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문단 아이돌론
사이토 미나코 지음, 나일등 옮김 / 한겨레출판 / 2017년 6월
평점 :
판매중지


무라카미 하루키 『태엽 감는 새 연대기』 개정판 출간으로 불판이 펼쳐진 지금 내가 오구오구만 할 독자는 아니라서 참고삼아 이 책을 읽게 됐다. 나는 좋아하는 작가일수록 더 매의 눈초리로 분석한다. 어떤 건 왜 좋고 어떤 건 왜 싫은지 알고 싶은 것도 있고, 비판점이 있다면 팬인 내가 더 잘 알아야 할 테니까. 책 제목부터 뭔가 B급스러워 평가절하 소지가 있지만 뼈 있고 수긍 가는 내용도 꽤 있다. 미나코의 통찰은 일본 만화를 보듯 잔재미 가득한 색다른 문예비평이어서 읽는 내내 재밌고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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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지메 쇼이치는 초기 무라카미 작품을 가리켜 ‘다방 주인 문체’라고 명명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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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가버린 지금에도, 나는 그 초원의 풍경을 똑똑히 그릴 수가 있다. 며칠간 계속된 부드러운 비에 여름 동안 쌓인 먼지가 깨끗이 씻겨 내려간 산은 깊고 뚜렷한 푸름을 띠었고, 10월의 바람은 억새 이삭을 이리저리 흔들고, 얼어붙은 듯한 파란 하늘에는 가는 구름이 꼭 들러붙어 있었다."『노르웨이의 숲』

이렇게 노골적으로 서정적인 문장은 그때까지의 하루키 랜드와는 분명히 선을 달리하는 것이었습니다. 『노르웨이의 숲』은 새 손님을 대거 불러들였지만, 개점 당시의 오붓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단골손님 중에서는 ‘요즘 가게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어. 언제나 손님으로 북적대지’ 하며 미간에 주름을 잡고 발을 돌리는 사람도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단골손님을 위한 서비스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 하루키 랜드. 『노르웨이의 숲』 다음 해에는 개점 당시(『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의 맥을 잇는, 그것도 상하 두 권으로 된 『댄스 댄스 댄스』(1988)를 출판합니다. 그리고 ‘하루키 현상’은 정점에 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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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하루키 랜드는 게이머로 북적이는 커다란 오락실로 변모했습니다. 이제 무라카미 문학에 등장하는 모든 단어가 그들을 위한 게임기가 되었으며, 그곳이 과거에 다방이었다는 사실 따위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게이머 군단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이 찾아옵니다. 1994년에 드디어 대망의 신작 게임 『태엽 감는 새』 제1부와 제2부가 출시된 것입니다.

아!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아직 하루키 랜드가 다방에서 오락실로 변한 것을 모르는 고상한 손님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태엽 감는 새』는 그런 손님들을 당혹게 했습니다. 그리고 평가는 둘로 갈라졌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대단하다’고 무책임하게 칭찬하는 사람들과 ‘이런 엉망진창인 다방에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테다’라며 격분한 사람들로."

 

일본 문예라는 좁은 범위지만 미나코의 비교 분석이 한국 문학의 경향과 비교해 볼 부분이 많다. 요즘은 일본문학이 한국 출판계 점유율이 높기 때문에 한국도 그 영향권에 있다고 봐야 할 테고 말이다. 거론하는 스타작가 8인 중 무라카미 하루키, 요시모토 바나나, 다치바나 다카시, 무라카미 류, 우에노 지즈코는 친숙하지만 다와라 마치, 하야시 마리코, 다나카 야스오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터라 더 깊이 있는 독해를 못해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게다가 이 책이 일본의 1980~90년대 거품경제, 포스트모더니즘, 페미니즘 열풍 속에 움직인 일본문학 전성기를 돌아보는 문예 비평이라 현재 인기 절정이라고 할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작가들이 다뤄지지 않으니 지금 시점에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페미니즘, 문예, 시사, 문화인류학을 넘나드는 미나코의 현재 저작이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않아 최신의 관점을 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앞에서 내가 한국의 현상과의 유사성을 말했는데,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시대와 그 시대성(‘극단적인 호황과 극단적인 불황, 페미니즘의 대중적 유행, 지적 권위주의의 파괴’)은 지금 한국 출판계 분위기와 매우 흡사하다. 일본의 8~90년대 문단 이야기가 한국 90~2000년 대랑 비슷한 것이 이것도 다른 분야처럼 한국과 일본의 질긴 10년 차를 느끼게 되는 부분이다. 장르소설, 철학 쪽은 일본이 이미 넘사벽이 된 거 같지만.

