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차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4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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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개정판을 읽었다. 어느 부분이 늘었는지, 구판이 너무 희미해서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알 것도 같다. 진행이 좀더 루즈해지긴 했다. 그렇지만 숨막히는 그 느낌이랄까 그건 여전하다. 영화판 화차에서 그 장면이 재현되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노숙자등 신원불명자 부고란을 뒤지면서 눈을 붉게 물들이고 야차처럼, '제발 죽어줘, 아빠. 제발 죽어줘.'라고 중얼거리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장면이 가장 강렬하고, 숨막히고, 괴롭다. 화차는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작품이다. 부모의 빚 때문에 나락으로 굴러떨어진 여자. 정말 평범했던 집이 점점 아주 천천히 수렁으로 빠져서 더이상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에 이르는... 그냥 놓아버리면 좋을 텐데, 진짜 나쁜 사람이라면 영리한 사람이라면 놓아버렸을 텐데, 파산이든 뭐든 했을 텐데, 그지경까지는 안 갔을 텐데. 몇번이나 되새기면서 소름끼쳐하면서 끊어내지 못하는 미련과 집착의 산물인 점점 불어나는 빚더미를 떠올린다. 아, 싫다.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중에서 내가 감정이입을 하는 바람에 읽을 때마다 좀 힘든 책 두권이 있는데 하나는 집에 대해 다룬 이유(집에 대한 내 강박관념은 고쳐지지가 않는다)고 나머지 하나가 화차다. 그렇지만 사실 난 모방범보다도 이유와 화차가 더 미야베 미유키의 굉장한 느낌을 압축적으로 담아내지 않았나 생각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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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적초 - 비둘기피리꽃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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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재밌었다. 전반적으로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나 큰 상실감을 맞게 된 사람들이 그것을 정리해가는 과정을 담은 단편집이었기 때문에 시기적절하달까, 내가 흔들리기에 좋았달까. 가장 마음에 든 건 첫번째인,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는 여자 이야기. 슬픔과 상실감을 차곡차곡 정리해가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추억이 없는 이 여자는 할머니의 죽음으로 공허한 와중에 부모님의 죽음을 둘러싼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기시작한다. 이겨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빈 마음에는 역시 자기부정밖에 남지 않는 법인지 여자가 부정적인 결론으로 나아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깨어지고 다시 누군가의 도움, 자기 자신의 도움으로 회복하는 이야기. 죽음으로 흔들려 버린 일상을 차곡차곡 복구해나가는 이야기랄까. 초능력이라는 것은 그저 감초고, 사실은 그런 이야기였다는 느낌이다. 이 여자는 죽어가는 장면의 기억을 되살려냄으로써 자신을 용서하고 상실감을 극복해서 살아갈 결심을 하게 되긴 했지만 실제로 죽은자는 말이 없는 법이라, 그에게 용서를 하든/구하든 대답을 들을 수 없고, 날 사랑했냐고 당신은 행복했냐고 묻고싶어도 물을 수 없고, 게다가 오래 아프다 죽기라도 하면 괴롭고 힘든 모습만 뇌리에 남아서 추억을 되새기고 싶어도 쉽게 되지가 않는다. 슬픈 일이다. 난 이여자 같은 초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니 별 수 없다. 그냥 사랑했다고 행복했다고 믿으면서, 한순간 한순간의 미소와 포옹과 온기를 기억하면서 그것을 힘으로 삼아서 내일을 사는 수밖에. 크로스 파이어의 원형이라는 단편은 오히려 파이로키네시스가 나오지 않았어도 상관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로스 파이어 자체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여기서의 여자에는 감정이입을 할 수 없고, 정말로 '인간이 아니다'라는 인식밖에 들지 않으니까. 좀 내용이 붕 떠있다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 여기서도 상당히 이미지가 명료하게 박혔달까 그런 장면이 하나 있다. 지금은 살해당하고 없는 여동생이 처음 걸음마를 떼어서, 복도 벽을 잡고 아장아장 걷다가 현관 턱에서 고꾸라질 때 화자가 뛰어가 끌어안고 자신이 대신 뒤통수를 부댔다던 구절. 어제 조카를 안아 드는 데 그 장면이 번뜩 떠올랐다. 작고 따스한 것. 언제까지고 보호해줄 수만은 없는 것. 보통이라면 안타깝고 아쉬워도 한 사람의 어른이 된 것에 감사하며 행복해하며 친구처럼 지내며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그 장면 때문에 남자의 상실감, 그리고 그것을 대치하듯 자라났을 분노가 극대화되어 다가왔다. 자신이 장전된 총이라고 마음대로 사용하라고 -자기 자신이 없는 것 마냥 말하던 그녀는 감정이 없는듯 공허하기만 하고. 