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위한 되풀이 창비시선 437
황인찬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황인찬 『희지의 세계』 리뷰에서도 언급한 적 있는데 「건축」이란 시는 황인찬 시의 원형이 담겨 있다.

 

 

「건축」

 

친척의 별장에서 겨울을 보냈다 그곳에서 좋은 일이 많았다 이따금 슬픔이 찾아올 때는 숲길을 걸었다 그러나 여기서 그때의 일을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어떤 기하학에 대해, 마음이 죽는 일에 대해, 건축이 깨지는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시는 지난여름 그와 보낸 마지막 날로부터 시작된다

 

 

"이리 나와 봐, 벌집이 생겼어!"

​ 그가 밖에서 외칠 때, 나는 거실에 앉아 있었다 불 꺼진 거실에서 한낮의 빛이 들이닥쳐서 여러 가지 무늬가 바닥에 일렁였고

"어쩌지? 떨어뜨려야 할까?"

그가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벌집은 아직 작지만 벌집은 점점 자란다 내버려 두면 큰일이 날 것이다 그가 말했지만 큰일이 무엇인지는 그도 나도 모른다

한참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 벌이 무섭지도 않은 걸까 그것들이 벌집 주위를 바쁘게 날아다니고 육각형의 방은 조밀하게 붙어 있고 그의 목소리가 언제부턴가 들리지 않아 무섭다는 생각이 들 때

"하지만 벌이 사라지면 인류가 멸종한댔어"

돌아온 그가 심각한 얼굴로 말하던 것을 기억한다

 

 

그때쯤 여름이 끝났던 것 같다

 

여름의 계곡에 두 발을 담근 두 사람이 맨발로 산을 내려왔을 때,

늦은 오후에 죽어 가는 새의 체온을 높이려 애썼을 때,

창을 열어 두고 외출한 탓에 침대가 온통 젖어 어두운 거실의 천장을 바라보며 잠들었을 때,

 

 

혹은 여름날의 그 어느 때,

마음이 끝났던 것 같다

 

 

다만 ​나는 여름에 시작된 마음이 여름과 함께 끝났을 때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도무지 알기가 어렵고

 

 

​마음이 끝나도 나는 살아 있구나

 

숲길을 걸으면서 그가 결국 벌집을 깨뜨렸던 것을 떠올렸다 걸어갈수록 숲길은 더 어둡고

가끔 무슨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는 시간이 오래 흘러 내가 죽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때는 아름다운 겨울이고

나는 여전히 친척의 별장에 있다

 

 

잔뜩 쌓인 눈이 소리를 모두 흡수해서 아주 고요하다

세상에는 온통 텅 빈 벌집뿐이다

 

그런 꿈을 꾼 것 같았다 

 

 

             

 

 

 

 

‘친척, 여름과 겨울, 숲, 물, 꿈, 죽음, 새, 학교, 창밖의 나’  표현과 ‘아이로 머물고 있는 나, 마음의 끝, 관계의 끝, 장면의 끝’ 설정은 영화 《인셉션》의 토템처럼 끊임없이 등장한다. 이번 시집의 「죄송한 마음」 시에서도 ‘지난겨울, 친척의 별장’이 또 등장했다. 비밀스러운 이 슬픔은 ‘동성애’에 대한 것일까. 죽은 사람들, 과거, (지금은 앞으로도) 없는 사람이 계속 등장하고, 무엇을 먹든 빈 찻잔이나 까맣게 타버린 것으로만 보는 이 상실감에 대해 내가 안다거나 이해하겠다는 말은 못 하겠다. 이것은 “사건 이후에도 삶은 이어지고 마을은 돌아”(「재생력」) 가는 영화가 아니라 그의 기억 속에 영원히 반복될 억압이므로. “이 누적 없는 반복을 삶과 구분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그의 시의 “서정적 일면”이고, “이 알아차림을 평생 반복해오고 있다는 것을”(「아카이브」) 알아차리는 순간처럼 그의 시는 돌연 끝난다. 끝없는 리플레이 속에 이탈되는 그는 목격자처럼 이야기를 전달할 수밖에 없어 “이야기의 주인공”(「사랑을 위한 되풀이」)으로 말하길 원하지 않는다. 죽음, 꿈, 문학적 공간(詩)에서나 재현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화자는 시간, 장소도 모호한 공간에 그와 내가 대화하게 하지만 그나마도 잠시 머물다 휘발된다. 또 대부분의 시들에서 부정문으로 흔적을 닫아버린다(“너는 어디에서도 나온 적 없다”「비역사」, “거기에는 영혼은 없습니다.”「시계가 없는 주방」, “그러나 미래는 오지 않았다”「화면보호기로서의 자연」, “앞으로 문은 십년 동안 열리지 않습니다”「깨물면 과즙이 흐르는」, “그러니 앞으로는 이 집을 나가지 말자”「현관을 지나지 않고」, “네가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어두운 숲의 주변」, “그것은 이야기가 안 되겠지요”「보도와 타일」, “이런 일이 이전에도 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런 일은 없습니다”「더 많은 것들이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빛은 어둠의 속도」) . 너는 여름에 있고 “나는 불안/나는 망각 나는 모과”(「말을 잇지 못하는」) 같다고 읊조리며 “왜 자꾸 우리는 숲으로 오는 걸까? 여기서 뭘 하는 것도 아니면서”라는 알아차림은 계속되지만 “이렇게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하는 채로 숲속을 헤맸던 어떤 여름날의 이야기”(「어두운 숲의 주변」)를 끝낼 수도 없다. 은유로 채울 수 없어 무덤으로 가득한, “아무것도 없는 곳을 비추려는”(「요가학원」) 이 시집의 집요함 앞에 우리는 무력하게 바라보는 입장일 뿐이다.

지워지고 싶으면서도 영영 탈출하지 못하는 시가 되고 싶고, 시이면서 시가 아니기도 바라면서, 사랑만 남는 시이길 바라면서도 사랑이 아니었으면 하고 바라는(「그것은 가벼운 절망이다 지루함의 하느님이다」) 양가감정 속에 그의 시는 앞으로도 계속될 거 같다. 하나의 시는 끝낼 수 있지만 시가 시작되려는 순간을 “어떻게 끝내야”(「부서져버린」) 할지 막을 수 없는 시인인 거 같으니까.

 

 

‘시인의 말’은 물속에 잠겨 있던 쌀이 모락모락 밥이 되어 있는 것을 본 것처럼 비장하기보다 귀여웠다(?) 내 지나친 곡해일까.

 

 

 

 

사랑 같은 것은 그냥 아무에게나 줘버리면 된다.

이 시집을 묶으며 자주 한 생각이었다.

ㅡ 2019년 가을 황인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