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어린 시절이 울고 있다 - 몸에 밴 상처에서 벗어나는 치유의 심리학
다미 샤르프 지음, 서유리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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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간 트라우마 치료 전문가로 활동한 다미 샤르프의 첫 책 『당신의 어린 시절이 울고 있다』의 원제는 ‘오래된 상처도 치유될 수 있다 Auch alte Wunden konnen heilen’이다. 흔히 트라우마를 쇼크 트라우마, 즉 한 번의 충격적인 경험으로 생긴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저자는 그런 경우를 ‘발달 트라우마’라고 명명한다. 만성적으로 존재감을 무시당하거나 습관적으로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것도 트라우마로 남는다. 어린 시절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방식을 통해 만들어지는 경험은 극단적인 사건이나 잔혹함 때문이 아니라 부모의 무지, 선입견, 능력 부족 때문에 벌어진다. 어떤 사건의 결과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우리가 위험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야 한다. 위험에 처했을 때 우리를 가장 먼저 지배하는 것은 본능이고 이 때문에 생존할 수 있다. 이런 생존 메커니즘으로부터 나오는 반사 행동은 투쟁, 도피 반응, 제압당할 때의 경직 반응 등이다. 

                            

[쇼크 트라우마가 유발하는 행동]

* 교감 신경계의 과잉 활성을 암시하는 증상들

●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 무엇인가를 하거나 움직인다. “나는 행동한다. 고로 존재한다.”

● 신경과민

● 집중력 저하

● 분노 발작

● 불면증

● 긴장

● 다른 사람을 잘 신뢰하지 못함

● 의심

● 많은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림

● 일중독 “나는 일한다. 고로 존재한다.”

● ‘아드레날린의 분비로 환각 상태’를 갈망

● 초점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느낌

● 진정시키는 약물 자가 처방

 

* 부교감 신경계의 과잉 활성을 암시하는 증상들

● 우울증

● 무의미하다는 느낌

●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느낌

● 멍한 상태(예를 들어, 텔레비전 시청 중이나 컴퓨터 앞에서 또는 책을 읽을 때)

● 무기력과 에너지 부족

● 혼자이고 단절된 느낌

● 삶이 유리벽으로 차단된 느낌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롤러코스터 효과 때문에 삶의 기쁨과 편안함을 느끼는 단계가 거의 없어 삶이 더욱 힘들다. 쇼크 트라우마의 이면에 발달 트라우마가 감춰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쇼크 트라우마나 발달 트라우마는 감정 기복이 심하면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증상들이 있다. 불면증과 불안, 불안과 공황, 불안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분노 발작, (집중하는 것을 힘들어하기에) 변덕, 쉽게 놀라기, 과잉 행동, (긴장 이완과 다른) 흥분 저하, 탈진, 우울 등이다. 과잉 흥분 상태와 과잉 이완 상태를 오락가락하다 보니 어떤 사람들은 직장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지만 저녁에 집에만 돌아가면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어떤 사람들은 낮에는 무기력하고 멍한 상태지만 밤에는 내적 동요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자가 처방하려는 경향이 있다. 특히 인위적인 진정제(음식, 술, 컴퓨터, 텔레비전, 흡연 등등)를 통해 해결하려고 한다. “이렇게 신경계가 자가 조절 능력을 상실한 상태가 오래 지속될수록 사람은 엄청난 피로감을 느낀다. …… 스트레스를 받으면 간은 충분한 에너지를 제공하기 위해서 모든 힘을 쏟아 해독 작용을 한다. 하지만 계속 그렇게 하다 보면 간은 언젠가 완전히 지쳐버리게 된다. 너무 자주 아드레날린을 만들어내야 하는 부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신장도 과도하게 일을 하면 만성적으로 싸워야 하는 상태가 되어 더 많은 아드레날린을 통해서만 필요한 에너지를 제공받게 된다. 이런 긴장 상태가 지속되면 만성 피로 또는 번아웃 증후군에 이른다.” 고통의 핵심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자기 조절’이다. 심리 치료를 통해 자신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한다고 해도 원하는 대로 자기를 조절할 수 없다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활동은 뇌의 오래된 부위와 자율 신경계의 조정을 받지만 내분비계의 조정을 받기도 한다. 이때 자율 신경계는 각성 상태와 이완 상태에서 우리의 흥분을 조정하고 조율한다. ‘자율’이라는 말이 붙는 이유는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조절되기 때문이다. 자율 신경계는 교감 신경계와 부교감 신경계로 나뉘는데, 교감 신경계는 흥분을, 부교감 신경계는 이완과 안정을 담당한다. 즉 교감 신경계와 부교감 신경계는 서로 제어하고 활동과 휴식 주기를 조정하는 역할로 둘 다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몸의 반응에 무디거나 바람직한 기분 전환법을 모른다. 일상생활 중에도 기분 전환할 수 있는 활동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표면적인 생동감이 그 사람의 자아 상이나 열정적인 성격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진정한 변화는 쉽지 않다.

