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2월
평점 :
판매중지


1.
연쇄살인범도 해결할 수 없는 일: 여중생의 왕따.


2.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욕도 안 하니 자꾸 예수 믿느냐고 묻는다. 인간을 틀 몇 개로 재단하면서 평생을 사는 바보들이 있다. 편리하기는 하겠지만 좀 위험하다. 자신들의 그 앙상한 틀에 들어가지 않는 나 같은 인간은 가늠조차 못 할 테니까.

3.
살인자로 오래 살아서 나빴던 것 한 가지: 마음을 터놓을 진정한 친구가 없다. 그런데 이런 친구,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말 있는 건가.

4.
그런데 나는 교통사고로 뇌를 다친 이후 살인에 흥미를 잃고 평범한 인간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20여 년을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충동 없는 살인, 필요에 의한 살인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 신은 나에게 내가 저지른 악행의 신성을 스스로 진부하게 만들 것을 명령하고 있다.

5.
수치심과 죄책감: 수치는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것이다. 죄책감은 기준이 타인에게, 자기 바깥에 있다. 남부끄럽다는 것. 죄책감은 있으나 수치는 없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타인의 처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나는 수치는 느끼지만 죄책감은 없다. 타인의 시선이나 단죄는 원래부터 두렵지 않았다. 그런데 부끄러움은 심했다. 단지 그것 때문에 죽이게 된 사람도 있다—나 같은 인간이 더 위험하지.
박주태가 은희를 죽이도록 내버려둔다면 그것은 수치스런 일이다. 나를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6.
모든 것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글로 적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보면 아무것도 안 적혀 있다. 녹음했다고 생각한 말이 글로 적혀 있다. 그 반대도 있다. 기억과 기록, 망상이 구별이 잘 안 된다.

7.
몇 년 전, 치과에 갔다가 몰입의 즐거움 어쩌고 하는 책이 있기에 대충 읽었다. 저자는 몰입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게 얼마나 큰 즐거움을 주는지에 대해 강조하고 있었다. 이보게, 저자 양반, 나 어릴 때만 해도 아이가 하나에만 몰입하면 어른들이 걱정을 했다네. 애가 외골수라며. 그때는 오직 미친 사람들만 한 가지에 몰입을 했지. 오래전의 내가 사람을 죽이는 일에 골몰하며 얼마나 깊이 몰입했는지, 거기에서 얼마나 큰 즐거움을 얻었는지를 당신이 안다면, 몰입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안다면, 그 입을 다물 거야. 몰입은 위험한 거야. 그래서 즐거운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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