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잘 바뀌지 않는 건 뇌의 구조 때문이다]
「뇌의 구조와 트라우마」
“삼부 뇌 가설은 미국의 뇌 과학자인 폴 매클레인Paul McLean이 만들었으며 트라우마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가설에 의하면 우리 뇌는 각각의 부분이 독립적으로 기능하고 서로 조율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달한다. 이것은 우리 뇌의 각 부위가 다른 부위와는 상관없이 스스로 반응하는 능력이 있다는 뜻인데 우리의 삶과 어린 시절의 상처, 트라우마의 결과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해부학상 뇌는 뇌간, 중뇌, 소뇌, 변연계, 신피질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구조는 수억 년에 걸친 진화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데, 뇌간은 약 5억 살로 가장 오래됐고 신피질과 대뇌피질이 10만 살로 가장 어린 부위다. 대뇌는 우반구와 좌반구로 나뉘고 두꺼운 신경 섬유 다발인 뇌들보로 연결되어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정신적인 건강과 우리의 성격에 중요한 모든 과정은 눈 바로 뒤에 있는 아래 전두엽에서 관장한다고 말할 수 있다.
미국 신경 심리학자인 대니얼 시걸Daniel Siegel4 박사는 주먹을 쥐면서 엄지를 손으로 감싸면 뇌의 모양을 가장 간단하게 상상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했다(엄밀히 말하면 양손 주먹을 엄지가 맞대게 해야 좌반구와 우반구를 잘 볼 수 있다). 손바닥 안쪽을 자신을 향해 돌리면 뇌의 앞부분 앞부분을 볼 수 있다. 손목과 손바닥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모든 본능과 신체 반응을 조정하는 뇌간을 보여준다. 손가락은 대뇌피질인 셈이다. 손톱과 손가락 첫 번째 마디는 전두엽 피질이 되는 것이다. 그 밑에 있는 엄지는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를 나타낸다.
전두엽 피질에 대해서는 15년 전만 해도 거의 알려진 것이 없었는데 오늘날에는 성격을 형성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전두엽이 잘 발달할수록 방해 요인들에서 자유롭다. 좌반구와 우반구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들과 유대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좌뇌와 우뇌가 얼마나 다른 기능을 하는지는 뇌 연구가 질 볼트 테일러Jill Bolte Taylor 박사의 영상에서 잘 볼 수 있다. 테일러 박사는 좌뇌 부위에 뇌졸중 증상을 겪은 적이 있다.”
「조기 경보 시스템, 뇌간」“뇌간은 모든 기본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심장 박동과 호흡을 조절하고 수면과 깨는 것을 담당한다. 그 밖에 투쟁, 도피, 경직과 같은 우리의 생존 반사를 담당한다. 뉴로셉션이라는 위험을 감지하는 부분을 이용해서 뇌간은 변연계와 함께 주변을 감지하고 익숙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외부 자극을 스캔해서 위험이 감지되면 생존 반응을 일으킨다. 트라우마와 어린 시절의 상처에 대해 이해하려면 뇌간의 작동 방식을 알아야 한다. 뉴로셉션이란 뇌가 우리의 무의식 안에서 계속 우리 주위를 스캔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낯선 집에서 잠을 잘 때 이상한 소리에 갑자기 깰 때가 있는데, 이는 뉴로셉션이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활동하면서 우리를 보호해주는 신호다.
실제적인 위험이든 상상 속 위험이든 뇌간은 작동이 가능하다. 전혀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고 해도 생존 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미미하지만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키는 암시가 있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도 생존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특히 다중 미주 신경계의 일부인 등쪽 미주 신경이 조정하는 사태 반사는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반응이다.”
「감정의 본부, 변연계」“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는 뇌간을 마치 옷단(라틴어로 림부스)처럼 감싸고 있는데 약 2억 년 전 파충류에서 포유류로 넘어갈 때 발달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이런 진화적인 단계를 통해 유대감, 감정, 기억이 생겨났다. 시상하부도 변연계에 속하는데 시상하부는 호르몬 조절을 담당한다. 호르몬 시스템은 자율신경계와 함께 우리의 동기를 조정할 뿐만 아니라 유대감, 욕망 등을 담당하며 몸과 뇌를 연결해준다. 변연계의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은 편도체와 해마다. 편도체는 불안과 감정 조절에 매우 중요하다. 편도체는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와 밀접하게 작동한다. 만약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이 시스템에 부담을 줘서 장애를 불러일으키고 고통을 느끼게 된다.”
「통합센터, 신피질」
“신피질은 가장 최근에 진화한 부위로 약 10만 년 전에 생겨났다. 이곳에서 인지, 집중, 논리, 계획과 같은 모든 복잡한 일을 관장한다. 이 뇌 부위는 출생 때 가장 덜 발달되어 있는데 이는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뜻이다. 신피질을 살펴보면 주름이 가장 눈에 띈다. 이런 주름을 통해 엄청나게 많은 뉴런 신경 회로를 수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주름 덕에 면적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앞에서 주먹 쥔 손 모양으로 뇌의 모양을 짐작했던 것을 다시 떠올려보면 신피질의 뒷부분(손등 쪽)은 세상을 인지하고 앞부분(손가락 부분)은 추상적인 부분을 담당한다고 대략 말할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사회생활을 하는 포유동물의 경우 안와 전두 피질(이마와 안구 뒤쪽)이 더 강하게 발달했다고 한다. 전두 피질에는 동작성 계획에 관여하는 전운동 피질도 있다. 흥미롭게도 공감의 중요한 구성 성분으로 통하는 이른바 거울 뉴런도 여기서 발견되었다.