 

신체 심리치료 한계에서는 사람에게 다섯 가지 인생 과제가 있다고 분석했다.

인생과제 1. 나는 안전한가?

인생과제 2. 나는 내 욕구를 충족하고 있는가?

인생과제 3. 나는 타인의 도움을 받아들이는가?

인생과제 4. 나에게는 ‘자기효능감’이 있는가?

인생과제 5. 나는 사랑과 성에 관대한가?

 

학습 과제, 자기 조절, 애착 관계는 생각에만 반영되지 않고 몸과 삶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그것이 우리의 성격과 태도를 만든다. 우리 몸이 곧 나다. “우리의 이성과 감정은 몸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몸을 느끼지 못하면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공허해질 뿐”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심리 치료에서는 인식보다 몸의 건강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인생과제 1 나는 안전한가]

「몸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

“몸을 통해 감정을 느껴야 자기 자신에게 편안해져서 남들에게 마음을 열 수 있는데 이들은 몸으로 뭔가를 잘 느끼지 못한다. 항상 모든 상황에서 어떤 것을 곰곰이 생각하고 ‘올바른’ 결론을 도출하려고 하지만 그것이 몸을 통해 생생하게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신경 심리학의 최신 연구에 따르면 뇌의 변연계가 손상을 입어서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차를 마시고 싶은지 커피를 마시고 싶은지도 결정하기 힘들어한다고 한다. 사람이라는 것이 결국 어떤 결정을 내리려면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내부 감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니 벌어지는 일이다.

유명 신경 과학자인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는 우리가 좋고 싫은 것을 구분하는 것을 ‘체감각 표지’ 또는 ‘보디 마커body marker’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우리가 몸의 어떤 감각을 통해 원하는 것이 뭔지를 알게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바탕에는 몸의 감각이 깔려 있는 것이다.

만약 내 가슴이 펴지거나 목이 조이는 느낌을 받았다면 이 몸의 감각은 내면에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사람들은 이 감정을 바탕으로 선택을 하면서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데 몸의 감각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매우 중요한 정보를 놓치게 될 수도 있다.”

 

 

죄책감과 수치심의 원천」

“예전에 신체 심리치료의 일환으로 베개나 매트리스에 주먹질을 하면서 분노를 표출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오히려 이것 때문에 종종 해리 증상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들이 갖고 있는 격분의 감정은 상상 이상으로 강렬한 것이어서 컨트롤할 수가 없다. 육체화 과정을 거치지 못한 결과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신체 증상은 얕은 호흡인데 이를 ‘절약 호흡’이라 부른다.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에너지를 저장하기 힘들어하고 다른 사람에게 쉽게 뺏긴다.

이들의 대부분은 죄책감과 수치심이 강하다. 내면 깊숙한 곳에 자신이 뭔가를 잘못했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수치심을 유발한다.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긴 과정을 거친다.

아이들에게는 죄가 없다. 오랜 세월 동안 스스로를 배신하고 계속해서 부모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살았던 자신을 깨닫는 것은 심리치료의 아주 중요한 발걸음이다. 아이들은 부모가 굴욕감을 주거나 무시하고 때리거나 심지어는 성적 학대를 가해도 사랑을 갈구한다. 명백하게 가해 행위를 한 부모여도 충성심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특징 때문에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다.

이런 오래된 상처에 맞서기 힘든 이유는 기억이 구조화되기 힘들다는 점도 있다. 머릿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끔찍한 기억과 현재 나의 감정이 어떤 연결 고리로 이어져 있는지, 그것을 구조화하는 데만 한참이 걸리기 때문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을 용서해야 할까? 나는 사람들이 이 용서라는 또 다른 굴레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타인(부모도 타인이다)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살기 위해서는 ‘용서’가 최선의 수단이 아니다. ‘용서’는 자신이 겪은 일들을 완전히 다 극복하는 경지에 이르면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것이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결정은 스스로 해야 한다. 가해자를 용서할지 말지는 제삼자가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누군가에 의해서 용서를 강요당한다면 어떻게 될까? 오히려 이 경우가 더 위험하다. 분노 표출의 대상이 자기 자신이 되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목격했다. 내면에 잠재돼 있는 상처는 분노를 유발하고 이 감정은 어디론가는 향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인생과제 2 나는 내 욕구를 충족하고 있는가?]

