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착각’이란 책 제목에는 여러 함의가 있다. 저자들은 사람들이 “이해의 착각 속에 살면서 스스로 지식 공동체에 속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개인ㅡ개인의 힘, 재능, 기술, 업적ㅡ에만 주목”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강조한다. 개인의 지능은 과대평가되었고, 지식은 개인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공유된다. 1960년대 인지학자들은 인간의 마음을 일종의 컴퓨터로 이해했는데, 1980년대에 인지학자 랜다우어는 컴퓨터의 메모리 크기를 측정하는 척도로 인간이 지닌 기억의 크기를 추정하고자 했다. 많은 실험 결과 중 하나를 소개하면, ‘인간이 70년 정도 살면서 같은 속도로 학습했을 때 보유하는 정보는 1기가 바이트’로 나왔다. 인간은 컴퓨터와 같은 지식 저장소가 아니라는 결과다. 또한 인간의 “지식은 대체로 수많은 연상, 그러니까 구체적인 이야기로 분해되지 않는 대상이나 사람 사이의 고차원적 연결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의 과정과 언어와 정서는 모두 합리적으로 행동하도록 도와주는 일상적인 추론과 관계가” 있는데 인간의 마음과 생각은 필요한 정보만 능숙하게 추려내고 나머지는 버리기 때문에 우리 머릿속에 저장된 지식과 추론은 불완전하며 한정된다. 인간은 지식 공동체로서 이 한계를 보완하며 진화했다. 인간의 ‘생각’은 머릿속, 외부 가리지 않고 자유자재로 끌어다 쓰는 특징이 있고, 우리가 지식의 착각 속에 사는 이유는 머릿속 지식과 외부 지식 사이에 명확한 선을 긋지 못하기 때문이다. 휴대폰과 컴퓨터와 비행기를 이용할 줄 알지만 세부와 전체를 아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 지식 공동체에 의지해 우리는 더욱 무지와 곤란에 빠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식 공동체조차 완벽하지 않다. 캐슬 브라보 핵실험 경우 수많은 사람이 협력한 복잡한 프로젝트였는데,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폭탄 리틀 보이의 1000배에 달하는 폭발을 예상하지 못해 방사능 피폭 피해가 일어났고 비키니 환초 주민들은 70년이 지나도록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911 테러 경우는 어떤가. 1993년 이미 한 번의 폭격으로 사상자가 난 사건이 있어서 미국 경찰 당국은 세계무역센터가 유력한 표적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2001년 항공기가 미사일이 되어 돌진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역사 속에서든 일상 속에서든 이런 무지의 재앙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아무리 많이 알아도 알려지지 않은 무지를 예측할 수 없다.” 복잡성으로 가득한 카오스 체계에서 보면 초기의 작은 변화로도 최종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저자들은 이러한 복잡성을 무시하고 잘 안다고 믿으며 아는 체하는 것은 거짓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불완전함을 알면서도 우리는 반사실적 사고(counterfactual thought)를 통해 세상의 인과관계를 끊임없이 추론하며 대안 세계를 상상하고 구축하려 한다. 이렇듯 우리의 인지 작용은 삶을 위해 총동원되고 있다. 우리는 분자의 위치와 방향과 움직임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우리가 그렇게 미세한 차원에서 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각계와 운동계는 이보다 높은 차원에서 작동하도록 설계되었다. 가령 식물과 동물(특히 다른 인간)과 인공물처럼 우리가 실제로 소통하는 물리적 차원에서 작동한다.” 우리의 직관과 정념은 서로 협조하며 심사숙고해 결론을 완성하고, 우리가 생각하고 기억하는 행위는 단순히 뇌의 작용이 아니라 몸과 뇌의 협동으로 이뤄진다. 서양 문화에서 손가락 열 개에서 착안해 십진수 숫자 체계에 의존했듯이 “인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상이나 도구와 결합한다.” 동성애와 근친상간에 대한 혐오는 정서 반응이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들의 말대로 인간의 생각은 얄팍하면서도 동시에 매우 강력하다.
우리에겐 천재나 영웅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보정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전문지식이란 기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력을 이루는 요소가 무엇인지 아는 것도 의미한다. 무지는 둘 다 없다는 뜻이다.” “지능이란 더 이상 개인이 문제를 추론하고 해결하는 능력이 아니다. 그보다는 개인이 집단의 추론과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정도를 의미한다. 이제는 뛰어난 기억력과 신속한 처리 능력과 같은 개인의 정보 처리 능력 이상을 고려해야 한다. 타인의 시각을 이해하고 타인의 입장에 서보고 타인의 정서 반응을 이해하고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능력을 포함해야 한다.” 저자들은 지능을 지식 공동체 개념으로 볼 때 이 사회와 집단의 문제를 더 잘 조율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거라 말한다. 집단의 효과적 수행으로 개별 구성원들이 더 나은 혜택을 누리는 이런 전망은, 노동의 분업으로 더 나은 세계가 열릴 것이라 진단한 마르크스의 비전의 다른 해석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위대한 일도 한 개인의 능력과 힘만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우리는 축적된 지식과 시스템을 이용하며 앞으로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세계를 움직이는 건 집단 공동체다. 그래서 저자들은 말미에 개인들이 바르게 설 수 있는 교육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지식은 상호 의존적이고 그것을 운용하는 인간은 더 말할 나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