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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같은 소리 하네 - 과학의 탈을 쓴 정치인들의 헛소리와 거짓말
데이브 레비턴 지음, 이영아 옮김 / 더퀘스트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비보를 들었다. 헛소리와는 정반대인 촌철살인 발언을 하던 한국 정치인 한 분이 돌아가셨다. 그런 분들의 뜻을 이어가고 싶고, 믿을 만한 사람도 정보도 가리기 어려운 세상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경계 지침들을 잘 챙겨 이 글을 써야겠다 생각하니 마음 부담이 컸다.
이 책은 2016년 11월에 탈고되었고 2017년에 나왔다. 저자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 당선되기 전에 이 책을 내 그를 언급하지 못한 걸 매우 애석해하며 머리말에서 첨언했다. 트럼프의 발언은 과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부족하고 상식에서 크게 벗어난 주장이라 분석할 가치조차 못 느껴 주로 웃고 말게 된다. 그러나 그의 터무니없는 말 대포는 해도 해도 너무 많다.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부정적 영향은 무시 못 할 게 된다. 게다가 그는 세계 최강국 중 하나인 미국의 지도자이지 않은가!
이 책 원제 『Not a Scientist - How Politicians Mistake, Misrepresent, and Utterly Mangle Science』이기도 한 “내가 과학자는 아니지만”은 미국 정치인들 특히 공화당 정치인들이 처음 썼고 즐겨 쓰는 수사인데, 자료와 분석을 언급하며 전문가는 아니지만 전문가인 척하는 그 겸양 뒤에는 숨은 의도와 오류가 가득하다. 저자는 과학적인 걸 내세우며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그들의 사례를 여러 항목으로 분류해 지적했다.
1. 지나친 단순화 : 과학적 실수, 왜곡, 훼손 중 가장 기본적인 형태. 임신 20주 이후 낙태금지법 통과를 위해 태아가 언제 통증을 느끼기 시작하느냐를 두고 설왕설래되는 상황과 마리화나가 입문용 약물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문제가 소개되었다. 한국에서도 마리화나에 대한 관심이 계속 제기되어 조금 덧붙이면, 니코틴과 알코올 같은 다른 합법적인 약물들도 비슷하거나 훨씬 더 심한 입문 효과가 있다. 더 중요한 요인은 ‘특정 약물을 얼마나 쉽게 구할 수 있느냐’이고, 그에 따라 입문 효과의 강도가 달라진다. 술을 구하기도 마시기도 쉬운 한국에서 주취폭력 문제가 심하고 사건 발생 시 감형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도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다.
2. 체리피킹(자기에게 유리한 정보만 골라서 취하고 더 큰 증거를 무시해버리는 것) :
저자는 기후변화 문제성에 특히 관심이 많아 그와 관련된 사례를 많이 가져왔다. 2009년 연구 발표에서 최고·최저 기온 비율은 2:1이었지만 21세기 중반 즈음이면 그 비율은 20:1로 예상된다. “2100년이 되면 최저 기온이 한 번 경신될 때마다 최고 기온이 50번 경신될 것이다.” 지금도 더워 죽을 맛인데 장차 살아가게 될 인류의 여름이 더 걱정되는 소리다.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행동에 제동을 걸려고 체리피킹 하는 정치인들이 인면수심이라 생각되는 대목이다.
“알래스카주 빙하에 관한 최근의 한 연구에 따르면 얼음이 해마다 75기가톤씩 사라지고 있다. 1기가톤이라고 하면 대수롭지 않게 들릴지 몰라도 이는 10억 메트릭톤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이게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보고 싶다면, 아프리카 코끼리 1억 마리나 흰고래수염 600만 마리 또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3천 채를 상상하면 된다.”
3. 아첨과 깎아내리기 : 어느 나라든 예산 배분은 늘 골치 아픈 문제다. 미국의 한 정치인은 예산안을 깎을 생각에 나사(NASA)의 우주 개발을 칭찬하면서 지구와 대기권을 연구하는 허튼짓 말고 우주 탐사라는 진짜 목표에 전념하라는 헛소리를 했다. 지구 과학이 기본 중에 기본이며 나사(NASA) 창립에 그 뜻도 있다는 걸 모르는 소리다. 부시 행정부 때 미국 국립보건원 예산도 줄이기 위해 이런 전략을 썼는데, 긍정적인 걸 거론하며 부정적인 행동을 하는 고의성이 짙다. 저자는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오류와 수사적 장치 중에서도 악질”이라고 강조한다.
4. 악마 만들기 : 공공의 적을 만든다는 점에서 이 전략은 아주 무시무시하다.
여기서는 2015년 초반 디즈니랜드에서 홍역이 발생하자 그 원인을 영세한 나라의 밀입국자, 불법체류자들에게 돌린 정치인들의 사례가 나온다. 실상 개발도상국들의 홍역 예방접종률이 최고 선진국 미국과 비슷하거나 더 높다.
