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1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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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역사 속의 인물에 대해 우리가 언급하고 말하는 것을 '호출한다.'라고 말한다고 한다. 사후에 조차 후손들에게 항상 불러내져서 제멋대로 미화되고, 혹은 폄하되고 왜곡되어 버린 사람들은 어떤 기분일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학술제가 끝나고 뒷풀이를 갔을 때, 선배가 그런 말을 했다. 역사 속의 사람을 '호출'하는 건, 그 사람 자체를 호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모습이 투영된 왜곡된 사람을 호출하는 것이라고... 어쨌거나, 선배도 김훈의 칼의 노래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 기뻤다. 칼의 노래의 이순신은 김훈이 투영된 이순신이다. 삶이란 허무하고 또 허무하지만, 그안에서도, 그 허무안에서도 자신이 갈길은 가겠다고, 그안에도 인간이란 존재하고, 따스함이란 존재한다고... 이순신의 건조한 뇌까림에서 말하고 있다. 나는 잔뜩 부풀려지고, 미화되고, 영웅으로 떠받들여지는 이순신보다도, 고뇌하면서도 먼 곳을 바라보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인간 이순신이 더 존경스럽다. 아무래도 먼 딴나라 사람보다는 곁에서 함께 숨쉬는 사람을 더 존경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는가. 나는 김훈의 이순신을 존경하고, 그런 글을 쓴 사색가 김훈을 존경한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아들의 죽음을 소식으로 듣고, 광에 가서 홀로 울었다는 부분이었다. 덕지덕지 포장되지 않은 간결하고 건조한 말투로, 그는 울었다고 이야기했다. 그 무심한 어조때문에 내가 그 글속의 이순신보다 더 많이 울어버렸다.

작가는 나이를 알 수가 없다. 용기와 열정 같은 젊은이의 마음과 냉정한 통찰력과 포용력같은 늙은이의 마음을 모두 지니지 않으면 제대로된 글을 쓰기는 힘들 것 같다. 김훈은 이미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어버린 사람이겠지만, 나는 아직 겨우 그 반을 살았을 뿐이다. 삶의 허무를 꿰뚫어보기엔 아직 미숙하고, 겨우 밑도 끝도 없이 희망을 말할 뿐이다. 자전거 여행에서 그는 태어나고, 자라고 죽는 것을 이야기한다. 칼의 노래에서 그는 떳떳한 죽음을 그리는 이순신을 말한다. 이순신은 적을 막아 내는 것에는 열정을 가졌고, 그 적조차도 인간이고, 이 아군조차도 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통찰력이 있었다. 그래서 김훈의 글에서는 이순신의 나이를 짐작할 수가 없다. 그래서 김훈의 나이를 짐작할 수 없다. 그 건조함과 담담함이 그저, 많은 것을 보고 겪은 사람이겠구나... 하고 짐작하게 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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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자들 환상문학전집 8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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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자들은 헤인 시리즈의 한 편이다. 내가 본 헤인 시리즈는 어둠의 왼손까지 겨우 두편인데, 나는 그 두편을 읽으면서 두곳에 함께 흐르는 유토피아에 대한 이상, 향수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감동받았다. 그래 감동받아버리고 말았다. 눈물을 펑펑 쏟는다거나 그런 겉으로 드러나는 감동은 아니지만 가슴 속 깊숙히 그 따스함, 유토피아에 대한 동경, 서로가 인간으로서 서로를 존경하는 것, 권력에 대한 반대로서의 아나키즘이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이 글에서의 아나키즘, 쉐벡이 추구하는 아나키즘은 정치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억압하지 않고 이해하며 포용하는 그 행위자체, 혹은 그런 사회를 의미하는 것 같았다.

아나키스트의 별인 아나레스에서는 모든 것이 자유이다. 공적인 권력체는 존재하지 않으며 법이나 도덕이라는, 인간을 강제하는 수단은 대외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자유는 암묵적인 규범에 의해 희생되곤 한다. 쉐벡이 아나레스를 떠나올 수 밖에 없었던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천국처럼 보이는 우라스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아나레스에서는 집단의 암묵적인 동의로서 이루어지는 숨은 권력이 개인을 억압한다면, 우라스에서는 공개적이고 드러난, 합법적 권력이 수많은 개인들을 억압하고 있었다. 그래서 쉐벡은 우라스에서도 견뎌내지 못하고 탈출하고 만다. 그렇지만 그는 그 어떤 것에도 이상을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어떤 사회에서든지,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을 다하면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진정한 권력에 구애되지 않는 아나키스트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렇게 앞을 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정말로 어디에서든지, 설사 진흙탕 속 같은 곳에서라도 빛이난다. 그들은 잊혀지지 않고, 빛을 낸다. 그 아름다움은 누구나 알아볼 것이다. 그 바른 눈동자를 생각한다. 아마도 쉐벡이나, 그의 반려, 헤인에서 온 사람들, 이상을 위해 목숨을 버리고 시위에 나선 노동자들, 베다프까지... 그들은 그 아름다운 눈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떤 곳에서든지, 자신들이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일을 하고 있을 것같다.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서서, 맑은 눈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 사실이 감동적이었다. 아름다웠다. 한 사람 한사람, 글 안의 사람들이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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