「태어나서 충분히 관심받지 못한 사람들」

“태어나서 처음 2년 동안은 아이의 욕구와 정황성情況性이 중요하다. 이 시기에 아이는 서서히 욕구와 감정의 차이를 구분하기 시작하고 구체적인 말로 감정을 표현한다. 아이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욕구를 인지하고 이에 반응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이는 ‘예’와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을 배우고 이 단어의 의미를 구분한다. 이 단계에서 만약 계속 결핍을 경험하면 이후 뚜렷하게 특별한 패턴이 만들어진다.”

ㅡ《2장 인생의 다섯 가지 과제》

 

 

어린 시절에 관심이 결핍되면 어른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결핍감을 느낀다. 관심이 결핍된 사람들은 인간관계에서 자신의 욕구를 잘 표현하지 못하고,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부정적이며 체념이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어 어떻게 해도 충분히 채워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욕구를 처리하는 방식에 따라 이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채워지지 않은 욕구를 계속 갈구하는 사람과 자기의 욕구를 아이 때부터 이미 포기해버린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다시는 누군가에게 의존하거나 부탁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자립하겠다고 다짐한다. 이런 상반된 두 가지 태도는 완전히 다른 생활 방식으로 이어진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익숙했던 상황으로 다시 만들어버리는데, 거절을 당했을 때 빨리 체념하거나 뭔가를 미리 포기해버린다. 공허함과 무력감이 만들어내는 결핍감과 고립감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이 꺼려 하게 돼 더 악순환이다. 이들은 자신의 욕구를 말로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물론 여기서 자기가 우선시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인식과 행동에는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인 메커니즘이 있다. 과거 경험 때문에 우리가 보는 것과 해석하는 것에는 ‘프라이밍 효과 priming effect, 시간적으로 먼저 떠오른 개념이 이후에 제시되는 자극의 지각과 해석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 즉 가치 판단이 들어간다. “의식하건 의식하지 못하건 우리는 지각을 통해 상황을 해석한다. 또한 갈등이 생겼을 때는 자신을 반응하는 사람이라 설정하지, 행동하는 사람이라 여기지 않는다. 우리가 스스로를 갈등 유발자로 인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다른 사람들 때문이라고 여길 뿐이다. 이런 맹점 때문에 멀리 있는 것보다 바로 옆에 있는 자극을 더 강하게 받아들인다.” 아무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프라이밍 효과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했던 좋았던 일은 망각하고 계속해서 같은 경험, 부정적인 경험을 반복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는 어른이 된 이후 매를 맞거나, 거부당하거나, 불친절한 대접을 받지 ‘않는’ 경험을 천 번도 넘게 했다.” 좋은 경험들을 되돌아보는 것도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 (회피, 설탕, 담배, 쇼핑, 게임, 섹스, 일, 스포츠 등 모든 것에 대한) 중독은 대부분 채워지지 않는 욕구가 모호한 갈망을 만났을 때 나타난다. ‘자기 조절의 결핍’은 우울증의 원인 중 하나인데, 감성적인 내성이 떨어져 자기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없게 되는 증상이다. 호불호의 욕구를 잘 느끼지 못하고 명확히 표현할 수 없게 되니, 슬픔과 기쁨도 제대로 표출하기 어려워진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갖고 있는 것에 행복을 느끼면서 자기 자신을 잘 돌보고 배우는 것이다.”

 

‘거울 반응’이란 주변 사람들로부터 나와 나의 태도에 대한 반응을 확인하는 행위다. 아이가 잘못된 거울 반응으로 자란다면 잘못된 자아상을 갖게 된다. 뭔가를 성취할 때만 칭찬받는다면, ‘존재’ 자체가 아니라 ‘행위’에만 긍정적인 반응을 얻으니 행동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 이런 가면적 행위들을 현실에서 정말 많이 볼 수 있다. ‘방임’으로 만들어지는 거울 반응도 있는데, 양육자가 아이가 그린 그림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런 피드백을 받은 아이는 자신의 행위뿐 아니라 존재가 무가치하다고 느낀다(아, 이거 내 얘기다ㅜㅜ). 이렇게 잘못된 거울 반응을 받은 사람들은 너무 일찍 어른이 된다. 이들의 핵심적인 문제는 자신의 내면을 드러냈다가 굴욕을 당할까 봐 두려워해 솔직한 심정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잘못된 거울 반응이 내면에 고착화돼 있어 타인을 잘 믿지 않으며 깊은 관계를 만들려고 하지 않고, 그런 관계가 생긴다 해도 거부하거나 회피하는 반응을 보이면서 쉽게 상처를 주고 만다. 이들이 지닌 상처의 뿌리는 매우 깊어서 끊임없는 노력으로 자기 혁신을 이룬다 해도 무력감과 허탈의 기본 정서에서 잘 벗어나지 못한다. 이들이 숙지해야 할 것은 ‘누군가에게 도와달라고 말하는 연습하기, 나 혼자 모든 것을 책임지지 않기, 힘들면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기’이다.

