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희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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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의 몸, 재산, 인간관계, 추구하는 가치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의 소유욕은 본능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무소유의 숙명이 ‘한 번 사는 인생 ……’ 운운하며 우리의 욕망을 부추겼는지도 모른다. 계몽주의 시대의 정치철학자 존 로크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몸, 노동, 정신 능력을 소유한다’고 주장했지만, “재산은 고정 불변의 개념이 아니라 통용되는 특정한 시대와 장소의 기호와 변덕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유동적 개념”이 되었고, 소유’보다 더 넓은 ‘접속’의 세계로 넘어오면서 우리의 존재 양상은 다른 국면을 맞게 되었다. “재산을 시장에서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능력은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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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의 역할이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 이것이 사회적으로 미치는 파급 효과는 엄청나게 크다. 근대 이후로 재산과 시장은 줄곧 동의어로 쓰였다. 실제로 자본주의 경제는 재산을 시장에서 교환한다는 발상 위에서 성립한 것이다. ‘시장’이라는 단어가 영어에 처음 등장한 것은 12세기였다. 시장은 판매자와 구매자가 상품이나 가축을 교환할 수 있도록 마련된 물리적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18세기 말이 되면 시장이라는 용어는 공간적 지시 대상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서 물건을 사고파는 추상적 과정을 묘사하는 데 쓰이기 시작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는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과정에 너무나 깊이 얽혀 있어, 이제 우리는 인간사를 시장이 아닌 다른 틀로 이해한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시장은 우리의 생활 구석구석으로 파고들어 오는 힘이다. 우리 모두는 시장의 분위기에 엄청난 영향을 받는다. 시장이 잘 굴러가면 우리의 생활도 잘 굴러가는 것 같다. 시장이 건강하면 우리 마음도 밝아진다. 시장이 맥을 못 추면 우리는 상심한다. 시장은 우리 삶의 안내자이며 상담자이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한다.”

“새로운 경제에서는 물건이 아니라 개념, 아이디어, 이미지가 실리를 가져온다. 부는 이제 물적 자본에서 나오지 않는다. 부는 인간의 상상력과 창조력에서 나온다. 거듭 강조하지만 지적 자본은 여간해서는 교환되지 않는다. 공급자는 지적 자본을 단단히 거머쥔 채 제한적으로 임대하거나 사용권을 빌려준다.

(중략)

예전에는 판매자와 구매자가 시장의 주역이었지만 이제는 공급자와 사용자가 주역이다.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시장을 통한 거래는 줄어들고 전략적 제휴, 외부 자원의 공유, 이익 공유가 활성화된다. 기업들은 이제 서로에게 물건을 파는 것보다는 집합 자원을 공유하여 광범위한 공급자–사용자 네트워크를 통한 공동 경영을 선호한다.

경제 활동의 기본 구도가 달라짐에 따라 경제를 주도하는 기업의 성격도 당연히 달라진다. 시장이 중심이었던 시절에는 물적 자본을 많이 가진 기업이 판매자와 소비자의 상품 거래에서 주도권을 행사했다. 네트워크의 시대에는 가치 있는 지적 자본을 많이 보유한 기업이 장땡이다.”

