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관한 에세이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데이비드 실즈『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보다 줄리언 반스의 이 책이 훨씬 풍부하고 깊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줄리언 반스에게 더 호감을 갖게 되었다. 신랄하기론 둘다 막상막하겠지만 리처드 도킨스의 무신론 책보다 대중에겐 불가지론자 줄리언 반스의 이 책이 더 호응이 높을 수도 있겠다.
그는 이 책이 자서전이 아니라고 했지만 예순 둘 나이에 죽음에 대한 책을 쓴다면 그 의미가 없을 수 없다. 그가 처음 본 (닭의) 죽음, 가족과 주변인의 죽음, 많은 철학자와 문인의 죽음, 자신에게 닥칠 죽음을 살펴보고 있으니 말이다.
반스는 서머싯 몸의 박학다식에 매우 존경을 표했는데, 이 책을 읽는 우리로서는 반스에게 그와 같다 하겠다. 삶과 죽음, 문학과 예술이 어우러진 위트 넘치는 강의 같으니까.
아, 이 책 읽고 나면 서머싯 몸 『서밍 업』을 또 안 볼 수가 없다. 미뤄뒀던 그 책도 이제 읽을 때가 도래했다.








첫 번째 짐을 끌고 거대한 노란색 운반용 바구니 속에 넣을 즈음에야 (전에 없이 그 어머니의 그 아들답게) 나는 그 물건들이 내버리기엔 너무도 아깝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이유로 나는 부모의 살림살이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것들을 남몰래 비닐봉지에 넣어 방치하는 대신, 유품 정리업자가 탈락시킨 물건들을 운반용 바구니에 넣고, 비닐봉지들은 보관해두었다. (어머니라면 이렇게 하길 바랐을까?) 마지막 물품 중 하나는 형이 실망스러운 햄샌드위치에 대해 썼던 여행지인 샹페리에서 아버지가 산 시시한 철제 카우벨이었다. 카우벨은 바구니 밑으로 덜커덕 떨어지면서 딩동, 소리를 냈다. 나는 내 밑에 펼쳐진 물건들을 바라보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거나 조금이라도 켕길 만한 게 없었음에도 왠지 저열해진 기분이었다. 마치 부모를 관에 안장하지 않고 종이 봉지에 담아 묻기라도 한 것처럼.

각설하고. 이것은 나의 ‘자서전’이 아니다. 그렇다고 ‘잃어버린 부모님을 찾아서’ 따위의 이야기도 아니다. 나는 누군가의 자식이라는 사실엔 핏줄이기 때문에 지긋지긋할 정도로 스스럼없이 굴게 되는 점과,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될 거대한 무지의 영역이 공존함을 안다. 그리고 그 푸프가 품은 기록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해도, 부모에게 대단한 비밀이 있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은 (불필요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가를 헤아리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아버지도 여든두 살에 죽었다. 나는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더 힘들 거라고 늘 생각했었다. 아버지를 더 사랑했고, 어머니에겐 기껏해야 짜증 섞인 정을 느꼈을 뿐이니까. 정작 실상은 정반대였다. 여파가 덜할 거라고 예상했었던 어머니의 죽음은 더 복잡하고 더 위태롭게 다가왔다. 아버지의 죽음은 그냥 아버지가 죽은 것이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죽자 둘 다 죽은 것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의 집 정리 과정은 예전에 우리가 한 가족이었던 시기를 발굴하는 작업이 되었다.

창조자에 대한 믿음보다는 죄의식과 심판에 대한 욕망에 더 기울어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삶은 인간에게 신을 믿도록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쪽지 중 하나에서 그가 한 말이다.
또, “당신은 죽은 후에도 살아 있게 될 것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을 받는 자신을 상상했고, 이에 “나는 말할 수 없다”고 대답하는 것을 상상했다. “당신이나 내가 제시할 만한 이유들 때문이 아니라, ‘나는 소멸하지 않는다’라고 말할 때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정확히 안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설명했다. 하기야 우리 중에서도 저런 식의 말을 할 때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아주 특별한 보상을 바라고 자신을 공양하는 근본주의자 말고. 하지만 우리는 그 말이 암시하는 게 뭔지는 몰라도, 그 말의 의미가 얼마나 중요하고 무거운지는 분명히 파악할 수 있다.

