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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랄프 로렌
손보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평점 :
우리는 일기와 편지를 구분한다. 시와 소설도 구분한다. 그런데 일기는 ‘나에게 쓰는 편지’로 은유되기도 하고, 일기처럼 쓴 시와 소설, 편지의 형식을 빌린 여러 창작물이 나오기도 한다. 작품은 작가의 것이지만 이해는 독자의 몫이기도 하다. 즉 어떤 것도 절대적 위치에 있지 않다. 우리는 한 번만 사는 인생이라 무엇이든 답처럼 명확하길 바란다. 세계가 우리가 정말 명확하긴 한가? 인간의 가정에 지나지 않는 시간까지 포함해 4차원만 볼 수 있는 우리가. 그러나 결정론자들은 그럴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소설은 금방 사실로 드러날 것들ㅡ원자 폭탄 이름, 미치오 가쿠 이름, 랄프 로렌ㅡ을 허구로 변환했다. 왜? 사실과 정보를 잘 모르는 사람은 그럴듯하다고 여기며 기억으로 저장해가며 읽어 갈 테고, 허구를 파악하며 이야기를 따라가는 사람은 대번에 흥미를 잃든지 진의가 뭔지 궁금해하며 따라갈 것이다. 즉 소설 자체 이야기뿐 아니라 독자가 만든 여러 갈래의 길로 아주 복잡한 소설 읽기가 된다. 그러니까 왜?
이 이야기는 종수의 일기이자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이자 소설이 만들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뛰어난 영재였던 그가 타국에서 인생의 실패자가 되었을 때, 인생의 실패자가 될 거라 여겼던 수영이 보낸 청첩장(무려 7년 전)을 발견하는 순간은 묘한 도치를 보여준다.
수영이 종수에게 번역을 요청한 ‘디어 랄프 로렌’으로 시작한 편지도, 그들이 편지를 쓰기 위해 함께했던 시간도 이제 없지만 ‘디어 종수’로 시작하는 수영의 편지는 미처 사라지지 않은 증거로 남아 있다. 수영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디어’의 의미처럼 아련하게. 랄프 로렌 컬렉션을 완성하기 위해 금지된 알바를 하고 수집품에 없는 시계를 가지기 위해 일기 같은 글로 랄프 로렌에게 편지를 보내겠다는 수영을 종수는 한심하게 여겼지만 부모 뜻에 따라 공부만 좇았던 종수의 삶이 더 무력했다는 걸 그는 이제야 깨닫는다. 그들의 편지가 랄프 로렌에게 도착했는지 알지 못한 채 그때로부터 9년 뒤 종수는 랄프 로렌의 생애를 추적한다. 이 세계에서는 살아 있는 랄프 로렌이 죽어 있는 소설의 세계로 더 깊숙이.
인터뷰어 중 한 사람이었던 헨리 카터의 말(“나의 말이 나의 기억을 불러오는군요”)처럼 더너웨이의 영화를 반복해서 보며 ‘나의 기억이 나의 기억을 불러온다’고 종수가 오열하듯이 이 소설이 불러오는 역사와 기억과 말의 소용돌이가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불러온다. 우리가 열광했던 것들, 우리가 놓쳤던 것들, 우리가 실패했던 것들, 우리가 좇았던 수많은 의미와 무의미들. 우리가 몰두한 건 정확히 무엇이었을까.
소설 속 다른 인물들도 다르지 않다. 미래에 전혀 도움이 안 될 걸 알면서도 중요한 학창 시절에 수영은 랄프 로렌에 집착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을 기대할 정도로 대단한 기쿠 박사는 본업만큼 열중했던 피겨스케이팅을 수상 실패를 겪을 때엔 더 몰두했다. 천재적인 시계 수리공이었던 조셉 프랭클은 본업을 키우지 않고 매번 얻어터지는 권투에 일흔이 넘을 때까지 몰두했다. 사업 확장에 도움이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랄프 로렌은 시계 사업을 거부했다. 타인의 삶을 돌보는 입주 간호사 섀넌 헤이스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돌보는 환자가 죽어야 다른 환자나 자신을 돌볼 수 있다. 종수는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전혀 몰랐던 사람들을 알게 되고 그들 또한 랄프 로렌에 대해 말하면서 잊었던 다른 기억들을 떠올렸다. 어린 랄프 로렌을 거둬 키웠지만 배신당한 조셉 프랭클의 더 기이한 과거, 무례하고 직설적이기만 한 줄 알았던 섀넌 헤이스의 비밀스러움, 백네 살의 레이첼 잭슨이 끝까지 감추려 한 것들. 인터뷰 때마다 잠드는 잭슨 할머니가 잠이 들면 자신의 내밀함을 고백하던 종수. 이들에게 무엇이 진실이고 소중한 것일까. 그것들은 타인의 눈에 오히려 잘 보이지 않는다. 절대 찢지 말라는 경고가 붙었던 잡지를 찢었던 종수는 섀넌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연극을 하려고 잡지 조각을 돌려주려 했다. 그러나 잡지는 전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햄버거 가게 주인이 종수에게 도둑맞은 고양이 이야기를 하기 전까지 그에게 고양이가 무엇보다 소중했다는 걸 아무도 몰랐다. “좋은 일이 생길 겁니다” 말한들 그건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까지고 우리의 바람을 담은 말이다. 그러나 사실이 아닌데도 말을 이야기를 행동을 하다 보면 그냥 시간 낭비가 아닐 때도 있다. 그래서 우린 글을 쓰고 읽는 시간 여행을 멈추지 않는다. 우리 중 누군가는 잊고, 누군가는 뒤늦게 찾아 나서고, 누군가는 영영 안녕을 고하더라도.
ps) 뉴욕 배경에 이민자들과 외톨이들의 잃어버린 기억들,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는 동선들이 그 지역 소설가들(폴 오스터, 니콜 크라우스, 조너선 사프란 포어)과 많이 닮았다는 걸 빼면 한국에서 보기 드문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