장편화된 것을 알고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그냥 프롤로그처럼만 보일 뿐이다. 구적초는 조금 심심했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가졌다고 해서 그 능력이 없으면 형사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여자는, 아마도 내 취향이 아니었나보다. 자존감 없는 여자가 둘이나 주인공(?)이라니. 왼쪽 머리가 둔중하게 느껴지는 건 초능력이 빠져나가서가 아니라 진짜 뇌경색일 수도 있으니까-뇌경색때문에 초능력을 못 쓰게 된 걸지, 또 누가 아나! 병원에 일단 가보고 모든 수단을 써본 뒤에 포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텐데 라고 보는 내내 생각했다. 집중이 안되었달까. 그리고 마지막은 걍 커플이 되는 얘기였어. 그래서 더 열받아(응?). 내가 미야베 미유키를 좋아하긴 하지만 이런 주인공이 싫은 건 어쩔 수 없으니까 별 하나 빼고 별 네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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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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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확실한 결말, 범인이 밝혀질 때의 통쾌함 같은 걸 원하는 분들은 책을 덮으시라. 이 책은 정말로 도망자의 이야기이다. 윌 스미스가 나오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와 비견할 만하달까. 아니 그렇지 않다. 국가와 싸우지만 이 도망자는 윌 스미스처럼 전직 첩보요원 같은 동료도 만나지 못하고 심지어 누가 자신을 죽이려 하는지조차 알아내지 못한다. 원인은 그저 미궁 속에 빠질 뿐이다. 몇 십년의 세월을 넘나들며 모자이크처럼사건을 재구성하지만 그렇다해도 전지적 작가시점은 아니다. 왜냐하면 범인의 시점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오는 화자는(3인칭이긴 하지만) 모두다 우연히 휘말린 사람들, 밖에서 구경만 하던 사람들밖에 없다. 그로 인해 마지막까지도 우리는 출구가 없는 미로에 갇혀 빙빙 돌고 있는 것 같은 갑갑함을 느끼게 된다. 이사카 고타로의 이야기는 언제나 그랬다. 호쾌하고 흥미진진한 그의 묘사 뒤에는, 언제나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는 복잡한 세계가 숨어 있었다. 나치시대 독일에서나 나타날 것 같은 악의 평범성, 정체를 파헤칠 수 없는 거대한 권력집단... 국가가 (어떤 이유에서든지) 한 개인을 적으로 몰아붙인다면 그 개인은 얼마나 무력할 수밖에 없는가가 단순한 탈주극 같은 스토리 속에 절절히 묻어난다. 똑같이 국가에 의해, 권력 집단에 의해 누명을 썼지만 골든 슬럼버의 주인공은 에너미오브스테이트처럼 멋있게 음모를 파헤쳐 누명을 벗어나지 못한다. 고래와 마주치면 그저 미친듯이 도망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것, 승리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다는 것이 유쾌하기까지한 문체 속에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패배주의적인 작품은 아니다. '살아남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거대한 재해-개인을 짓밟아 자기 뜻대로 조종하려고 하는 세력의 의도를 일그러뜨리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문체가 경쾌하여 시니컬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축축 처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평범하고 작은 사람들의 작은 용기가 거대한 세력의 공포와 마찬가지로 뚜렷하게 나타나 있기 때문에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음 마치... 그래 말하자면 재해물 같다. 인간이라는 이름의 재해지만, 어쨌거나 인간이 이겨내거나 해결할 수는 없는, 그저 살아남으면 다행인 그런 재해. 단테스 피크나 볼케이노에서는 화산을 막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피해를 줄이고 살아남는 것이 목표가 아닌가. 겨우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그 극복기에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나... 골든슬럼버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이란 것은 그런 것인 모양이다. 스릴러나 추리물을 기대하면 실망할 수밖에 없는 건 역시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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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간이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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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미야베 미유키. 슬프고 슬프면서 동시에 또 희망은 조그맣게 남아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사람들 속에. 그리고 뭐라 말할 수 없는 미야베 미유키만의 또하나의 특징... 기특하고 예쁜 소년들!! 짱구도 귀엽고, 누구라도 홀릴 정도로 예쁘장하지만 오줌을 지리는 버릇이 있는 유미노스케도 귀여워 죽겠다. 둔하고 아픈데도 어떻게든 잘 배우고 따르려는 걸 보면 조스케도 무척 귀엽다. 아 죄다 이쁘고 귀여워...