최근에 친구 R이 내게 얼마나 자주, 어떤 상황에서 죽음을 생각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잠에서 깨어 있는 하루 동안 적어도 한 번은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그런 후 간간이 일어나는 야간 침입들이 있다고도 했다. 외부 세계가 뚜렷한 평행선을 그릴 때, 저녁으로 접어드는 시간, 낮이 짧아질 때, 혹은 긴 하루 동안의 하이킹이 끝나갈 때, 자주 죽음의 필연성이 불청객처럼 내 의식을 비집고 들어온다.
좀 더 참신하게 말해보면 나의 모닝콜은 텔레비전에서 스포츠 경기가 시작될 때 성가시게 울어대는 때가 많은 것 같고,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5개국(이젠 6개국이 됐다) 럭비 경기 대회 때 유독 심한 것 같다. 나는 R에게 낱낱이 털어놓으며 행여 이 주제를 내 멋대로 곱씹는 것으로 비쳐질까봐 해명했다. 내 말에 그가 대답했다.
“죽음에 대한 네 생각은 ‘건강한’ 것 같은데. (우리 둘 모두의 친구인) G처럼 미친놈 같진 않잖아. 나도 미친놈인 건 마찬가지지. 언제나 ‘당장 저질러’ 유형이었거든. 이를테면 입에 권총을 집어넣는 것이지. 템스 밸리 경찰이 와서 〈데저트 아일랜드 디스크〉에서 내가 그 말을 한 걸 들었다면서 내 12구경 산탄총을 압수한 이후론 장족의 발전을 했어. 이제 가진 총은 (아들 소유가 된) 공기총뿐이야. 무용지물이야. 쏴지지도 않거든. 그러니 난 너와 ‘함께 늙어갈 거야.’”

만약 내가 러시아 작곡가를 내세워 G와 맞붙어야 한다면 나는 라흐마니노프보다 더 뛰어난 작곡가이며 그 못지않게 죽음에 천착했던 쇼스타코비치에 그와 똑같은 액수의 판돈을 걸겠다. (더 큰 돈을 걸 수도 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 쇼스타코비치가 말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습관화해야 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예기치 못한 때에 엄습해오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리는 두려움과 친해져야 하며, 그 한 가지 방법은 글로 쓰는 것이다. 난 죽음에 대해 글을 쓰고 생각하는 게 나이 든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 사람들이 좀 더 빨리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어리석은 실수를 할 확률도 줄어들 것이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 가장 강렬한 감정일 것이다. 그보다 더 깊은 느낌은 없을 거란 생각도 가끔 든다.”
이는 공언된 견해가 아니었다. 쇼스타코비치는 죽음이 (영웅적 순교의 형태를 취하지 않는다면) 구소련의 예술에선 적절한 주제가 아니라는 걸 알았으며,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훌쩍이며 소매로 코를 훔치는 것과 다름없는’ 것임을 알았다. 그의 악보에서 〈디에스이라이〉를 불타오르게 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음악적인 위장술을 펼쳐야 했다. 그러나 이 신중한 작곡가는 점차로 자신의 내면에서 소매로 콧구멍을 슥 닦는 용기를 발견했고, 이는 그의 실내악에서 빛을 발했다. 그의 말년의 작품들엔 죽음의 숙명을 향한 느리고 명상적인 기도가 자주 등장한다. 베토벤 사중주의 바이올리니스트는 이 작곡가에게서 제15번의 첫 번째 악장에 관해 이런 조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음악을 들은 파리가 허공에 뜬 채 죽을 수 있을 만한 연주를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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