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크 짐멜에 관한 이런 글을 읽고 있자니 어서 빨리 다음 타자로 모셔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他者가 될는지 (나를 두들기는) 打者가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짐멜은 ‘문화’를 폭넓고 절충적인 의미로 이해한다. 문화에 관한 그의 수많은 글은 실로 다양한 논제를 다루는데, 그 범위는 스타일과 패션 디자인, 사진과 자기 연출과 얼굴, 만화와 캐리커쳐, 식사와 구애와 애교, 선물과 편지 쓰기, 비밀 유지와 신중함, 건물과 다리와 문, 젊음의 관념과 모험가의 신화에까지 이른다. 패션에 대한 글에서 짐멜은 옷차림과 몸치장의 형태를 세련되고 고상한 외모를 지향하는 사회의 경쟁적인 실천과 연결시킨다. 패션은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우월감을 주며 그와 동시에 그들을 사회집단으로 묶는다. 패션은 출중하다고 지각되는 형태와 표준이라고 지각되는 형태의 차이를 부단히 교체하는 과정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짐멜은 보석류가 착용자에게 사회적 주목을 받는 중심에 있다는 각별한 느낌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확고히 하는지 보여준다. 보석이라는 물건은 진귀하지만 유일무이한 것은 아니며, 소유자한테 속한 것이지만 소유자를 인격적으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상품이다. 소유자가 그것을 도저히 제작해낼 수 없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것은 소유자를 위해 사회적으로 눈부시게 빛난다. (231-232)

짐멜은 건축의 역사적 패스티시pastiche, 모방, 향수에 대한 유행 속에서, 폐허에 대한 19세기와 18세기 열정 속에서, 여행객을 끄는 로마와 피렌체와 베네치아 같은 이탈리아 도시와 알프스 풍경의 매력에서, 유사한 사회집단의 역학이 어떻게 효력을 발휘하는지 주지시킨다. 이들 이미지는 문화에 자연의 모습을 불어넣고 자연에 문화의 모습을 불어넣는다. 이들은 역사를 신화와 미적 인공물로 변모시킨다. (232)

그는 ‘사회학의 인상주의자’다. 그의 글쓰기 형태가 아니라 설명하려는 야망이 그러하다. 실례를 들어 생생히 그려 보여주는 것과 토막글을 선호한 짐멜에게서 우리는 설명 가능한 객관성에 대한 열망과 보편적 진·선·미의 공준에 대한 염원이 밑바탕에 깔려 있음을 포착할 수 있다. 19세기 말 미적 타당성을 흐리고 파편화하는 문화 경향에도 불구하고, 짐멜은 아름다움을 본유적인 보편 가치로 보는 생각을 굳게 지켰다. 짐멜은 미적 취미의 사회적 상대성을 설명할 수 있으며, 미적 가치의 보편성과 자율성 관념을 여전히 견지할 수 있다고 논한다.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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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시장이 사회에서 가장 진가를 인정받은 문화 상품의 투명한 매개자라고 보는 생각에 회의적인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틀리지 않다고 결론을 내려도 좋겠다. 매스컴에서 가장 '수요가 많은' 것으로 보도된 문화 생산품이 공급자들의 다음과 같은 자기 완결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을 통해 과대 광고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그들의 생각은 틀리지 않다. 공급자들한테 어떤 대안적인 공동의 수단을 통해 그들의 평가를 표현할 기회가 없는 이상, 그 수요는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경험할 만하다고 생각할 것을 실지로 반영하지 못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가장 많이 팔린 생산품이 반드시 사람들이 가장 큰 가치를 두는 생산품인 것은 아니다. (271)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고 있자니 수많은 독서가들이 올려주는 알라딘 서재글들도 꽤 유용한 사회적 기능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해 아침에 알라딘에서 발견한 '북플'을 (독서지원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깔고, 신세계에 발을 들였다.

'읽고 싶어요' '읽었어요' '좋아요'에 아직 적응중이다. 나로선 이게 SNS 첫경험이다.