 

네 번째 인생과제 ‘자기 효능감’은 한 살 반에서 네 살 사이에 주어진다. 자기효능감을 배우는 시기는 아기가 모든 일에 ‘네’라고 답하지 않고 스스로의 판단을 통해 ‘아니오’라고 대답하게 되는 시기와 겹친다. 다른 사람과 거리를 두게 되는 시기로 아니라고 말하면서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며 자기감정을 갖게 된다. “자기 효능감은 주변을 자신의 힘으로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감정이다. 이것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감정이자 능력이며 행복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자기 효능감의 반대는 이른바 학습된 무기력이다. 이 개념은 심리학자인 마틴 셀리그만이 만들어낸 것인데 그가 개들을 대상으로 한 심리 실험은 유명하다.” 자기효능감이 없이 성장하면 어른이 되어서도 시련이나 사건에 맞서서 싸워봤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 효능감’이 생겨날 시기에 양육자가 “지금 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마” 같은 말과 좋지 못한 행동을 반복한다면 아이는 양육자의 눈치를 보며 솔직하게 자기감정을 드러내지 못한 채 죄책감을 기본 정서로 가지게 된다. 수치심은 생후 14개월 정도부터 느끼기 시작하고 죄책감은 사춘기와 청소년기에 뚜렷하게 나타난다. 죄책감을 부추기는 “양육방식이 반복되면 “내가 나를 부인해야만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심리 구조가 뿌리를 내리게 된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매우 유머러스하고 친절하고 다정다감한 사람도 많다. 중요한 것은 그 이면에 어마어마한 분노와 반항심이 잠재돼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는 웃으면서 ‘네’라고 해놓고서는 약속을 어기는 사람들이 그런 부류이다. 이들의 장점은 인내심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미치기 일보 직전인 상황에서도 이들은 묵묵히 잘 견뎌낸다. 그 반면에 단점은 자기 안에 자기가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해 자기를 속인다.” 이들이 숙지해야 할 것은 ‘타인을 배려하느라 정작 자신을 놓치지 말 것, 마음속으로 항상 평가하는 습관 내려놓기’ 이다.

 

다섯 번째 인생 과제는 만 세 살과 여섯 살 사이 남근기에 시작된다. 이 시기에 아니는 부모에게 선을 넘지 않는 상태에서 자신이 감성적 존재이자 성적인 존재하는 것을 피력한다. 여러 가지 역할을 시도하고 자신의 감정을 훨씬 세분화해서 인지하고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성적 감각을 거부당하거나 성적인 부분을 강요받게 된다면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많은 여성들이(때로는 남성들도) 성적 폭력을 당했음에도 “사실은 아무 일도 없었어요”라고 말한다. 혹은 어떤 일에 대한 책임을 자기 자신에게 돌린다. 이들은 왜 이런 어른으로 자랐을까? 아이들에게 성적 가해를 한 사람들 대부분은 잘못이 아이들에게 있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에 이런 경험을 한 채 어른이 되면 많은 경우 성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어려워하는데, 이들은 스스로 감지하지 못한다. 자신이 성적 폭력을 당한 사람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뭔가 심각하게 신체적인 가해 행위를 하는 것이 성적 폭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대부분 혼자 있는 경우에 당하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니 아이 말을 믿어주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아이는 솔직하게 말했을 때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양육자에게 심리적 단절감을 느끼고 고립된다. 이해받지 못하고 외로움을 느끼게 되면 결국에는 자기 자신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만다. 이것이 ‘2차 트라우마’이다. (중략) 성추행은 30초도 채 걸리지 않지만 당한 사람은 평생 동안 그 기억 속에서 살아야 한다. 이것은 매우 끔찍하고 부당한 일일뿐 아니라 당사자를 비롯하여 우리 사회 전체가 비싼 개가를 치러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요즘 페미니즘을 싸잡아서 욕하는 사람들은 성추행, 성폭행이 사람을 평생 얼마나 끔찍하게 괴롭히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이건 정말 공감의 영역으로는 이해할 수 없어 안타깝다. 친밀함과 스킨십에 익숙하지 않고 성적 욕구에도 무감각 내기 거부감을 가지게 된 이들은 사랑과 성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거절당할까 봐 불안한 마음이 강한데 이것은 관계의 주도권이 자기 자신이 아닌 상대방에게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들은 존재 자체만으로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경험을 못해 성취를 하고 효능을 발휘해야만 스스로를 가치 있다고 느낀다. 이들이 숙지해야 할 것은 ‘효용 가치가 없어도, 인정받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자신이 세상에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으며 성과 사랑이 동반된 관계라는 것을 알아가야 한다.’

