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리커버 특별판)
벨 훅스 지음, 이경아 옮김, 권김현영 해제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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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계란 노른자를 좋아합니까, 흰자를 좋아합니까. 이런 식성 취향을 물을 때 대체로 대답은 명확하다. 노른자와 흰자를 다 좋아한다고 해도 되고 계란을 싫어한다고 해도 된다. 그렇다면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싫어요 보다 그게 뭐죠?라는 무관심이 더 난감할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 한 번씩 받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물음에 성 구분이 있었는지, 대답에도 인접한 성에 대한 선호가 있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어머니, 아버지가 다 일을 하는 상황인 요즘, 사회생활로 가족을 건사하는 전통적 부권 가장 이미지와 권위는 많이 퇴색되었지만 가부장제 뿌리는 사회 곳곳에 여전하다. 여성은 아이를 낳는 특성 때문에 고용에서 꺼려지는 존재가 되기 일쑤고 여성의 양육 재능이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편견도 만연해 사회생활보다 가정으로 더 내몰린다.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서 신경 쓰는 게 차별로 돌아오는 악순환이다. 생명공학 발전으로 성 구분이 희미해지고 임신과 출산이 여성만의 몫이 아니게 되면 이 문제는 바뀔까. 페미니즘은 그게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 벨 훅스는 페미니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마주치며 그들이 대개 “페미니즘 하면 남자처럼 되고 싶은 한 무리의 성난 여자들”을 떠올리고, “그들이 아는 페미니즘은 십중팔구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것일 뿐이며 페미니즘 운동이 실제로 무엇인지 거기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자세히 알아본 적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벨 훅스는 요령부득한 학술용어만 가득한 기존의 페미니즘 책이 아닌 쉽고 대중적인 이 책을 썼고,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라는 간결한 정의와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다. 벨 훅스의 이 책이 나오기 9년 전인 1991년 출판돼 페미니즘 고전으로 여겨지는 수전 팔루디 『백래시』도 대중에게 쉽고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사례 제시를 풍부히 했는데, 80년 대 미국 여성의 노동자로서의 실태, 상업주의 소비자로 혹은 상품으로 공략되거나 제외되는 현상, 여성이 정신질환자나 아이 낳는 기계로 치부되는 상황 등 여성의 기본권조차 무시되는 것을 고발하는 르포였다. 이후 나온 이 책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은 여전히 무시되고 있는 문제와 남성 연대를 강조하고 있는 게 눈에 띈다.

훅스는 페미니즘 혁명을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을 ‘가부장제, 인종 차별, 계급 엘리트주의, 제국주의 & 자본주의’라고 했다. 체감하기 쉬운 키워드를 뽑은 건 이해하지만 나는 더 깊이 들어갔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정체성 형성은 오랜 역사와 진화 속에서였다. 혼자 있는 여성이 험악한 인상에 체구가 큰 남성을 만났을 때는 경계와 공포를 본능적으로 느끼게 된다. 피부색이 지표가 아닌데도 낯선 유색 인종일 때는 인종 차별적인 경계심, 나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면 위계에 의한 위축감 등등 편견과 상황적 판단을 한다. 우리는 생각만큼 정의롭거나 합리적이지 않으며 감정적인 영향도 많이 받는다. 이건 남성이냐 여성이냐 구분을 뛰어넘는다. 신체적으로 연약한 포유동물은 자연스레 무리 생활을 하게 되었고 인간의 공동체 생활도 그런 연장이다. 그 속에서 인간은 국가, 종교, 각종 문화들이 구축했다. 중앙 집권적 이러한 체제들에서 무리에서 힘이 센 남성들이 지도자의 자리를 거의 차지했고, 지배와 착취의 수단인 폭력성을 사회 통제 수단으로 허용하는 지배 문화와 함께 가부장제는 내면과 외면에 걸쳐 단단히 뿌리를 틀었다. 체제와 공동체 결속 강화를 위해 만들어진 민족주의가 국가, 자본, 종교와 만나 문제는 더욱 얽혀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2017년까지도 여성이 운전을 하지 못했다. 아직도 많은 이슬람 사회에서는 전통과 문화 상대주의를 내세우며 여성에게 히잡, 차도르, 부르카 착용을 강요한다. 종교적 풍습에서 유래된 할례도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여성의 낙태 문제만 해도 바로 종교계와 부딪힌다.
여성 신도를 지배하고 유린하는 사건과 사회적 차별이 건재한 ‘종교’는 여전히 위세가 막강하다. 종교 문제를 건드리면 어찌 되는지 잘 알기 때문에 벨 훅스는 이 책에서는 어쩌면 거론하지 않은 것도 같은데 이것이야말로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결에서 과학적인 진화론이 우세한 거 같지만 실제로는 무신론자보다 종교 신자가 더 많다. 신자가 많은 종교만 추산해도 기독교 23억, 이슬람교 18억, 힌두교 10억, 불교 5억에 달한다. 무신론자는 대략 11억으로 추산되고 있다. 종교의 힘이 많이 약화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사회가 어렵고 힘들수록 종교에 의지하려는 심리는 줄어들지 않는다. 인간의 전면적인 의식 개혁 없이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 ‘만들어진 신’이 존재하는 한 ‘만들어진 여성’도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룬 좀 더 현실적인 얘기들을 말해보자.

