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아름다움의 진화 - 연애의 주도권을 둘러싼 성 갈등의 자연사
리처드 프럼 지음, 양병찬 옮김 / 동아시아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과학적 획일성에 대한 욕구가 현대의 과학적 설명 속에 숨어 있는 ‘일신론monotheism’의 망령에 불과한 건 아닐까?”
이 말은 정말 명치를 때린다. 토드 로즈가 지적한 ‘평균주의‘ 상황과도 비슷하지.
과학 안팎에서 스트리트 파이팅이 활발해야 한다. 안다며 누르고 몰라서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비록 성적 아름다움이 관능적 쾌감을 유발하더라도 성선택은 자연선택의 또 다른 형태일 뿐이며, ‘갈라파고스핀치의 부리에 작용하는 진화의 힘’과 ‘최고극락조의 구애행동을 형성하는 진화의 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이것은 ‘아름다움의 본질 및 유래’에 대한 나의 견해와 전혀 다르다. 약간 망설여지는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하지만,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의 과정은 다소 무미건조하다”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물론 진화생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이 자연계에서 널리 작용하는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힘이라는 점을 잘 알며, 그 무한한 중요성을 부인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그러나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의 과정은 진화 자체와 동의어가 아니다. 진화과정과 진화사를 살펴보면,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 전체에 걸쳐, “진화는 종종 변덕스럽고, 기이하고, 우발적이고, 개별적이고, 예측과 일반화가 불가능하므로, 적응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라는 점을 강조할 생각이다.
진화의 결과 탄생한 성적 장식물은 배우자의 자질에 대한 객관적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호 전달자’와 ‘선택자’의 생존능력과 생식능력을 감소시킬 수도 있다는 점에서, 진화는 심지어 퇴폐적decadent이기까지 하다. 간단히 말해서, 개체들은 자신의 주관적 선호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부적응적인maladaptive 선택을 내릴 수도 있으며, 그로 인해 생물과 환경 간의 부적합worse fit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주류 진화론자(적응적 진화론자)들이 미적 진화 이론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데, 그것은 ‘미적 진화 이론의 선전善戰에 위기의식을 느낀 적응적 진화론자들의 자기 보호 본능’에 기인한다”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을 말이다. 바로 그 순간 이 책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략) 내 딴에는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장식물의 다양성에 대해, 무한한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라고 자부했던 것이, 그에게는 절망적인 세계관으로 보였던 것이다. 만약 내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삶의 목적의식이나 의미가 완전히 사라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다시 말해서, 만약 배우자선택으로 인해 진화한 장식물이 배우자의 자질을 나타내는 게 아니라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면, 그건 우주가 합리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소리가 아니고 뭐냐는 거였다. 나는 그 순간 “진화에 관한 다윈의 미학적 견해를 완전히 소화하여,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설명하는 게 절실히 필요하겠구나”라고 되뇌었다.
나의 과학적 견해는 조류학자로서 새를 객관적·주관적으로 관찰하고, 자연사학자로서 자연계를 포괄적으로 개관한 경험에서 직접 유래한다. 나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엄청난 지적·감정적 기쁨을 누렸다. 과학자로서의 내 인생은 늘 흥미롭고 영감이 넘쳤으며, 새의 아름다움이 진화한 것을 생각하기만 해도 소름이 오싹 돋곤 했다. 나는 이 책에서 “미묘한 미적 진화 이론이 결정론적인 적응적 진화 이론보다 자연을 더욱 풍부하고 정확하고 과학적으로 이해하게 해주는 이유”를 설명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성선택을 통해 진화를 바라볼 때, 우리는 자유와 선택으로 가득한, 전율 넘치는 세상을 볼 수 있다.