 

저자는 치유를 ‘통합’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 벌어진 이야기는 바꾸거나 지워버릴 수 없다. “트라우마 치유라는 개념은 내가 더는 과거에 내 모습으로 규정되지 않고 다른 여러 가지 가능성을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트라우마 경험을 성공적으로 통합했을 경우 이를 ‘외상 후 성장’이라고 부른다.” 예술가나 창의적인 사람 중에는 자신이 겪은 심각한 트라우마를 예술이나 취미로 승화시킨 사람이 많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라고 했지만 저자는 ‘행동이냐 존재냐’가 변화의 핵심 키워드라고 본다. 자기 조절력의 결핍은 내면의 불안으로 자주 나타난다. 사람들의 대부분은 변화가 하루아침에 일어나기를 바란다. 큰 변화도 대개 며칠 동안만 유지되고 또다시 예전 패턴으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매일 조금씩 지속적으로 발걸음을 떼어나갈 때 가장 잘 변할 수 있다. “특히나 트라우마는 뇌에서 특별한 자리, 뇌간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예전의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하는 모든 기억은 반사 작용을 일으키고 이성을 배제해버린다. 트라우마 경험은 두려움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강렬한 학습 효과를 발휘한다. 뇌는 이 고통스러운 경험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기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다 보니 그 상황을 반복하게 되고 이는 좌절과 고통스러운 기억의 반복으로 이어진다.”

 

 

[사람이 잘 바뀌지 않는 건 뇌의 구조 때문이다]

「뇌의 구조와 트라우마」

“삼부 뇌 가설은 미국의 뇌 과학자인 폴 매클레인Paul McLean이 만들었으며 트라우마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가설에 의하면 우리 뇌는 각각의 부분이 독립적으로 기능하고 서로 조율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달한다. 이것은 우리 뇌의 각 부위가 다른 부위와는 상관없이 스스로 반응하는 능력이 있다는 뜻인데 우리의 삶과 어린 시절의 상처, 트라우마의 결과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해부학상 뇌는 뇌간, 중뇌, 소뇌, 변연계, 신피질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구조는 수억 년에 걸친 진화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데, 뇌간은 약 5억 살로 가장 오래됐고 신피질과 대뇌피질이 10만 살로 가장 어린 부위다. 대뇌는 우반구와 좌반구로 나뉘고 두꺼운 신경 섬유 다발인 뇌들보로 연결되어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정신적인 건강과 우리의 성격에 중요한 모든 과정은 눈 바로 뒤에 있는 아래 전두엽에서 관장한다고 말할 수 있다.

미국 신경 심리학자인 대니얼 시걸Daniel Siegel4 박사는 주먹을 쥐면서 엄지를 손으로 감싸면 뇌의 모양을 가장 간단하게 상상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했다(엄밀히 말하면 양손 주먹을 엄지가 맞대게 해야 좌반구와 우반구를 잘 볼 수 있다). 손바닥 안쪽을 자신을 향해 돌리면 뇌의 앞부분 앞부분을 볼 수 있다. 손목과 손바닥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모든 본능과 신체 반응을 조정하는 뇌간을 보여준다. 손가락은 대뇌피질인 셈이다. 손톱과 손가락 첫 번째 마디는 전두엽 피질이 되는 것이다. 그 밑에 있는 엄지는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를 나타낸다.

전두엽 피질에 대해서는 15년 전만 해도 거의 알려진 것이 없었는데 오늘날에는 성격을 형성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전두엽이 잘 발달할수록 방해 요인들에서 자유롭다. 좌반구와 우반구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들과 유대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좌뇌와 우뇌가 얼마나 다른 기능을 하는지는 뇌 연구가 질 볼트 테일러Jill Bolte Taylor 박사의 영상에서 잘 볼 수 있다. 테일러 박사는 좌뇌 부위에 뇌졸중 증상을 겪은 적이 있다.”


