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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 ㅣ 한길 히스토리아 14
필립 지글러 지음, 한은경 옮김 / 한길사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1347년 10월 초순경, 페스트가 시칠리아에 상륙했고, 석달 후 이탈리아 본토가 이 질병의 공습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1348년 1월말 이 검은 죽음은 배를 타고 마르세이유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11월 경에는 독일의 슈타이어마르크에 도달했다. 그리고 한달 후에 잉글랜드에 상륙했고, 1349년 6월에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국경에서 독일의 쾰른까지 전진했다. 이 죽음의 병은 멈추지 않고 동년 12월에는 스코틀랜드와 덴마크를 지나서 1350년 6월 스웨덴을 가로질러 12월 러시아를 지나 사라졌다. 약 3년에 걸친 페스트의 습격으로 유럽 전체는 엄청난 타격을 받았고, 당시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람들은 이 질병이 시칠리아에 상륙한 때부터 서서히 그러나 아주 확실하게 자신들을 향해 서서히 북상하는 것을 보며 공포에 질리고 두려움에 휩싸였다. 교회에서는 이 질병이 인간의 죄에 대한 하늘의 응징임을 설교하였다. 이에 겁을 먹은 수많은 무리들은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회개를 외쳐댔다. 하지만 이 행위 자체가 페스트를 유럽 곳곳으로 퍼뜨리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페스트가 지나간 자리에는 페허와 정적만이 남아있었다고 당시의 기록자들은 과장된 어조로 전하고 있지만 그 사실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피해는 엄청났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페스트가 당시 유럽인들에게 남긴 가장 큰 상처는 경제적인 손실보다는 마음속 깊은 곳에 남겨놓은 좌절감있었다. 저자는 이 마음의 공황상태를 일차대전 이후의 유럽인들의 상실감과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은 페스트에 대한 독특한 재해석으로 신선함감을 준다.
"엄밀히 경제적인 의미에서 흑사병은 농민폭동을 일으키거나 농노의 붕괴를 야기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흑사병은 여러 사례에서 마음에 쌓인 불만감과 변화를 바라는 형용할 수 없는 욕구를 야기했다."라는 표현에서 알수 있듯이 '경제'와 '농민폭동'대신 어떤 단어를 집어 넣어도 이 말은 당시 상황을 아주 간결하게 요약하고 있는 말이라 할 수 있다.
페스트는 당시 인간들에게 망치로 얻어맞는 충격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충격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부문에서 가해진 전체적인 타격이었다. 이 결과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 충격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했다는 기존의 학설은 과장된 점이 많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그 과장이 유럽 사회 전반을 규정짓는 성급한 판단으로 이해될 때 페스트가 가져온 유럽 사회의 변화를 곡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페스트로 인해 인간의 정신세계가 변모함으로서 유럽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수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유럽은 기존의 권위와 질서에 대한 철저한 재해석을 함으로서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빠져들어가지만 낡은 시대를 해체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페스트는 일차대전 이후 유럽인들이 연속적인 역사관을 부정하고 비연속적인 역사에 의한 단층적 역사관을 발전시키며 기존의 철학체계를 송두리째 뒤엎는 사상의 혁명을 일으켰듯이 기존의 종교에 일대 혁신을 꾀함으로서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인본주의의 근대를 열었던 것이다.
즉 페스트는 중세의 몰락과 근대의 탄생을 알리는 하나의 시발점이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