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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죽음의 에티켓 - 나 자신과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한 모든 것
롤란트 슐츠 지음, 노선정 옮김 / 스노우폭스북스 / 2019년 9월
평점 :
내가 올해 가장 많이 읽은 책의 주제는 ‘죽음‘이었다. 죽음이 너무 생생했을 때는 이런 책들을 펼쳐보기가 힘들었다. 차츰차츰 읽어나가며, 갑자기 몰아치는 슬픔에 대한 이해, 또 다른 타인의 죽음과 나의 죽음에 대해 좀 더 마음의 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누구나 다 죽는 것이라고 죽음을 일반화로 재단할수록 슬픔의 암흑은 더욱 커진다. 섣부른 위로는 상대를 더욱 힘들게 할 뿐. 죽음은 지극히 개인적인 슬픔이다. 스스로 극복할 시간이 필요하다.
고인의 주검을 직접 접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장례를 빨리 해치우는 일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 좋지 못하다. 더우기 살해된 가족의 시신을 찾지 못한 유가족이나 세월호 유가족들은 더 아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장례 절차에 따라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진행되는데 독일 문화권 얘기라 한국에도 이런 과정을 구체적으로 담은 책이 있어야 하지 않나 싶었다. 이를테면 독일은 관공서에서 출생증명서를 110년, 혼인 증명서는 80년, 사망증명서는 30년 동안 보관하는데 한국은? 이런 걸 인터넷 서핑으로 일일이 찾아봐야 하는 건지.
6. 무슬림들은 죽은 자들의 귀에 종교 고백을 낭송해 주며, 영혼이 이 낭송한 것의 의미대로 육체를 벗어날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불교 신자들은 영혼이 얼마간 계속해서 자신들을 싸고 있던 껍데기에 머문다고 생각해서 어느 시간만큼은 시신을 건드리지 않고 가만히 둡니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무엇인가를 감지합니다. 어쩌면 그 모든 건 사람들의 상상이라고 과학자들은 말합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양측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게 있습니다. 누구든, 한 사람의 죽음 옆에 있는 혜택의 누릴 수 있다면 온 마음을 다해서 그 신비함을 맛보라는 것입니다. 죽음은 명확한 파악이 불가능한 영역에 속합니다. 그 점에서는 물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드디어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손가락 사이로 모두 빠져나가고 마니까요. 인간 역사가 시작된 순간부터 쭉 그래 왔습니다. 그들은 죽음 그 자체를 물리적인 현상으로 파악하지 못했으니까요. 죽음이란 무엇일까? 삶의 종결. 이 정의로는 뭔가 부족합니다. 삶은 무엇인가? 생명체를 생명체로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일까? 그리고 언제 그런 생명의 특징들이 종결되는 것인가? 사람들은 그것에 의지해서 죽음에 대한 깨달음을 얻습니다. 살아 있는 이들이 이 질문을 세대를 거치며 계속 생각해 왔기에 부족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몇 가지 대답들이 있기는 합니다. 죽어가는 과정처럼 죽고 난 다음의 상태 역시 하나의 과정입니다. 종교와 국가, 법이 이 과정을 다르게 할 뿐입니다. 각 분야마다 죽음의 과정을 다르게 해석합니다. 죽은 이를 두고 작업하는 의사들, 즉 법의학 의사들은 이 과정을 다음과 같이 구분했습니다. 곡선이 삶으로부터 아래로 우아하게 내려오다가 중간에서 뒤집히듯 방향을 바꾸어, 죽음으로 향하는 곡선이 됩니다.
7. 시신 앞에 있다는 건 견디기 힘든 일입니다. 자연스런 일이죠. 죽음을 TV에서만 봤지, 실제 주검을 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니까요. 사랑하는 애인, 사랑하는 부모와 형제, 사랑하는 자식, 오랜 친구, 그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명하게 들리는 것 같고, 그 제스처와 시선과 향기가 기억에 아직 남아 있는데 참 기가 막히는 노릇입니다. 당황스럽고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적어도 즉시, 빨리는 아닙니다. 이럴 때 도움되는 게 하나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는 사체를 정말로 직접 만져 보는 것으로써 죽음을 인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보고 만지고 느끼는 거지요.
8.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 한 명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자식을 잃었고, 아내를 잃었고, 남편을 잃었고, 아버지나 어머니, 가장 친한 친구, 어쩌면 식당의 요리사를, 가족의 기둥을, 유일한 경제적 주체를 사람을 잃었습니다. 또한 호칭을 잃었습니다. 자식이 없어진 부모가 여전히 부모인가요? 아내 없는 남편이 계속 남편으로 불릴 수 있나요? 아니면 그는 이제부터 즉시 자신을 홀아비로 이해해야 하나요? 그들은 당신이 일터에서 받던 임금을 받지 못하게 되고, 당신의 연금의 혜택, 어쩌면 아파트나 집, 친척들과의 연락, 당신의 사회적 네트워크, 당신의 인간관계와 당신의 지식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렇게 가려진 상실들을 동반 손실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당신을 단지 현재에서 잃을 뿐만 아니라 당신과의 미래를 함께 잃습니다. 학자들은 이 상실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인생의 역사가 책 한 권이라면 어느 한 페이지에서, 갑자기 어느 한 줄에서 모든 미래를 위한 장들은 찢겨 나가 중단되는 것’이라고요. 당신이 언젠가 갖게 되었을지 모르는 자식들, 어느 날 당신이 그들에게 선사해 주었을지도 모르는 손자들, 꿈, 여행, 곧 이뤄졌을지도 모르는 소망, 모든 것이 파괴됐습니다. 모든 게 사라졌습니다.
9. 누구든 그들을 도와주려거든 물어보기 전에 씻지도, 버리지도, 정리하지도 말라고요. 이 빈 와인 병, 이건 그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마셨던 그 와인이었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구겨진 이부자리, 거기에는 그의 몸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지저분한 빨랫감, 거기에서 당신의 냄새가 나죠. 슬픔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남겨진 이들을 외롭게 만듭니다. 어쩌면 그들은 모든 이와 연락을 끊고 지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계속 당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자신을 고립시킬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침묵만 하는 것이 고립시킬지도 모르고. 그것을 참아 낼 수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일상의 사람들, 수천 가지의 의미 없는 사소한 일들을, 세상을 텅 빈 눈으로 바라봅니다. 고통스러운 깨달음 속에서 죽음과 상실이 인생에 속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무엇이 정말로 중요한 것이냐는 의미의 질문에 그들은 명확한 대답을 배웠죠. 이 명료한 깨달음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행동들이 의미 없이 느껴지게 됩니다. 모든 게 중요할 것 없어 보이니까요. 모든 게 하찮아 보입니다. 그들은 정말로 중요한 것과 나머지를 극단적으로 구분합니다. 이런 타협 없는 태도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충격을 주죠. 그러고 나면 스스로를 고립시킵니다. 그래서 위로하던 사람들은 그들에게 접근할 수 없다고 느낍니다. 그들은 완전히 자기 자신 안으로 숨어 들어갑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흐르면 그들은 당신에게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이에게서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이중적으로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것은 지독한 외로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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