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쫓는 자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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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젤라즈니의 작품이라고는 저주받은자 디비쉬랑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밖에 없지만, 그래도 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멋진 남자에 대해서는 엄청난 내공을 발휘하시는 듯. 별을 쫓는자는 신화SF라고 하고, 어슐러 르귄의 어둠의 왼손에 대한 젤라즈니식의 답변이라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별로 동감은 안간다. 내가 보기에는 전혀 별개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어둠의 왼손은 상당히 사회적이랄까 문화적이랄까, 기의 비행 같은 것에서도 그렇지만 어슐러 르귄은 인류학자 같은 느낌으로 세계를 그려내는데, 젤라즈니는 다분히 개인적이며 내면적인 이야기를 쓴다. 다른 것은 몰라도 별을 쫓는자는 특히. 신화적인 메타포를 활용했다고 해도 그 신화적인 경험은 빌리 내부의 경험이고 빌리의 개성과 내면의 갈등을 보여주는 장치이다. 민족전체에 대해서라든가 문화 전체에 대한 조망보다는 개인의 내면에 대한 깊이 파고들기랄까. 한 사람의 캐릭터를 그려내는데 집중한느낌.

전혀 다른 분야, 다른 시각의 것을 비교하는 건 너무 뻔하고 재미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내가 어슐러 르귄빠이긴 하지만 젤라즈니는 젤라즈니 나름의 멋이 있거든. 고독한 늑대같은 주인공이랄까. 게다가 변신외계인이 나와! 너무 좋아! 안그래도 그런 종족 하나를 생각하고 있는 와중이라서... '변신'이라는 것은 이 소설에서 상당히 큰 의미를 갖는다. 변화하면서도 살아남아갔던 나바호족, 자유자재로 변신하지만 자아를 가진 괴물... 뭐 결론을 내린다거나 다른 것을 생각하기에 일은 너무 많고 난 그저 재밌게 읽었을 뿐이고... 변신이라는 것처럼 인간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건 없다고 생각해. 그러나 자아에 대한 집착(?) 같은 것이 있기 때문에 변신에 매력을 느끼는 만큼 오히려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나봐. 우리의 캣은 그 이름만큼이나 아름답고 위험한 존재이다. 나한테는 좀 사랑스럽기까지 해서... 빌리랑 친구를 먹음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될 정도였는데.. 글쎄 역시 그건 꿈속의 이야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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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방관자의 심리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이성현 옮김 / 노마드북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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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신검시관은 그래도 구질구질한 인생 가운데에서 소주 한잔 걸치면서 따스하게 보듬어주는 선배 아저씨~ 같은 느낌이 났는데 이 살인방관자의 심리는 뭐랄까... 진짜 구질구질해서 도저히 봐줄 수 없는 인생들이 나온다. 제목이 말해주는 것처럼 살인을 저지르려 해서 저지르는 게 아니라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조금씩 일그러지고 구질구질해져 가는 모습이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다. 정리해고 당하고 가족에게 아무 말못하다가 강도로 돌변한 사내, 착한 줄만 알았던 죽은 아들의 어두운 과거, 지옥의 합숙훈련 도중 친구가 죽자 훈련이 중단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마는 현실, 가진 돈 다 털어 출마한 면장 선거에 자꾸만 떠오르는 과거의 뺑소니 사건, 모두다 일어날법한 일이며 나조차도, 난 그렇게 되지 않을거야! 라고 단언할 수 없는 그런 죄의식과 강박관념의 감옥들이 그려져있다. 읽으면 수렁에 빠져드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아니 내가 인생이라는 수렁에 이미 빠져들어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 인생이란 건 구질구질한 수렁같은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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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시의 이야기들 어스시 전집 5
어슐러 K. 르귄 지음, 최준영.이지연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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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하누에서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 이후에, 어스시의 세계는 점점더 풍요로워지고 있다. 로크의 학당이 생긴 이야기, 어둠과 황폐와 폭력이 가득한 시대에 손의 여자들이 만든 넓은 공동체망은 현대의 우리들에게도 배울 바가 분명히 있다. 운동권에서 맨날 연대, 연대 하는데, 진정한 연대라는 것은 아마도 그런 것이리라. 물론 누군가와는 의견이 갈리고, 싸우고, 느슨해지고, 흩어지게 되고 변질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변질된 것이 훗날에는 진정한 규약으로 여겨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변화함으로써 그 연대는 오히려 생명을 얻게 된다. 용의 여자가 로크의 언덕 위에서 날아올라 새 시대가 열렸음을 고한 것처럼. 오랜 세월을 건너 뛰어 게드와 테나가 함께 손을 맞잡은 것처럼.

어둡고 음습하고 작은, 차마 마법이라 불리지도 못할 마술만 부리는 마녀들과 동네 마술사들, 로크에서 뛰어나온 이들에게도 나름의 규칙이 있고 그들의 삶이 있고 긍지가 있다. 그들에게도 진리, 참 이름은 뿌리박혀 있다. 소소한 일상들, 양을 치고 사랑을 나누고 노래를 부르고 축제를 즐기는 그 삶의 수레바퀴속에서, 세계는 변화하고 나아간다.

거대한 세계의 변화를 그리는 한편, 소소한 사랑이야기이며 양이며 닭을 치고 소를 돌보고 염소를 키우는 마법사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등장해서 그 모든 것이 동등한 의미를 갖는 것임으로 보여주었다는 것이 역시 어슐러 르귄다운 솜씨라고 생각했다. 오지언의 무뚝뚝함과 그에 반하는 스승의 수더분함도 사랑스럽고, 마녀와 사랑에 빠진 얼치기 음유시인 마술사도 사랑스럽고, 게드가 만난 소환술사와 과부 여인도 사랑스러웠다.

