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제목이 <안나와 레빈>이 아닌가!
2권에서도 레빈이 분량 반을 차지하는데^^;
레빈만 나오면 이광수 농촌 계몽소설 분위기;;;

1.
"유럽에서 자생하는 숲과 닮아 보이게 하려고 자작나무를 꽂지만 난 그런 자작나무에 기쁜 마음으로 물을 주거나 믿을 수가 없어요!"

코즈니셰프는 그저 어깨를 들썩거림으로써 그들의 논쟁에 왜 자작나무가 등장했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는 뜻을 표했다. 하지만 아우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바로 이해했다.

"잠깐만. 이 일을 그렇게 재단해서는 안 된단다." 그가 지적했다.

그러나 콘스탄틴 레빈은 스스로 인정해 버린 결점, 즉 공공선에 대한 무관심을 정당화하고 싶었기에 말을 계속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콘스탄틴이 말했다. "개인의 이해관계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다면 그 어떤 활동도 견고하지 않아요. 이건 일반적인 진실, 철학적인 진실이에요." 그는 ‘철학적’이라는 단어를 힘주어 반복했는데 그럼으로써 다른 사람들처럼 철학에 대해 말할 권리가 있다는 걸 과시하려는 투였다.

코즈니셰프는 다시 한 번 빙그레 웃었다. ‘아우에게도 자신의 취향을 떠받치는 모종의 철학이 있군그래.’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철학은 놔두렴." 그가 말했다. "역사를 통틀어 철학의 주된 과제가 바로 사익과 공익의 필연적인 관계를 찾아내는 것 아니니. 그렇지만 핵심은 이게 아니야. 핵심은 내가 너의 비유를 정정해야 한다는 거지. 자작나무는 꽂은 게 아니라 씨앗을 뿌려 심은 거란다. 그러니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해. 중요한 제도를 존중하고 아끼며 역사를 가지고 있는 민족에만 미래가 있단다."

3.
"그때는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했지만 어쨌거나 행복은 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 느끼기에는 가장 큰 행복이 이미 뒤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녀는 처음에 보았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나쁜 쪽으로 변해 있었다. 살이 많이 쪘고, 여배우 얘기를 할 때는 악한 표정이 떠올라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꽃의 아름다움에 끌려 꽃을 꺾어 죽여버리고 그 꽃에서 예전 아름다움을 좀처럼 찾아보지 못하는 사람처럼, 자신이 꺾은 후 시들어가는 꽃을 보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사랑이 더 강렬했을 때에는 만일 강력히 원하기만 한다면 이 사랑을 마음에서 떼어내 버릴 수 있었을 테지만, 그녀에 대한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듯한 이 순간에는 그녀와의 관계를 끊어버릴 수 없음을 알았다."

4.
"그래, 그리고 죽음에 대한 생각을 그만둔 건 아닐세." 레빈이 말했다. "정말이지 죽을 때가 됐다고 생각해.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하릴없다고 보고. 자네에게 사실대로 얘기하지. 난 내 사상과 일을 무척이나 소중하게 여기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자네도 이걸 생각해 보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전부, 사실은 작은 행성에 돋아난 조그만 곰팡이에 지나지 않는 거야. 그런데 우리는 우리에게 사상이며 사업 같은 대단한 게 있다고 생각하지. 실은 다 모래알에 불과한데 말이야."

"그렇지만 이보게, 그건 이 세계처럼 진부하고 오래된 얘기야!"

"오래됐지, 하지만 그걸 명확히 이해하면 갑자기 모든 것이 부질없어진다는 말일세. 오늘이나 내일 죽는다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부질없지 않나! 내 사상을 무척 중요하게 여긴다 해도, 설사 그 사상을 실현한다 해도 부질없단 말일세. 이 곰을 잡듯이 말이지. 그러니 사냥이나 일을 즐기며 사는 거야,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오블론스키는 레빈의 말을 들으며 희미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5.
"의무는 권리와 결부되어 있으니까요. 권력, 돈, 명예, 여자들도 그걸 추구하는 겁니다." 페스초프가 말했다.

"어쨌거나 이건 뭐 내가 유모가 될 권리를 추구하는데 여자에게는 보수를 주고 내게는 안 주려 한다고 화를 내는 꼴이겠구려." 노공작이 말했다.

투롭친이 큰 소리로 웃어댔고 코즈니셰프는 그 말을 자기가 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안타까워했다. 심지어는 카레닌까지도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남자는 젖을 먹이지 못하지요." 페스초프가 말했다. "반면 여자는······."

"그렇지 않소. 한 영국인 남자는 배에서 자기 아이를 먹여 키웠다오." 노공작이 딸들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자유를 마다하지 않고 말했다.
"그런 영국인 남자 수만큼 여성 관리도 생기겠지요." 코즈니셰프가 말했다.

"그렇군요. 그런데 가정이 없는 여자는 대체 어떻게 하지요?" 오블론스키는 줄곧 치비소바를 염두에 두고 페스초프에 동조하며 그를 지지하고 있었는데 이런 질문을 던지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사연을 잘 들여다보면 그 여자가 자기 가정이나 언니네 가정을 내박친 걸 알게 될 거예요. 거기서 여자가 할 일을 찾을 수 있었는데도 말이죠." 예기치 않게 대화에 끼어들며 돌리가 가시 돋친 말투로 말했다. 오블론스키가 어떤 여자를 염두에 두고 말하는지 짐작한 눈치였다.

"우리는 원칙을, 이상을 지지하는 겁니다!" 쩌렁쩌렁 울리는 저음으로 페스초프가 반박했다. "여자는 독립할 권리, 그리고 교육받을 권리를 갖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그런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에 주눅 들고 상심하고 있습니다."

"나로 말하자면 나는 보육원에서 유모를 하고 싶은데 안 받아줘서, 그래서 주눅 들고 상심하고 있다네." 다시금 노공작이 말했고 이 말에 투롭친은 크게 웃다가 아스파라거스의 통통한 끝 부분을 소스에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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