브래지어를 태우는 등의 여성 항의 운동을 공정한 시각으로 잘 다루지 않는 대중매체, 자본주의-가부장제적 이데올로기를 탑재한 패션업계와 화장품 업계, 드라마, 상업 영화, 광고 등이 퍼트리는 여성 이미지 때문에 페미니즘은 오해와 지탄을 받기 쉽다. 초기 페미니즘이 남성중심주의에 분노해 대항한 건 사실이지만 페미니즘=反남성주의로 해석되어 페미니즘이 '남성에게 적대적인 일부 여성들의 운동', '시끄럽고 나쁜 페미니스트'로 매도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혁명적 페미니즘’ 의식을 가진 여성들은 다수가 레즈비언이고 노동자 계급 출신이어서 주류의 관심을 받기 어려운 문제가 있었고, 학계에 포용되고 난 이후에는 대중과의 소통이 더 어려워졌다. 기존 구조를 유지하면서 젠더 평등을 강조하는 ‘개혁적 페미니즘’은 계층 이동의 수단에 천착해 하위 계급 여성을 착취함으로써 가부장제와 성차별주의와 동맹을 맺었다. ‘라이프 스타일 페미니즘’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여성의 수만큼 다양한 페미니즘이 존재할 수 있다"라는 개념으로 페미니즘의 정치성을 흐리게 만들었다. 페미니즘이 경력을 쌓는 도구로 변질되면서 기회주의로 이용되다 보니 페미니즘 정치의 의식화 과정도 선명해지지 못했다. 남성중심주의나 젠더 평등에 대한 문제 직시 없이 분노 표출에 집중하거나 “내면화된 성차별주의를 직시하지 않은 채 페미니즘의 기치를 든 여성들은 다른 여성들과 부딪히는 과정에서 페미니즘을 배반하곤 했다.” “모든 여성은 어떤 식으로든 남성중심주의의 피해자라는 현실 인식만을 토대로 세워진 유토피아적 자매애는 계급과 인종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자 무너져버렸다.” 혁명적 페미니즘 운동에서는 “남성의 페미니즘 의식화가 여성의 의식화 만큼이나 중요하다.” 남성과 연대해 투쟁하지 않고 페미니즘 운동은 전진할 수 없다는 훅스의 말에 동의한다. ‘페미니즘 이론이 남성성에 대해 좀 더 해방적인 비전을 제시했다면, 페미니즘 운동이 반남성주의 성향을 띤다고 호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부장제 문화에서 남성들의 유대는 인정과 지지”를 받았다. 가부장제에서 여성들은 수용 외에 유대가 불가능했다. 한국 사회의 ‘시월드’라는 갈등 구조도 이에 기인하는 게 크다.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유대가 가능한 환경”을 만들었다. 섹슈얼리티에 대한 결정권, 효과적인 피임, 임신 선택권, 임신거부권, 강간과 성희롱 근절, 고용 차별 개선을 요구하기 위해 단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사도우미 고용을 이해관계로 보는 일례에서 착취와 억압 체계에 기초하는 계급주의와 가부장제, 성차별주의 영향을 보지 못한다면 ‘자매애’의 연대와 지속은 어렵다.