조기 경보 시스템, 뇌간」

“뇌간은 모든 기본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심장 박동과 호흡을 조절하고 수면과 깨는 것을 담당한다. 그 밖에 투쟁, 도피, 경직과 같은 우리의 생존 반사를 담당한다. 뉴로셉션이라는 위험을 감지하는 부분을 이용해서 뇌간은 변연계와 함께 주변을 감지하고 익숙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외부 자극을 스캔해서 위험이 감지되면 생존 반응을 일으킨다. 트라우마와 어린 시절의 상처에 대해 이해하려면 뇌간의 작동 방식을 알아야 한다. 뉴로셉션이란 뇌가 우리의 무의식 안에서 계속 우리 주위를 스캔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낯선 집에서 잠을 잘 때 이상한 소리에 갑자기 깰 때가 있는데, 이는 뉴로셉션이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활동하면서 우리를 보호해주는 신호다.

실제적인 위험이든 상상 속 위험이든 뇌간은 작동이 가능하다. 전혀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고 해도 생존 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미미하지만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키는 암시가 있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도 생존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특히 다중 미주 신경계의 일부인 등쪽 미주 신경이 조정하는 사태 반사는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반응이다.”


감정의 본부, 변연계」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는 뇌간을 마치 옷단(라틴어로 림부스)처럼 감싸고 있는데 약 2억 년 전 파충류에서 포유류로 넘어갈 때 발달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이런 진화적인 단계를 통해 유대감, 감정, 기억이 생겨났다. 시상하부도 변연계에 속하는데 시상하부는 호르몬 조절을 담당한다. 호르몬 시스템은 자율신경계와 함께 우리의 동기를 조정할 뿐만 아니라 유대감, 욕망 등을 담당하며 몸과 뇌를 연결해준다. 변연계의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은 편도체와 해마다. 편도체는 불안과 감정 조절에 매우 중요하다. 편도체는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와 밀접하게 작동한다. 만약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이 시스템에 부담을 줘서 장애를 불러일으키고 고통을 느끼게 된다.”

 

통합센터, 신피질」

“신피질은 가장 최근에 진화한 부위로 약 10만 년 전에 생겨났다. 이곳에서 인지, 집중, 논리, 계획과 같은 모든 복잡한 일을 관장한다. 이 뇌 부위는 출생 때 가장 덜 발달되어 있는데 이는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뜻이다. 신피질을 살펴보면 주름이 가장 눈에 띈다. 이런 주름을 통해 엄청나게 많은 뉴런 신경 회로를 수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주름 덕에 면적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앞에서 주먹 쥔 손 모양으로 뇌의 모양을 짐작했던 것을 다시 떠올려보면 신피질의 뒷부분(손등 쪽)은 세상을 인지하고 앞부분(손가락 부분)은 추상적인 부분을 담당한다고 대략 말할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사회생활을 하는 포유동물의 경우 안와 전두 피질(이마와 안구 뒤쪽)이 더 강하게 발달했다고 한다. 전두 피질에는 동작성 계획에 관여하는 전운동 피질도 있다. 흥미롭게도 공감의 중요한 구성 성분으로 통하는 이른바 거울 뉴런도 여기서 발견되었다.

우리 뇌에서 가장 많이 발달한 부분은 이마 바로 뒤에 있다(주먹 쥔 손으로 보면 엄지손톱 아래에 있는 첫 번째 손가락 마디다). 여기서 심리적인 건강을 위해 인간의 기본적인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 기능들이 대부분 통합된다. 이 부분들이 오래된 뇌 부위이고 서로 아주 가까이 자리 잡고 있으며 뇌, 몸, 감정, 이성을 통합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부분은 우리가 상상 속에서 시간 여행을 떠나거나 자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든다. 이 부분을 통해서 우리는 도덕적인 사고를 하고 우리의 생각을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다.”

 

전전두엽의 기능, 작업 기억력」

“신피질의 측면을 배외측 전전두엽이라고 하는데 이 부위는 정보를 임시로 저장하는 기능인 ‘작업 기억력’을 담당한다. 가령 우리가 글을 읽을 때 문장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업 기억력이 필요하다. 문장의 끝쯤에서 문장의 시작을 기억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작업 기억력은 자기 조절과 순간 집중력에 달려 있다. 자기 조절을 잘하지 못하면 뭔가에 집중하지 못하고 집중하지 못하면 기억력은 떨어진다. 전전두엽 부분은 뇌의 깊은 부위에서 전하는 정보를 평가해서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의 동기와 행동을 예측해서 그 사람과 사회적인 관계를 맺게 해준다. 이것이 바로 마음 이론Theory of Mind이다.