간단한 독서기록과 책 보관 기능(읽고싶어요)은 괜찮은데, 정작 글 작성은 서재에서만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저런 글자색, 글꼴 태그가 북플에 적용이 안되는 것 같다. 뭐 언젠간 보완되겠지.

 

그나저나 저 책 뒤로 갈수록 너무 어려워져서 한계를 느끼고 있다.

책에 나오는 사회학자와 미학자들의 저술을 좀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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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1-20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북플은 이웃님들 글을볼때만 사용하구 글을 쓸때는 컴퓨터를 사용하게 되더라구요ㅎ 다양한 기능이 나왔음 좋겠어요 ㅋ

돌궐 2015-01-20 00:29   좋아요 0 | URL
맞아요.^^ 북플이 관심책 리뷰도 알려주고 이웃님 글도 수시로 올려주니까 좋은 글 볼 기회가 많아져서 좋습니다.
 

로알드 달, <우리의 챔피언 대니>에서 인상적인 두 구절이다.

 

"엉터리 꿩 사냥에 대해 이야기해 주마. 그건 부자들이 하는 짓거리란다. 아주 돈이 많은 부자들만이 사냥하는 재미로 꿩을 키울 여유가 있으니까 말이다. 돈만 많은 멍청이들은 해마다 엄청난 돈을 들여 꿩 농장에서 어린 꿩을 산 다음, 숲에 풀어 놓을 정도로 자랄 때까지 우리에서 기른단다. 숲에 풀어 놓은 어린 꿩들은 마치 닭들처럼 무리를 지어 다니지. 파수꾼들은 꿩을 지키면서 하루에 두 번씩 가장 좋은 옥수수를 모이로 준단다. 꿩들이 통통하게 살이 올라 날아가지 못할 정도로 말이야. 그런 다음에는 몰이꾼을 고용하는 거야. 몰이꾼들은 손뼉을 치거나 요란한 소리를 내서 총을 들고 있는 멍청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꿩을 몰아 주는 거지. 그리고 빵, 빵, 빵 꿩들이 쓰러진단다. 딸기 잼 발라 줄까?" (51-52쪽)

 

* 어린이 문학에서 이런 신랄한 풍자를 볼 수 있으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대니, 이 울음소리가 들리니?"
"네."
"이건 암컷을 부르는 황소개구리의 울음소리란다. 녀석은 목 아래 군턱을 부풀려 트림하듯이 바람을 뱉어 내며 소리를 내지."
내가 물었다.
"군턱이 뭐예요?"
"턱 아래에 처진 살을 말한단다. 녀석은 군턱을 마치 작은 풍선처럼 부풀릴 수가 있거든."
"암컷이 그 소리를 들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데요?"
"암컷이 수컷한테 폴짝폴짝 뛰어오지. 아주 행복해하면서 말이다. 아빠가 이 늙은 황소개구리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줄게. 녀석은 가끔 자기 울음소리에 취해서 암컷이 몇 번이고 툭툭 쳐야 그제서야 소리 내기를 멈추고 돌아서서 암컷을 끌어안아 준단다."
이야기를 들으니 난 웃음이 나왔다.
아빠는 눈을 반짝이면서 말했다.
"그렇게 웃을 것 없다. 우리 남자들도 황소개구리하고 별다를 게 없으니까." (161-162쪽)

 

* 마찬가지로, 어린이 문학에서 이런 번뜩이는 비유를 듣게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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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1-15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의 소설이 아동문학으로만 인식된 탓에 이런 풍자의 묘미를 발견하지 못하거나 아예 모르는 독자들이 많을 겁니다. 저도 <찰리와 초콜릿 공장>만 읽었던 터라 달의 작품 세계를 논할 수준은 안 되지만, 달이 쓴 작품들에 이런 재미있는 비유 표현이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돌궐 2015-01-15 11:32   좋아요 0 | URL
저는 어렸을 때 로알드 달을 읽지 못한 게 너무 억울합니다. 애들 읽어주면서 처음 읽었어요.

cyrus 2015-01-15 11:35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저도요.
 

