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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흐름을 꿰뚫는 세계사 독해 - 복잡한 현대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역사
사토 마사루 지음, 신정원 옮김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6년 6월
평점 :
다른 나라 상황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특히 한국 교육에서는 세계사·역사를 암기 과목으로 치부하기 일쑤다. 방대한 사건들이 가득하기 때문인데 인간의 능력으로 외우는 데는 한계가 있고 무엇보다 그런 접근은 전혀 좋지 않다. 빠르고 쉬운 답을 도출하기 위해 상관 관계를 인과 관계로 연결 짓기도 쉽다. 맥락 찾기와 이해가 역사 공부할 때 가장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이 책 『흐름을 꿰뚫는 세계사 독해』 (원저 제목 《세계사의 진수世界史の極意》, 2015)에서 사토 마사루가 강조하는 것은 ‘아날로지’다. 아날로지란 ‘비슷한 사물을 연관해 사고하는 방식’으로, “미지의 사건과 맞닥뜨렸을 때도 ‘이 상황은 과거에 경험했던 그때 그 상황과 흡사하다’라는 판단과 함께 대상을 냉정하게 분석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저자는 아날로지적 사고력 향상이라는 ‘실리적 목적’ 외에도 ‘전쟁 저지’를 위해서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저자는 에릭 홉스봄과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진단한 것과 달리 ‘전쟁의 시대’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보고 비극적인 역사의 반복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아날로지적으로 통찰하기’를 전도하고 있다. 전도라는 말을 내가 괜히 쓴 게 아닌데, 아날로지가 신학적 사고 특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학 때 역사 신학을 공부하며 후지시로 다이조 선생에게 ‘아날로지’를 배웠다.
“실증주의에 입각하는 사학에서는 사료를 다루는 것, 즉 사료 수집과 선택·비판·해석은 이성만으로 충분하겠으나 정신과학으로서의 역사학 연구는 이성만으로는 지극히 불충분하며 신체·이성·의지·감정·신앙을 가진 인간 주체로서 이 작업에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작업은 딜타이가 말하는 체험·표현·추체험에 의한 해석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사료에 표현되어 있는 체험을 연구자 주체가 추체험해 이해해야 한다. …… 사학 방법론에서 중요한, 개個와 전체, 특수성과 보편성, 독자성과 동일성의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여기에 있다. 해석학은 먼저 사료의 언어학적·역사적(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분석을 철저히 한 후, 그 사료를 해석하는 것이다.” ㅡ 후지시로 다이조 『기독교사』
“이 세상 안에서 생을 부여받은 사람을 한 명이라도 제외한다면 역사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헤겔이 말했듯 절대정신이 변증법으로 발전한다는 식의 단순한 흐름을 취하지 않아요. 역사는 훨씬 복잡한 현상입니다. 타인의 마음이 되어 생각하는 것, 타인을 추체험하는 것을 얼마나 거듭했느냐에 따라 역사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역사는 아날로지를 통해 이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직 젊으니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를 것입니다. 헤겔이나 마르크스처럼 강력한 세계관에 기초해서 역사를 역동적으로 독해하는 수법에 매력을 느끼리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러한 철학이나 신학이 어딘가에서 구체적인 인간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는 염려하고 있습니다.” ㅡ 후지시로 다이조, 수업에서
이 책은 세계사를
통사적으로 해설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민족과 내셔널리즘’,
‘종교-기독교와 이슬람교’라는 세 가지 주제를 핵심 문제로 보고 진행하고 있다.
●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제국주의 시대는
1870년대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를
이른다. 구미 열강이 군비를 확장하고 세계 각지를 식민지나 세력권으로 삼아
지배하던 때였다. 16세기 이후 자본주의는 ‘중상주의(절대왕정이 실행한
경제정책)→자유주의→제국주의(독점자본주의)→국가독점자본주의→신자유주의’ 형태로 변천해왔다. 마르크스
“《자본론》이 고찰하는 것은
국가가 시장을 간섭하지 않는 순수한 세계”이지만 레닌
《제국주의론》은 “독점자본이 국가와 결합하는 지점에 제국주의의 특징”이 있다. “자본주의는 계속해서
시장을 찾아 외국에 진출하지만 대외 활동은 제국주의를 지향하는 국가 사이의 대립을 야기한다.”
알다시피 이로 인해 제1차 세계대전의 귀결을
맞았다. “자유주의의 배후에는 언제나 패권국가가 존재하며, 패권국가가 약화하면 제국주의 시대가 찾아온다는 것이 핵심이다. 영국이 패권국가였던 시절은 자유무역 시대였다.