여성학이 자리를 잡은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문제점도 있었다. 학계 엘리트주의와 출세지상주의가 맞물려 학계 밖 여성, 남성들과의 원활한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았고, 대중 기반의 교육 운동을 일구는 데 실패했고, 페미니즘 사상이 학문으로 고착되어 탈정치화가 진행되면서 페미니즘 운동의 급진성이 약화되었다. 그러니 현실에서도 앞으로 나아가기 쉽지 않다. 임신 선택권과 임신 중단권 즉 여성의 자기 선택권 문제는 1960년대 후반부터 아직까지 쟁점이 되고 있다. 피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것, 조심스럽지 못했다거나 문란한 성생활을 하는 여성의 잘못으로 보는 시선, 생명 존중을 모르는 범죄자로 모는 사회적 지탄 등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이런 상황에서 현실 정치로서의 페미니즘은 절실하다.

“건강한 자존심과 자기애를 키우지 않으면 여성은 절대 해방될 수 없다.” “페미니즘의 개입으로 의복과 인체 혁명이 촉발되면서 여성은 우리 몸이란 본디 타고난 그대로 사랑받고 추앙받을 만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여성이 치장하지 않기로 한 이상 아무것도 더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여성스러운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비쩍 마르고 금발인 여자들’이 미의 표준 인양 등장하는 성차별주의적 이미지들, 여자들의 자기 몸에 대한 혐오는 좀체 사라지지 않는다.

현대 페미니즘은 사회에 만연한 폭력 문화를 가시화하는데 큰 역할을 했고, 누구나 젠더, 여성 문제를 터놓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러나 그게 페미니즘 관점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만 생각한다면 너무 축소해서 보는 것일 수 있다. ‘국가, 종교, 애국심, 인권’ 등도 우리가 구축하는 허구 이야기라고 말하는 유발 하라리의 주장이 주목되듯이 우리의 인식은 만족스럽진 않더라도 더 폭넓게 보려 하고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과 아동에 대한 여남 모두가 관여된 폭력 문제를 직시할 수 있는 "문화혁명"을 일으켰다. 훅스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페미니즘 담론이 지닌 한계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 정치는 여전히 이론과 실천의 결과로서 상호 간 행복의 비전을 제시하는 유일한 사회운동”이라고 말했다. “유일한”이란 표현이 좀 과도하다 싶지만 불평등과 불화가 만연한 지금 이 시대에,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서로에 대한 존중과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공동체 추구'는 유혈 없는 21세기의 훌륭한 혁명정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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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18-10-17 11: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갈마님, 잘 지내고 있으시죠? 저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바쁘고 고단한 일이 많아 최근 이 곳도 접속을 못하고 있네요. : ) 신카이 마코토 애니메이션 보면 각각 우주의 반대편으로 날아가는 두 주인공의 애틋한 교신에 대해서 나오는데요. 추석 후 보름은 지나서 명절 인사를 나누고, 다시 또 보름은 지나서 그 답을 드리는 우리의 사정도 못할 바는 없군요. 종종 갈마님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읽고, 쓰시겠지 하고 들어와 보면 역시 그렇게 계시는군요.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이번에 올린 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끄덕끄덕 하면서요. 벨 훅스의 책은 저도 탐독 했었는데, 갈마님 리뷰로 새롭게 보이네요.

2018-10-19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