“사유 재산이 한 인간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뜻했고 또한 ‘인간을 재는 잣대’로 오랫동안 간주되었던 세상에서, 소유의 의미가 퇴색하게 되면 인간 본성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이것이 더 중요한 문제인지도 모른다. 접속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는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른 인간형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노동을 상품화하는 것이 산업 시대의 특징이었다면, 접속의 시대에는 문화 생산이 중요하며 놀이의 상품화가 특징이다. “제의, 예술, 축제, 사회운동, 영성 수련과 공동체 활동, 시민적 참여를 개인적 오락으로 유료화하는” 경향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 여러 플랫폼에서 우리가 매일 즐거워하며 올리는 수많은 인증숏과 후기, 공유 피드를 생각해보라. 상업 영역이 서비스 중심에서 현재는 체험 중심으로 변화했다. 2050년이 되면 성인 인구의 불과 5퍼센트만으로도 기존의 산업이 운영 관리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우리의 삶은 더욱 상품화되고 공리의 영리의 경계선은 점점 허물어진 채 우리 대다수는 그저 소비자로 살아갈 것이다. 리프킨이 가장 주목하는 문제점은 ‘자본의 문화 잠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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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문화는 줄곧 시장보다 우위에 있었다. 사람들은 공동체를 만들고 정교한 사회적 규약을 만들었다. 공유할 수 있는 의미와 가치를 재생산하고 사회적 자본의 형태로 사회적 신뢰를 구축했다. 사회적 신뢰와 사회적 교환이 어느 정도 발전한 다음에야 공동체는 비로소 상업과 교역에 뛰어들었다. 요컨대 상업 영역은 언제나 문화 영역에서 파생되었다. 상업 영역은 언제나 문화 영역에 의존했다. 문화는 합의된 행동 기준을 낳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 합의된 행동의 기준이 신뢰할 만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런 믿을 만한 환경 속에서 상업과 교역은 발생한다. 그런데 상업 영역이 문화 영역을 삼키기 시작하면-우리는 2부에서 이것을 자세히 분석할 것이다-상업적 관계를 낳는 사회적 토대 자체가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문화 영역과 상업 영역의 적절한 균형을 회복하는 것은 어쩌면 접속의 시대가 해결해야 할 가장 어려운 과제인지도 모른다. 산업 시대에 자연 자원이 인간의 남용으로 고갈되어 버릴 위기를 맞이했던 것처럼, 문화 자원도 과도한 영리 추구로 인해 언제 고갈되어 버릴지 모른다. 상품화된 문화 체험에 점점 무게 중심이 놓이는 지구 네트워크 경제에서 문명의 생명수라 할 수 있는 풍요로운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고 끌어올릴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방법을 찾는 것이 새로운 세기의 으뜸가는 정치적 숙제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다른 산업에서 연예 산업이 조직되는 방식을 본뜨려고 애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음반업, 예술계, 텔레비전, 라디오를 아우르는 문화 산업은 물리적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니라 경험을 상품화하고 포장하고 마케팅한다. 문화 산업이 재화로 쌓아두고 거래하는 것은, 현실을 모방한 세계와 의식을 고양시키는 세계로 잠시 접속할 수 있는 권리이다. 물건과 서비스를 상품화하던 것에서 경험 자체를 상품화하는 단계로 변모하는 글로벌 경제에서 이것은 더없이 이상적인 모델이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공급자와 사용자의 관계는 문화 기업이 그동안 관객과 맺어온 관계를 점점 닮아간다. 우리는 시간과 정신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가 상품으로 판매되는 지적 자본주의의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주고받는 물리적 상품의 제조와 거래(소유)는 특히 지리적 공간에 기반을 둔 시장에서는 여전히 우리 일상 현실의 일부로 존속하겠지만 차츰 경제 활동에서 주변적 지위로 밀려날 것이다. 경제 활동의 중심부에서는 인간의 경험이 판매되고 구입될 것이다. 소비자 개개인의 일상 경험이 무대의 순간, 극적 사건, 개인적 변신의 끝없는 연속으로 상품화되고 탈바꿈되는 새로운 시대의 선두 주자가 바로 영화 산업이다. 경제의 모든 영역이 지리적 시장에서 사이버스페이스로 이동하고 물건과 서비스의 판매에서 모든 인간 경험 영역의 상품화로 옮겨가기 시작하면 할리우드의 조직 모델은 상업 행위를 조직하는 전범으로 여겨질 것이다.”


