인 ‘마이엑스닷컴’을 심층 분석했다. 마이엑스닷컴은 피해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사용자 콘텐츠 지침에 따라 검열한다고 하지만, 피해자의 삭제 요구에도 최초 저작권자의 저작권을 더 우선시하는 등 관련 자료를 지우거나 확대 공유하는 것을 막지 못하게 만든다. 즉, 공유를 조장하는 모든 리벤지 포르노는 “단순한 학대가 아닌 조직적인 틀 안에서 통제되는 조직적이며 강요된 학대”이다.

 

 

“리벤지 포르노그래피의 젠더/섹스적 힘의 관계는 가정 폭력이나 파트너 폭력과 마찬가지로 폭력 그리고 친밀함으로 이루어져 있다. 복수는 어떤 사람에 대한 지식, 그들의 과거, 이전에 행사한 폭력, 강점과 약점이 연합되어 발생한다. 직접적이며 육체적이고 성적으로 친밀한 파트너 폭력이 친밀함과 폭력의 역설(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가장 친밀하고, 가장 개방적이며, 취약성을 드러낸 사람이야말로 그만큼 가깝기 때문에 상처 입고, 피해 보고, 폭력에 희생될 수 있다.)을 이용하는 것처럼, 리벤지 포르노도 그 원리가 동일하다. 상대를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이 그 힘, 즉 폭력을 행사하는 힘의 일부인 것이다.

이런 친밀함과 폭력이 주는 ‘친숙함’의 역설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이는 가정 폭력 그리고 파트너 폭력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지역적/초국가적, 공적/사적, 오프라인/온라인 사이의 복잡한 왕래로 인해 그 경계가 흐려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섹슈얼리티와 친밀성, 섹슈얼리티와 폭력 그리고 폭력과 학대 자체의 오랜 역학까지 결부된다.

온라인에서의 복수는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소통적 친밀함, 공적 친밀함, 친밀한 파트너의 학대와 폭력, 가상의 친밀한 (이전) 파트너의 학대와 폭력, 그리고 가상의 친밀한 (이전) 파트너의 학대와 폭력이 대규모 리벤지 포르노 사이트에서처럼 한데 모이고 때로는 백과사전 방식으로 조직되는 현상을 나타내게 되었다.

리벤지 포르노그래피가 존재하고 유포되는 현상은 성적 학대를 정상적인 것으로 여기게 만드는 온라인 환경, 그리고 온라인에서의 좀 더 일반적인 폭력과 학대 역시도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중요한 점은 그런 폭력과 학대를 실행하는 이들은 이런 행위를 단순하고 분명하게 합당하다 여기며, 지지하고 후원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온라인 게시판에서 남성의 목소리와 게시물이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Herring, Johnson, & DiBenedetto, 1995)이 관행이 된 것으로 증명된다. 또한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특히 직접 대면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다른 대상을 모욕하고 학대하는 남성의 힘은 그 성향이 더욱 쉽게 짙어지면서 악화된다(Lapidot-Lefler & Barak, 2012). 웹에 성차별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가 만연하고 학대를 조장하는 자료들이 대량으로 산재해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바이며 이에 대한 광범위한 목록이 작성되어 있다. 로리 캔달(Lori Kendall, 2002)의 동성들이 모이는 ‘가상 세계의 선술집’ 연구, 팔미 올슨(Parmy Olson, 2012)의 해킹 네트워크, 어나니머스 그리고 다른 연관된 네트워크에 만연한 성차별주의와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연구, 로리 페니(Laurie Penny, 2014)의 『말할 수 없는 것들Unspeakable Things』에 정리된 사이버 성차별주의 목록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네트워크화된 여성 혐오는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이런 확산과 유포 현상은 어느 정도는 진짜 또는 가상의 청중, 간단하게 표현하면 가상의 동성 집단 앞에서의 사회적 압력peer pressure, 모방, 전염, 다중 미디어 교차 현상과 결합된 ‘온라인 탈억제disinhibition 효과’(Suler, 2004)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 보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은 지나치게 드러낸 사생활과 과한 소통으로 인해 자업자득한 것이다. 게시자와 그가 올린 게시물에 참여함으로써 이 현상이 페르소나에서 페르소나로 단계적으로 악화될 수 있고 그러면서 복수와 보복이 지속적으로 촉발된다. 이런 경향이 분명 리벤지 포르노에 들어맞기는 하지만 그 발전 과정의 자세한 설명에 적용하고자 한다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일정한 종류의 사이버 폭력, 사이버 학대, 사이버 성차별주의와는 대조적으로 리벤지 포르노는 완전히 익명화된다는 점에서 좀 드문 사례다.”