그러나 영국이 약해지자 독일과 미국이 대두했고,
군웅할거의 구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때와 비교해
지금은 어떤가. “2000년대 들어
브릭스BRICs를 비롯한
신흥국가들의 경제가 급성장함에 따라 미국의 존재감이 낮아졌다. 2001년
9월 11일에 일어난 동시다발 테러,
2008년 가을의 리먼 브라더스 사태는 군사와 경제 양방에서 미국의 약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로
작용했다. 개인적으로 이 2008년 즈음을 경계로 국제정세의 조류가 달라지면서”
저자는 신제국주의 시대로 돌입했다고 생각한다. 그
사례로 ‘피너클 제도와 스프래틀리 제도, 파라셀 제도를 둘러싼 중국의 영유권 주장과 방공식별구역 설정, 우크라이나 위기,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 EU 회원국과 미국 등이 그들의 종주국이었던 동남아 투자로 영향력
강화’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식민지를 두지 않으며 전면전을 피하는 게 신제국주의 특징이지만,
착취와 수탈을 통해 생존을 도모하는 제국주의의 본질과 행동양식은 변하지 않았다. 세계화로 글로벌 자본주의가 과도하게 강력해지면서 국가의 징수 기능이 약화되자(법인세율 씨름, 조세회피처 등등을
생각해보라) 국가 기능을 강화하고 있는데 제국주의 시대와
비슷하다. 제국주의 시대에 보호주의가 대두했듯이 “현재 미국·영국·독일·프랑스 등과 같은 선진 자본주의국가는 겉으로 자유무역체제 옹호를 외치면서도 보호주의로의 전환을
교활하게 도모”하고 있다.
현재의 세계는 유럽연합·슬라브연합·아메리카대륙연합·중동연합·아시아연합 형태로 분할되어 있는데, 세력 균형 상태를 조성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 민족과 내셔널리즘
저자는
민족 문제에 있어서는 ‘민족’의 원형이 서유럽이 아니라 중유럽과 동유럽에서 탄생했기에 지역의 역사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영국·프랑스·스페인·포르투갈 등 서유럽은
비교적 이른 단계에 주권국가로서의 조건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동유럽을 포함한 15세기 말의 신성로마제국(독일·네덜란드·벨기에·프랑스
동부·스위스·오스트리아·체코
등)은 서유럽과 달리 혼돈 상태였다. 베스트팔렌조약에서부터 프랑스혁명 시대까지 유럽의 국제정치사를 보면, 신성로마제국의 동쪽 지역에서는 극심한 영토 변경을 동반하는 전쟁이 잇따랐다. 나폴레옹에게 정복당한 국가들에서는 민족의식과 국민의식의 각성을 촉구하는 내셔널리즘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후 러시아제국을 리더로 하는 범슬라브주의와
독일·오스트리아제국을 중심으로
하는 범게르만주의 사이의 민족적인 대립이라는 구도를 띠었다. 프랑스혁명 이후에
확대된 내셔널리즘이 중·동유럽에서 복잡한 민족 문제를 생성해
제1차 세계대전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저자는 세계사 교과서나 참고서가 가르쳐주지 않은 내셔널리즘론의 지적 거인 삼인방 베네딕트 앤더슨·어니스트 겔너·앤서니 스미스의 이론도 가져와 자세히 비교 설명하고
있다.
내셔널리즘에는 ‘원초주의와 도구주의’라는 상반되는 두 가지 사고가 있다.
“원초주의란, 일본 민족은 2,600년 동안 이어졌다든가 중국 민족의 역사는 5,000년이라든가 하는 식의,
민족에게는 근거가 되는 구체적인 원천이 있다는 실체주의적인 사고다.
이때 구체적인 근거로 거론되는 것은 언어·혈통·지역·경제생활·종교·문화적 공통성 같은
것들이다.”
“도구주의는
민족이란 개념을 엘리트들이 만들었다고 보는 사고다. 다시 말해 국가 엘리트가
통치 목적을 위한 도구로 내셔널리즘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이 도구주의의
대표적인 학자가 앤더슨이다. 앤더슨에 따르면, 국민이란 마음속에 이미지로 그려지는 상상의 정치적 공동체다. 즉 일본 국민이란 ‘우리는
일본인이다’라고 상상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공동체라는
이야기다. 이미지일 뿐 실체적인 근거는 없다. 우리는 같은 민족이라는 이미지를 모두가 공유함으로써 국민의식이 성립한다는 것이 앤더슨의
생각이었다.”
◈
앤더슨
“나폴레옹이 침략한
후, 국민국가와 내셔널리즘이라는 이념이 유럽 국가로 퍼진 사실은 이미 설명한
바 있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이 이념에 대항하고자 러시아는
‘정교회·전제專制·국민성’이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세 번째 원칙인 ‘국민성’이 이 시기에 새롭게
추가되었던 것이다. 나아가 19세기 말이 되면 알렉산드르 3세Alexander Ⅲ의 치세 아래,
발트 해 지방의 모든 학교에서 러시아어 사용이 의무화되었다.