 어떤 영화가 히트하면 너도나도 그것을 보러 가고, 모르는 건 유튜브나 위키피디아에서 찾으면서 10억 명 이상이 인터넷에 접속하고 있는 세상이지만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전화를 걸어본 경험이 없다. 이 세계는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의 격차보다 접속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격차가 더욱 크다.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 두 개의 뚜렷이 구별되는 문명 속에서 우리는 사이버 권력의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양분되고 있다. 요즘 뜨는 직업이 유튜버인 게 단순히 시류가 아닌 거다.

시장에서 교환할 수 있는 사유재산의 관념이 산업 시대의 근간이었고, 그것이 일상생활의 조건을 규정지으며 정치 담론을 지배, 인간의 지위를 판가름하는 잣대 노릇을 했지만, 접속의 시대는 상거래, 정치 참여의 방식, 의식 등은 네트워크 속에서 자라난다. 산업 시대에서 살았던 애덤 스미스의 경제 이론은 타인을 배제하고 재산을 모은 사람이 시장에서 승리하는 세계를 제시했지만, 네트워크 경제 시대에는 상호 관계의 네트워크 안에서 움직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규모의 경제가 속도의 경제로 바뀌면서 시장의 빠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소유하더라도 단기간 쓰고 파는 소비자에 맞춰 제품 주기는 더욱 빨라졌다. 경제 생산물의 무게가 가벼워진 만큼 우리의 소비 패턴도 빠르고 일시적이다.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이 24개월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 이상으로 전자 상거래는 성장했다. 1995년에는 불과 1,430만 명이었던 전자 상거래 이용자는 1997년 말 4천백만 명이 넘었다. 첫째도 위치, 둘째도 위치, 셋째도 위치에 달렸던 장사의 성패가 ‘지리적 시장에 기반을 둔 시대’에서 ‘사이버스페이스의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시대’로 변화하며 부동산은 짐이 되거나 줄여야 할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예능 《골목식당》을 봐도 알 수 있듯 네트워크에서 인기를 끌면 지금의 소비자는 찾아간다. 요즘 현금 들고 다니는 사람이 많이 없듯이 돈도 탈물질화 추세가 진행된지 오래다. 1970년대 등장한 신용카드도 이젠 관리하기 귀찮은 물건이다. OO페이에서 어떻게 더 바뀔지 궁금할 지경이다. 비정규직도 이런 시장 변화의 수순이었다. 이제 기업에겐 물건보다 아이디어와 이미지가 성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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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이 꼽는 아웃소싱의 장점은 여러 가지이다. 첫째, 아웃소싱을 하면 기업은 돈을 버는 데 집중하고, 조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긴 하지만 수익 창출과는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는 지원 기능을 외부 지원업체에 맡길 수 있다. 둘째, 아웃소싱을 하는 기업은 해당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역량을 가진 업체로부터 저렴한 가격으로 질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셋째, 값비싼 설비를 구입하거나 기업의 수익 창출에 직결되지 않는 주변적인 업무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쓸데없는 돈을 낭비하지 않아서 좋다. 끝으로, 리스처럼 아웃소싱도 상품의 주기가 점점 짧아짐에 따라 정신없이 바뀌는 시장 상황에 기업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해준다.…… 아웃소싱 계약은 그러나 불순한 의도에서 출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아웃소싱은 경영진이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즐겨 쓰는 수단이 되었다.”

“새로운 네트워크 경제에서 사고파는 것은 아이디어와 이미지이다. 이런 아이디어와 이미지의 물리적 구현물은 경제 과정에서 점점 부차적 존재로 밀려난다. 산업 시대의 시장에서는 물건을 교환했다면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물리적 형태 안에 담겨 있는 개념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거래한다.

새로운 상행위의 저력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바로 나이키이다. 나이키는 내용으로 보아도 그렇고 추구하는 바도 그렇고 이제는 가상 회사가 되어버렸다. 일반인들은 나이키를 운동화 제조업체로 알고 있지만 사실 나이키는 정교한 마케팅 원리와 유통망을 갖춘 연구 디자인실이라고 보아야 옳다.”

