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다 읽은 책에 아래와 같은 글이 나온다.

 

"친구여, 언제나 현재 상황을 헐뜯는 것은 쉬운 일이며 또 인간의 특징이기도 하지요. 아마도 위대한 인물들을 망쳐 놓는 것은 세계 평화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욕망들을 움켜잡고 있는 이 끝없는 전쟁과 오늘날 우리의 생활을 점거하여 이를 뿌리째 파괴하고 있는 열정들일 것이오. 우리 모두가 앓고 있는 탐욕스런 병인 금전욕과 향락욕은 우리를 자신들의 노예로 만들고 있소. 아니, 그것들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익사시킨다고 해야겠지요. 금전욕은 우리를 시들게 하는 병이고, 향락욕은 가장 비열한 것이오. 

 

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가 무한한 부(富)를 그렇게 존중하고도, 아니 신격화하고도 어떻게 거기에 수반되는 악들이 우리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인지 알 수 없소. 제어되지 않은 무한한 부에는 사치가 가까이서 사람들 말마따나 보조를 맞추며 뒤따르기 때문이오. 부가 도시들이나 집들의 문을 여는 순간 사치도 함께 들어가 그 안에서 살지요.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 생활 속에 얼마 동안 머물게 되면 철학자들 말마따나 그곳에 둥지를 틀고는 곧 새끼를 치기 시작하는데, 탐욕과 교만과 허영이 곧 그것이오. 이것들은 서자가 아니라 그것들의 적자들이오. 그리고 이들 부의 자식들은 성년이 되면 곧 우리 마음속에 사정없는 폭군들인 오만과 무법과 파렴치를 낳게 되지요.

 

이것은 불가피한 과정이오. 그러면 사람들은 더 이상 위를 쳐다보지 않고 자신들의 미래의 명성에 유념하지도 않을 것이오. 이러한 악덕들이 순환하는 가운데 인간들의 삶은 점진적으로 파괴되고 정신의 위대성은 이울다가 사라지며 더 이상 추구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오. 왜냐하면 인간들은 자신들에게서 필멸의 부분은 존중하고 불사의 부분은 개발하기를 게을리하기 때문이오.

 

뇌물 받고 재판하는 자는 정당하고 아름다운 것에 관하여 결코 자유롭고 건전한 재판관이 될 수 없소. 뇌물 받은 자에게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이익만이 아름답고 정당해 보일 테니까요. 지금 우리 모두의 삶은 전적으로 뇌물의 지배를 받고 있고, 우리는 또 다른 사람의 죽음을 노리는가 하면 유산을 타기 위하여 덫을 놓고 있소. 우리는 또 저마다 탐욕의 노예가 되어 모든 것에서 이익을 얻고자 영혼도 팔아먹었소. 하거늘 이렇듯 역병으로 삶이 파괴된 가운데서 영원히 지속되는 위대한 것들의 자유롭고 부패하지 않은 재판관이 아직도 남아 있기를, 그리고 그가 이익에 대한 욕망에 압도되지 않기를 우리가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소.

 

사실 우리 같은 인간들에게는 자유로운 것보다는 지배받는 편이 더 낫소.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가 주어져 우리가 말하자면 풀려난 죄수들처럼 이웃들에게 덤벼들게 된다면 탐욕은 악의 홍수로 세상을 뒤덮을 것이오. 간단히 말해서" 하고 나는 말을 이었소. "오늘날 인간들의 자질을 망쳐놓는 것은 나태이며 소수를 제외하고는 우리 모두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소. 우리의 모든 노력과 기도(企圖)가 지향하는 것은 칭찬과 쾌락이지 추구하고 존중할 만한 가치가 있는 선행이 아니기 때문이오." (393-395)

 

요즘 사람들의 물욕과 이기심, 천박한 사치와 허영을 비판하는 듯한 이 글은 사실

기원후 1세기 경의 그리스 출신 저술가로 알려진 롱기누스가 <숭고에 관하여>라는 책의 맨 뒷부분에 쓴 글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자본주의가 생긴 이후에 쓰여진 문장이 아니라 무려 2천 년 전의 문장인 것이다.

2000년 전이라고? 근데 왜 난 어제 들었던 얘기 같을까?

 

역사는, 정말 되풀이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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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2-18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번 읽었네요~~~. 느끼는 바가 큽니다. ㅠㅠ

돌궐 2015-02-18 16:27   좋아요 0 | URL
그러시다니 굳이 옮겨 적은 보람이 있네요.^^

cyrus 2015-02-18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장에 오랫동안 방치된 시학을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

돌궐 2015-02-19 00:14   좋아요 0 | URL
제가 요즘 서양 고전들을 막 찾아다닌 이유가 이 책 때문입니다.
호메로스, 헤로도토스, 투퀴디데스 등 저명한 작가들이 자주 소개되고 있어서 궁금증이 생기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