이처럼 지배층과 지도층이 위에서부터 ‘국민’을 창출하고자 하는 것이
관주도 내셔널리즘인데, 이는 왕권의 정통성을 지탱하는 새로운 도구로 기능함과
더불어 “새로운 위험을 동반했다”고 앤더슨은 지적했다.”
◈ 겔너
“최초에 민족이 있은 후 내셔널리즘이 생겨난다는 원초주의적인 통념은 그릇되었으며 내셔널리즘이라는
운동에서 민족이 생겨난다는 것이 겔너의 사고다. 겔너도 앤더슨과 마찬가지로
민족이라는 감각이 근대와 함께 생겨났다고 보았다.”
“산업화에 의해 유동화한 사람들 안에서 생겨나는 동질성이 내셔널리즘을 싹트는 기반이라는 것이 겔너의
내셔널리즘론이다. 앞서 자본주의사회의 본질은 노동력의 상품화라는 마르크스의
입장을 소개했는데, 내셔널리즘 형성에도 노동력의 상품화가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스미스
“민족을 상상의 정치적 공동체라고 여긴
앤더슨과 달리, 스미스는 근대적인 네이션을 형성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보았다. 이 ‘무언가’를 나타내는 개념이 고대
그리스어인 에스노스ethnos
또는 현대 프랑스어인 에스니ethnie다.
그렇다면 에스니란 무엇인가? 스미스는
“에스니란 공통의 조상·역사·문화, 어떤 특정 영역과의 결합을 지니며 내부에서의 연대감을 소유한, 이름을 가진 인간 집단”이라고
정의했다. 스미스에 따르면 근대적인 네이션은 반드시 에스니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에스니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 인위적으로 민족을 창조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에스니를 가진 집단이 반드시 네이션을 형성하지는
않는다. 그 가운데 지극히 일부가 네이션의 형태를 취하는
것이며, 네이션이 온전한 자기 국가를 가지는 경우는 더욱
제한된다. 이 에스니라는 개념이 역사와 결합함으로써 정치적인 힘이
탄생한다. 이 힘에 의해 에스니는 ‘민족’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저자는 지식인들이 앤더슨이나 겔너의 도구주의를 더
선호하지만 원초주의에 가까운 스미스의 ‘에스니’ 개념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한다. “민족을 만드는 것은 언제나 문화 엘리트”였다는 점에서 그렇다. 스탈린이
이슬람원리주의혁명이 확대되는 것에 위기를 느껴 1920년부터
1930년대까지 투르키스탄을 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투르크메니스탄·카자흐스탄 이렇게
다섯의 민족 공화국으로 분할한 것도 이에 해당한다. 이것은 관주도 내셔널리즘의
전형이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민족의식에 종교 문제까지 엮이니 문제
해결은 더 요원해 보인다.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세계화가 진행된 결과,
제국주의 시대가 찾아온다는 사실은 앞 장에서 설명했다.
이와 동시에, 제국주의 시대에는 국내에 커다란 격차가
발생해 수많은 사람들의 정신이 공동화空洞化한다.
이 빈 곳을 메울 가장 강력한 사상이 내셔널리즘인 것이다.
신제국주의가 진행되고 있는 현재, 내셔널리즘이 다시금
소생하고 있다. 합리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내셔널리즘은 근현대인의 종교라고도
할 수 있다.”
●
종교-기독교와
이슬람교
기독교를 원천으로 삼은 EU와 이슬람을
원천으로 삼은 IS 사이에는 역사적으로 얽히고설킨 게 참
많다. 제국주의 시대부터 서양의 내정 간섭이 문제를 더 첨예하게
만들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시리아는
프랑스의 위임통치령이 되었다. 프랑스는 시리아를 지배하기 위해 알라위파를
중용했고, 현지 행정과 경찰·비밀경찰에 알라위파를 임명했다.
식민지를 지배할 때 소수파를 우대하는 것은 상투적인 수단이다.
다수파 민족이나 종교집단을 우대하면 독립운동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에 소수파를 우대함으로써 종주국에 의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1994년에 제노사이드genocide가 벌어진 르완다에서도 종주국인 벨기에는 소수파인 투치족을
다수파인 후투족보다 더 우대한 바 있다. 이와 같은 특수한 사정을 떠안고
있었던 시리아에 아랍의 봄이 밀어닥쳤을 때, 상황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아랍의 봄이 일어난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반체제세력이자
수니파인 무슬림동포단이 존재를 드러냈다.”
