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보다가
어떤 기시감에 다른 작가의 어떤 책이 생각나 급 주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 미로...휴
페터 한트케, 역시 재밌는 작가는 아니야(도리도리)
1. 블로흐는 극장에서 몸을 뒤로 기대고 앉아서 그랬듯이 지금은 앞으로 허리를 수그리고 앉아 관중들이 차 안으로 밀려들어 오는 것을 보았다. 극장에서처럼 그는 영화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막 경기장 조명이 켜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로흐는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혼잣말을 했다. 그는 야간 경기에는 서투른 골키퍼였다
2. 나시마르크트로 돌아와 가게들 뒤에 아무렇게나 쌓아 놓은 텅 빈 과채 상자들을 보고 있자니 재미있는 익살을 보는 듯했다. ‘무언(無言)의 위트!’ 하고 생각했다. 블로흐는 무언 풍자극을 즐겨 보았다. 위장된 또는 과장된 행동의 인상은 — ‘배낭 속에 심판용 호루라기를 넣어 다니는 그런 과장된 행동.’ 하고 블로흐는 생각했다. — 희극 배우가 길을 지나가다가 고물가게에서 우연히 트럼펫 하나를 집어 들고 시험 삼아 불어 보면서 이 트럼펫과 다른 물건들을 있는 그대로 명확하게 재인식하는 영화 속 장면을 보자 비로소 사라졌다. 그는 마음이 안정되었다.
3. "이거 가치가 있는 겁니까?" 하고 물으며 윗옷 주머니에서 돌을 하나 꺼내 탁자에 놓았다. 주인은 돌에 손도 대지 않고 그런 돌은 이 지역 도처에 널렸다고 대답했다. 블로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주인은 돌을 집어서 손바닥에 놓고 굴려 보다가 탁자 위에 다시 내려놓았다. 블로흐는 곧 나갈 요량으로 돌을 집어넣었다.
4. 낯선 것은 아니었지만 좀 혐오스러웠다. 그것은 충격이었다. 그 충격으로 그는 이상해져 버렸고 일상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는 실제로 그렇게 아무런 가능성도 없이 그곳에 누워 있었다. 비교할 것도 없었다. 자기 자신에 관한 의식만은 너무 강렬해서 불안스러웠다. 그는 땀이 났다. 동전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침대 밑으로 굴러갔다. 귀를 기울였다. 비유인가? 그러고는 잠이 들었다.
5. 블로흐는 흥분했다. 단면의 안쪽에서 그는 개별적인 것들을 점점 분명하게 보았다. 그가 본 부분들이 전체를 위해 서 있는 것 같았다. 또다시 그에게는 부분들이 문패처럼 생각되었다. ‘조명 문자 광고’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귀걸이를 한 여종업원의 귀를 모든 사람을 위한 신호로 보았다. 옆 탁자에는 어떤 여자의 핸드백이 약간 열린 채 놓여 있어서 그는 그 안에 들어 있는 물방울무늬 두건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뒤에서 커피 잔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가끔 잡지의 그림을 보면서 재빠르게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아이스크림 그릇이 탑처럼 쌓여 있는 모습은 주인의 모습과 비교가 되었고, 옷걸이 아래 바닥에 고여 있는 물은 그 위에 걸어 놓은 우산에서 흘러내린 물이었다. 블로흐는 손님들의 머리를 보는 대신 손님들 머리 높이에 있는 벽의 지저분한 부분을 보았다. 그는 여종업원이 벽 조명을 끄기 위해 지금 막 잡아당긴 더러운 줄을 보고 기분이 들떠서 — 밖은 다시 더 밝아졌다. — 이 모든 벽 조명이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그는 빗속을 걸어 다닌 탓에 머리도 아팠다. 부담을 주는 개별적인 것들은 그들의 외형과 그들이 속해 있는 환경을 보기 흉하게 일그러뜨렸다. 개별적인 것들을 하나씩 이름으로 불러 보고 이 명칭들을 외형에 대한 욕설로 바꿔 봄으로써 그렇게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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