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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문단 아이돌론
사이토 미나코 지음, 나일등 옮김 / 한겨레출판 / 2017년 6월
평점 :
판매중지
무라카미 하루키 『태엽
감는 새 연대기』 개정판 출간으로 불판이 펼쳐진 지금 내가 오구오구만 할 독자는 아니라서 참고삼아 이 책을 읽게 됐다. 나는 좋아하는 작가일수록
더 매의 눈초리로 분석한다. 어떤 건 왜 좋고 어떤 건 왜 싫은지 알고 싶은 것도 있고, 비판점이 있다면 팬인 내가 더 잘 알아야 할 테니까.
책 제목부터 뭔가 B급스러워 평가절하 소지가 있지만 뼈 있고 수긍 가는 내용도 꽤 있다. 미나코의 통찰은 일본 만화를 보듯 잔재미 가득한 색다른
문예비평이어서 읽는 내내 재밌고 흥미로웠다.
일본 문예라는 좁은
범위지만 미나코의 비교 분석이 한국 문학의 경향과 비교해 볼 부분이 많다. 요즘은 일본문학이 한국 출판계 점유율이 높기 때문에 한국도 그
영향권에 있다고 봐야 할 테고 말이다. 거론하는 스타작가 8인 중 무라카미 하루키, 요시모토 바나나, 다치바나 다카시, 무라카미 류, 우에노
지즈코는 친숙하지만 다와라 마치, 하야시 마리코, 다나카 야스오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터라 더 깊이 있는 독해를 못해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게다가 이 책이 일본의 1980~90년대 거품경제, 포스트모더니즘, 페미니즘 열풍 속에 움직인 일본문학 전성기를 돌아보는 문예 비평이라 현재
인기 절정이라고 할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작가들이 다뤄지지 않으니 지금 시점에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페미니즘, 문예, 시사, 문화인류학을
넘나드는 미나코의 현재 저작이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않아 최신의 관점을 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앞에서 내가 한국의 현상과의 유사성을
말했는데,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시대와 그 시대성(‘극단적인 호황과 극단적인 불황, 페미니즘의 대중적 유행, 지적 권위주의의 파괴’)은 지금
한국 출판계 분위기와 매우 흡사하다. 일본의 8~90년대 문단 이야기가 한국 90~2000년 대랑 비슷한 것이 이것도 다른 분야처럼 한국과
일본의 질긴 10년 차를 느끼게 되는 부분이다. 장르소설, 철학 쪽은 일본이 이미 넘사벽이 된 거 같지만.
거론하는 작품들은
호황과 불황을 오가는 시대 속에서 독자들의 책심을 잡았다는 게 확실히 느껴진다.
신분상승을 꿈꾸는 여성
작가와 엘리트 여성학자 대결 구도로 하야시 마리코와 우에노 지즈코가 비교되었듯이 동물성과 식물성의 대결 구도로 무라카미 류와 무라카미 하루키가
비교되는 건 그들이 동시대에 활동했기에 더 재밌는 관전 포인트다. 이 책에서 인용된 당시 두 명의 무라카미 비교론은 너무나 단순한 논리임에도
정말 재밌다ㅎ. 이건 한국 문단에서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에도 김금희 vs 최은영 라이벌전 을 만드는 걸 나는 똑똑이 보았으니까. 왜? 그들을
아이돌로 만드는 독자와 문단의 합작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있는 현상이다. 여기서 미나코는 허점을 콕 찌른다. 비슷한 시기에 베스트셀러로
인기 절정이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와 요시모토 바나나는 서로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작품의 질적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 인식 속에
묘한 차별이 있는 것 아니었냐는 페미니즘적 지적이다. 신빙성은 있지 않나?
다시 나의 관심사로 돌아와서, 1991년 걸프전쟁 이후 공통적으로 전쟁이라는 주제를 다룬 무라카미
하루키 『태엽 감는 새』, 무라카미 류 『5분 후의 세계』를 비교하고도 싶은데 한국에서의 아이돌 저력도 하루키가 승자라 『5분 후의 세계』 책이
없어 읽을 수 없는 게 조금 아쉽다. 일본어 공부를 해서 원서로 읽으라고요? 읽어야 될 아이돌이 어찌나 많은지 그건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