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의 상상 동물 이야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남진희 옮김 / 민음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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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말하면 이 책은 '상상동물' 이야기로 통칭할 수 없다. 천사와 악마, 요정, 거울 같은 사물 등도 나오기 때문에 인간의 '상상이 만든' 이야기라거나 『El Libro de los seres imaginarios』 원제 대로 '상상 존재들'이 합당하다.

이 책에 나오는 '상상 존재'에 대한 평은 대체로 이렇다.

'아무도 그것을 본 사람이 없고, 실체를 보려고 하면 사라지거나 본 자가 죽기 때문이다.'

"그리핀은 사자를 여덟 마리 합쳐 놓은 것보다 크고 독수리를 100마리 합쳐 놓은 것보다 힘이 세다"(존 맨더빌 경 『동방 여행기』 85장)라는 표현처럼 상상 존재의 압도적 규모과 능력까지 고려하면 이것은 신에 대한 설명과 비슷하다. 세비야의 성 이시도로스 『어원학』은 예수를 "예수는 사자이시다, 왜냐하면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독수리이시다. 왜냐하면 부활해서 하늘에 오르셨기 때문이다."라고 표현한 것처럼 말이다. 유대교 신비주의 저서 「에제키엘」에서는 "복음서를 쓴 네 명의 사도가, 마태는 때때로 수염이 난 인간의 모습으로, 마가는 사자의 모습으로, 누가는 송아지의 모습으로, 요한은 독수리에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했듯이 여러 문화에서 가져온 상상 존재 이야기는 상당히 종교적이며 신화적이다. 종교적 관점에서 애니미즘(무생물적 자연 현상과 동·식물에 영혼이 존재한다고 믿는 세계관 또는 원시 신앙)에서 다신교, 일신교로 발전했던 것과 겹치는 게 많다. 상상 존재의 이야기들이 왜 대부분 경고의 의미를 지니는가도 유추할 수 있다. 공자와 엮이는 상상 동물이 꽤 되니 아주 옛날 얘기..(아니)..인가.

대부분 '동물'이라는 점에서 상상 동물들은 지상의 계통발생 특징을 하나씩은 다 갖고 있다. 호랑이, 사자, 코끼리, 코뿔소, 사슴, 말, 개, 황소, 돼지, 고양이, 원숭이, 뱀, 새, 거북, 물고기 등 실제 생물의 유사성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다. 꿈의 해석처럼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로 전달하자면 어쩔 수 없는 과정이다. 세계의 모습과 우리의 상상으로 조합된 해석은 기묘하고 우습고 재치 있다. 동물들은 말을 하면 사람들이 일을 시킬까 봐 침묵하며, 아프리카 부시먼 족에 의하면 동물들을 증오하던 "호치간"이 동물에게서 말하는 능력을 빼앗았다는 이야기 이면엔 인간의 욕망과 착취, 소통 욕구 등을 읽을 수 있다.

과거 '지진'에 대한 동서양의 해석은 지금으로서는 우화나 다름없다. 탈레스는 지구가 선박처럼 물 위를 떠다녀 그 물의 소용돌이로 지진이 일어난다고 설명했다면, 일본은 지구 아래 메기같이 생긴 '가미' 신이 움직이면 땅이 흔들리므로 가미 머리에 칼을 깊숙이 꽂아야 한다는 전승이 있다. 18세기 한 봉건 영주가 칼끝을 보려고 땅을 팠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일본 열도를 등에 진 지진 물고기 때문이라는 전설도 재밌다. 요괴 얘기가 많기도 하지만 일본의 상상 동물은 참 유니크한 듯.

달나라 토끼는 중국에서 유래되었는데, 부처의 전생에 그의 배를 채워주고자 토끼가 자기 몸을 바친 걸 고마워해 부처가 토끼의 영혼을 달나라로 보내준 것이라고ㅎㅎ 한국의 《토끼전》이 달리 생각되려 한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호모 사피엔스가 딱 좋아할 만한 소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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