 

 

 

 

 

 

 

 

 

 

 

 

 

공부하는 자세와 방법은 학교에서 스승님들께도 배웠지만 책에서도 배웠다. 

연구나 공부에 임하는 자세를 알려준 책 가운데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예전에 적어두었던 정약용 선생의 몇몇 구절들(그리고 정민 선생의 해설)을 옮겨 본다.

 

 

단호하고 굳세게 잘못을 지적하라
절시마탁법(切偲磨濯法)
 
글로써 벗과 만나는 것은 옛사람이 즐거워한 일이다. 다만 근세에 학자들은 서로 모여 강학할 때, 매번 알맹이 없이 칭찬하고 거짓으로 겸손해하며 하루해를 마친다. 갑이 온통 치켜세워 찬양하면, 을은 몸을 받들어 물러선다. 다시 을이 두 배나 더 칭송하면 갑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겸양한다. 하지만 몸과 마음의 실지에는 절시마탁하는 보탬이 없다.  (「서암강학기(西巖講學記)」 9-44)

 

비판할 뿐 칭찬 말라

절시마탁(切偲磨濯)은 잘못을 바로잡고 책선(責善)해서 역량을 갈고닦는 것이다.
공부하는 사람은 서로에게 칭찬하는 법이 없다.
날카롭게 비판하고 냉정하게 평가해서 상대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고,
그가 잘못한 것을 드러내서 더 향상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비판에 대해서도 마음을 비워,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내세울 것은 더 확고히 내세워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늘 반대로 한다.
남의 부족한 점은 그저 듣기 좋은 말로 칭찬해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넘어간다.
남의 비판에 대해서는 얼굴이 벌게져서 불쾌하게 생각한다.
남이 입에 발린 말로 칭찬해주면 그제야 흡족해서 '그러면 그렇지' 한다.
앞의 인용은 다산이 정리한 <서암강학기>에서, 이삼환이 토론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자세를 환기하며 한 말이다.
다산은 이 말이 인상적이었던지 다른 글에서도 그대로 인용했다.
 

보내신 글 가운데 칭찬이 너무 많아 실정보다 지나칩니다.
앞쪽의 백여 마디는 글자마다 실지(實地)를 잃어, 읽고 나서는 몹시 실망했습니다.
옛날 10년 전에 서울의 여러 벗과 강학하며 도에 대해 논할 때 일입니다.
갑이 말끝마다 칭찬하면 을은 몸을 받들어 사양합니다.
이번엔 을이 배나 더 칭송합니다. 그러면 갑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겸양하지요.
마침내 몇 년 뒤에는 둘 다 벼슬길로 나아가 우뚝하게 수립한 자가 없었습니다.
이는 깊이 경계로 삼아야 할 바입니다.
지난번 산사에 있을 때 목옹(木翁) 이삼환 선생께서 누누이 당부하시기를,
이 같은 습속을 없애기에 힘쓰라고 하셨는데, 형께서 선생이 크게 경계하신 일을 그릇 범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대저 벗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절시마탁하는 유익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마치 돌침으로 뼈에 침놓듯이 어리석고 게으름을 경계하고, 쇠칼로 눈동자의 백태를 깎아내듯 허물과 잘못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상대방이 설령 큰 재주와 높은 덕이 있다 해도 내가 무엇 때문에 그를 향에 이를 말하겠습니까?
하물며 속되고 비루한 무리에게 과도하게 칭찬을 더하는 것은 장차 남에게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니,
주는 자나 받는 자나 그 잘못이 똑같을 뿐입니다.
<이문달에게 답함[答李文達]>

 
냉정한 비판을 원했는데 잔뜩 칭찬만 들으니 몹시 불만스럽고 실망스럽다는 내용이다.
서로 덕담이나 주고받자는 태도로는 발전이 있을 수 없다.
남을 칭찬하는 것이야 나쁠 게 없지만, 공부의 자리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겸손이 미덕이긴 해도 토론의 자리에서는 안 된다.
학문의 문제로 토론하는 자리에서는 돌바늘로 뼈를 찌르고, 쇠칼로 각막의 백태를 긁어내는 촌철살인의 날카로운 비판이 있을 뿐이다.
결코 물러설 수 없다는 불퇴전(不退轉)의 기상이 있을 따름이다.
서로 칭찬이나 하고 덕담이나 주고받으려면 토론은 무엇때문에 하는가?