“사업 방식의 체인화라는 비교적 새로운 분야와 생명과학이라는 좀더 새로운 분야는 이 점에서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전자는 사업 방식에 대한 지적 재산권을 앞세워 거대한 점포 네트워크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한다. 후자는 유전자 특허를 앞세워 농부에서 연구원과 보건 전문가까지 폭넓은 사용자를 아우르는 전속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이 두 가지 예는 새로운 네트워크 경제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역학 관계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물품이 점점 정보 집약화, 쌍방향화하고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되면서 물품의 성격도 바뀌고 있다. 물품은 제품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진화를 거듭하는 서비스로 탈바꿈한다. (중략) 서비스에 역점을 두는 추세는 제품을 혁명적으로 설계하려는 움직임에도 반영되어 있다. 이제 기업은 제품을 고정된 특징과 일회적 사용 가치를 지닌 고정된 품목이 아니라 온갖 유형의 업그레이드와 부가 가치 서비스를 실어 보낼 수 있는 ‘플랫폼’으로 여긴다. 새로운 제조업의 풍토에서 중시되는 것은 서비스와 업그레이드이다. 플랫폼은 이런 서비스를 실어 나르는 통에 불과하다. (중략) 고객이 정말로 구입하는 것은 물품에 대한 소유권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접속권이다.”

“불과 2, 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팔아서 수익을 내던 정보 기술 분야의 많은 기업들이 너도나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로 변신하고 있다. IBM, 제너럴 일렉트릭, 제록스, 휴렛팩커드 같은 기업들은 물리적 제품만 팔아서는 이렇다 할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알맹이를 담는 통 혹은 플랫폼을 제작하는 데 드는 비용이 점점 싸지고 제품의 질이 거의 엇비슷해지는 상황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서비스의 형태로 고객에게 노하우를 제공하는 것이다. (중략) 제품의 수명이 점점 짧아지고 물품과 서비스의 이동 영역이 날로 확대되는 네트워크 경제에서 부족한 것은 사람의 관심이지 물건이 아니다. 잠재 고객의 관심을 끌어모으기 위해 물건을 그냥 주는 것은 마케팅 전략으로 점점 각광을 받을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여러 형태의 사회조직에 의존하지 않고 대부분 시장에 의존한다. 의식주 해결은 물론 놀이, 감정의 해소, 타인의 공감과 관심도 사이버 네트워크에서 해결하려고 한다. 그 플랫폼은 상업적 네트워크이다. 리프킨을 비롯 많은 미래학자들은 이 현상이 인간의 ‘최후의 심판’까지는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고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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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벨을 비롯한 많은 미래학자들이 예상하지 못한 두 가지 변화 때문에 최후의 심판은 가까운 시일 안에는 오지 않을 것이다. 첫째, 사유 재산 체제의 보루였던 물품 자체가 순수한 서비스로 변형되면서 소유가 사회생활의 기본을 정의하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둘째, 서비스 자체의 성격도 바뀌고 있다. 전통적으로 서비스는 물품과 비슷한 취급을 받았다. 독립된 단위의 거래로 계약되었다. 하나하나의 서비스는 독립된 시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자 상거래와 정교한 데이터 피드백 시스템이 등장하면서 서비스는 서버와 클라이언트 사이의 장기적이고 다면적인 관계로 재창조되고 있다.”



