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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호랑이가 북곽 선생에게 뭐라고 했길래 '虎叱'인가 했더니, 과연 이런 말을 했더라.

 

우리는 풀과 나무를 먹지 않고, 벌레나 물고기도 먹지 않고, 술과 같이 좋지 않은 것을 즐기지 않는다. 산에 들어가면 사슴을 사냥하고, 들에 나오면 말과 소를 사냥하지만 먹는 것을 가지고 서로 해치거나 싸우는 일이 없다. 그런데 너희들은 우리가 사슴을 잡아먹을 때는 아무 상관 하지 않으면서 소나 말을 잡아먹으면 원수로 알더구나. 그것은 사슴과 달리 말과 소가 너희들에게 쓸모가 있기 때문이겠지.

그러나 너희들은 말과 소가 날마다 태워 주고 일해 주는 공로는 아랑곳없이 푸줏간이 미어지도록 잡아 죽이고 심지어 뿔이나 갈기까지도 남겨 두지 않더구나. 그러고도 모자라서 산과 들에 있는 사슴까지 마구잡이로 잡아들여서 우리를 굶주리게 한다. 그러니 하늘의 뜻에 따라 공평하게 한다면 우리가 너희를 잡아먹어야겠느냐, 잡아먹지 말아야겠느냐?

너희들은 밤낮없이 팔을 걷어붙이고 눈을 부릅뜨고 함부로 남의 것을 훔치고 빼앗으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지. 그러고서도 인륜의 도리를 논할 수 있겠느냐? 그뿐이냐. 메뚜기한테서 밥을 빼앗고, 누에한테서 옷을 빼앗고, 벌한테서 꿀을 빼앗아 먹지. 또 걸핏하면 하늘의 뜻이 어쩌고 하는데, 진정 하늘의 뜻으로 본다면 범이나 사람이나 다 똑같은 목숨이요, 메뚜기나 누에, 벌도 마찬가지가 아니냐. 그런데 너희들은 버젓이 남의 밥을 훔치고, 옷을 빼앗고, 집을 부수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더구나. 그러니 그 잔인하고 야박한 짓거리가 너희들보다 심할 수 있겠느냐? 더욱이 범이 표범을 잡아먹지 않는 것은 차마 같은 종족을 해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허구한 날 전쟁을 일삼으며 같은 사람을 서로 죽이지 않느냐?

또 우리는 발톱과 어금니 외에는 어떤 무기도 쓰지 않으며 하루에 한 번 사냥해서 까마귀와 솔개, 개미와 함께 나누어 먹고, 아첨하는 자와 병 있는 자, 상복을 입은 자는 잡아먹지 않는다. 그러니 그 어질고 의로움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그런데 너희들은 함정을 파는 것도 부족해서 그물을 친다, 창을 던진다, 통발을 놓는다, 덫을 놓는다, 총을 쏜다, 온갖 무기를 다 쓰더구나. 거기다 대포를 한 번 쏘면 소리가 산을 울리고 불이 뿜어져 나와 천둥보다 더 사납다. 그런데 그것으로도 성난 마음을 다 풀어내지 못한다. 그뿐이냐. 그것도 모자라서 글자를 가지고 서로 헐뜯고 모함하고 다치게 하기를 밥 먹듯 하니, 그 가혹함이 어찌 너희들보다 더할 수 있겠느냐?

- 박지원·이옥, <양반전 외>(재미있다 우리고전 10), 창비, 68-69.

 

 

 

 

 

 

 

 

 

 

아까 영화 매트릭스를 OCN에서 해주던데, 거기서 스미스 요원은 붙잡힌 모피어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I'd like to share a revelation that I've had during my time here. It came to me when I tried to classify your species. I realized that you're not actually mammals. Every mammal on this planet instinctively develops a natural equilibrium with the surrounding environment, but you humans do not. You move to an area, and you multiply, and multiply, until every natural resource is consumed. The only way you can survive is to spread to another area. There is another organism on this planet that follows the same pattern. A virus. Human beings are a disease, a cancer of this planet, you are a plague, and we are the cure.

 

대충 요약하면

스미스 요원: (경멸하는 듯한 표정으로 모피어스를 바라보며) "내가 알아보니까 말이지, 너희 인간들은 포유류가 아니었어. 포유류는 자연과 잘 어울리면서 살아. 하지만 너희들은 그러지 않지. 너희들은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번식하고 또 번식하면서 모든 자원들을 고갈시켜. 너희들이 살아나가려면 또 다른 곳으로 퍼져나갈 수밖에 없는데, 이런 생존방식을 가진 똑같은 것들이 또 있어. 그게 뭔지 아나? 바로 바이러스야. 인간은 질병이야, 지구의 암세포지. 너희들이 전염병이면, 우리는 그 치료제야."

 

어째 <호질>에 나오는 호랑이 말과 너무 비슷한 거 아닌가 싶다.

스미스 요원은 모르긴몰라도 박지원 책에 나온 호랑이를 모델로 만든 백신 프로그램임이 분명하다. 

 

그냥 애들이나 읽고 말 책이 아니라 어른들도 곁에 두고 뜻을 되새겨봐야 할 얘기다.

하긴 책을 읽기는 커녕 시험에 나온다니까 "박지원의 <열하일기>, <양반전>, <호질>"이라고 줄줄 외우고만 말겠지.

학교 국어 시간에 우리 고전 문학에 대해 내용을 천천히 감상해 가면서 배워 본 기억이 없다.

낱말 풀이만 대충 하고 넘어가던 과목 고전문학은 나에게 '제3외국어'였다.

도대체 학교에선 뭘 배웠는지 모르겠다. 요즘 애들은 학교에서 뭘 배우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왜 이렇게 모르는 게 많은지도 모르겠다.

 

외국에선 전통 문학을 소재로 교실에서 연극까지 한다던데... 고전 소설로 대본 만들고 (되도않는) 연극 같은 거 했었다면 얼마나 재미있었겠나. 그러면 억지로 외우지 않아도 저절로 이런 촌철살인의 호랑이 대사를 줄줄 외웠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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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테면 단편집 <맛>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미국은 여자에게 기회의 땅이다. 이미 여자들이 국부의 85퍼센트 정도를 소유하고 있으며, 머지않아 전부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혼은 이익이 많이 남는 장사가 되었다. 처리하기도 간단하고 쉽게 잊을 수 있다. 야망이 큰 여자들은 원하는 만큼 자주 그 일을 되풀이하여 수입을 천문학적 숫자로 부풀릴 수 있다. 남편의 죽음 역시 만족스러운 보답을 안겨주기 때문에, 어떤 여자들은 이 방법을 더 좋아하기도 한다. 기다리는 기간이 지나치게 늘어나 안달을 하게 되는 일은 없다. 남편은 오래지 않아 과로와 지나친 긴장에 시달리게 되고, 결국 한 손에는 벤제드린(각성제 상표―옮긴이) 또 한 손에는 진정제를 쥐고 책상에 앉은 채 죽어주기 때문이다. (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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