상대의 과도한 칭찬이 멋쩍어 보낸 글로 읽기에는 언사가 다소 과격하다.
다산은 이 편지의 끝을 "우리는 우의가 동문과 한가지니, 무릇 허물이나 잘못이 있게 되면 서로 바로잡고 경계해주어야 마땅합니다. 말을 꾸며서 높이고 숭상하고 한때의 기쁨을 취하는 것은 마땅치가 않습니다."는 말로 맺고 있다.
다산은 그의 칭찬을 찬찬히 살피고 따진 데서 나온 것이 아니라, 듣기 좋은 말로 그저 상대방 기분 좋으라고 한 의례적인 치레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225-227)

 

 

아래는 다산 정약용이 어느 여름날 친구들과 함께 세검정에서 노닌 뒤에 쓴 글이라 한다.

정약용이 맨날 각박하게 남들 비판만 하면서 산 것은 아니다.

삶 속에 정취를 깃들이라고 했던가.

 

세검정에서 노닌 기 遊洗劍亭記
세검정의 빼어난 풍광은 오직 소낙비에 폭포를 볼 때뿐이다. 그러나 막 비가 내릴 때는 사람들이 옷을 적셔가며 말에 안장을 얹고 성문 밖으로 나서기를 내켜하지 않고, 비가 개고 나면 산골물도 금세 수그러들고 만다. 이 때문에 정자가 저편 푸른 숲 사이에 있어도 성중(城中)의 사대부 중에 능히 이 정자의 빼어난 풍광을 다 맛본 자가 드물다.
신해년(1791) 여름의 일이다. 나는 한혜보 등 여러 사람과 함께 명례방 집에서 조그만 모임을 가졌다. 술이 몇 순배 돌자 무더위가 찌는 듯하였다. 먹장구름이 갑자기 사방에서 일어나더니, 마른 우레소리가 은은히 울리는 것이었다. 내가 술병을 걷어치우고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이건 폭우가 쏟아질 조짐일세. 자네들 세검정에 가보지 않으려나? 만약 내켜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벌주 열 병을 한 차례 갖추어 내는 걸세." 모두들 이렇게 말했다. "여부가 있겠나!"
마침내 말을 재촉하여 창의문을 나섰다. 비가 벌써 몇 방울 떨어지는데 주먹만큼 컸다. 서둘러 내달려 정자 아래 수문에 이르렀다. 양편 산골짝 사이에서는 이미 고래가 물을 뿜어내는 듯하였다. 옷자락이 얼룩덜룩했다. 정자에 올라 자리를 벌여놓고 앉았다. 난간 앞의 나무는 이미 뒤집힐 듯 미친 듯이 흔들렸다. 상쾌한 기운이 뼈에 스미는 것만 같았다.
이때 비바람이 크게 일어나 산골물이 사납게 들이닥치더니 순식간에 골짜기를 메워버렸다. 물결은 사납게 출렁이며 세차게 흘러갔다. 모래가 일어나고 돌멩이가 구르면서 콸콸 쏟아져내렸다. 물줄기가 정자의 주춧돌을 할퀴는데 기세가 웅장하고 소리는 사납기 그지없었다. 난간이 온통 진동하니 겁이 나서 안심할 수가 없었다. 내가 말했다. "자! 어떤가?" 모두들 말했다. "여부가 있나!"
술과 안주를 내오라 명하여 돌아가며 웃고 떠들었다. 잠시 후 비는 그치고 구름이 걷혔다. 산골물도 잦아들었다. 석양이 나무 사이에 비치자 물상들이 온통 자줏빛과 초록빛으로 물들었다. 서로 더불어 베개 베고 기대 시를 읊조리며 누웠다.
조금 있으려니까 심화오가 이 소식을 듣고 뒤쫓아 정자에 이르렀는데 물은 이미 잔잔해져버렸다. 처음에 화오는 청했는데도 오지 않았던 터였다. 여러 사람이 함께 골리며 조롱하다가 더불어 한 순배 더 마시고 돌아왔다. 같이 갔던 친구들은 홍약여와 이휘조, 윤무구 등이다. 
 