철학자 대니얼 데닛Daniel Dennett은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적 진화’를 가리켜 “다윈의 위험한 생각”이라고 한 바 있다. 그것은 다윈의 첫 번째 걸작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의 주제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다윈의 정말로 위험한 생각”을 이야기하고자 한다.1 그것은 ‘성선택에 의한 미적 진화’라는 개념으로, 다윈의 두 번째 걸작인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의 주제다.
다윈이 제안한 성선택이라는 개념이 그렇게 위험한 것이냐고? 무엇보다도, 다윈의 성선택은 신다윈주의자들에게 특히 위험하다. 왜냐하면 성선택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곧, ‘자연선택의 힘을 진화의 (유일한) 원동력으로 간주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생물계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데도 부족하다’라고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윈이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에서 주장한 것처럼, 자연선택은 진화의 유일한 원동력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자연선택이 우리가 생물계에서 보는 장식물의 엄청난 다양성을 전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윈은 이 딜레마와 씨름하느라 오랜 시간을 들였다. 얼마나 고민이 많았으면 다음과 같이 말한 것으로 유명할까! “나는 공작의 꽁지에 있는 깃털을 들여다볼 때마다 구역질이 난다네!” 공작의 깃털은 자연선택의 결과로 진화한 다른 유전성 형질들과 달리, 생존가치survival value 면에서는 완전히 낭비 그 자체다. 이것은 그가 『종의 기원』에서 내세운 원리들과 완전히 배치된다. 그래서 그가 고심 끝에 최종적으로 얻은 통찰은 ‘뭔가 다른 진화적 힘이 작용하는 게 분명하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윈의 정통파 적응주의 추종자들은 그것을 ‘용서할 수 없는 변절’로 간주했다. 결과적으로, 다윈의 성선택 이론은 그 후 억압되고 오해받고 재규정되어, 끝내 잊히고 말았다.
‘성선택에 의한 미적 진화’는 너무나 위험한 이론이어서, 자연선택의 전능한 설명력을 지키기 위해 다윈주의에서 배제되어야 했다. 그러나 자연계에 나타난 아름다움의 다양성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윈의 미적 진화 이론을 생물학과 문화의 주류에 복귀시켜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생물학적 아름다움을 설명할 길이 없다.

『종의 기원』이 발간된 후 맹렬한 공격에 시달리는 동안, 세 가지 문제가 다윈의 마음을 옥죄어왔다. 첫 번째 문제는 쓸 만한 유전학 이론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그레고어 멘델Gregor Mendel의 연구결과를 모르는 상황에서, (자연선택 메커니즘의 기본이 되는) 유전 이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려고 노력해봤지만 헛수고였다. 두 번째 문제는 인간의 진화적 기원, 인간의 본성, 인간의 다양성에 관한 문제였다. 인간의 진화적 기원에 관하여,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일부러 힘을 빼고 이렇게 적당히 마무리했다. “이 책을 계기로 하여, 인간의 기원과 역사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게 될 것이다.”
다윈이 세 번째로 직면한 큰 문제는 ‘실용성 없는 아름다움’의 기원이었다. 만약 자연선택이 유전성 변이heritable variation의 차별적 생존differential survival에 의해 추동된다면, 걸리적거리기만 하는 수컷 공작 꽁지의 정교한 아름다움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꽁지가 수컷 공작의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며, 굳이 효과를 따져본다면 오히려 방해될 뿐이다. 거대한 꽁지 때문에 행동이 굼뜨면 포식자에게 잡아먹히기 쉽기 때문이다. 다윈을 특히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한 것은 공작 꽁지깃에 아로새겨진 안점eyespot이었다. 그는 일찍이 “인간의 눈은 수많은 점진적 진보incremental advance가 시간이 흐르면서 누적되어 진화한 것으로 설명된다”라고 주장했다. 각각의 점진적 진보는 빛을 감지하고, 빛과 그림자를 구분하고, 초점을 맞추고, 상像을 맺고, 색깔을 구별하는 등의 능력을 미세하게 향상시키는데, 이 모든 것들이 집합적으로 동물의 생존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작의 안점이 진화하는 중간단계에서는 어떤 합목적성이 충족되었을까? 오늘날 공작의 완벽한 안점이 실제로 무슨 역할을 수행하긴 하는 걸까? 인간의 눈이 진화한 이유를 설명하는 게 지적 도전intellectual challenge이라면, 공작의 안점이 진화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지적 악몽intellectual nightmare이었다.

오늘날의 적응주의자들은 이렇게 자문自問해야 한다. “우리는 왜 모든 자연을 강력한 단일이론이나 과정으로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는 걸까?” “과학적 획일성에 대한 욕구가 현대의 과학적 설명 속에 숨어 있는 ‘일신론monotheism’의 망령에 불과한 건 아닐까?” 이것은 ‘다윈의 정말로 위험한 생각’에 함축된 또 하나의 시사점이다.
진화생물학이 진정한 다윈적 견해를 받아들이려면, 다윈이 그랬던 것처럼 자연선택과 성선택이 각각 독립적인 진화 메커니즘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적응적 배우자선택은 성선택과 자연선택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나는 이 책에서 ‘성선택과 자연선택 간의 상호작용’이라는 말을 계속 사용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