거론하는 작품들은 호황과 불황을 오가는 시대 속에서 독자들의 책심을 잡았다는 게 확실히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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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 기념일』은 중장년층 남성에게 사랑을 받았으며 만인의 환영을 받았던 것입니다. 위험한 냄새가 나는 것은 아이돌이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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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하위문화라는 말을 사용하고자 한다면 이러한 ‘소녀 대상 한정 문학’이야말로 전 세계적인 하위(부차·방계·지하·하층·피차별)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쓰인 시대는 한 세기 가까이 차이가 있으나 요시모토 바나나와 코발트계 문학은 『빨간 머리 앤』과 사실상 같은 흐름에서 이해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소녀라고 하는 젠더 역할’에 얽매이지 않은 주인공 캐릭터. 작은 사건을 통해 정신적 자립을 이루어가는 성장 이야기. 여자끼리의 우정을 중시하는 가치관. 남자와의 관계를 쉽게 연애로 발전시키지 않는 신중함. 그리고 섹스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 1990년대 후반 코발트 문고가 소년끼리의 연애를 그리는 ‘보이즈 러브’로 기울어져간 데서도 알 수 있듯이(이는 장르의 쇠퇴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성의 월경과 양성구유성 등도 소녀 문학의 세계에서는 비교적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바나나가 거론되는 방식은 일반적인 문예작품의 그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그것은 문예작품이라기보다는 문예상품, 아니 ‘바나나’라는 캐릭터상품에 가깝습니다. 질적으로 비슷한 것은 리카 인형이나 산리오의 키티 같은 가공의 캐릭터입니다. 어눌한 표현과 죽음으로 물든 멜로드라마. 그곳은 인형 놀이의 세계입니다. 인형 놀이이기 때문에 아무리 사람이 죽어도, 가족 구성이 엉망진창이어도 현실적인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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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속내’를 파는 장사꾼”이 바로 하야시 마리코다, 라고 그는 말합니다.

​그러나 오쓰키가 말하는 “출세욕, 명예욕, 물욕, 그리고 성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뒤로 감춰 마땅한 어두운 부분”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출세욕, 명예욕, 물욕, 그리고 성욕”은 오랫동안 남성의 속성, 남성에게만 특권적으로 허용된 특질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그것을 “인간이라면 누구나 뒤로 감춰 마땅한 어두운 부분”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하게는 ‘여자라면 누구나 뒤로 감춰 마땅한 어두운 부분’이라고 해야 합니다.

과거 여성에게 허용된 계층 이동은 결혼밖에 없었습니다. ‘옥여(玉の輿, 결혼을 통한 여성의 신분 상승을 상징하는 꽃가마 — 옮긴이 주)’란 말이 생겨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지요. 그런데 하야시 마리코는 입으로는 결혼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혼자 힘으로 출세의 기회를 거머쥐는 ‘남성적 신분 상승’을 실현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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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녀는 학자인 동시에 유능한 마케터임에 틀림없다. 시대의 변화를 재빨리 파악하는 날카로운 통찰력, 변화하는 ‘주부’와 ‘여성’의 동향과 심리를 파악하는 카운슬링 능력, 사회 분석뿐 아니라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확고한 눈이 그녀에게 오늘의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유명 대학’ 출신, 양갓집 자녀, 대학 조교수라는 자신의 기호적 이미지를 충분히 활용하고, ‘어디까지나 약한 여자의 편’이라는 방침을 고수하며, ‘여자들’의 풀뿌리 네트워크를 최대한 이용해 심포지엄이나 강연 장소에서 직접적으로 자신의 이론을 어필한다. 또 아사히 신문이라는 영향력이 큰 브랜드 미디어와 제휴해 정력적으로 계몽 활동을 펼친다. (…) 어쨌든 그녀는 다재다능한 것이다. _야마시타 에쓰코, 「밝고 경쾌한 에로 아줌마는 왜 건강의 상징이 되었는가」, 『별책 다카라지마 80년대의 정체!』, 1990년

표면적으로는 ‘다재다능함’을 칭찬하고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언짢은 논조의 야마시타 에쓰코는 정말로 그녀를 ‘유능한 마케터’라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내심 씁쓸함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칭찬 범벅’이 된 것은 아닐까요.

‘B형 지즈코’를 씁쓸하게 생각한 사람은 더 있습니다. 바이링구얼의 숙명이라고 할까요. 저널리즘(밖)에서도, 학계 & 페미니즘(안)에서도 ‘이단자’로 여겨졌던 그녀. 안에도 밖에도 일곱 명의 적. 밖에서는 ‘페미니즘의 기수’로 불렸던 그녀이지만 페미니즘 업계(여성학회) 내부에서는 비판의 화살을 정면으로 받아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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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를 읽으면 내성적으로 되면서도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 든다. 즉, 하루키는 마리화나 같은 효과를 준다. 반면에 무라카미 류를 읽으면 강렬한 쾌락을 느낀다. 즉, 류는 각성제라고 할 수 있다’라는 시시하지만 대중에게는 잘 먹힐 만한 코멘트가 실려 있길래 대체 누가 한 말인가 하고 보니 ‘작가 가메와다 다케시’라고 쓰여 있어서 놀랐다. _가메와다 다케시, 「하루키가 대마라면 류는 각성제」, 『쓰쿠루(創)』, 1989년 3월호