내가 다산의 글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세검정에서 노닌 기>의 전문이다.
절정의 순간은 언제나 미리 깨어 준비한 자의 몫이다.
멍청한 인간들은 기차가 떠난 다음에야 그것이 기회였던 줄을 깨닫는다.
빗방울에 옷을 적실 각오 없이는 세검정의 빼어난 풍광은 볼 수가 없다.
비가 그친 뒤에 출발하면 늦는다.
비가 오기 전에, 혹은 비를 맞으면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 최고의 세검정을 만끽할 수 있다.

나에게 다산의 이 글은 그저 벗들과 작당하여 세검정으로 나들이를 다녀온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행간 깊게 들린다.
"깨어 있어라. 맥락을 넘겨짚는 안목을 길러라. 떠난 기차는 붙들 수가 없고, 가버린 기회는 돌아오지 않는다. 뒤늦게 헐레벌떡 달려오면 좋은 구경도 못하고 웃음거리만 된다."  (497-499)


인터넷에서 찾은 다산 글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游洗劍亭記

洗劍亭之勝, 唯急雨觀瀑布是已. 然方雨也, 人莫肯沾濕鞴馬 而出郊關之外. 旣霽也, 山水亦衰少. 是故亭在莽蒼之間, 而城中士大夫之能盡亭之勝者鮮矣.

辛亥之夏, 余與韓徯甫諸人, 小集于明禮坊. 酒旣行, 酷熱蒸鬱, 墨雲突然四起, 空雷隱隱作聲. 余蹶然擊壺而起曰, 此暴雨之象也, 諸君豈欲往洗劍亭乎. 有不肯者罰酒十壺, 以供具一番也. 僉曰可勝言哉. 遂趣騎從以出. 出彰義門, 雨數三點已落, 落如拳大. 疾馳到亭下, 水門左右山谷之間, 已如鯨鯢噴矣, 而衣袖亦斑斑然. 登亭列席而坐, 檻前樹木, 已拂拂如顚狂, 而酒浙徹骨.

於是風雨大作, 山水暴至, 呼吸之頃, 塡谿咽谷, 澎湃砰訇, 淘沙轉石, 潑潏奔放. 水掠亭礎, 勢雄聲猛, 榱檻震動. 凜乎其不能安也. 余曰何如. 僉曰可勝言哉. 命酒進饌 諧謔迭作. 少焉雨歇雲收, 山水漸平. 夕陽在樹, 紫綠萬狀. 相與枕藉吟弄而臥. 有頃沈華五得聞此事, 追至亭. 水已平矣. 始華五邀而不至, 諸人共嘲罵之. 與之飮一巡而還. 時洪約汝, 李輝祖, 尹无咎亦偕焉.