이런 기능은 우리 자신을 인지할 뿐만 아니라 타인을 관찰하고 사회생활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특히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비언어적인 힌트를 알아채는 기능이다. 심리, 인간관계 전문가들은 안정적인 애착 관계가 이 기능을 발달시키고 높은 수준의 통합을 이뤄내는 데 큰 영향을 준다고 이구동성으로 주장하고 있다. 이 뇌 부위가 잘 발달할수록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몸을 느끼고 그와 동시에 주변 사람들을 마음을 잘 느낄 수 있다.”

 

뇌에게 생각할 시간 주기」

“우리가 어떤 상황에 대처할 때 뇌는 크게 두 가지 결정 과정을 거치는데 첫 번째는 신피질에서 정보를 인지하고 해석하는 ‘더 높은’ 의사 결정 과정이고 두 번째는 뇌간에서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더 낮은’ 의사 결정 과정이다. 후자의 경우 짧고 빠르기 때문에 인간의 생존에 몹시 중요하다. 뇌간과 변연계의 조정을 받는 이 과정은 몸이 위험을 느꼈을 때 재빠르게 지휘권을 행사한다. 그렇게 되면 ‘더 높은’ 의사 결정을 하는 뇌 부위를 덮어버린다. 이런 상태에서는 새로운 행동 방식을 몸에 익힐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체로 이완된 상태에서만 새로운 행동 패턴을 익힐 수 있다. 심한 스트레스 상태에서는 사실상 학습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가 아니라 기억에 반응한다」

“우리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소위 절차적 기억이다. 여기에 우리가 아주 일찍이 무의식적으로 배운 모든 행동 방식이 저장되어 있다. 우리는 머릿속에 이미 저장되어 있는 수많은 기억으로 현재의 사건에 반응한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현재가 아니라 기억에 반응한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밥을 먹거나 길을 걷거나 일을 할 때에도 우리는 절차적 기억에 따른다. 하지만 이 안에는 어린 시절에 배운 행동 패턴들이 다 녹아들어 있다. 행동 패턴은 우리가 말을 배우기 전에 경험한 것들 혹은 어렸을 때 겪은 인상적인 경험 등으로 만들어진다. 특히 어린 시절의 상호작용은 우리 마음속에 내면화되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행동 기준을 정해준다. 우리 모두는 무의식적으로 이런 행동 패턴으로 살아간다. 문제는 이런 패턴 중 잘못된 것들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스스로는 현실에 대응하는 내면의 적절한 반응이라고 여길 뿐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눈썹을 치켜들면서 나에게 강하게 모욕감을 주었다고 치자. 그러면 친한 사람이 눈썹을 치켜들면서 재미있는 농담을 던져도 나는 화들짝 놀라서 거부 반응을 일으킬 것이다. 남들이 그런 나에게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여도 나는 부당한 현실에 정당하게 대응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 몸을 제대로 관찰하기]

몸이 없으면 우리는 죽는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던 데카르트의 명제가 약 3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의 세계관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서 뭔가 이성적으로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관념을 만들어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식이 해결책이라고 믿는다. 지적인 인지 능력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식은 긴 변화의 첫 번째 발걸음일 뿐이다. 머리로 뭔가를 이해했다고 해서 행동이 갑자기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몸 그 자체이다. 몸을 통해 느끼고 파악하고 바꿔나가야 한다.

모든 형태의 트라우마는 항상 자기 자신과 몸을 분리하며, 다른 사람들과도 분리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생명력 있는 삶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또 주변 사람들과도 분리되면서 도움받는 것을 힘들게 만들고 만다.

그러므로 몸을 버리고 사고할 수는 없다. 몸으로 감정을 느끼고, 살아 있음을 느끼고, 결속감을 느껴보자. 혀로 음식의 맛을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의 피부에 접촉하면서 편안함을 느끼는 일. 인간관계에서 주고받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몸이 꼭 필요하다.

자신의 감정이나 느낌을 몸을 통해 잘 관찰하면 자기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지각도 변하게 된다. 자신만 소외되어 있다는 감정도 줄어들고 불편했던 마음도 훨씬 잦아들 수 있다.”