류 씨의 책에는 남자들만이 ‘느끼는’ 무언가가 있다고 하죠. 그런데 여자들은 그것을 지저분하다고 느껴요. (…) 류 씨의 이미지는 우선 폭력적. 느끼하고 동물적. 무섭다. 하지만 하루키 씨는 식물적이고 갑자기 달려들지도 않아요. _무레 요코, 「동물적인 무라카미 류와 식물적인 무라카미 하루키」, 『분게이슌주』, 1991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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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일본은 경제 성장을 목표로 달려왔습니다. 그것을 전제로 개인의 정체성도 형성되어왔지요. 어떤 사람에게 그것은 ‘출세의 인생 게임’이었는지도, 또 어떤 사람에게는 ‘사회 변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나마 1970년대까지는 효력을 발휘했던 그런 ‘이야기’들은 1980년대 들어 급속히 리얼리티를 잃게 됩니다. 생활수준이 전반적으로 올라가면서 자신이 어떤 사회 집단에 속하는가, 무엇을 보람으로 삼아 살아야 하는가가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가치 체계가 흔들리면 문학도 사상도 교양도 흔들리게 됩니다. 그 틈을 메꾸는 형태등장한 것이 1980년대의 ‘문단 아이돌’이 아니었을까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비평의 오타쿠화, 게임화를 부추겼고 다와라 마치와 요시모토 바나나는 그때까지 ‘여자아이 전용’이었던 J포엠과 소녀 문학의 흐름을 문학계의 공식 무대에 올림으로써 여자아이들의 문화를 경시했던 ‘문단 마을의 아저씨’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었습니다.1980년대에 일시적으로 페미니즘의 기세가 높아진 것도 어쩌면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가시적 계층(포스트 계급?)으로서 남녀 간의 격차가 ‘발견’된 탓인지도 모릅니다. 따지고 보면 하야시 마리코와 우에노 지즈코는 고도 경제 성장기의 남성 역할을 몸소 실천했던 존재였습니다. 출세 인생 게임 vs 사회 변혁. 체제파 vs 반체제파. 대중 vs 지식인. 게다가 두 사람 모두 파워풀한 데다 노악(露惡) 취미가 있습니다. 많은 여자들을 격려하는 한편 반감도 샀던 까닭은 한 시대 전의 남성 캐리커처를 여성이 연기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신분상승을 꿈꾸는 여성 작가와 엘리트 여성학자 대결 구도로 하야시 마리코와 우에노 지즈코가 비교되었듯이 동물성과 식물성의 대결 구도로 무라카미 류와 무라카미 하루키가 비교되는 건 그들이 동시대에 활동했기에 더 재밌는 관전 포인트다. 이 책에서 인용된 당시 두 명의 무라카미 비교론은 너무나 단순한 논리임에도 정말 재밌다ㅎ. 이건 한국 문단에서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에도 김금희 vs 최은영 라이벌전 을 만드는 걸 나는 똑똑이 보았으니까. 왜? 그들을 아이돌로 만드는 독자와 문단의 합작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있는 현상이다. 여기서 미나코는 허점을 콕 찌른다. 비슷한 시기에 베스트셀러로 인기 절정이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와 요시모토 바나나는 서로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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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를 에일리언이라고 한 이유는 그녀가 ‘여자아이의 나라’에서 ‘남자 어른의 나라’로 넘어온 요술공주 샐리였기 때문입니다. 소녀 대상 문학계(여자아이의 나라)에서는 당연한 것들이 문학계(남자 어른의 나라)에서는 강력한 파워를 발휘합니다. ‘마하리쿠 마하리타!’ 소녀 문학계의 주문을 거는 순간 일제히 쓰러져간 어른 인텔리들. 무라카미 하루키의 ‘간텍스트성’에 쏟았던 열정의 10분의 1만이라도 요시모토 바나나에게 쏟았다면, 아니, 근대 저변에 흐르는 소녀 문화라는 지하 수맥을 눈치챌 수만 있었다면 그렇게 멍청한, 아니 고매한 ‘분석’으로 칠전팔도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작품의 질적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 인식 속에 묘한 차별이 있는 것 아니었냐는 페미니즘적 지적이다. 신빙성은 있지 않나?

다시 나의 관심사로 돌아와서, 1991년 걸프전쟁 이후 공통적으로 전쟁이라는 주제를 다룬 무라카미 하루키 『태엽 감는 새』, 무라카미 류 『5분 후의 세계』를 비교하고도 싶은데 한국에서의 아이돌 저력도 하루키가 승자라 『5분 후의 세계』 책이 없어 읽을 수 없는 게 조금 아쉽다. 일본어 공부를 해서 원서로 읽으라고요? 읽어야 될 아이돌이 어찌나 많은지 그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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