내셔널리즘의 대두로
절대자의 위치에 민족이 들어옴으로써 국가와 민족이라는 대의 앞에 국민이 목숨을 바쳐 헌신하는 구조가 완성되었고 인간은 세계대전을
치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인한 대량의 살인과 파괴는 이성과 무신론으로
이루어진 계몽의 시대를 산산조각으로 박살냈다. 무신론의 시대, 즉 계몽의 시대는
1914년에 끝을 고했고,
그와 동시에 ‘불가능의 가능성으로서의
신’을 이야기하게 된 것이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부터였다.” “미국은
유럽과 달리 제2차 세계대전을 겪었어도 여전히 계몽정신이 왕성했으므로
비합리적인 정념(전근대적인 ‘보이지 않는 세계’)이 인간을
움직인다는 감각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계몽사상이나
합리적인 사고가 가져오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통찰이 작동하지 않았으며,
문제를 나중으로 미루어두기만 했다. 그 영향은
21세기인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유럽 지식인들이 격투를
벌였던 계몽의 어둠이라는 문제를 외면하고 만 것이다. 그때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 청구서가 되어 날아온 현재, 격차와 빈곤, 배외주의, 영토
문제, 민족 분쟁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EU 탄생 목적은 내셔널리즘 억제에
있었다. 세계대전으로 막대한 피해를 본 그들로서는 전쟁만큼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가톨릭·프로테스탄트 문화권의 결합이었다.
EU가 러시아나 우크라이나로 뻗어가지 않은 것은 정교회 문화권을 포섭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이 “종교적인 가치관을 중심으로
한 결합에는 민족이나 내셔널리즘을 초월하는 방향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IS도 글로벌한 이슬람주의를 통해 국가나 민족이라는 틀을 극복하고자 하지만 문제는 “국가나 민족이라는 틀을 초월해 인간을 살해하는 사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고민한 저자는 앤서니 스미스의 에스니론이
이슬람원리주의를 무력화할 열쇠를 쥐고 있다고 말한다. “이슬람계 여러 민족에
존재하는 에스니를 자극해 이슬람교에 대한 귀속의식보다도 민족의식을 강화”해
이슬람원리주의의 침투를 막는다는 것인데, 이 맞불 작전이 제대로 먹힐지는 잘
모르겠다.
[정리]
이 책 속에서 전개된 역사 흐름은 다음 단락으로 요약된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자본주의가 세계화를 향해
나아가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빈곤과 격차 확대라는 현상이 나타난다. 부와 권력의
편재가 초래하는 사회불안과 정신의 공동화는 사회적인 유대를 해체하고,
모래알처럼 분리된 개인을 고립시킨다. 그러면 국가는
내셔널리즘을 통해 국민들의 통합을 꾀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제국 내의 소수민족은 정도의 차는 있겠지만 민족 자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와 같은 동향을 보아도 구제국주의와 신제국주의는
유사하다. 위에서부터의 관주도 내셔널리즘이나 배외주의적인 내셔널리즘으로
사람들이 동원당하는 한편 합스부르크제국에서 체코 민족이 각성했듯이, 현대에서는
스코틀랜드나 오키나와가 에스니 발견에 기초해 스스로 민족 정체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현재의 국민보다 더 하위의 네이션,
즉 더 작은 민족에게 주권을 가지게 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등장한다. 제2장의 핵심을 이루었던
아날로지는 이상과 같다.
오키나와나 스코틀랜드와는
대조적으로, 국민국가의 위기를 지역과 영토를 초월한 이념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바로 종교적인 이념이다. 이번 장에서 보았던 것처럼 시대는 다르지만 기독교에서나 이슬람교에서도 사회 위기에
복고주의·원리주의적인 운동이 일어나 지역과 영토를 초월해 확산된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현대의 EU도 관점에 따라서는 서로마제국, 나아가 로마제국으로의 회귀일 수도
있다.”
그리고 저자가 생각하는 대안은 이렇다.
“첫 번째는 다시 한 번 계몽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인권·존엄·사랑·신뢰 같은 손때 묻은 개념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 즉 바르트가 말하는 ‘불가능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전근대의
정신, 바꾸어 말하자면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감각을
연마하는 것이다. 이 장에서 몇 번이고 서술한 대로, ‘보이는 세계’를 중시하는
근대의 정신은 구제국주의 시대에 전쟁이라는 파국을 초래했다. 신제국주의
시대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도 확실히 존재하는 그 무엇이 재부상하리라고
본다.”
잘 될까. 매우
공감하며 읽긴 했지만 이 밤 뒤에 아침이 오리라는 건 현재에서는 늘 예측과 희망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하루 더, 일생을 노력한다.
※ 정리할 내용이 많아 아주 개괄적으로 이 리뷰를 썼다.
저자의 해석 깊이가 얕다고는 결코 생각되지 않았다. 지젝을 읽었을 때를 생각하면 헤겔의 변증법을 후시지로 다이조처럼 생각할 것만도 아니고, 아날로지 즉 유추적 사고의 맹점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책을 읽고 공감하든 반박하든 당신의 아날로지 사고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므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