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죽음의 에티켓 - 나 자신과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한 모든 것
롤란트 슐츠 지음, 노선정 옮김 / 스노우폭스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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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인간은 평생 자신이 반드시 죽는다는 걸 부인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바로 그 이유로 생각하는 존재가 되었다"고 말이죠.

2.
케이크와 꽃, 진심이 담긴 편지. 그들은 마치 자기 자신인 양 당신을 살뜰하게 보살핍니다. 그러나 아무리 선의에서 그러는 거라 해도 고집스럽게 그들과 거리를 두는 게 좋습니다. 여기 이 문제가 오로지 너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착각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 문제, 죽음은 오로지 나 그리고 당신의 문제라는 사실을요.

3.
죽음에 임박한 사람들이 듣는 말 중 대부분은 세 가지 패턴 중 하나입니다.
첫째, 과소평가하기입니다. 그 지혜들 속에는 단 하나의 교훈이 들어 있습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기’입니다.
두 번째는 스승 스타일로 교훈 주기입니다. 이들은 당신의 병을 귀중한 경험으로, 일종의 생존 훈련으로, 육체 외의 정신과 영혼을 위한 훈육으로 보는 겁니다. 모든 것에는 깊은 뜻이 있나니, 이제 좀 그것을 깨달으라는 식이죠.
세 번째는 해법 제시입니다.
당신을 구할 수 있는 길을 예견하고, 당신의 병을 고칠 요법을 안다고 주장합니다. 마인드컨트롤이나 기도문 같은 게 당신을 낫게 해 줄 거라면서 만약 그걸 시도하지 않으면 애석한 일이 될테고 치유는 오직 당신 손에 달렸다며 모든 것은 마음가짐에 달려 있으니 결코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죽음이 임박한 환자들 중에는 이런 순간에 건강한 사람들이 자신 위에 올라 앉아 재판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실은 그것만으로도 대화의 방향이 죽음과 얼마나 관련이 없는 곳까지 와 버렸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역설적인 현상이 아닌가요? 죽음은 도처에 있잖아요. 매일 아침 신문에, 매일 저녁 TV 뉴스에, 하루 종일 인터넷에 있는데도 일상에서는 죽음을 거의 볼 수 없으니 말입니다.
사실 현대 문화는 명명백백한 죽음을 의식으로부터 밀어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이가 오십 혹은 육십이 되어서 그들의 부모가 죽을 때에야 난생처음 시신을 보기도 하니까요.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그건 변칙적인 현상입니다. 죽어가는 것과 죽음은 수천 년 넘게 감지 가능한 삶의 한 부분이었고 그것도 모든 연령대에서 일어나 왔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제 죽음은 무엇인가 추상적인 것이 돼 버렸습니다. 현대에 들어와서 사람들은 죽음을 마치 미지의 우주처럼 대합니다. 죽음은 의심할 나위 없지만 내가 걸을 일은 절대 없다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당신이 곧 죽을 거라는 사실에 그토록 부적절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4.
죽음의 첫 증상이 나타난 사람들은 이 쇠락을 이렇게 말합니다. ‘어느 날 아침 거울을 보면 도무지 내가 알지 못하는 낯선 이가 보인다고. 몸이 변화하고, 그 안에 살던 인간도 몸과 함께 변한다’고요.
슬픔이 생활에 침투합니다.
당신은 마지막으로 바다에 갔던 겁니다.
마지막으로 산에 갔던 거예요.
일터에서 차를 운전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잔 것도 마지막이었습니다.
마지막 눈.
식당에서 받은 마지막 영수증.
당신 머리 위로 뜬 마지막 달.
당신의 재능을 마지막으로 발휘한 것이에요.

5.
죽음이 가장 뚜렷하게 그려진 곳은 얼굴입니다. 얼굴은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 지녔던 모습과의 유사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일생에서 한 번도 시신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금방 알아챌 것입니다.
당신은 죽었습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닙니다. 같은 날 같은 시에 죽은 당신의 ‘죽음쌍둥이들’이 세상 어딘가에서 함께 죽어갔습니다.
통계가 말해 주죠, 지구상에서 매초마다 두 명의 인간이 죽는다고 말입니다.
똑. 당신과 당신의 죽음쌍둥이.
딱. 예멘의 어느 갓난아기. 캐나다의 할아버지.
똑. 해변의 여자. 도시의 반대편에 사는 남자.
딱. 외로운 남자, 호주에 사는 아이의 엄마.
똑. 수도사와 여배우.
딱. 99세 고령할머니와 단 하루도 살지 못한 갓난아기.
똑. 갠지스 강가 농부의 아내와 안데스 산맥의 열쇠공.
딱. 여성 음악가와 지중해 어느 이름 없는 난민.
똑. 고속도로를 빠져나오려던 두 사람.
딱. 시리아에서 두 명의 병사가 죽고,
똑. 사망 번호 21, 사망 번호 22,
딱. 사망 번호 23, 사망 번호 24,
벌써 이 사망자들의 목록을 읽는 시간 동안 삼사십 명이 더 죽었습니다. 1분마다 100여 명이 죽습니다. 시간당 거의 6,500명이 죽습니다. 하루에 15만 명이 죽습니다.
(중략)
죽음이란 건 완전히 일상적인 과정이고, 그래서 세상에 그보다 더 보편적인 현상도 없습니다. 탄생처럼 죽음의 순간에도 우연히 선택된 사람들과 함께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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