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화가 히트하면 너도나도 그것을 보러 가고, 모르는 건 유튜브나 위키피디아에서 찾으면서 10억 명 이상이 인터넷에 접속하고 있는 세상이지만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전화를 걸어본 경험이 없다. 이 세계는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의 격차보다 접속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격차가 더욱 크다.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 두 개의 뚜렷이 구별되는 문명 속에서 우리는 사이버 권력의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양분되고 있다. 요즘 뜨는 직업이 유튜버인 게 단순히 시류가 아닌 거다.
시장에서 교환할 수 있는 사유재산의 관념이 산업 시대의 근간이었고, 그것이 일상생활의 조건을 규정지으며 정치 담론을 지배, 인간의 지위를 판가름하는 잣대 노릇을 했지만, 접속의 시대는 상거래, 정치 참여의 방식, 의식 등은 네트워크 속에서 자라난다. 산업 시대에서 살았던 애덤 스미스의 경제 이론은 타인을 배제하고 재산을 모은 사람이 시장에서 승리하는 세계를 제시했지만, 네트워크 경제 시대에는 상호 관계의 네트워크 안에서 움직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규모의 경제가 속도의 경제로 바뀌면서 시장의 빠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소유하더라도 단기간 쓰고 파는 소비자에 맞춰 제품 주기는 더욱 빨라졌다. 경제 생산물의 무게가 가벼워진 만큼 우리의 소비 패턴도 빠르고 일시적이다.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이 24개월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 이상으로 전자 상거래는 성장했다. 1995년에는 불과 1,430만 명이었던 전자 상거래 이용자는 1997년 말 4천백만 명이 넘었다. 첫째도 위치, 둘째도 위치, 셋째도 위치에 달렸던 장사의 성패가 ‘지리적 시장에 기반을 둔 시대’에서 ‘사이버스페이스의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시대’로 변화하며 부동산은 짐이 되거나 줄여야 할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예능 《골목식당》을 봐도 알 수 있듯 네트워크에서 인기를 끌면 지금의 소비자는 찾아간다. 요즘 현금 들고 다니는 사람이 많이 없듯이 돈도 탈물질화 추세가 진행된지 오래다. 1970년대 등장한 신용카드도 이젠 관리하기 귀찮은 물건이다. OO페이에서 어떻게 더 바뀔지 궁금할 지경이다. 비정규직도 이런 시장 변화의 수순이었다. 이제 기업에겐 물건보다 아이디어와 이미지가 성패다.
📖
“기업들이 꼽는 아웃소싱의 장점은 여러 가지이다. 첫째, 아웃소싱을 하면 기업은 돈을 버는 데 집중하고, 조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긴 하지만 수익 창출과는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는 지원 기능을 외부 지원업체에 맡길 수 있다. 둘째, 아웃소싱을 하는 기업은 해당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역량을 가진 업체로부터 저렴한 가격으로 질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셋째, 값비싼 설비를 구입하거나 기업의 수익 창출에 직결되지 않는 주변적인 업무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쓸데없는 돈을 낭비하지 않아서 좋다. 끝으로, 리스처럼 아웃소싱도 상품의 주기가 점점 짧아짐에 따라 정신없이 바뀌는 시장 상황에 기업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해준다.…… 아웃소싱 계약은 그러나 불순한 의도에서 출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아웃소싱은 경영진이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즐겨 쓰는 수단이 되었다.”
“새로운 네트워크 경제에서 사고파는 것은 아이디어와 이미지이다. 이런 아이디어와 이미지의 물리적 구현물은 경제 과정에서 점점 부차적 존재로 밀려난다. 산업 시대의 시장에서는 물건을 교환했다면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물리적 형태 안에 담겨 있는 개념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거래한다.
새로운 상행위의 저력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바로 나이키이다. 나이키는 내용으로 보아도 그렇고 추구하는 바도 그렇고 이제는 가상 회사가 되어버렸다. 일반인들은 나이키를 운동화 제조업체로 알고 있지만 사실 나이키는 정교한 마케팅 원리와 유통망을 갖춘 연구 디자인실이라고 보아야 옳다.”
“사업 방식의 체인화라는 비교적 새로운 분야와 생명과학이라는 좀더 새로운 분야는 이 점에서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전자는 사업 방식에 대한 지적 재산권을 앞세워 거대한 점포 네트워크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한다. 후자는 유전자 특허를 앞세워 농부에서 연구원과 보건 전문가까지 폭넓은 사용자를 아우르는 전속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이 두 가지 예는 새로운 네트워크 경제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역학 관계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물품이 점점 정보 집약화, 쌍방향화하고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되면서 물품의 성격도 바뀌고 있다. 물품은 제품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진화를 거듭하는 서비스로 탈바꿈한다. (중략) 서비스에 역점을 두는 추세는 제품을 혁명적으로 설계하려는 움직임에도 반영되어 있다. 이제 기업은 제품을 고정된 특징과 일회적 사용 가치를 지닌 고정된 품목이 아니라 온갖 유형의 업그레이드와 부가 가치 서비스를 실어 보낼 수 있는 ‘플랫폼’으로 여긴다. 새로운 제조업의 풍토에서 중시되는 것은 서비스와 업그레이드이다. 플랫폼은 이런 서비스를 실어 나르는 통에 불과하다. (중략) 고객이 정말로 구입하는 것은 물품에 대한 소유권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접속권이다.”
“불과 2, 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팔아서 수익을 내던 정보 기술 분야의 많은 기업들이 너도나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로 변신하고 있다. IBM, 제너럴 일렉트릭, 제록스, 휴렛팩커드 같은 기업들은 물리적 제품만 팔아서는 이렇다 할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알맹이를 담는 통 혹은 플랫폼을 제작하는 데 드는 비용이 점점 싸지고 제품의 질이 거의 엇비슷해지는 상황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서비스의 형태로 고객에게 노하우를 제공하는 것이다. (중략) 제품의 수명이 점점 짧아지고 물품과 서비스의 이동 영역이 날로 확대되는 네트워크 경제에서 부족한 것은 사람의 관심이지 물건이 아니다. 잠재 고객의 관심을 끌어모으기 위해 물건을 그냥 주는 것은 마케팅 전략으로 점점 각광을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