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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양극성의 문제는 사랑과 성에 대해 더 많은 검토를 요구한다. 나는 전에, 프로이트가 성욕을 사랑과 합일의 요구가 나타난 것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사랑에서 성적 본능의 표현─혹은 승화─만을 보려고 한 것은 잘못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잘못은 더 심각한 것이다. 그의 생리학적 유물론과 일치하는 바, 그는 성적 본능을 몸속에 화학적으로 생긴, 고통스럽게 해방을 갈망하는 긴장의 결과라고 본다. 성욕의 목적은 이 고통스러운 긴장을 제거하는 것이고 성적 만족은 이러한 제거에 성공하는 것이다.
유기체가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할 때 굶주림이나 갈증이 생기는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성욕이 생긴다고 하는 점까지는 이 견해가 타당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성욕은 갈망이고 성적 만족은 갈망의 해소이다. 이러한 성욕의 개념을 갖는 한, 사실상 자위自慰는 이상적인 성적 만족이리라.
매우 역설적이지만 프로이트가 무시한 것은 성욕의 심리적·생물학적 측면, 남녀의 양극성, 그리고 결합에 의해 이 양극을 연결하려는 욕망이다. 아마도 프로이트의 극단적인 가부장주의는 이처럼 기묘한 잘못을 촉진했을 것이다. 가부장주의 때문에 그는 성욕을 본질적으로 남성적이라고 가정하게 되었고, 따라서 독특한 여성의 성욕을 무시하게 되었다.
그는 <성의 이론에 대한 세 가지 공헌>에서 이 사상을 전개하면서, 리비도libido는 남성 안에 있는 리비도든 여성 안에 있는 리비도든 관계없이 원칙적으로 ‘남성적 성격’을 가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린 소년 또한 거세된 ‘남성적 성격’을 가졌다고 말한다. 또한 소년은 거세된 남성으로서 여성을 경험하고, 여성 자신은 남성 성기의 상실에 대해 여러 가지 보상을 구하고 있다는 프로이트의 이론에서도 똑같은 사상이 합리적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여성은 거세된 남성이 아니며, 여성의 성욕은 ‘남성적 성질’을 가진 것이 아니라 여성 특유의 것이다.
양성 간의 성적 매력은 부분적으로 긴장을 제거하려는 욕구에 그 동기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이성의 극과 합일하려는 욕구이다. 사실상 색정적 매력은 결코 성적 매력에 의해서만 표현되지는 않는다. ‘성적 기능’과 마찬가지로 ‘성격’에도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 있다. 남성적 성격은 침투, 지도, 활동, 훈련, 모험이라는 성질을 가진 것으로 정의된다. 여성적 성격은 생산적인 수용성受容性, 보호, 현실주의, 인내력, 어머니다움으로 정의된다. (각 개인에게는 두 성격이 혼합되어 있으나 ‘남성’ 또는 ‘여성’의 성과 관련된 것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을 뿐임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프로이트 사상은 부분적으로 19세기 정신의 영향을 받았고 부분적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몇 년 동안 유행한 정신을 통해 인기를 얻었다. 통속적 생각과 프로이트의 개념에 영향을 미친 요인들이 몇 가지 있는데, 우선 빅토리아 시대의 엄격한 관습에 대한 반발을 들 수 있다. 프로이트 이론을 결정한 두 번째 요인은 자본주의 구조에 바탕을 둔 인간 개념이 널리 퍼졌다는 것이다.
(중략)
프로이트의 사상은 19세기에 유행한 전형적인 유물론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사람들은 모든 정신적 현상의 근원을 생리학적 현상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프로이트는 사랑, 증오, 야심, 질투 등은 여러 가지 형태의 성적 본능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프로이트는 근본적 현실은 인간 존재의 전체에 있다는 것, 곧 첫째,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인간의 상황, 둘째, 사회의 특수한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생활상의 실천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러한 유형의 유물론을 넘어서는 결정적 조치는 마르크스의 ‘유물사관唯物史觀’에 의해 취해졌고 유물사관에서는 신체나 식욕, 소유욕 등 본능이 아니라 인간의 전체적 생활 과정, 곧 인간의 ‘생활상의 실천’이 인간 이해의 열쇠가 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모든 본능적 욕구에 대한 충분하고 억압되지 않은 만족은 정신적 건강과 행복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러나 명백한 임상적 사실을 보면 자신의 생활을 무한한 성적 만족에 바친 남자들─그리고 여자들─도 행복을 획득하지 못하고 대체로 신경증적 갈등이나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 모든 본능적 욕구에 대한 완전한 만족은 행복을 위한 기초가 아닐 뿐 아니라 정상적 정신조차 보증하지 못한다. 그러나 프로이트 사상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기에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자본주의 정신에 일어난 변화 때문이었다. 곧 자본주의 정신은 절약을 강조하는 데서 낭비의 강조로, 경제적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자기 억제로부터 끊임없이 확대되는 시장을 위한 바탕으로, 그리고 불안해하고 자동 기계화한 개인을 위한 주된 만족으로서의 소비로 변했다. 어떠한 욕망이든 충족을 지연하지 말라는 것이 모든 물질적 소비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성적 분야에서도 주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