백신에 대한 신뢰 부족과 공포가 ‘백신과 자폐증’을 연결하는 소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는데, 이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문장 중 하나인 “상관관계가 반드시 인과관계는 아니다”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5. 블로거에게 떠넘기기 : 매우 중요한 이야기이므로 기후변화 얘기는 계속된다.
국립아카데미 산하 국립연구회의NRC는 1979년 보고서에서 이미 세계의 온난화를 엄중히 경고했다. 기상 이변을 매해 경험하면서도 우리는 안이하고 어리석게 “그냥 두고 보자는 정책으로” 실수를 오랫동안 되풀이하고 있다. 데이터를 제멋대로 고치고 꼬아서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진위 여부를 확인할 사람이 거의 없을뿐더러 잘못되어도 책임을 떠넘기기도 쉬우니 “기후변화를 부정하고 싶은 정치인에게 인터넷은 솔깃한 헛소리들이 모여 있는 완벽한 노다지다.” “지구냉각화 미신이 끈덕지게 지속되는 이유는 수십 년 전에 나온 특정 기사들 때문이라기보다 오늘날 인터넷상에서 사람들이 그 내용을 반복적으로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로거들이여, 제발 업데이트와 교차 체크 좀 하고 살자!
태아조직 기증의 적법성도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태아 세포는 홍역·풍진 백신 개발에 사용됐고 소아마비 백신 배양에도 일조했다.” 의학진보센터의 영상들을 잘못 해석하고 생명 존중과 윤리를 외치며 격앙된 분위기 속에 한 남자가 가족계획연맹 진료소에 침입해 여러 사람을 살인하는 사건도 있었다.
비슷하게 한국에서는 ‘지라시’ 운운하며 인용을 가볍게 여기는 정치인들이 많다. 공직자라면 그런 행동은 비난받을 만하다.
“‘블로거에게 떠넘기기’는 어떤 면에서 정치인들에게 거짓말을 허용해주는 무임승차권과 같다. 다른 사람의 주장을 인용하는 사람을 비난할 수 있을까? 비난해야 한다. 보통의 블로거들과 달리 공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만큼 정치인들에게는 과학에 관한 한 더 높은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어리석고 터무니없고 몹시 위험한 헛소리를 그대로 옮기는 행태를 제대로 지적하면 다방면에서 유익한 결과를 볼 수 있다. 낙태와 관련된 잘못된 정보가 퍼지는 것을 막으면 극단주의적인 폭력사태를 줄일 수 있고, 기후학에 대한 신뢰를 쌓아올리면 사람들의 행동을 촉구해 말 그대로 세계를 구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
6. 이 외에도 복잡한 과학적 쟁점을 유치한 얘기로 둔갑시켜 사람들이 그저 고개를 저으며 웃게 만들어버리는 ‘조롱과 묵살’, 논점을 호도하는 ‘문자주의적 논리’, 불확실성을 강조하며 핵심을 흐리게 만드는 ‘확실한 불확실성’, 주장에 맞추기 위해 ‘철 지난 정보 들먹이기’, 아무 말 대잔치로 만들어버리는 ‘정보의 와전’,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기 쉬운 ‘순수한 날조’ 등의 사례를 살펴볼 수 있다. 미국 사례이었지만 한국 정치인들 행태와 비슷해서 다른 분들도 공감할 부분이 많을 것이다.
저자는 어떤 유형이든 과학적 발언을 평가하는 데 가장 좋은 요령을 이렇게 설명한다. “정말 희한한 소리처럼 들리면 실제로 헛소리일 확률이 높다!(주의: 양자물리학 법칙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기이함이야말로 양자물리학의 특징이니까.)"
끝으로 한국 뉴스계의 지각변동을 보여준 사례인 JTBC 뉴스룸 칭찬을 한 마디 하고 싶다. 이 뉴스에서 내가 좋아하는 코너는 ‘팩트체크’와 ‘비하인드 뉴스’다. 그들도 사람이라 간혹 실수도 하고 내가 동조하기 어려운 논점일 때도 있지만, 시청자들이 놓쳤을 수도 있는 정치인 발언들과 그 사실 관계를 따져줘서 긍정적인 역할이 크다. 일반인이 기자들처럼 이런 세세한 걸 다 살펴가며 생각하긴 어렵다. 그러나 어느 하나만이 옳을 수 없는 이 복잡한 세상에서 우리가 생각을 게을리하는 순간 잘못되고 삐뚤고 기울어지는 풍조에 일조하는 결과가 된다.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책임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도 일독할 만한 책이다.
※ 아직 논란이 많은 유전자 변형(GMO) 식품에 대해 저자가 과학을 너무 과신한 나머지 ‘불확실성에 바탕을 둔 확실성’으로 말하는 게 아닌가 싶어 별점은 높게 주지 않았다.
※※ 사진에 나온 요거트는 간접 광고는 아니고 요즘 제가 맛들인 간식;; 알라딘 7월 굿즈 책 라디오 넘 이쁨♥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