 접속의 시대에서는 ‘근면’이 아니라 ‘개인성과 창조’가 부각되며, 일은 즐겁게 버는 ‘유희’여야 한다. 최근 밀레니얼 세대 열풍으로 그들의 문화적 특징이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지만 제러미 리프킨의 이 책을 보면 그것은 접속의 시대가 낳은 특징에 불과하다. 공유하는 문화도 미디어 시장으로 인정사정 없이 끌려 들어가 상업화되는 걸 그들은 현재 우려하고 있는가. 기업은 재능 있는 젊은 작가, 화가, 지식인을 영입해 상품을 문화적 기호로 포장하는 임무를 맡기며 소비자와 지속적 관계를 도모하고 있다. 체험 경제의 선봉장인 관광 산업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산업으로 떠올랐고 우리는 그것을 누리기 바쁘다. 인류의 공동 자산인 유전자도 기업이 특허로 사유화하며 마음대로 유전자 조작을 하는 것에도 속수무책이고, 함께 누리던 공공 재산이 줄어가는 환경 속에서 우리는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권리를 얻으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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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크는 자아가 개인의 사유 재산이나 마찬가지라고 우리에게 가르쳤지만, 인간 행동을 연출적 관점에서 파악하면 이제 자아는 더 이상 개인의 사유 재산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어빙 고프먼이 말한 대로 자아는 ‘그가 공유하기를 갈망하는 사람에 의해 [한 인물에게] 부여된 감각’에 가까워진다.”

“기술 혁명이 막 일어나던 무렵이었던 1970년대 중반에 이런 지적을 했다는 것은 그의 남다른 통찰력을 말해 준다. 우리는 그 혁명이 전 세계적으로 미친 여파를 지금에야 겨우 감지하고 있다.

맥퍼슨은 우리의 머릿속에 지금 들어 있는 소유 개념은 대부분 17세기와 18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분석을 시작한다. 맥퍼슨에 따르면 근대적 소유 개념의 첫 번째 특징은 타인을 배제하는 권리다. 우리는 이 지엄한 소유의 원칙을 너무나 맹신한 나머지 더 먼 옛날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어떤 것의 혜택을 보거나 어떤 것을 이용하는 데서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도 엄연히 소유 개념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망각했다고 맥퍼슨은 지적한다.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사회는 공공 소유라는 소유의 두 번째 범주를 만들어 이 안에 공원, 도시 거리, 공유지, 수로를 집어넣었다. 개인은 누구든지 이런 공공 재산을 사용하거나 향유할 수 있는 데서 배제당하지 않을 법적 권리를 보장받았다. 사유 재산과 공공 재산이라는 소유의 두 형태는 사회의 모든 성원이 개별적으로 누리는 재산권의 일부분이었다. 사유 재산은 타인을 배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했고, 공유 재산은 타인으로부터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했다.

그러나 근대로 넘어오면서 공유 재산은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고 맥퍼슨은 말한다. 공공재라는 관념은 정부에 남아 있고 공유 재산이 무엇이라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도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지만 모든 개인에게 포함의 권리와 배제의 권리를 동시에 보장하는 이중 소유 체제가 엄연히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제러미 리프킨은 기계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현대문명을 비판하고 에너지의 낭비가 가져올 재앙을 경고한 『엔트로피』(1980)로 전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노동의 종말』(1995)은 정보화 사회로 일자리를 잃게 될 현대인에게 경고를 보냈다면 『소유의 종말』(2000)은 그러한 접속이 우리의 일상과 인류 문화를 휩쓸고 있는 실상에 대한 경고다. 이 책을 쓰는 데 꼬박 6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350권의 책과 1천 여편의 논문, 5만장의 색인 카드와 약 2천 개의 주석을 동원한 역량을 독서하는 내내 실감할 수 있었다. 그의 세계 동향 분석은 어떤 분석가보다 포괄적이다. ‘지리적 공간에 뿌리를 둔 문화적 다양성을 지켜나가는 것만이 인간의 문명과 건강한 공존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라는 한 문장으로 이 책을 설명하기엔 방대한 정보가 있다. 리뷰로 많은 걸 전달하려 했지만 직접 읽어야 이 책의 저력을 실감할 것이다.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답답하고 적절한 해석을 원하는 독자라면 일독해야 할 책이다. 코로나19를 겪는 지금도 그렇지만 점점 더 네트워크 접속의 문화가 정교해질 걸로 예상되는데 우리는 또 어떻게 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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