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의 역사 - 문명화과정
노버트 엘리아스 지음, 유희수 옮김 / 신서원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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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화 과정이란 부제가 붙은 <매너의 역사>는 1939년에 출판되었지만 학계의 관심을 끌지 못하다가 70년대 프랑스 아날학파에 의해 이 책이 재조명되면서 빛을 보게된 책이다. 당시 아날학파에서 추구하던 역사에 대한 접근방식을 이 책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크게 어필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동양하면 젓가락을 서양하면 포크를 떠올릴만큼 젓가락과 포크는 동서양의 차이를 확연하게 보여주는 상징물이라 하겠다. 집는 문화와 찍는 문화의 두 세계는 외형적인 모양대로 보는 관점과 사유하는 세계의 경험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런데 동서양의 매너를 보면 그 차이는 젓가락과 포크처럼 크지 않다는데 놀랄 것이다. 두 사회 모두 매너나 예절에 큰 가치를 두며 그 가치는 사회적인 질서의 근간이 된다. 우리는 혁명적인 수단을 사용하지 않는 한 사회가 변화하는데는 장기적인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책을 읽을 때 유의해야할 점은 <매너>라는 단어이다. 우리는 매너라고 할 때는 좁은 의미의 식탁예절로 한정시키지만 이 책에서의 매너는 넓은 의미의 매너, 즉 식탁예절뿐만 아니라 생리적인 것과 성적인 것 모두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의미의 예절을 말하고있다. 즉 매너의 역사인 것이다.

이 책의 주제는 인간과 동물의 구별점이 무엇인지를 제자들에게 질문받은 孔子께서 禮, 다시말해 克己復禮라고 대답한 것과 같은 문제를 탐구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책을 차근 차근 읽어나가다 보면 우리는 예와 매너의 기저 깊숙이에 인간성의 훈련 혹은 통제의 뜻이 담겨져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는 역사의 문명화과정이 진행되면서 인간의 본성을 억압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매너는 자유로운 여성의 몸을 옭죄는 <패티코트>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진정한 매너는 무엇일까? 어떻게 보면 엘리아스는 참다운 문명이란 동양의 老莊사상가들이 외친 자연친화적인 것을 말하고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엘리아스는 문명화과정을 국가의 통제과정과도 연관지어 생각하게끔 우리에게 폭넓은 사고의 틀을 제공하였다. 실제로 선진국사회의 경범죄 처벌조항은 거의다 이 책에서 취급하고 있는 행위의 위반에 관한 것이다. 국가의 간섭, 이것은 어찌 보면 푸코의 주제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 사회에서도 매너는 상류층으로 도약하기 위한 하나의 기본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것은 매너가 대다수의 사람들이 지향하는 자유스러움과 자연스러움에 반하는 인위적이고 형식적인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다. 즉 매너는 계층의 구별을 확연하게 드러내주는 하나의 외적 표양인 것이다. 그러므로 매너의 본질은 <출입금지>라는 표찰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는 매너가 중세 왕족과 귀족을 중심으로 발전해 오면서 근대에 들어와서는 신흥 부르조아지 계급에 의해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현대사회는 중세나 근대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원화된 사회이다. 그리고 현대는 계급이 사라진 평등한 사회라고 정의되고 있다. 하지만 다원화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는 바로 현대가 다양한 계급의 사회로 진화(?)될수도 있다는 강력한 조짐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현대에서 매너는 무시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강조될 수도 있다는 점은 또 하나의 역설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매너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스럽게 살고싶다. 하지만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 아이들이 뛰어 다니지 않았으면 좋겠고, 개를 끌고 산책나온 사람들이 내 집앞에다 슬쩍 실례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결국은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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