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경멸했던 남편 카레닌과 마찬가지로 안나의 불행은 어긋난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위선과 기만을 보지 못했다는 점. 톨스토이가 그래서 키티 캐릭터를 배치했군.


6.
브론스키의 연애는 도시 전체에 알려졌고(그와 카레니나의 관계를 모두가 어느 정도는 추측하고 있었다), 젊은 사람들 대부분은 그를 부러워했다. 왜냐하면 바로 그 연애의 가장 어려운 점, 즉 카레닌의 높은 지위로 인해 그 관계가 사교계의 주목을 받는다는 점 때문이었다.
안나를 ‘정숙하다고 부르는 데’ 이미 오래전부터 지겨워하며 질시해 온 젊은 여자들은 그들의 짐작이 사실로 드러나자 기뻐하면서 이제 그녀에 대한 사회의 의견이 변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를 엄중히 모멸하려고, 때가 되면 던질 진흙덩이를 벌써 준비해 두었다. 나이 든 사람들과 지체 높은 사람들은 다가오는 사교계의 스캔들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브론스키의 어머니는 아들의 연애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만족스러워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이해하기에 상류층 사교계에서 일어나는 연애 사건처럼 젊은 호남의 매력을 완성시켜 주는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아들 얘기만 늘어놓던, 그녀 마음에 꼭 들었던 카레니나가 결국은 다른 아름답고 단정한(브론스키 백작부인이 이해하기에) 여자들과 똑같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들이 단지 연대에 남아 있기 위해, 그래야 카레니나와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출세에 중요한 자리를 거절했다는 사실, 그리고 이 일이 높은 자리에 앉은 명사들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된 후로 그녀는 견해를 바꾸었다. 또한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이 관계에 대해 알게 된 바로 볼 때, 이건 그녀가 격려할 만한 멋지고 조화로운 사교계의 연애가 아니라 베르테르적인 절망적인 정열이어서 사람들 말로는 그를 어리석은 행동으로 이끌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7.
지난 팔 년간 아내와 행복하게 사는 동안 외도하는 여자들과 배신당한 남편들을 보면서 카레닌은 몇 번이나 이렇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놔두는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왜 해결하지 않는 것인가?’ 그런데 막상 재앙이 자기 머리 위에 떨어지자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지 생각하긴커녕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너무나 끔찍하고 너무나 부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8.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위선이었거든요.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한 일이 아니라 머리로 생각해 낸 일이었거든요. 타인이 나한테 무슨 상관이겠어요? 그러니 내가 싸움의 원인이 되고, 아무도 내게 부탁하지 않은 일을 하게 된 거예요. 그러니 이 모든 것이 위선인 거죠! 위선이에요! 위선······!"

"무슨 목적으로 그런 거죠?" 바렌카가 조용히 물었다.

"아, 정말 멍청한 짓이에요. 역겨워요! 내가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는데······. 모든 것이 다 위선이에요!" 양산을 폈다 접었다 하며 그녀가 말했다.

"그러니까 왜 그랬느냐고요?"

"사람들 앞에서, 나 자신에게, 또 하느님 앞에서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요. 모든 사람을 속이고 싶어서요. 아니, 이제 더 이상은 거기 넘어가지 않겠어요! 나쁜 사람이 될 거예요. 그래도 그게 거짓은 아니잖아요. 위선자는 아니잖아요!"

"대체 누가 위선자라는 거죠?" 꾸짖는 투로 바렌카가 말했다. "지금 당신은 마치······."

9.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옴으로써 키티가 살아온 세상 전체가 달라졌다. 깨달은 것과 절연하지는 않았지만 키티는 그동안 되고 싶은 대로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자신을 기만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건 마치 눈을 뜨게 된 것과도 같았다. 그녀가 다다르고 싶어 했던 그 높은 경지에서 위선과 자만심 없이 계속 머무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았다. 그 외에도 키티는 이 고통의 세계,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세계가 주는 하중을 느끼게 되었다. 그 세계를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일은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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