(http://blog.daum.net/chosunsachoyduhway/7812256 에서 퍼옴)

 

 

큰 소낙비가 내린 뒤에 해가 넘어가면 온 세상이 울긋불긋해진다.
벌써 십 수년 전 일이다. 고등학교 때 친구 두 놈과 안면도 꽃지에 갔다가 도착하자마자 큰 비가 와서 허겁지겁 수로를 파고, 어설프게 텐트를 치던 생각이 난다.
찌개를 끓여 요기를 하고 나니, 비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는데 검은 구름 밑으로 붉은 해가 지고 있었고, 바다는 온통 남색과 군청색, 구름과 바다 사이의 하늘은 빛나는 황금색, 물결에 이리저리 깨지듯 반사되던 하얀 햇빛, 그리고 붉은 모래사장, 길게 뒤로 뻗은 우리들의 그림자... 이루 다 기억할 수 없을만큼 아름다운 색상의 스펙트럼이 서쪽 하늘에 가득히 펼쳐졌고, 한 동안 우리들은 그곳에서 넋을 잃고 서있었다.
그 때 아버지께 물려받은 수동식 펜탁스 카메라로 남기려 했던 이 광경은 어이없게도 노출조정 바늘 고장으로(아마도 수은 건전지가 다 되었던 것같다) 대충 직감으로 조리개와 노출시간을 맞추어 찍느라 사진에 제대로 담지 못했지만 그 이미지는 내 가슴 속에 참 선명하게 인화되어 있다.
자연 앞에 감동을 받은 정약용은 이처럼 실감나게 기록을 남겨두었는데, 비슷하다면 비슷한 경험을 했던 나는 손가락 몇 번 눌러서 사진에 담을 수 없자 그저 기억에만 남겨두려 했으니... 위인과 범부는 이다지도 차이가 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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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1-14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제일 선호하는 공부법이 절시마탁법입니다. 제 블로그는 건전한 비판이나 다른 의견을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돌궐 2015-01-14 17:08   좋아요 1 | URL
너무 입바른 소리만 해서 적을 만들게 되면 또 안되니까 비판도 적당히 조절하여 해야겠습니다.^^

해피북 2015-01-14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다 읽지 못한 책중 하나인데 돌궐님의 글을 읽으니 어서어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 배우고 갑니다~^^

돌궐 2015-01-14 17:05   좋아요 0 | URL
제가 인용한 것 말고도 좋은 구절들 많습니다. 즐겁게 읽으시길 바랍니다.
 

 

 

 

 

 

 

 

 

 

 

 

 

 

 

(노비 점복어멈이 자리에 눕자 장계향은)

직접 노복들의 처소로 갔다. 지금껏 충효당 안주인이 그곳으로 직접 들어온 적은 없었다. 간혹 노복들이 죄를 지었거나 추궁당할 일이 있을 때, 사랑채의 집사가 그들 처소 앞에 가서 불러내는 것이 전부였다. 특히 여자노비들의 처소는 집사도 가본 적이 없었다.

 

장계향이 나타나자 노복들은 긴장부터 했다. 점복어멈이 누워있는 방을 물어서 들어섰다. 방문을 여는 순간 악취가 코를 찔렀다. 방안은 어둡고 좁았다. 늙은 노비는 요강을 끌어안고 앉아서 피 묻은 가래를 내뱉고 있었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얼굴엔 피와 가래가 묻어 있었다. 바닥은 차갑진 않았지만 삿자리가 깔렸는데 군데군데 뭉개진 구멍에서 흙먼지가 폴삭거렸다. 늙고, 초라하고, 악취를 풍기는 늙은 노비는 작은 비둘기만 하다는 말이 어울릴 듯했다.

장계향은 몹시 부끄러웠다. (빈민구제로 바쁜) 충효당 안에 이런 곳이 있고,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친정아버지는 대낮에 혼자 길을 갈 때는 그림자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하고, 밤에 홀로 잠을 잘 적엔 이불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이것은 정녕 부끄러운 일이다. 충효의 고색창연한 위엄과 권위, 존경과 긍지가 깃들어 있다고 믿어온 충효당이 거느리고 있는 식솔치고는 너무 안타깝고 외면된 모습이었다.

