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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의 기사 ㅣ 가일스 밀턴 시리즈 4
가일스 밀턴 지음, 이영찬 옮김 / 생각의나무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중세 유럽인들을 사로잡은 이야기 하나. 사라센 제국의 저편에 사제 요한이 다스리는 기독교 왕국이 있다고 믿었다. 유럽인들은 자신들과 요한의 왕국이 연합한다면 사라센 이교도를 일거에 쓸어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에 고무되어 마르코 폴로의 대장정이 시작되었고, 동방의 모습-여전히 과장된-이 유럽에 소개될 수 있었다.
중세 유럽인들을 사로잡은 이야기 둘. 마르코 폴로의 여행이 있은지 반세기가 흐른 1320년 성 미카엘의 날에 맨드빌이란 사나이가 영국의 세인트올번스를 떠나 성지 순례에 나선다. 그리고 34년간의 순례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여행기>를 저술하였다. 그 이야기는 맨드빌이 죽은 1360년까지 전 유럽의 언어로 번역되었다.이런 인기를 반영하듯 현재 유럽의 모든 대형 박물관에는 맨드빌의 여행기 사본이 대략 300권정도가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1096년 십자군 전쟁이 발발하면서 동방의 문턱에 겨우 진입한 유럽은 1270년 십자군 전쟁의 패배로 다시 동방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유럽은 대략 170여년간 동방의 한귀퉁이를 차지하면서 소위 문명이 무엇인지를 맛볼 수 있었다. 이런 동방에 대한 기억은 많은 과장적인 이야기가 탄생하게하는 배경이 되었다. 그렇다면 유럽인들은 동방에서 무엇을 바란 것일까. 그들은 황금과 보석을 원했을 뿐이다. 맨드빌의 이야기는 이 황금과 보석을 찾아가는 유럽인들을 위한 안내서였던 셈이다.
사람들은 맨드빌의 <여행기>가 실제의 일을 기록한 것이냐 아니냐로 많은 논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중세로의 초대>라는 책을 쓴 호르스트 퓨어만은 중세의 위조에 대하여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면서 그 위조가 끼친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그는 성 보나벤투라의 말을 빌어 위조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것이 거짓이라 해도 최고의 진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이 말은 맨드빌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설사 그것이 거짓이라 하더라도 그 당시 유럽인들이 느꼈던 동방에 대한 갈망을 거짓이라고까지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맨드빌은 바로 이 유럽인의 갈망에 대한 해답을 자신의 여행기 속에서 제시해주고 있으며, 대리만족까지도 덤으로 주고 있다. 맨드빌의 이야기를 사실로 믿고 무조건 서쪽으로 향했던 콜롬버스의 행위는 거짓에 의거한 것이기에 폄하되어야 하는가? 아닐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 있어서 맨드빌의 여행기는 진실이라는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맨드빌의 여행기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이 이 책의 여행을 따라가는 것은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한다. 다만 이 맨드빌의 여행기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움베르토 에코의 <바우돌리노>이다. 바우돌리노의 이야기는 맨드빌의 이야기기 현대의 이야기꾼에 의해 어떻게 변형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수수께끼의 기사>를 읽고, 바우돌리노를 다시 한번 훑어 보았다. 그리고 약간의 대리만족을 얻었지만 <여행기>의 원문 혹은 번역문을 읽기 까지는 더 이상의 추측은...그럼, 여기까지...
*조속한 시일 내에 맨드빌의 여행기가 번역되어 나와야만이 정상이 아닐까. <생각의 나무>에서 마무리를 지어주는 것도 좋을듯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