신화와 변화와 풍속과 일상이 너무나 생생하고 깊이있게 표현되었다. 정말로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렇게 풍부하고 깊이 있는 세계관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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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더스트 판타 빌리지
닐 게이먼 지음, 나중길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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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더스트는 가벼운 소품이며 사랑스런 연인의 이야기이다. 신들의 전쟁에서 보이는 어두침침하고 장대한 느낌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지만 대척점에 선 것처럼 보이는 두 작품에도 닮은 점이 있다. 어리버리한 주인공이 킹왕짱이 되어간다는 점. 기괴한 신들의 세계에 출생의 비밀을 가진 평범한-그러나 평범치 않은 재능을 지닌 사내가 뛰어들어 좌충우돌하게 된다는 점.

요정과 목자의 신 판과 두꺼비가 된 왕자와 맥베드 같이 서로 죽고 죽이는 왕자의 유령들과 욕망으로 일그러진 늙고 못된 마녀, 새가 된 미녀와 별동별 공주님까지.... 그림동화를 재구성한 느낌의 소설이었다. 봄나들이에는 뭐 이런 가벼운 것도 나쁘지 않지. 벚꽃 날리는 정독도서관의 정원에서 책을 읽다보면 어떠한 책이라도 환상적인 걸작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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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전쟁 (상) 환상문학전집 25
닐 게이먼 지음, 장용준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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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직했다. 이전까지 암울한 날들이었다. 앞으로도 암울한 날들이 아니라는 보장은 없지만 어쨌거나 그래서 오랜만에 포스팅 게시.
취직하기 얼마전에 안되는 논문을 계속 붙들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때려치고 취직을 준비할 것인가를 가지고 고민을 좀 했었다. 그 기간은 책도 안 읽고 멍하니 앉아있거나 무의미한 웹서핑만 주구장창하거나 어쨌거나 갈피를 못잡는 나날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에잇, 때려치자 하고 취직준비를 하기로 한 날부터 마음이 편해졌는지 오랜만에 정독도서관에 가서 책도 빌려오고, 가게에서 주운, 조금은 값이 나갈 거 같은 기타로 인터넷보면서 연습도 해보고 영어공부도 해보고 그랬다. 그 와중에 신들의 전쟁을 읽은 것이다! 1년전부터, 나온다는 소문이 돌 때부터도 줄곧 보고 싶었던 그 책! 멋진 징조들, 네버웨어 모두 재밌게 보았기 때문에 절찬을 받은 신들의 전쟁(원제는 아메리칸 갓즈)은 더 재밌게 볼 수 있겠구나 생각하면서 정독에서 상권을 발견하자마자 하권을 검색, 서가에는 없지만 아무도 빌려간 인간이 없다는 걸 알고 무료해하던 사서님을 닦달하여 둘다 빌리고야 말았다. 덤으로 테하누도 다시 빌렸다.

그러니까 어쩌다보니 그날 빌린 책은 전부다 황금가지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빌려놓고 거의 바로 취직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이 미친듯이 바쁘다. 할 수 없을 만큼 바쁜 건 아니지만(어차피 생초짜라 그렇게 시키지도 않고) 토, 일 출근도 불사해야할 정도로 미친 듯이 바쁘다. 당장이야 앞으로도 내내 이런 건 아니겠지 하는 불길한 마음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은 취직의 기쁨이 가뿐히 내리누르고 있고... 조그마한 불만이 있다면 책 읽을 시간이 마땅치 않다는 점. 신들의 전쟁은 볼륨도 만만치 않은데... 그래도 일주일동안 짧은 거리를 오고가며 다 읽었다.오오 진짜 재밌었다. 나는 신화나 전설을 정말정말정말 좋아한다. 환상적이어서라기보다는 그러한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들조차 우리 인간들의 삶 속에서 우러나온 것이고, 상상된 것이고 세계의 이치를 설명하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신화나 전설은 인간의 역사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학과를 선택한 것도 신화나 전설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분해하는 작업들을 해보고 싶었는데 뭐... 거의... orz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섀도가 만나는 각종 신화적인 일들, 신과 요정과 괴물들과 영웅들의 이야기는 다분히 미국적이다. 아니 미국적일 수밖에 없다. 그 신들은 미국 이민자들이며 원주민의 신앙에서 태어난 이들이기 때문에. 알고보면 ㅇㅇㅇ와 ㅇㅇㅇ의 야바위였기에 진짜 신들이 벌이는 스펙타클한 전쟁을 기대한 사람이라면 조금 맥이 빠질 수도 있지만 신화나 역사, 인류학 따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뒤엉킨 문화 속에서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미국이라는 사회에 대해서 관심이 있다면, 혹은 막 감옥에서 가석방 됐는데 유일하게 사랑하는 아내가 불륜 저지르다 죽어버리고 X나 빌빌대던 주인공이, 나중에는 신하고도 맞짱뜨는(응?) 먼치킨이 되는 가슴 따땃한 성장소설이 보고 싶다면 읽어보시라.  

PS1.
신들의 전쟁은 원서 자체의 의도적인 농담들 때문에 번역하기가 진짜 어려웠을 듯. 주석 읽는데 눈물이 앞을 가리더라. 그런데 테하누는 이번이 몇쇄째인데 아직도 오타가 그렇게 많냐, 황금가지정도면 좀 잘 해야 할 텐데. 그렇지만 오타 따위도 감출 수 없는 감동이 있었다. 젠장. 테나 아줌마 최고! 게드 아저씨 최고! 중년의 사랑이 이렇게 귀엽고 처연하고 아무튼 ... 아! 칼레신도 너무 좋아. 

PS2.
신들의 전쟁.. 믿음에서 탄생해 믿음을 먹고 사는 신들의 한판 버라이어티... 어라? 이건 미국판 요마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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