 

저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도 쉽게 예견할 수 있다시피 마이엑스닷컴 게시물의 90퍼센트가 여성이 대상이고, 10퍼센트가 남성이다. 게시자들은 합당한 ‘복수’라고 치장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폭력과 학대를 인지하고 있지 못하는 게 아니다. 단순히 일탈적인 소수의 문제일까. 일반 게시판에서도 남성들은 '19금', ‘후방주의’ 등의 성적인 게시물을 게재하며 남성의 목소리와 게시물이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고 떳떳할 수 있도록 하나의 문화를 만든다. 오픈된 성 문화라는 게 과연 그런 것일까. 익명성이 커지면 ‘다른 대상을 모욕하고 학대하는 남성의 힘’은 더욱 악화된다. 성차별과 인종차별 등 온갖 혐오가 넘쳐나는 일베 사이트를 생각해 보라.

 

 

“친밀성, 복수 그리고 폭력에 초국가성이라는 또 하나의 특징이 추가되어 복수의 형태와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국경을 초월해 이루어지는 복수에는 원거리 협박, 유괴, ‘명예 폭력’, 강제 결혼과 겹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구체적으로 복수, 폭력 그리고 친밀함은 다른 나라에 흩어져 사는 가족들, 이민, 가사, 가사 사슬(예를 들어, 가난한 여성이 부유한 나라에서 가사 노동으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더 가난한 여성을 고용해 고향에서 자신의 가족을 대신 돌보게 하는 현상.–편집자 주)의 국경을 초월하는 다양한 맥락 내에서 벌어지는데, 이들은 다중적으로 연결된 취약성을 지닌다.

이렇듯 광범위한 모호성과 위반의 맥락에서 폭력-친밀함, 온라인-오프라인, 공적-사적, 지역적-초국가적인 리벤지 포르노는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가부장제하에서 기술을 이용해 (몇몇) 남성들이 젠더화된 힘을 행사하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남성성과 기술의 공동 생산 개념(예를 들어 땜질, 손재주, 기술 등이 남성성으로 젠더화되는 현상이나 간단하게 말해 남성들이 기술에 매료되는 것)은 다양한 현장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연구되었다(Mellstrom, 1995, 2004; Faulkner, 2000; Lohan & Faulkner, 2004; Balkmar, 2012). 남성, 남성성 그리고 정보통신기술과 다른 신기술이 가상 현실에서 네트워크화된 남성 그리고 남성성과 광범위하게 연결되었음을 보여주는 문헌이 급증하고 있다.”

 

 

리벤지 포르노가 겉보기에는 개인적으로 보이지만 저자들은 ‘기술 기반의 남성성을 드러내는 젠더 권력’의 한 양태라고 보고한다. 텔레그램과 가상 화폐 등을 이용했던 N번방도 성격이 다르지 않다. “마이엑스닷컴은 익명의 몇몇 미국인들이 필리핀에 있는 동료들과 공조해 운영하고 있으며, 소유주는 구체적인 리벤지 포르노 법률이 없는 네덜란드의 웹 솔루션스 B.V.로 전 세계를 대상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Steinbaugh, 2014).” 딥페이크(deepfake,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활용한 인간 이미지 합성 기술)도 디지털 성범죄로 심각해지고 있는데, 여기서도 최대 피해자는 여성이다. 이런 디지털 성범죄는 국경을 초월하는 국제법 없이는 해결하기가 몹시 어렵다. 미국에서는 몇 백 년이라는 형량이 내려지는데, 한국에서는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였던 손정우가 1년 6개월 형량을 마치고 만기 출소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속출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꺼낼 때 항상 나오는 반격이 있다. 일부(이용자 수를 생각하면 결코 일부가 아니지만) 일탈적인 남성의 범죄로 남성 일반을 폄하한다고 말이다. 여성들은 안 그러느냐고 말이다. 메갈리아가 여성 혐오를 남성에게 반사하여 적용한 ‘미러링’을 운동 전략으로 삼았던 걸 생각해 보라.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은 남성 자체를 비판하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성폭력 문제는 남성성의 문화에서 양산되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 휘말려 고통을 겪고 불가피하게 싸울 수밖에 없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성매매 합법화 문제에 대해서도 내가 가장 안타깝게 여기는 점도 그것이다. 성매매가 자신의 자유의사이고 권리라고 말하는 여성들은 근본적인 문제를 보지 않았다. 착취와 학대의 남성성 젠더 권력을 그대로 수용하겠다는 소리다. 노예가 적절한 임금을 받으니 이 생활도 괜찮다는 형국이다. 자신의 욕구를 ‘표현의 자유’로 내세우며 리벤지 포르노든 지인 능욕 사진이든 아무렇지 않게 만들고 유포하는 많은 이들도 ‘자유’의 책임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다. 타인을 고려하지 않는 자유는 방종일 뿐이다. 윤리는 고리타분한 도덕 잣대가 아니고, 우리가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도리이다. 개인의 이익이나 영달을 위해 하나하나 포기해갈 때 우리가 그토록 강조하는 인간의 의미는 점점 훼손된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몸과 정신이 그렇듯 우리 삶에서 현실과 온라인은 분리되어 않다. 현실에서도 사이버 공간에서도 윤리가 이토록 희박해지면 우리는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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