당장 안채의 목욕간으로 데려갔다. 점복이가 업었다. 목간물을 끓여 손수 씻기기 시작했다. 그 몸은 마르고 작았다. 저 몸으로 바느질한 옷을 떨쳐 입고 사대부 양반가문 사람으로 대접받고 살았구나 싶으니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낯을 들 수 없도록 미안했다. 머리를 감기자 그는 울음을 터뜨렸다. 충효당 작은 마님 장계향의 마음이 전해진 것이다. 한바탕 요란을 떨며 목욕을 마치고 안방으로 데려갔다. 우선 자신의 옷을 입혀놓고 말했다.

“다 내 탓이네. 미안하고, 부끄럽네.”


늙은 노복이 거처하던 방을 서둘러 도배를 하고 새 자리를 깔면서 다른 노복들의 방도 손질을 시켰다. 하룻밤을 장계향과 한방에서 자는 동안 열 번도 넘게 고맙다며 눈물을 보였다. 도식이를 불러 진맥을 했다. 기력이 많이 떨어진데다 폐가 나빠져 있고 위장도 성치 못한 것 같다 했다. 일단 약을 지어오게 하여 장계향이 손수 달여 먹였다. 새로 단장한 방으로 돌아간 뒤에도 하루 두 번은 꼭꼭 약을 달여 들고 가서 챙겨 먹였다. 그리고 새로운 처방 하나를 손수 내어서 약을 만들었다.

누렁이를 삶아 먹여 기운을 북돋우는 처방이었다. 먼저 누렁이한테 누런 닭 한 마리를 먹여 닷새를 지냈다. 엿새째되는 날 그 개를 잡는다. 뼈를 발라 버리고 고기를 여러 번 물에 씻었다. 그런 다음 진하지 않은 간장 한 사발과 참기름 다섯 홉을 타서 개고기와 함께 작은 항아리에다 담았다. 항아리의 아가리를 김이 새나가지 않게 잘 봉하여 중탕을 시작했다. 저녁 으스름 때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삶았다. 충분히 삶기면 초간장에 파를 넣고 완성시킨 보약이었다.

열흘 뒤 점복어멈은 기운을 회복했다. 충효당의 남녀 노비들이 안채로 찾아와서 큰절을 올렸다. 장계향은 겨울에 입을 옷 한 벌씩을 선물로 주면서 말했다.

“이 모든 것이 다 내 탓이었네. 미안하고 부끄럽네. 용서들 하시게.”

(363-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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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계향 조선의 큰어머니
    from 突厥閣 2015-01-12 00:42 
    조선 중기(17세기)라는 시대와, 사대부의 철학(성리학)의 일면을 이해하기에 괜찮은 책이다. 장계향의 일생을 사건만 나열하여 연대기식으로 서술한 소설이 아니라 치밀하게 서술된 인물 평전이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장계향 시대의 문화와 역사까지도 필요할 경우에는 지나치더라도 매우 꼼꼼이 언급하고 지나간다. 따라서 중간중간 따로 설명하는 철학이나 문학 설명에서는 지루해지면서 흐름이 끊기는 면은 있는데 그건 정말 잠깐일 뿐, 이내 파란만장한 삶과 긴박감 넘치
 
 
cyrus 2015-01-11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땅콩 사장님과 그 사장님의 동생은 아직까지 본인들이 욕먹는 이유가 남 탓으로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정말 갑질하는 리더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 감동적인 일화를 알았으면 좋겠어요.

돌궐 2015-01-11 20:51   좋아요 0 | URL
돈 좀 있다고 거들먹거리고 남들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돈이 권력인 시대여서 그런가 봅니다.

가넷 2015-01-12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갑질을 은연중에 하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보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요즘에 유명해진 모모씨의 갑질을 보면서 말이죠. 대민업무를 보다 보면서 쌓이는 스트레스에 이제는 제가 어디를 가서 갑질은 안하고 있는지 계속 점검하고 있지만 자신은 없네요.

돈이 없다고 갑질 안하는게 아니니까요...

돌궐 2015-01-12 00:57   좋아요 0 | URL
저도 항상 제 자신을 되돌아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쪼꼬미뽀 2015-01-12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