ㅡ 《3장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만나다》

 

우리가 계획했던 일을 수행하지 못하거나 마음과 달리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하는 건 오래된 뇌 부위들이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성은 우리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뇌가 나다’ 같은 환원론으로 섣불리 단정하진 말자. 자극과 반응 사이에 시간을 주면서 변화해나갈 수 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에 생존 반응이 과활성화 되면 위기 상황이 아닌 상황에서도 오작동하는 일이 발생한다. 뇌 속 ‘오래된 고속도로’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하루에 의지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은 약 15분이라고 한다. 이 순간을 아침 일찍 현명하게 사용하면 나머지 하루도 순탄할 수 있을 것이다. 지속적인 인내심과 노력이 필요한 하향식 통제보다는 자기 조절력이 잘 작동해 거의 힘을 쓸 필요가 없는 상향식 통제를 해야 한다. 이것을 잘하기 위해서는 자기 몸을 친숙하게 느끼고 편안해져야 하고, 감정 조절과 관계 맺는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몸을 고통의 그릇으로 여기기 때문에 몸으로부터 자신을 해리시킨다. 몸을 하찮게 여기면 인생의 질은 현격히 낮아진다. 과거의 그림자들이 뛰쳐나와 우왕좌왕하지 않도록 마음의 지하실을 미리미리 청소해 새로운 감정이 늘어나도록 해야 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기 몸을 대한다.” 우리는 우리가 가장 좋아하고 믿고 따르는 친구나 연인을 대하듯 자기 자신을 대해 몸과 잘 교류해야 한다.

 

‘회복 탄력성’은 어떤 재료에 압박을 가했을 때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부하 용량을 나타내는 것인데, 심리학적 개념으로는 ‘사람의 심리적 저항력’을 설명하는데 쓰인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된 트라우마 연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회복 탄력성이 좋아지기 위해서는 전두엽이 강화되어야 하고 쓰지 않았거나 기능이 저하된 뇌 영역들과 지속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특히 불안과 감정 조절을 담당하는 편도체와 연결되는 것이 핵심이다. 이렇게 되면 어떤 감정을 신속하게 알아차리면서도 그것에 사로잡히지 않게 된다. …… 이 논리는 수백 년 전부터 명상법으로 사용하던 것인데 심리치료 과정의 일부분이다. 이때 자신이 감정이나 느낌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자기 계발서, 유발 하라리를 포함한 많은 명사들은 ‘명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이쯤 되면 기초 교육 과정에 ‘명상’ 수업이 따로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학교 다닐 때 그와 비슷하게 고요하게 집중하던 서예 시간이 무척 도움됐다고 문득문득 생각한다.

 

집단을 이루는 모든 생물은 중요한 정보를 빠르게 전달해서 공동체에 위험을 알리며 진화했다. “기본 감정의 대부분이 불편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인 것도 이 때문이다. 부정적인 감정은 생존에 필수지만 긍정적인 감정은 생존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이런 삶이 가치가 있는지 어떤지는 다른 문제지만 애초에 그 감정의 원인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불안’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이 갖고 있는 원래 취지는 ‘위험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점이다. 이것은 인종, 계급, 언어, 지역을 초월해서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특징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디에 가든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감정을 읽을 수 있고 이것이 소통의 기본이다. 감정은 우리의 기억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내용보다 감정만 기억하거나 어떤 사람이나 사건을 평가할 때 감정에 좌우되는 일은 기본이다. 만약 임종을 앞둔 사람에게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뭐냐고 물으면 자신에게 가장 강한 감정을 남긴 사건을 이야기할 것이다. 아마도 어떤 감정의 동요도 일어나지 않는 경험은 기억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강의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감정에 와닿은 내용은 기억하고 그렇지 않은 많은 내용은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절대 중립적인 정보로 저장되지 않고 그 사건이 심어준 감정의 색깔로 저장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중립적이기 힘든 이유이다.”

 

악인조차도 관계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 한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임을 느끼지 못할 때 그 삶을 파괴된다. 사람이 어렵다면 동물, 식물, 책 어떤 대상이든 내 안에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사랑해보자. 기분 좋은 관계를 갖게 되면 그 사람의 세계는 변한다. 사회 문제로 터져 나오는 대부분의 뉴스들은 인간관계의 실패들을 보여준다. 정부의 노력이나 법의 심판을 촉구하기보다 우리 각자의 노력이 더욱 절실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감각적인 재미나 뉴스로 소비하고 비판할 게 아니라 좀 더 나은 세계와 삶을 바란다면 우리는 사람으로서의 자기와 사람으로서의 타인을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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