우리 뇌에서 가장 많이 발달한 부분은 이마 바로 뒤에 있다(주먹 쥔 손으로 보면 엄지손톱 아래에 있는 첫 번째 손가락 마디다). 여기서 심리적인 건강을 위해 인간의 기본적인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 기능들이 대부분 통합된다. 이 부분들이 오래된 뇌 부위이고 서로 아주 가까이 자리 잡고 있으며 뇌, 몸, 감정, 이성을 통합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부분은 우리가 상상 속에서 시간 여행을 떠나거나 자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든다. 이 부분을 통해서 우리는 도덕적인 사고를 하고 우리의 생각을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다.”
「전전두엽의 기능, 작업 기억력」
“신피질의 측면을 배외측 전전두엽이라고 하는데 이 부위는 정보를 임시로 저장하는 기능인 ‘작업 기억력’을 담당한다. 가령 우리가 글을 읽을 때 문장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업 기억력이 필요하다. 문장의 끝쯤에서 문장의 시작을 기억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작업 기억력은 자기 조절과 순간 집중력에 달려 있다. 자기 조절을 잘하지 못하면 뭔가에 집중하지 못하고 집중하지 못하면 기억력은 떨어진다. 전전두엽 부분은 뇌의 깊은 부위에서 전하는 정보를 평가해서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의 동기와 행동을 예측해서 그 사람과 사회적인 관계를 맺게 해준다. 이것이 바로 마음 이론Theory of Mind이다.
이런 기능은 우리 자신을 인지할 뿐만 아니라 타인을 관찰하고 사회생활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특히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비언어적인 힌트를 알아채는 기능이다. 심리, 인간관계 전문가들은 안정적인 애착 관계가 이 기능을 발달시키고 높은 수준의 통합을 이뤄내는 데 큰 영향을 준다고 이구동성으로 주장하고 있다. 이 뇌 부위가 잘 발달할수록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몸을 느끼고 그와 동시에 주변 사람들을 마음을 잘 느낄 수 있다.”
「뇌에게 생각할 시간 주기」
“우리가 어떤 상황에 대처할 때 뇌는 크게 두 가지 결정 과정을 거치는데 첫 번째는 신피질에서 정보를 인지하고 해석하는 ‘더 높은’ 의사 결정 과정이고 두 번째는 뇌간에서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더 낮은’ 의사 결정 과정이다. 후자의 경우 짧고 빠르기 때문에 인간의 생존에 몹시 중요하다. 뇌간과 변연계의 조정을 받는 이 과정은 몸이 위험을 느꼈을 때 재빠르게 지휘권을 행사한다. 그렇게 되면 ‘더 높은’ 의사 결정을 하는 뇌 부위를 덮어버린다. 이런 상태에서는 새로운 행동 방식을 몸에 익힐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체로 이완된 상태에서만 새로운 행동 패턴을 익힐 수 있다. 심한 스트레스 상태에서는 사실상 학습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가 아니라 기억에 반응한다」
“우리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소위 절차적 기억이다. 여기에 우리가 아주 일찍이 무의식적으로 배운 모든 행동 방식이 저장되어 있다. 우리는 머릿속에 이미 저장되어 있는 수많은 기억으로 현재의 사건에 반응한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현재가 아니라 기억에 반응한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밥을 먹거나 길을 걷거나 일을 할 때에도 우리는 절차적 기억에 따른다. 하지만 이 안에는 어린 시절에 배운 행동 패턴들이 다 녹아들어 있다. 행동 패턴은 우리가 말을 배우기 전에 경험한 것들 혹은 어렸을 때 겪은 인상적인 경험 등으로 만들어진다. 특히 어린 시절의 상호작용은 우리 마음속에 내면화되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행동 기준을 정해준다. 우리 모두는 무의식적으로 이런 행동 패턴으로 살아간다. 문제는 이런 패턴 중 잘못된 것들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스스로는 현실에 대응하는 내면의 적절한 반응이라고 여길 뿐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눈썹을 치켜들면서 나에게 강하게 모욕감을 주었다고 치자. 그러면 친한 사람이 눈썹을 치켜들면서 재미있는 농담을 던져도 나는 화들짝 놀라서 거부 반응을 일으킬 것이다. 남들이 그런 나에게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여도 나는 부당한 현실에 정당하게 대응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 몸을 제대로 관찰하기]
「몸이 없으면 우리는 죽는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던 데카르트의 명제가 약 3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의 세계관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서 뭔가 이성적으로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관념을 만들어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식이 해결책이라고 믿는다. 지적인 인지 능력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식은 긴 변화의 첫 번째 발걸음일 뿐이다. 머리로 뭔가를 이해했다고 해서 행동이 갑자기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몸 그 자체이다. 몸을 통해 느끼고 파악하고 바꿔나가야 한다.
모든 형태의 트라우마는 항상 자기 자신과 몸을 분리하며, 다른 사람들과도 분리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생명력 있는 삶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또 주변 사람들과도 분리되면서 도움받는 것을 힘들게 만들고 만다.
그러므로 몸을 버리고 사고할 수는 없다. 몸으로 감정을 느끼고, 살아 있음을 느끼고, 결속감을 느껴보자. 혀로 음식의 맛을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의 피부에 접촉하면서 편안함을 느끼는 일. 인간관계에서 주고받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몸이 꼭 필요하다.
자신의 감정이나 느낌을 몸을 통해 잘 관찰하면 자기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지각도 변하게 된다. 자신만 소외되어 있다는 감정도 줄어들고 불편했던 마음도 훨씬 잦아들 수 있다.”
ㅡ 《3장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