솔직히 말하자면 중년 아저씨인 헤이시로랑 아줌마 오토쿠도 ... 한없이 머리비고 가볍게만 보이지만 배려심있고 따스한 성품인 오쿠메도 성실하고 바르며 힘든 일이 있어도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하는 사키치도...... 다들 어찌나 이렇게 사랑스러운지 정말로 코끝이 찡할 정도다.

그런데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들을 어째서 그렇게 괴롭혀야 하는 건지... 헤이시로의 마음이야 말로 나의 마음. 그냥 적당히 못보고 넘어가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적당히 둔하게 살아왔지만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당히 못보고 넘어갈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문제다. 너무나 약해서 너무나 쉽게 어둠에 빠져들고 마는 사람의 마음을 보면 헤이시로처럼 어쩐지 가슴이 짠해지지 않을 수 없나보다. 그것은 구경꾼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걸까. 아니 애초에 소설이니까 그런 거기도 하겠지만 말이야. 세상엔 진짜로 우습고도 슬픈일이 너무나 많다. 우스꽝스럽다고 할까. 끔찍한 범죄들, 연쇄살인마보다 사실 우리가 더 현실에서 만나기 쉬운 건 이 책에 나온 것 같은, 그런 사소한 미움과 증오가 쌓이고 쌓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긴 세월 병수발에 말라비틀어져 가는 마음, 마음을 주지 않는 지아비-이제는 제맘대로 뭐든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의 마음 같은 것이야 말로 가장 무섭고 가장 슬픈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씩씩하게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겠지만 약하고 약한 인간은 너무나 쉽게 어둠에 빠져들고 마니까. 조금만 마음을 돌리면 얼마든지 '편해지고 마니까'. 현실이 괴로우면 그 괴로움을 풀 상대를 찾으면 되겠지. 다른 사람, 다른 무언가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고 외면하고 조금만 도망치고 조금만 고개를 돌려버리는 거다. 아니면 자신만의 괴로움에 빠져서 괴로움에 빠진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겠지. 절망과 괴로움에 눈앞이 캄캄해져서 다른 방법따위 눈에 보이지 않게된 약한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얼마든지 그렇게 되고 말 것이다. 누구나 쉽게. 그렇게 되지 않는 사람이야 말로 드물겠지.

여기에는 그런 쪼잔하고 불쌍한 악당이 몇명이나 등장하는 데다가, 자신은 전혀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사태를 더욱 키우는 이상한 놈까지 등장한다. 보다보면 느긋한 헤이시로가 왜 분통을 터트리는지 절절히 공감하게 된다. 정말이지 얼간이 같다.

어째서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들과 보고 있기 괴롭고 답답할 정도로 약하기만 한 사람들 천지인지... 그러나 그것이야 말로 우리의 세계,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이라고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

해피 엔딩도 아닌 것이...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가지만 그래도 슬픈 상처가 가슴에 흉터로 남아서, 이것만은 어쩔 수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건, 희망보다 그런 것이 먼저 보이는 것은 내가 요즘 우울해서 그런 것일까.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것이라지만, 가끔은 그런 것이 힘들 때도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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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0-08-25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대는 달라도 사람들의 면면이 참 겹치는게 인간인듯 싶습니다~
진화나 발전은 말장난인거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전진만 있는거죠! 같이 힘내시자구요*^^*

夢影 2010-08-30 15:33   좋아요 0 | URL
예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어디서나 닮아 있는 듯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진해야지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1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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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별 다섯게는 가능하다.
의학 스릴러.... 는 아니고 의학 추리이다. 그 둘의 차이가 뭐냐면 로빈 쿡과 가이도 다케루의 차이랄까... 뭐 그런 것이다. 길게 쓰면 스포일러가 되므로 줄거리 요약은 생략한다. 가이도 다케루의 단편을 판타스틱에서 먼저 읽었기 때문인듯, 보면서 음 이 두녀석 이렇게 만났군... 아무튼 둘다 제정신은 아닌데. 라는 생각을 했다. 일본 정통 소설에나 많을 법한 괴짜 탐정(이걸 탐정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좀 모르겠다만)이 메스를 마구 휘둘러 비비꼬인 사건의 전말을 파헤친다. 믿으면 바보. 결말은 좀 허무하고, 계속해서 진행되던 이야기와는 조금 동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거기까지 끌고 나가는 이야기와 캐릭터의 힘은 정말 강력하다. 그냥 소심한 왓슨 역이라고 하기엔 그렇게 휘둘리기만 하지는 않는 주인공도 마음에 들고... 음 괴짜다 못해 보통 사람이라면 역시 좀 두들겨 패고 싶을 법한 탐정씨는 약간 거북하긴 하지만 호쾌한 맛이 있어 좋고... 심지어 용의자들조차도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이러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을 했다. 젠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사태를 조종하는(?) 우리 원장쌤도 오오 이런 반장님 캐릭터(응?) 하나쯤은 있어야지. 싶어서 마음에 흡족했고. 그냥 소악당 같은 사람들에게조차도 나름의 기준이랄까 뚝심이 있어서 완전히 나쁘고 못난 놈은 아니게 그려졌다는 점이 또 새로웠다. 만화적으로 강렬하면서도 단순화한 캐릭커쳐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뭔가 더 숨어 있을 듯한... 그 미묘한 몇겹의 캐릭터 묘사가 그야말로 발군이었다. 그래서 더욱 사건의 전말이 생뚱맞게 느껴진 것이지만. 그것도 그렇게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지만, 좀더 관련 암시가 많아야 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얼른 다음편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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